|
*한글 파일이 필요한 분도 계실 둣하여 여기에 붙입니다.
각궁에 대하여
류근원(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청주 우암정)
서장: 글을 시작하며
각궁에 대한 공부도 활쏘는 공부만큼이나 끝없는 공부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밖에 없으므로 사법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각궁을 배우는 과정에서 두루 많은 고수들이 활 올리는 것을 살펴보고, 본인이 정성들여 활 올려보며 때로 묻기도 하고 때로 고수의 가르침을 듣는 행운도 얻어야할 것 같습니다. 각궁을 잘 쏘려면 자신에게 맞도록 각궁을 잘 다룰 수 있어야합니다. 활쏘는 것도 즐겁지만 각궁을 한적하게 다룰 수 있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제가 처음 각궁을 접한 것은 우암정의 김연문 사범을 통해서이지만, 이태호․정진명․장창민 선배 접장님들과 같이 활 공부하면서 그분들에게 각궁의 여러 가지 특성을 배웠고, 온깍지궁사회 모임을 통해 가끔 만나는 이석희(부산 사직정) 행수와 이자윤(경남 진해정) 교장의 가르침이 가뭄에 단비 같았습니다. 그분들의 가르침에 감사하며 제가 듣고 경험으로 이해한 것을 정리합니다.
이 글은 각궁을 처음부터 배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적인 글이 아닙니다. 처음 각궁을 배우는 것은 주변의 훌륭한 구사를 찾아가서 배우는 것을 권하며, 체계적으로 정리된 글을 원하시는 분은 정진명 접장의 『한국의 활쏘기』 책을 권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한국의 활쏘기』에서 다룬 내용은 중복해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깊은 이론적인 것을 다루는 것도 아닙니다. 각궁다루기도 활쏘기처럼 몸으로 체득해나가는 것이기에 각궁을 쏘면서 점차 터득해가는 것들 중에서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생각대로 정리한 것이니, 부족한대로 도움이 되신다면 좋겠습니다.
각궁은 말로써 배울 수는 없습니다. 때로 한 마디의 말이 크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조목조목 필요한 것들은 주변의 훌륭한 구사에게서 배울 수밖에 없는듯합니다. 사람마다 사법이 다르니, 원하는 각궁의 모양도 다르고, 또 각궁 올리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저의 글을 이것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로서가 아니라, 한 궁사가 자신의 일관된 사법을 갖추고 그에 적합한 각궁모양을 정리한 글로써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제1장. 각궁과 개량궁
1. 왜 각궁인가
각궁이 우리나라가 가진 본래의 전통 활이다. 개량궁은 80년대에 각궁을 모방하여 화학적 재질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다. 개량궁이 다루기 편리한 점은 있으나 일반적으로 ‘우리 활’이라고 할 때는 ‘각궁’을 말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고, 더욱이 ‘전통 활쏘기’라고 할 때에는 ‘각궁 활쏘기’를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 활을 배우려는 사람은 언젠가는 각궁을 배워야할 것이다.
각궁과 개량궁은 성질이 미묘하게 달라서 그 사법에도 영향을 준다. 개량궁으로 시작해서 아주 오랜 시간 개량궁만을 쏘게 되면 그 사법이 개량궁에만 적용되는 특이한 사법으로 변하기 쉽다. 그 기간이 오래되면 각궁을 쏘아도 각궁 본래의 성질에 맞게 내기가 어려워진다.
개량궁은 인조 화학적 제품을 주로 써서 재질이 딱딱하다. 딱딱한 재질의 활이 지속적으로 사람의 몸에 충격을 줄 때에는 사람이 본능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하게 된다. 하나는 본인도 모르게 그 충격을 피하기 위해서 마지막 발시 순간에 힘을 흩어버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몸에 힘을 주어 딱딱하게 만들어 충격을 대비하여 마주쳐가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본능적으로 제 몸이 하는 것이라서 본인이 그런 동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가 어렵다. 나중에 각궁을 한참 쏘고 나서야 전에 자신이 개량궁을 쏠 때 그런 동작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쉽다. 이 두 가지 동작 중에 어느 것이든, 활쏘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마지막 순간을 회피하거나 건너뛰게 만들어버린다. 이로써 활을 내 몸에 밀착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활과 몸이 일체가 되어 이루어지는 발시의 맛을 모르게 된다.
각궁은 인간 친화적이다. 전에 선배궁사들이 표현한대로 각궁은 쏘는 사람을 닮았다. 각궁의 뿔은 사람의 뼈요, 소심줄은 사람의 힘줄이요, 대나무는 사람의 몸통과 비슷하다. 각궁은 인간과 유사하여 각궁이 사람의 신체에 더 잘 맞고 조화를 이룬다. 만약 기계로 활을 낸다면 개량궁이 더 잘 맞겠지만, 사람이 활을 쏘기에는 각궁이 사람의 힘을 더 잘 받아들이고 더 잘 반응한다.
2. 각궁의 장점
- ‘개량궁은 약하지만 뻣뻣하고 각궁은 세지만 부드럽다.’ 이런 표현은 역설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각궁의 성질을 나타낸다. 각궁은 대개 개량궁보다 힘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각궁의 소재가 탄성이 뛰어나면서도 상대적으로 유연한 재질이기 때문이다. 이 유연함 때문에 각궁을 오래 쏜 사람은 개량궁보다 각궁이 편안하다고 느낀다. 전에 함께 활 쏘던 선배궁사가 이런 표현을 한 적이 있다.
‘각궁은 내 몸에 편안히 안기는 것 같고, 개량궁은 내 몸에서 달아나려하는 것 같다’.
또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개량궁은 가볍고 쏘고, 각궁은 묵직하게 쏜다.’
그래야 서로 궁합이 맞는다.
'개량궁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대금 같고, 각궁은 대나무로 만든 대금 같아서 그 울림이 다르다.’
- 그 외에도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인간은 천연소재로 만든 것에서 마음이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쇠로 만든 것보다는 나무의자나 목재로 만든 가구가 고급이고 편안함을 준다. 이런 심리적 편안함뿐만 아니라 각궁의 성질 자체가 인간과 잘 조화를 이루고, 따라서 활쏘기의 표면적 잔재주보다는 깊숙한 내면의 원리를 체득해나가기가 쉽다.
- 개량궁의 딱딱함은 만작에 이르렀을 때 심하게 느껴진다. 힘을 써보면 활이 사람의 힘에 져버려서 쑤욱 활이 딸려 들어오거나, 반대로 활이 셀 때는 사람의 힘을 튕겨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일본의 활쏘기가 발시 직후 줌손이 홱 젖혀지는데, 그것은 일본 활의 소재가 나무만을 사용한 것이라서 개량궁처럼 딱딱하고 유연성이 부족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 각궁에는 나뭇결처럼 결이 있다. 뿔에도 결이 있고 대나무에도 결이 있고 심에도 결이 있다. 결이 있는 것이 서로 결합되었을 때 그렇지 않은 것보다 특정 방향으로 일정함과 유연성이 있고 질기다.
- 각궁은 개량궁과 달리 사람의 힘을 받아들인다. 김삼석(이천 설봉정) 옹의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각궁은 사람의 힘은 쑤욱 빨아들이는 묘한 게 있다’고.
- ‘그래도 각궁!’이라는 표현을 때로 한다. 우스워보여도 각궁이라는 뜻이다. 당겨보면 분명 연한 활인데도 계속 쏘아보면 만만치 않은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만큼 각궁은 사람의 힘을 수용하는 능력이 있다. 사람의 힘을 활에다 축적한다. 당길수록 더 쑤욱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당겨도 더 잘 안 들어오는데 그 당기는 힘을 활이 받아서 활에 축적시킨다는 뜻이다. 이런 순간이 되면 유연하던 각궁이 빳빳해지며 흔들림이 없이 서게 된다. 이런 순간을 ‘줌이 맺힌다’라고도 하고 ‘동이 찬다’(이자윤)라고도 하는데, 이 순간을 얻게 되면 쏘기도 전에 화살이 어떻게 날아갈지 느낌이 온다. 그러니 이렇게 잔뜩 힘을 머금은 활이 열려서 화살을 보내면 훨씬 힘차게 살아나가는 화살을 만든다.
- 개량궁의 딱딱함은 발시 순간을 무서워 피하게 만들고 (이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는 방법이 연궁에 중시를 쓰는 것이다.), 각궁의 유연함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발시 순간에 더 마음껏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3. 각궁과 정중동
이상적인 발시 순간을 표현하는 ‘정중동 동중정 (靜中動 動中靜)’이라는 말이 있다.
‘정중동 동중정 (靜中動 動中靜)’이라는 말은 춤이나, 무술이나 여러 분야에서 쓰이지만 활쏘기에서는 만작에서 발시로 넘어가는 순간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정중동’이란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다는 뜻인데, 이때는 겉에는 고요함 있고 움직임은 그 속에 있다. 겉보기에 만작 상태는 굳건하여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화살촉이 더 이상 잘 안 들어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나, 내면에서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거나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동중정’은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다는 것인데, 이때는 겉에는 움직임이 있고 고요함이 그 속에 있다. 주변은 움직이나 중심은 흔들림이 없다. 어깨와 팔과 손이 가볍고 빠르게 터져나가고 몸이 회전해도 몸의 한 중심은 안정이 되어 움직임이 없다. 이것은 힘의 순서 또는 질서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게 움직임이 한 중심에서부터 시작될 때 이루어진다.
‘정중동’은 이상적인 발시 직전의 상태이고, ‘동중정’은 발시 직후의 움직임이다. 정중동은 ‘힘이 가득한 고요함’이고, 동중정은 ‘흔들림 없는 움직임’이다. 기운이 충만해야 정중동을 이룰 수 있고, 온몸을 부릴 수 있어야 동중정을 이룬다.
발시를 잘 하려면 먼저 만작을 충실히 해야 한다. 발시 후에 이루어지는 동작은 모두 발시 전에 축적된 기운이 터져나가는 것이므로 발시 동작 자체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발시 직후의 동작을 보고 발시 직전의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는 잣대로 보면 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발시 전의 만작이라고 할 수 있다.
만작은 표현하자면 겉으로는 다 당겨서 움직임이 없는데 속으로는 계속 힘을 써서 가득 채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계속 힘을 써서 가득 채우는 것이 활이 너무 약해도 어렵고 활이 너무 세어도 어렵게 된다. 활이 너무 약하면 몸이 팽팽해지는 것이 아니라 활만 쑤욱 들어오게 되고, 반대로 활이 너무 강하면 활을 당기는 데에만 집중하게 되고 몸은 오히려 부실해질 수 있다. 자기에게 적당한 세기의 활을 쏘아야하는 이유이다.
각궁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래서 각궁은 만작에서 더 힘을 쓰고 자신의 힘을 활에 가득 채워 쏘기에 좋다. 각궁은 소위 정중동의 만작을 이루기에 카본활보다 더 나은 활인 것 같다.
제2장 각궁 다루기
1. 남의 각궁 함부로 당겨서는 안 된다.
‘막만타궁’이라고 활터에 돌비석에 새겨 넣은 글귀가 있지만, 개량궁을 주로 쓰는 요즘에는 실감이 잘 안 난다. 하지만 각궁의 경우는 정말 함부로 당겨보아서는 안 된다. 각궁 소재가 유연하고, 활 올린 모양이 사법마다 다르기 때문에 남을 활을 함부로 당겨보다간 활을 뒤집기 십상이고, 뒤집지 않더라도 사법이 다르면 활 모양을 변형시켜 놓기 쉽다. 남의 활 함부로 당기지 말라는 것은 단순한 예의 차원의 문제를 넘는다.
2. 각궁은 주인을 닮는다.
잘 길들여진 각궁의 모양과 줌통 모양을 보면 대개 그 사람의 사법을 헤아릴 수 있다. 개량궁은 소재가 뻣뻣하여 제조된 대로 쏘게 되지만, 각궁은 유연하여 활을 길들일 때 자기 방식대로 활 모양을 잡아나가게 된다.
활의 힘에 주로 의지하면서 발시의 연삽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활이 태평궁으로 줌통과 삼삼이가 가라앉아있게 된다. 맹렬한 쏘임을 추구하는 사람은 활도 사나워서 줌통과 삼삼이가 살아있게 된다. 줌손이 굳건한 사람은 줌통이 충분히 올라와 있다. 손이 특별히 두툼하거나, 줌손에서 뻗어나가는 힘이 많아서 걱정하는 사람은 줌통을 평평하고 줌통부분을 낮춘다. 줌손의 힘이 끝까지 살아나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줌통이 둥글다.
엄지를 펴는 사람은 줌통이 길고 활의 상하장의 세기를 거의 같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줌손을 막줌으로 쥐는 사람은 줌통이 크고 굵으며 오래 쏘다보면 활채가 비틀릴 수 있다. 활이 세거나 줌손을 들여쥐는 사람의 활은 활시위가 거의 줌통 한가운데로 오고, 줌손을 많이 내어 쥐는 사람의 활은 활시위가 줌통의 오른편(우궁의 경우)에 걸리게 된다.
활이 강궁이냐 연궁이냐에 따라서, 또는 그 사람의 쏘임에 따라서 모양은 천양지차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쏘임을 알고 이에 알맞게 활을 올리고 길들여야한다.
3. 각궁이 비싸다고?
각궁은 그 만드는 정성과 노고에 비하여 싼 편이다. 대개 활을 만드는 궁장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5년 내지 10년은 되어야 활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그것도 제대로 된 궁장에게 전수를 받을 때 그렇다.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평생을 만들어도 활다운 활을 못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궁사가 자신의 새 활 하나 길들이는 데에도 무척 고심하며 길들이게 된다. 이런 활을 수십 장 씩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년간에 걸쳐 터득하게 되는 전문적 기술과 정성과 공력을 생각한다면, 전통적인 각궁에 들어가는 요즘의 활 값은 절대 비싸다고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전통 악기 수공예품과 비교해보시라. 다른 스포츠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공장에서 만든 공산품과 비교해볼 때에도 그렇다. 각궁이 비싸다고 말하기보다는 각궁의 가치를 모르겠노라는 말이 더 솔직하다.
4. 각궁 배우는 법
정진명 접장이 우스갯소리처럼 한 말이 있다.
‘활 그렇게 열심히 가르칠 거 없어. 활 한 열장 부러뜨려보면 다 알게 돼.’
맞는 말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면 어찌 배우겠는가? 남들이 보기에 어설프고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본인이 열심히 곁눈질하면서 배우고 실험하다 보면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5. 보는 게 반이다.
먼저 각궁이 올려진 모습을 많이 보아 눈에 익숙하게 해야 한다. 활이 올라간 모습이 활 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의 궁력과 사법에 따라 본인에게 맞는 이상적인 활의 모양을 머릿속에 그려야한다.
성문영 공의 활 모양이다. 활의 상장과 하장이 정확하게 균형 있게 휘어진다. (요즘 많은 궁사들의 활 모양처럼 하장이 잔뜩 나가있지 않다.) 줌통이 만작을 하였는데도 살짝 올라와 살아있다. 한오금이 확실하게 크게 휘고 삼삼이도 둥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덜 밟혀진 것처럼 살아올라와 있다. 활고자 역시 다 펴져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요소가 활의 탄력을 극대화하고 줌손의 안정적인 쏘임을 위해 길들여진 모양이다.(성낙인 선생이 회고하길, ‘선친은 삼삼이가 꺼진 활을 아주 싫어하셨다’하셨다.)
줌통이 내려앉으면 활을 당기기는 수월해지지만 줌손이 서지 않는다. 사람마다 달라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 활은 대개 힘을 쓰면 줌통이 밀려나가 줌손이 고정되지 않으니 오로지 깍지만을 잡아채거나 반대로 줌손을 밀고나가면서 활을 쏘게 된다. 활채의 아랫장을 받치는 힘보다 웃장을 누르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배려해서 웃장의 오금이 아랫장의 오금보다 가깝다. 그래야 만작 시에 상하장이 균형 있게 휘게 된다. 이와 같이 위의 활은 여러 가지로 활 모양이 갖추어 있어서 활의 각 부분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요즘 활들이 바가지 모양으로 둥글게 만드는 것은 궁사들의 요구를 반영하여 그런 것도 있고 기술의 한계 때문에 그리 된 것도 있을 것이다. 활 모양이 옛날 활처럼 살아있을수록 줌손이 굳건하고 깍짓손이 맹렬해야만 감당할 수 있다. 또한 줌통이 많이 올라오고 삼삼이가 살아올라올수록 활이 까다로워서 함부로 줌통을 비틀면 활이 뒤집어진다. 줌통이 올라올수록 줌손을 미는 방향이 정확해야만 활이 뒤집어지지 않는다. 이런 활일수록 밀어 쏘기보다는 깍짓손을 충실히 해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궁사들이 줌통이 많이 내려가고 삼삼이가 가라앉은 활을 선호할 수 있고 그런 것이 활 모양의 변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활을 만드는 궁장들의 입장에서도 위와 같은 활 모양에도 활이 상하지 않고 견디기 위해서는 심(쇠심줄)이 좋아야한다. 한오금이 직각으로 휘고 그 가운데 줌통은 올라와있으려면 상대적으로 심이 충분한 휘어짐에도 견딜 수 있도록 탄력이 있고 질겨야한다. 또한 활채가 비틀림을 견딜 수 있는 옆심이 좋아야 활이 낭창거리면서도 뒤집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들은 궁장의 기술이 좋아야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기술들을 충분히 구현할 수 없는 궁장들은 심과 뿔을 두껍게 하고 줌통을 낮추어 활을 만들어 안정성을 보완하는 쪽으로 진화하였을 것이다. 활이 연하면서도 활챔(화살 보내는 힘)이 좋아야하는데 그것이 어려우므로 심을 두껍게 놓아서 활 자체를 강하게 만들어 탄성을 보완하는 쪽으로 나아갔으리라.
같은 궁장이 만든 활이라도 그것을 받아서 길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길들이냐에 따라서 상당 부분 그 성능이 달라질 수 있고 연한 활이면서도 바람을 뚫고 가는 활이 될 수도 있고, 활이 세면서도 그렇지 못한 죽은 활이 될 수도 있으므로 활 모양을 보는 안목과 다루는 법을 익혀야한다.
6. 처음 올릴 때 조심
잘 만들어진 각궁, 처음 올릴 때 잘못하면 망가뜨릴 수 있다. 완전히 만들어진 공산품인 개량궁은 받자마자 쏠 수 있지만 각궁을 오늘 받아서 내일 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금년에 만들어진 새 활을 봄에 받으면 활이 아직 충분히 마르지 않아서 활이 말랑말랑하고 연하고 엄청 예민하다. 이때를 ‘물활’이라고 하는데 아기 다루듯 조심해야한다. 이때는 활을 밟으면 쑤욱 내려가고 자칫하면 가라앉아 다시 올라오지 않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활이 마른 정도를 보아 가면서 차츰 두세 순씩 쏘아보게 된다. 만약 활이 작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활 받은 지 한 두 주일 안에 쏠 수 있지만, 올해 만든 새 활이라면 가능하면 올해에는 많이 내지 않는 게 좋다. 그래야 활이 상하지 않고 탄력을 유지한 채 오래 쓸 수 있다고 한다.
활을 받으면 점화장에 삼사일 두어서 습기를 뺀 후 처음 올려본다. 새 활을 처음 한 번 올릴 때 조심해야한다. 처음이 결정적이니 정말 조심해야한다. 사람이 운동하기 전에 준비운동이 필요하듯이 활도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 양쪽 고자를 잡고 벌리기도 하며, 도고자 부분을 발끝에 걸고 반대쪽 도고자를 당겨서 풀어주기도 한다. 때로는 활을 한 번에 올리지 않고 1m쯤 길이의 작대기 모양의 나무(뻗지개)를 사용해서 양쪽 고자 사이를 벌린 채 하루를 묵히기도 한다. 새 활은 아직 한오금(활의 가장 많이 휘는 부분)이 자리를 잡지 않았기 때문에 무릎치기로 활을 올리면 안 된다. 도지개를 사용하는데, 활은 대개 줌통이 강하므로 강한 쪽부터 묶기 시작한다. 궁창(활틀, 활창애)과 도지개를 사용해서 올릴 수도 있지만 새 활은 궁창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발로 벌려가며 무릎 위에서 올리는 것이 활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부산의 이석희 행수로부터 배웠다. 이와 같이 궁창을 사용하지 않고 활을 올리면 활을 눌러 휠 때 특정 부분만 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휘어지기 때문에 활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이렇게 도지개를 채운 다음 그 상태에서 활이 안정될 때까지 잠시 그대로 둔다. 활은 이렇게 올리기 전에도 준비운동이 필요하고, 도지개를 채우거나 활을 꺾어서 시위를 걸었을 때에도 잠시 그 상태에서 안정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활을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왜 그런지 이해하기가 쉽다.
7. 활을 꺾는 각도에 유의
도지개를 채운 활을 무릎 아래에 두고 눌러서 올리거나, 도지개 없이 곧바로 활을 무릎치기로 올리거나 중요한 것은 그 꺾이는 각도이다. 이때 힘쓰는 각도에 따라서 줌통이 밖으로 밀려 나갈 수도 있고 안으로 밀려들어올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한다. 처음에 무릎을 꺾는 각도가 잘못되어 줌통이 나가거나 들어온 것을 나중에 각궁에 불을 주어서 고치는 것보다 차라리 시위를 풀고 다시 올리는 게 낫다.
8. 줌통이 강한 활과 약한 활
활을 여러 달 길들이면 도지개 없이 무릎치기로 활을 올릴 수 있는데, 줌통이 강한 활은 무릎치기로 올리는 편이 나중에 줌통에 불을 주지 않아도 되므로 더 낫다. 그러나 줌통이 약하고 한오금과 삼삼이 쪽이 강한 활은 도지개를 써서 가능하면 줌통을 살리는 것이 좋다. 또 줌통이 강한 활은 오금이 조금 가까워도 되지만 줌통이 약한 활은 오금이 멀게 해궁해야 줌이 선다.
9. 전체를 풀어야한다.
처음 활을 해궁할 때는 활채 전체가 모두 유연하여 살아서 움직이도록 모든 부분을 불을 주고 살살 밟아서 부드럽게 만들어야한다. 그렇게 한두 번 충분히 풀어주고 나면 그 다음에는 필요한 곳에만 불을 주면 된다. 매번 활을 올릴 때 마다 불을 많이 줄 필요가 없어지니, 활의 수명이 오래간다. 해궁할 때 뿔을 긁어내는 것은 마지막 선택이니 신중해야한다.
10. 활을 이겨야 한다
아무리 활이 성능이 좋고 모양이 수려해도 본인이 활을 이기지 못하면 그림의 떡이 된다. 만약 활이 자기 힘에 넘친다면 성문영공의 활 같은 모양으로 만들 수 없다. 추측하건데 성문영 공의 각궁은 그리 센 활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와 같이 줌통이 살아있고 삼삼이와 고자가 살아있는 활은 같은 세기의 활을 가지고서도 가장 활챔이 좋고 센 힘을 내는 구조이다. 그러니까 자기 힘에 넘치는 활을 가지고서 그런 활 모양을 만들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세게 된다. 그래서 활이 센 경우에는 줌통도 밟아내리고 삼삼이도 밟고 고자도 펴는 것이다. 모양이나 성능이나 효율성은 둘째이고 먼저 활을 당겨서 이길 수 있어야하니까! 요즘 많은 활이 과거의 모양과 달라졌다면 그것은 전체적으로 활이 세어졌거나, 궁사들이 허약해졌거나, 또는 같은 활을 가지고 어느 활이 더 멀리 화살을 보내느냐하는 것이 궁사와 궁장의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11. 센 곳을 밟는다.
활에 시위를 걸고 나서 각궁에 불을 보이는데 이것은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부분에만 불을 주는 것이다. 각궁에 불을 보이고 밟아주는 이유는 그 부분이 특별히 세어서 풀어줄 필요가 있거나, 활의 모양이나 각도를 바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활의 어느 부분을 풀어주거나 모양을 바꿀 때 그냥 휘는 것은 심이 끊어지거나 심이 들뜨게 될 위험이 있다. 그곳에 불을 충분히 보이고 나서 밟거나 비틀면 활이 상하지 않는다.
12. 점화장의 온도
각궁은 주변보다 5도에서 10도 높은 점화장에 보관하는데 점화장 상태에 따라 설정 온도가 다르다. 점화장이 잘 밀폐가 되어있거나 열이 잘 새나가지 않는 재질이라면 점화온도 설정을 상대적으로 높게 해도 된다. 점화온도가 높아도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아서 하루 종일 계속 점화되지 않기 때문이다.(이자윤 명무) 점화장이 공기와 열이 잘 통하여 금방 식는다면 낮게 온도를 설정해도 여러 번 점화가 들어가서 활이 건조해진다. 거의 매일 사용하는 활은 높게 설정된 점화장을 사용하고 가끔씩 사용하는 활이라면 낮게 설정된 점화장을 사용한다. 여러 달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점화를 시키지 않은 활이라면 일주일가량 점화장에 넣어두어야 완전히 말라서 제 성능이 나온다. 점화되지 않은 활을 올려 살을 내는 것은 활을 뒤집거나 심이 상할 염려가 있어 피한다. 점화장에서 활을 꺼낸 후 10분 정도 식힌 후 활을 올리고 나서 다시 10분 정도 식혀서 활을 낸다.
날씨가 습하지 않고 활이 강궁이면 때로는 활을 2-3일 그대로 쓸 수도 있다. 한겨울에 활이 셀 경우 활을 매일 올리지 않고 며칠 그냥 쏘아도 별 차이를 못 느낀다.
13. 활 모양은 C자
우궁의 경우 활 모양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영어의 C자 모양이다. 활을 쏘듯이 활을 들고 있으면 위쪽 고자와 아래쪽 고자가 살짝 오른 쪽으로 치우치게 만든다. 가운데 줌통은 살짝 왼쪽으로 나가서 활 모양이 전체적으로 C자 모양이 된다. 그러니 활시위를 보면 시위가 줌통 한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에 치우친 것으로 보인다. 우리 활이 줌을 살짝 왼쪽으로(밖으로) 내어 잡기 때문에 그렇게 활이 휘어있어야 정상이다. 그렇게 내어 잡고 평소처럼 힘을 쓰면 유연한 각궁은 만작할 즈음이면 활이 일직선이 된다. 얼마나 많이 고자를 틀고 줌통을 내밀어 놓느냐하는 것은 그 사람의 쏘임에 따라 다르니 경험을 통해서 자신에게 맞는 활 모양을 파악해야한다.
양쪽 고자의 방향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활의 전체적인 모양과 특히 줌통 부위의 활 모양이 더 중요하니 그곳을 잘 살펴야한다. 만일 줌통 부분이 충분히 밖으로 내밀려 나와 있으면 고자 쪽은 거의 틀어놓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고자의 모양을 잡을 때는 말하자면 ‘손목만을 비틀 것이 아니라 팔뚝 전체를 틀어야한다.’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잡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14. 상하장의 균형
상하장의 균형에 따라 화살이 가기도 하고 못가기도 한다. 2001년 황학정 김경원 사범에게 활의 줌손은 어찌 쥐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답하기를 ‘하여간 어찌 쥐던 간에 활의 웃장, 아랫장이 똑같이 휘게 하는 것이 잘 쥐는 것입니다.’ 하였다. 당시 원하는 줌 쥐는 법은 듣지 못했지만 기억할 만한 가르침이다. 특히나 각궁은 유연하여 그 사람이 힘쓰는 방향대로 활이 휘게 되는데 윗장이든 아랫장이든 어느 한쪽만 많이 휘면 화살이 힘을 얻지 못하고, 활이 쉽게 망가지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고 또 활마다 달라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개 활이 아랫장이 5밀리 정도 더 길고 힘도 더 세고 웃장이 약하므로 따라서 활고자도 윗장이 살짝 약해야 균형이 맞는다. 그래서 윗고자를 살짝 더 편다.
시위를 살짝 당겼다가 놓을 때 아래쪽 고자에 시위가 먼저 내려앉아야한다. 즉 아랫장이 약간 세어야 한다. 만일 위쪽 고자에 시위가 먼저 닿을 정도로 윗장이 세면 활을 냈을 때 시위소리가 요란하게 된다. 활의 상하장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시위가 양고자잎에 시간적으로 불일치하게 떨어지면 불쾌한 진동이 줌손으로 들어온다.
활이 연해도 줌통은 든든하게 받아주어야 한다. 줌통이 단단해야 줌손이 서고 화살이 통이 선다.
15. 몸을 잘 이용해서
‘활을 올릴 때는 우리 몸의 지렛대의 원리, 삼각형의 원리를 잘 이용할 줄 알아야한다'고 이자윤 명무가 말한 적이 있다. 활을 시위를 올려서 밟을 때 무릎이 가슴에 닿아야한다. 그래야 힘들이지 않고 힘을 쓸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이 침대나 의자 생활을 많이 하니까 유연성이 떨어져서 무릎이 가슴으로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활을 올릴 때 자세가 잘 안 나온다. 방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이 잘 안 되는 서양 사람이 각궁 올리기를 배우는 것이 어려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릎이 가슴에 닿은 채 힘을 쓰면 본인의 허릿심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이다.
‘활에 불을 보일 때는 활을 45도 각도로 하여 이쪽저쪽을 번갈아 불을 보인다. 그러면 심이 얇은 곳에도 불이 전해지고 가운데 심이 두터운 곳에는 불이 많이 가게 된다.’고 구사들은 말한다. 그런 후 예를 들어 각궁의 목소(창밑)를 밟을 때 활을 불편하게 하늘을 향해서 똑바로 세운 채 밟으려하지 말고 활을 내 몸 쪽으로 기울이고 발뒤꿈치는 방바닥에 붙인 채 밟는 것이 안전하다. 활을 올려가면서 차츰 편안한 자세를 터득해나가게 된다.
16. 처음엔 고자, 나중엔 줌통
개량궁을 쏘던 사람이 각궁을 당겨보면 맨 처음 활을 당기는 순간부터 활이 뻣뻣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대개 각궁의 고자잎이 개량궁보다 두텁기 때문이다. 활을 당기는 대로 활의 각 부분이 순서대로 힘을 쓰는데, 맨 처음에 고자가 힘을 쓰고 중간에는 한오금부분이 힘을 쓰고 만작 무렵에는 줌통부분이 힘을 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만작에서 힘을 더 쓰면 다시 고자와 줌통이 힘을 쓴다. 그래서 활을 당겨보면서 활의 어느 부분이 강하고 약한지 판단하게 된다. 고자가 약하면 처음에는 쉽게 들어오지만 마지막에 변화가 생겨서 일정치 못하게 된다. 줌통이 약하면 만작이 쉬운듯하지만 발시하는 순간에 변화가 생기기 쉽다.
17. 불의 온도
각궁의 어느 부분의 모양을 잡을 때는 그곳에 불을 보여야하는데, 그 때 온도는 ‘아랫목에 손을 넣으면 느끼는 따끈해서 기분 좋은 정도의 온도’라고 들었다.(정진명 접장) 온도계로는 42도쯤이라고 한다. 만져서 불쾌해질 정도면 너무 뜨거운 것이고, 세숫물보다는 온도가 높다. 불을 보일 때는 이쪽저쪽 번갈아 보여야하고 어느 한 곳에 오랫동안 불을 보이면 그곳 심이 익어서 약해진다. 화로에서 10cm 정도 거리를 두어 은은한 불로 천천히 열을 가해야 열이 속에까지 전달된다. 너무 가깝게 불을 대면 겉에만 타고 속에까지 열이 전달되지 않는다. 활에 불을 대면 그 부분이 점점 부드러워져서 활 모양이 변하니 뒤집어지지 않도록 늘 정신을 활에 집중하고 있어야한다.
불을 너무 많이 준 곳은 나중에 화피를 벗겨보면 허옇게 익어있다. 처음부터 심이 허옇게 일어난 것은 좋은 활이 아니다. 심이 잘 놓아지면 색깔이 연한 녹색이거나 짙은 회색을 띄게 되는데, 이것은 심을 놓을 때 공기가 안 들어가게 잘 하였을 때 나오는 색깔이라고 한다.
18. 활에 집중해야
사대에서 몸을 돌려 이리저리 말하거나 인사하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처럼, 각궁을 올릴 때에는 활에만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인사하거나 말하지 않는다. 새 활인 경우에는 더욱 신중해야하고, 불을 보이면 활의 상태가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정신 차려 그 변화를 알 수있어야한다. 한 번 방심하는 순간, 활이 튀어서 천장으로 날아간다. 귀한 활 망가뜨리고 부러뜨리는 것이 한 순간이다. 장기 훈수를 두다가 활 태워먹은 구사를 본 적이 있다. 조금 방심하면 고자를 반대로 틀어놓거나, 안 밟을 데를 밟거나, 불을 너무 주거나 한다. 활이 살아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매일 쏘는 활이라도 그 상태가 조금씩 변화한다. 그래서 어제 밟은 곳과 오늘 밟아야할 곳이 다를 수 있다. 어제 충분히 열을 주고 밟은 곳은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고 다른 곳이 살아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활이 변하니 자기 활은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올리는 것이 최선이다. 기술이야 고수가 낫겠지만, 그 활의 변화하는 상태는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본인이 가장 잘 아니까 그렇다.
19. 활을 뒤집는 이유
활을 뒤집는 이유는 시위가 양쪽 도고자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개량궁을 사용할 때는 안 뒤집다가 각궁을 쓸 때 뒤집는 것은 각궁이 개량궁보다 활채가 유연하기 때문이다. 개량궁은 활채가 뻣뻣하여 줌통을 비틀어도 줌통이 별로 비틀리지 않는데 반하여 각궁은 유연하여 줌통을 비틀면 비트는 대로 활이 비틀린다. 그러니 개량궁을 오래 쏜 사람은 활을 많이 비틀어 쏘면서도 자신이 많이 활을 비틀며 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대개 어떤 사람이든 만작하는 과정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줌통이 약간은 비틀리게 되어있다. 우리 활은 절로 짜이게 된다. 활에 짜임이 전혀 없으면 화살이 살아가지 못하고 깍지가 깨끗하게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짜임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짜임은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줌통을 내어쥐고 그대로 밀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법인데, 이와 반대로 줌통을 들여쥔 채 마지막에 비트는 것은 그 동작을 일정하게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활을 뒤집는 원인이 된다. 또, 활이 세고 궁력이 약해서 깍짓손을 만족하게 당기기 어려우면 줌손을 내밀면서 쏘기 쉬운데 이러면 또 활이 비틀리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평소에 줌손을 내어쥐는 만큼 활고자를 적당히 오른쪽으로 틀어놓거나 줌통을 왼쪽으로 알맞게 내밀어 놔야한다. 많이 내어쥐어 활채가 많이 짜이는 사람은 고자를 많이 틀어 놓아야하고 조금 짜이는 사람은 조금 틀어놓아야 한다. 또 활의 아랫장이 많이 짜이는 사람은 아랫고자를 많이 틀어놓고, 윗장이 많이 짜이는 사람은 윗고자를 많이 틀어놓아야 한다. 대개 활을 수직으로 세우는 사람은 활고자를 별로 틀어놓지 않으며, 활을 눕히는 사람은 활고자를 적당히 틀어 놓는다. 자신의 활쏘는 동작에 맞추어 활고자의 방향을 틀어놓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활을 뒤집게 된다.
제3장 각궁 사법과 각궁의 모양
1. 각궁 사법
각궁은 강유를 겸비하여서, 각궁을 당겨보면 더 세기도 하고 역설적이지만 더 부드럽기도 하다. 각궁의 여러 가지 특성이 개량궁과는 성질이 달라서 개량궁에는 잘 적용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사법이 각궁에는 적용이 되지 않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한편으로는 개량궁을 쏘았을 때는 이해가 잘 되지 않던 사법이야기가 각궁을 쏘면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각궁에는 각궁에 어울리는 각궁 사법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바로 『조선의 궁술』속 사법이다.
반깍지와 온깍지 논쟁이 있는데, 크게 구별하자면 온깍지는 각궁에 어울리는 사법이고 반깍지는 개량궁의 사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 국궁계의 사법이 온깍지에서 반깍지로 대세가 변화했는가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어 정진명 접장이 여러 책과 논문을 통해 그 원인을 분석하였다. 그것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면, 여러 가지 사거리의 변화에 적응할 만한 가능성을 갖춘 바른 사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145m라는 정해진 거리의 과녁만을 맞추는 규격화된 대회 위주의 시수 경쟁도 그 원인 중 하나이고, 자신을 돌아보고 수련하는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오로지 과녁만을 맞추겠다는 결과 지상주의의 편협한 목적의식도 그 원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분위기에 입승단 제도 도입과 대회 위주의 국궁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각궁에서 개량궁으로 장비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개량궁에서 각궁으로 쏠 때 차이점으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깍짓손의 변화인데, 각궁은 깍짓손이 뒤쪽으로 열릴 때 화살이 힘차게 날아가고 화살이 통이 더 잘 선다는 것이다. 반대로 개량궁은 줌손의 변화에 더 신경 쓰게 되고 줌손을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해져서 그 사법에 변화를 가져온다.
각궁이든 개량궁이든 활은 균형이 생명이므로 깍짓손과 줌손이 서로 호응해서 활쏘기가 이루어져야한다. 줌손으로만 쏘는 것도 아니고 깍짓손으로만 쏘는 것도 아니다. 줌손이 부드러우면 깍짓손은 연삽해야하고 줌손이 힘차면 그에 맞게 깍짓손도 힘차야 서로 균형을 이룬다. 이 균형을 자연스럽게 하는 방법이 양쪽 끝을 충실히 하면서도 몸의 한가운데에서 동작이 이루어지도록 ‘한 중심’을 충실히 하여 활을 내는 것이다.
깍짓손을 뗄 때 그 자리에서 손가락만 풀어서 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손가락만 가만히 풀리는 것은 화살의 입장에서는 퇴촉이기 때문이다. 중구미가 단 2cm라도 뒤로 빠져야 화살 입장에서는 그것이 제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작 상태에서 단 2cm라도 뒤로 빼내는 동작은 줌손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어있다. 이러한 깍짓손의 움직임에 줌손이 잘 반응하여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좋은 사법인데, 이것이 각궁의 경우와 개량궁의 경우가 그 맛이 조금 다르다.
각궁의 경우에는 활채가 유연하여 깍짓손의 움직임에 대한 줌손의 반응에 그리 특별한 신경을 쓸 것이 없다. 굳건히 쥐고 몸에서 앞뒷손이 호응하면 줌손이 적절히 반응하는 것으로 느낀다. 그런데 활채가 뻣뻣한 개량궁은 깍짓손에 대한 줌손의 반응이 까탈스러워 더 신경을 쓰게 만든다. 그래서 발시 순간 줌손을 더 꽉 쥐거나 줌손을 누르거나 자신도 모르게 줌손을 줌 뒤쪽으로 까딱 틀기도 한다. 발시 순간 줌손을 줌뒤로 틀어서 개량궁 잘 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의 발시 순간을 잘 살펴보면 각궁을 기준으로 보면 모두가 퇴촉이다. 그런데도 화살은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대개 화살이 뒤쪽으로 흐르면서 맞지만 말이다. 발시 무렵 윗고자를 일부러 눌러서 깍지를 떼는 고자채기와 더불어 이것도 일종의 줌 장난인데, 이 줌 장난이 개량궁에는 잘 통한다. 이렇게 줌 장난을 하다보면 활쏘기의 주변 말단부에 신경 쓰느라 몸의 중심부로 의식이 들어오는 것이 어렵게 된다.
이와 같이 각궁에 비하여 개량궁이 발시 순간에 깍짓손 보다는 줌손의 움직임에 더 신경을 쓰게 만드는 원인이 또 있는데 그것은 만작시의 힘의 축적 여부이다. 개량궁의 경우에는 만작을 해도 소위 ‘맺힘’이 별로 없어서 조금 더 당기거나 덜 당기는 것이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일정한 길이를 당겨야 일정한 거리를 화살이 가기 때문에 스스로 정한 길이만큼만 당기게 된다. 활이 맺히지 않으니까 깍지는 일정한 거리를 당기기만 하면 되고 궁사는 줌손에 변화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해궁이 잘된 각궁에는 더 잘 당겨지지 않고 활 전체가 힘을 쓰는 상태가 있다. 이를 ‘맺힌다’ 또는 ‘동이 찬다’라고 하는데 그 맺힘을 느끼고 거기에서 힘을 더 쓰면 활이 실제 더 들어오지는 않고 힘이 활과 전신에 고루 퍼져서 이때 발시가 이루어지면 특별히 신경 쓸 것이 없게 된다. 몸의 한 중심을 놓치지 않고 쏘기만 하면 균형이 맞는다. 이럴 경우에는 줌손의 변화보다는 전체적인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더 집중하게 되고 쌓인 힘이 터지면 그게 온깍지 동작이니, 온깍지를 일부러 흉내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겨우 만작거리만 당겨서 발시하는 것과 활이 가득 찬 상태에서 더 힘을 써서 화살이 날아가는 것이 서로 전혀 다르다. 이와 같이 각궁에는 개량궁과 달리 더 딸려 들어오지 않으면서 힘이 맺히는 특성이 있다. 이것이 온깍지 사법이 각궁에 어울리는 이유이다.
2. 각궁의 모양
각궁의 모양에는 자신의 사법이 반영된다. 활이 세어서 어쩔 수 없이 활의 줌통을 밟아 내리고 고자를 펴고 목소를 밟아 앉힌 경우를 제외하면, 대체로 쏘임이 맹렬한 사람은 활을 살아있도록 올리고, 쏘임을 가볍고 연삽하게 하는 사람은 각궁을 태평궁으로 만든다. 이렇게 활을 태평궁으로 올려서 쏘는 것은 비록 부드러움은 개량궁보다 뛰어나서 몸을 상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변화가 심하게 된다. 그러나 각궁에는 활이 버티면서 맺히는 특성이 있는데 이때는 비록 활의 힘은 더 세다고 느낄지 몰라도 이러한 각궁의 특성을 이용할 수 있을 때 활쏘기는 단순해지고 동작이 일정해진다. 각궁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하여 부드러우면서도 활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 맺힘이 있고 거기에 힘이 축적된다는 것은 각궁이 가진 뛰어난 특성이다. 이것을 십분 이용하려면 활을 살아있도록 올려야 하며, 그 모양은 대체로 성문영 공의 사진이 보여주는 각궁의 모습이다.
제4장 맺음말
사법이 일정한 원칙이 있어도 사람마다 궁체가 다르듯이, 각궁도 일정한 틀이 있으면서도 올리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미립을 낸다. 그러므로 올리는 방법도 미립을 내는 방법도 한 가지로 이렇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다. 활터에서 생활하며 느끼는 놀라움 중의 하나가 기록이 없다는 것인데, 각궁에 관한 한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각궁을 오래 써 보면 왜 기록이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한 의문도 어느 정도 풀린다. 각궁마다 사람마다 제 각각이어서 딱히 이것이라고 잘라 말해줄 수 없는 특징 때문이다. 결국 각궁은 홀로 존재한다기보다는 그 주인과 교감하는 형태로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다. 말타기를 잘 하려면 먼저 말과 친해져야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따라서 각궁을 잘 다루려면 그 겉모양에 대해 말할 것이 아니라 올리고 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량의 모든 습성까지 알고 말해야 한다. 결국 자신이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상의 이야기는 바로 나 자신이 각궁을 쏘면서 느낀 점을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 그 한계가 저절로 생길 수밖에 없고, 그 한계 안에서 논한 것이니, 각궁을 사용하려는 분들이 알아서 참작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각궁에 아무런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특성이 많이 허용된다고 해도 각궁은 각궁이다. 그러므로 선배 구사들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각궁 다루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다. 이 글은 그런 길을 가려는 분들에게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정리해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