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 2014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 실황 / 382분>
RCO(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 이반 피셔
[Disc 1]
Symphony No.1 in C major, Op.21 - 28:59
Symphony No.2 in D major, Op.36 - 36:05
Symphony No.3 in E flat major, Op.55 'Eroica' - 54:21
[Disc 2]
Symphony No.4 in B flat major, Op.60 - 37:27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 35:15
Symphony No.6 in F major, Op.68 'Pastoral' - 48:38
[Disc 3]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 42:10
Symphony No.8 in F major, Op.93 - 28:24
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Choral' - 70:36
Recorded Live at Het Concertgebouw Amsterdam on 11 May 2013 (1, 2 & 5) / 31 May 2013 (3 & 4) / 9-10 January 2014 (6 & 7) / 20-21 February 2014 (8 & 9)
=== 프로덕션 노트 ===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9개 모두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걸작으로서 초연 이래 지금까지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연주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새로이 문맥을 재구성하여 연주하는 지휘자들이 많이 있었고, 그 결과 교향곡들의 해석과 음향은 계속 새로워졌다. 이반 피셔가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영상물 전집은 이러한 새로움의 전통을 대변하는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베토벤이라는 음악적 풍경을 향해 떠난 진실된 발견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해외 리뷰 ===
1. "피셔의 베토벤은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와 같다."
(프리츠 반 데르 바, 볼크츠크란츠(Frits van der Waa, Volkskrant / 네덜란드 아침신문))
2. "RCO가 연주한 '전원'은 완벽 그 자체다... 파도가 굽이치는 듯한 7번 교향곡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전설적인 명연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하다..."
(Roeland Hazendonk, Het Parool / 루란드 하르젠동크, 헷 파룰(네덜란드 매일신문))
3."피셔는 베토벤에게 새로운 빛을 투영시켰다."
(Floris Don, NRC / 플로리스 동, NRC)
=== 내지 해설 === <폴 얀슨 / 박제성 번역>
"작곡가로서 베토벤의 중요성은 이루 형언할 수 없습니다"라는 지휘자 이반 피셔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베토벤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귀족에게 봉사를 하는 것을 멈추고 오로지 인간 본연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음악을 창조하기 시작한 첫 번째 작곡가이다. 베토벤 이전의 음악가들과 작곡가들은 일종의 계약직 하인이지 예술가가 아니었다. 베토벤은 그가 그려낸 감정의 극적인 묘사가 대단히 강력하다는 점에 있어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작곡가다. 그의 열정과 리리시즘, 강렬한 집중력은 항상 거대하다. 베토벤을 듣고 공부하며 연주할수록 그 에너지와 힘, 비전에 고취되곤 한다. 베토벤의 음악은 진실된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교향곡들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들은, 형식적으로 사실상 개별적인 악장들이 연속되는 일종의 모음곡 그 이상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죠. 그러나 베토벤은 자신의 각 교향곡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3번 교향곡 '영웅'의 경우는 영웅에 대한 것이고 6번 교향곡 '전원'은 자연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죠. 그는 결국 자신의 궁극적인 동시에 완벽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비극으로부터 자유로의 변용입니다. 오페라 '피델리오'와 교향곡 9번에 바로 이러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이들 작품은 19세기 작곡가들이 우러러보는 최상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dall' inferno al paradiso)."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피셔는 베토벤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헌신해왔다. 2008년에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제작한 7번 교향곡을 녹음했고 최근에는 4번과 6번 교향곡을 녹음하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실제 연주회에서는 전통적인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시대악기 앙상블과 번갈아가며 연주하여 매번 열광적인 박수를 받아오기도 했다. 피셔는 베토벤은 시대를 앞선 작곡가였다고 말하며 연주를 통해 이것을 증명해보이고자 했다. 실제로 7번 교향곡 녹음에서는 같은 해에 작곡된 로시니와 베버, 요한 빌헬름 빌름스의 작품들을 함께 녹음, 수록하여 베토벤의 음악이 동시대에서 얼마나 독창적인가를 직접 보여주고자 했다. "당시 청중들이 7번 교향곡 피날레에 담긴, 이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한 리듬의 질주에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피셔는 자신의 음반 내지에 이렇게 물으면서, "그들은 20세기 중반 이후에 소개된 록음악에 비견할 만한 충격을 받았겠죠"라고 결론을 내렸다.
피셔는 베토벤의 교향악적 혁명(발전)은 1800년 4월 2일 초연된 저 결연한 1번 교향곡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1번 교향곡은 진정한 첫 번째 교향곡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작품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주의 형식을 모델로 한 작품이지만, 베토벤은 그 안에서 신선함과 이례적인 밸런스, 전체적으로 탁월한 아름다움을 섬광처럼 터뜨렸다. 2번 교향곡은 그 이후 빠르게 작곡한 것으로서 "베토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미덕의 한계를 인지하고 자신이 속한 시대에 성공적으로 머무르고 있었지만, 이 작품에는 그의 후기 교향곡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관습에서 벗어난 혁명적인 사고들에 대한 조짐을 한계까지 몰아붙인 흔적들이 담겨 있어요"라며 피셔는 그의 대담한 업적을 칭송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베토벤 자신이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명백한 발전의 증거로 알려진 작품은 바로 1805년에 초연된 교향곡 3번 '영웅'이다. "이 작품은 베토벤이 비정상적으로 반복적인 테크닉을 적용한 작품으로서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음악에 담은 경우입니다. 진실로 위대한 교향곡이죠!"라고 피셔는 말한다.
한편 피셔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베토벤이 새로운 기법을 성공적으로 사용한 4번 교향곡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는 아주 작지만 가능성이 높은 음악적 모티브들로 시작하지만 끝없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교향곡 전체로 확장해 나아가죠. 이 모티브는 느린 악장에서는 오스티나토를 통해 멜로디를 반주해주고, 또 이 동일한 모티브를 사용하여 피날레에서는 하이든적인 감수성에 의한 유머로 치환해버리는, 모두가 납득할 만한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고전주의적인 형식적 틀을 과감하게 벗어던진 것이에요. 놀라울 만큼 성숙한 작품이자 베토벤이 자신의 환상적인 작곡 기법을 모조리 보여준 완벽한 교향곡입니다."
베토벤의 후기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치형 주제는 이미 교향곡 5번에 담겨 있다. "이 교향곡은 비극으로부터 자유로 옮겨간다는 주제를 표현한 첫 번째 작품으로서, 나는 이 교향곡에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진하는 프랑스 시민들의 에너지가 틀림없이 스며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숨어있는 일종의 관념과 같은 모든 외적인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음악은 연주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고 피셔 또한 이를 기꺼이 인정한다.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바로 악보에 담겨 있습니다. 그의 의도는 명확해요. 음악가로서 우리 모두는 이 악보를 따라야만 하는 것이죠. 유일한 위험은 음악가들이 메트로놈 부호와 음표, 다른 음악적 지시들만 보는 것으로서, 이러한 경우 베토벤의 경이로운 개성의 위대함 앞에 장님이 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자신들의 감정을 고무하여 이를 발전시킨 뒤 거대한 긴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연주자들은 극한에 이른 베토벤의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가장 쉽고 유용한 방법은 베토벤이 홀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듣고자 하는지를 생각한다면 그의 의도에 올바르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상상하는 방식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선입관에 사로잡힌 생각과 다른 장애물들을 반드시 먼저 건너뛰어야만 하죠." 그리고 피셔가 베토벤의 작품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던 자유에 대한 관점이 다시 한 번 등장한다.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할 때 왜 작곡가의 의도를 구현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목적이다. "왜 베토벤은 이렇게 특별한 프레이즈를 작곡했을까? 이렇게 특별한 화성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어느 대목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감정을 고무시키며 웃고 울게 만들게 했을까? 악보 안에 있는 이 모든 것을 우리는 반드시 그것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이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은 6번 교향곡에서 자기절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폭발적인 5번 교향곡을 작곡한 직후, 기분을 안정시키며 자신의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베토벤은 이 교향곡을 작곡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바로 교향곡 6번 '전원'의 본질이에요. 내가 알고 있는 안식과 명상을 위한 가장 위대한 찬가가 바로 이 작품이죠." 7번 교향곡은 적어도 '작곡기법적 걸작'에 속한다. "리듬의 신격화! 하나의 멜로디가 끝없이 반복되며 발전해나가는 모습은 두 번째 악장에서도 강박증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은 진정한 19세기의 록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죠. 8번 교향곡이 훌륭한 것은 베토벤이 이 작품을 통해 추상성을 흐트러뜨리고 팀파니를 옥타브를 조율함(팀파니를 혁신적으로 사용한 베토벤은 이전 교향곡들에서는 단6도 간격, A음과 f음으로 조율했고, 8번과 9번 교향곡에서는 한 옥타브 간격, F음과 f음으로 조율했다: 역자)과 동시에 극도의 쾌활함과 눈부신 색채감으로 되돌아왔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9번이 남아있다. 피셔는 한숨짓는다. "이 교향곡은 그 자체로서 초인입니다. 인격을 부여받는 프로메테우스랄까... 한 마디로 세계를 바꾼 그러한 교향곡이죠.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세계를 바꾼 음악입니다." 피셔는 베토벤이 어떻게 자기자신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발견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무슨 작품이든 때가 되면 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과거나 미래를 찬찬히 살펴보며 가늠할 만한 시간이 없죠.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남은 시간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향곡에 다가감에 있어서 모든 연주를 처음 하는 것처럼 대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자, 로열 콘세트르허바우 오케스트라와 같이 최고의 악단을 지휘할 때에도 왜 리허설이 그토록 중요한지, 왜 절대 가볍게 해서는 안 되는지를 말해준다. "베토벤을 '안다'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합니다. 청중들이 알아채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특히 오케스트라가 순간적으로 느끼게 되죠.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어떤 중심적인 것과 심도 깊은 탐구가 필요한데, 어떤 면으로는 배우가 한 배역을 계속 소화하다보면 그 이해가 넓어지며 발전해나가는 것과 비슷하죠.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베토벤 관현악 작품들의 강도 높은 집중력을 단원들 개개인에게 심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반 피셔(Ivan Fischer)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이반 피셔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작곡을 배우고 비엔나로 유학을 온 뒤 한스 스바로프스키로부터 지휘를 공부했다. 그 시기 두 시즌 동안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며 콘서트 홀에서 실전을 익혀나가기도 했다. 1983년 피셔는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립, 많은 연주회를 열면서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8월부터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음악감독과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구 베를린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했고, 이전에는 켄트 오페라단 음악감독과 워싱턴 D.C.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로도 활동했다. 한편 1987년 처음으로 지휘한 이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자주 지휘하고 있고, 다른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들로부터도 정기적인 초대를 받고 있다. 더불어 작곡가로서도 활동하며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지에서 자신의 작품을 연주했고, 부다페스트의 말러 페스티벌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페스티벌에도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2006년에는 헝가리 정부로부터 명예로운 문화대상인 코수트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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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2년 7월 16일 네이버캐스트 / 최은규 글>
베토벤 교향곡 제1번 C장조 Op.21
특성 : 파격적인 목관악기 사용과 '스케르초'나 다름없는 미뉴에트 3악장
초연 : 1800년 4월 2일 빈의 부르크 극장에서 초연
하이든, 모차르트 뒤를 잇겠다는 야심찬 선언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베토벤의 신고식은 화려했다. 베토벤은 30세가 되던 1800년에 그의 첫 교향곡을 완성하고 1800년 4월 2일에 빈의 부르크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날 음악회 프로그램은 휘황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으로 시작해 하이든의 [천지창조] 중 몇 곡의 아리아와 중창이 연주되고, 베토벤 자신의 피아노협주곡과 실내악곡이 연주된 후 음악회 마지막 순서로 베토벤의 첫 교향곡이 연주되었다. 당시 이 정도로 긴 음악회는 일반적인 것이었지만, 빈의 세 거장들의 작품이 한 무대에서 연주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날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며 암묵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뒤를 잇는 거장 음악가들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베토벤 스스로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뒤를 잇는 음악가가 되겠다는 야심찬 선언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일반음악신문(Allegemeine musicalische Zeitung)에 실린 음악회 평을 보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에 대해 “대단한 예술, 새로운 작품, 아이디어의 충만함”이란 표현이 보인다. 그러나 “목관이 남용되어 전체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 치고는 목관의 음향층이 너무 두터운 것”이란 비판도 보인다. 이는 이 교향곡의 혁신적인 음향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사실 이 곡의 파격적인 점은 단지 목관악기의 용법뿐만이 아니다. 엉뚱한 1악장 도입부와 느리지 않은 2악장, ‘스케르초’나 다름없는 미뉴에트 악장, 유머와 풍자로 가득한 4악장에 이르기까지 베토벤이 그의 첫 교향곡에서 시도한 대담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전의 형식에서 탈피하려는 다양한 시도들
1악장 Adagio molto—Allegro con brio
베토벤 교향곡 제1번 1악장 서주의 도입부는 많은 논란거리를 만들어왔다. 서주의 첫 화음은 C장조의 으뜸화음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F장조의 딸림7화음으로 시작한다. 이런 화음은 곡을 시작할 때보다는 곡이 끝날 때에나 적합한 화음이다. 게다가 목관과 호른의 화음이 현악의 피치카토로 강조되고 있어 더욱 끝나는 느낌을 준다. 청중을 놀리는 듯한 의외의 도입은 베토벤이 던진 일종의 농담처럼 느껴진다. 베토벤의 스승 하이든도 종종 이런 방법을 사용하긴 했지만, 베토벤은 더욱 노골적이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런 괴상한 도입 화성에 대해 비판했지만 베토벤은 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서곡에 똑같은 화성적 실험을 감행했다.
놀라운 서주에 이어 템포가 빨라지고 현악기가 빠른 제1주제를 연주하면서 본격적인 제시부가 시작되고 첼로와 오보에 사이의 대화가 이어진 후 매우 모험적인 전개부가 펼쳐진다. 전개부에서는 바순과 오보에, 플루트로 이어지는 목관의 릴레이가 나타나 즐거움을 준다. 1악장 말미에는 감각적인 목관악기의 충만한 음향과 상승하는 트럼펫 팡파르가 나타나 더욱 화려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된다. 어찌 보면 1악장은 파격적으로 새로운 음악이라 할 수는 없어도 주제를 추진력 있게 몰고 가는 세부 전략에 있어서는 베토벤다운 개성이 충분히 드러난 명곡이라 할만하다.
2악장 Andante cantabile con moto
교향곡 제1번의 2악장은 교향곡 2악장이라면 으레 기대하게 되는 서정적이고 가요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음악평론가 마이클 스타인버그도 지적했듯이 이 곡은 베토벤이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현악4중주 작품 18]의 4번 2악장과 매우 비슷한 느낌을 주며, 산책하듯 가벼운 빠르기의 심각하지 않은 음악이다. 각 성부들이 서로를 뒤따르며 음악적 유희를 만들어내고 팀파니가 강박적인 부점 리듬을 반복하는 부분은 매우 흥미롭다.
3악장 Menuetto: Allegro molto e vivace
베토벤은 전통대로 3악장을 미뉴에트라 불렀으나 정작 음악을 들어보면 옛 프랑스 궁정 무곡과 별 관련이 없다. 한 마디를 한 박으로 지휘해야할 정도로 매우 빠른 3박자로 진행되고 있는 이 곡은 재기발랄한 스케르초이지 결코 점잖은 미뉴에트라 할 수 없다. 아마도 베토벤은 전통을 의식해 3악장에 미뉴에트라는 이름을 붙이면서도 정작 음악 자체는 자신의 충동에 따라 스케르초로 작곡했는지도 모르겠다. 스케르초 같은 미뉴에트에 따라붙은 트리오도 위트에 넘친다.
4악장 Adagio—Allegro molto e vivace
느린 서주로 시작하는 4악장 역시 충격적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익숙한 청중이라면 으레 빠르고 활기찬 4악장 도입부를 기대하겠지만, 베토벤은 엉뚱하게도 느린 도입부로 시작한다. 현악기가 머뭇거리며 연주하는 어설픈 음계는 갑자기 빠르게 변해 4악장의 주제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4악장의 마지막 부분도 역시 화려한 음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코믹한 도입부와 완벽한 세트를 이룬다.
스비텐 남작에게 첫 교향곡을 헌정
베토벤은 애초에 그의 첫 교향곡을 그의 전 후원자이자 고용인인 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 프란츠에게 헌정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시밀리안 프란츠는 이 교향곡의 오케스트라 파트보가 출판되기 5개월 전인 1801년에 세상을 떠나자 마음을 바꾸어 베토벤의 또 다른 후원자인 스비텐 남작에게 이 곡을 바쳤다. 스비텐 남작은 빈에 입성한 젊은 베토벤을 적극 밀어주었을 뿐 아니라 베토벤에게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소개하고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소개하여 베토벤이 고전 양식에 강한 영향을 받도록 했던 인물이다. 베토벤이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계보를 잇는 음악가로 인정해준 스비텐 남작에게 그의 첫 교향곡을 헌정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로써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계보를 잇는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로서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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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2년 8월 13일 네이버캐스트 / 최은규 글>
베토벤 교향곡 제2번 D장조 Op.36
특성 : 교향곡 사상 처음으로 스케르초를 사용한 가볍고 경쾌한 느낌의 곡
초연 : 1802년 완성, 1803년 4월 5일 빈의 음악회에서 초연
1802년, 교향곡 2번을 작곡하던 베토벤은 주체할 수 없는 창작열에 휩싸여 이렇게 적었다. “이제부터 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전보다 더 많은 힘이 솟는다. 매일 나는 내 목표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다른 친구에게 쓴 편지엔 이런 글귀도 보인다. “나는 내가 쓴 음표들 속에서만 살고 있다. 한 작품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벌써 다른 작품이 시작된다. 나는 서너 가지 일들을 한꺼번에 진행하고 있다.”
베토벤의 의욕이 최고조에 이르던 바로 그 해에 그가 자살을 생각했다는 건 의외의 일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깊은 절망의 수렁에서 빠져 나온 이는 더욱 강한 삶에의 의지를 보여주듯 자살의 유혹을 극복한 베토벤 역시 그러했다.
절망의 나락에 빠졌던 베토벤
1801년 이후 더 이상 귀의 이상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귓병이 악화되자 절망하기 시작한 베토벤은 귓병을 고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마지막 방법으로 베토벤은 슈미트 박사의 충고에 따라 빈의 시끌벅적한 소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조용한 시골 마을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여섯 달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차도는 보이지 않았고, 귀머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그는 동생 칼과 요한에게 유서에 가까운 편지를 썼다.
“내 곁에 서있는 사람은 멀리서 부는 플루트 소리를 듣는데,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니 얼마나 굴욕적인 일인가!” 하지만 그는 편지의 말미에 이런 구절을 적어 넣었다. “이런 일이 조금만 더 계속됐다면 아마 난 내 삶을 끝장냈을 거다. 나를 다시 불러온 것은 오로지 나의 예술이었다. 아, 나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을 불러내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라 불리는 이 편지에는 음악가로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베토벤의 좌절감이 구구절절 담겨있다. 그러나 그가 고통스러운 현실을 자각하고 몸부림칠수록 자신만의 음악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점점 더 강해질 뿐이었다. 바로 그 때 베토벤의 두 번째 교향곡이 탄생했다.
1801년에 착수되어 1802년 초가을에 완성된 교향곡 2번은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그에게 남긴 고전주의 교향곡 양식의 최고봉을 보여준다. 흔히 교향곡 3번 [영웅]이야말로 베토벤의 혁명적인 개성이 나타난 최초의 교향곡으로 평가되곤 하지만 베토벤이 교향곡 제2번에서 전통적인 교향곡 양식을 정교하게 다듬어내지 않았다면 영웅 교향곡의 혁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베토벤은 1803년 4월 5일 빈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이 교향곡을 처음 대중에게 선보였다. 그날 공연 프로그램에는 그의 피아노협주곡 제3번과 오라토리오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가 함께 연주됐고 그의 교향곡 1번 역시 포함되어있었다. 그날 공연 프로그램이 매우 힘든 곡들로 채워졌기에 리허설 역시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쉼 없이 진행되었다. 당시 베토벤의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는 그날 오후까지도 아직 사보가 끝나지 않은 트롬본 파트의 악보를 옮겨 적느라 진땀을 뺐다. 또 젊은 지휘자인 이그나츠 폰 자이프리트는 베토벤이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할 때 악보의 페이지를 넘겨주기 위해 고용됐는데, 악필로 유명한 베토벤 자필 악보의 음표들을 식별해내느라 애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의 교향곡 1번이 이미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 완성한 교향곡 2번을 교향곡 1번과 함께 연주하는 것은 베토벤에게 그리 유리한 일은 아니었다. 정교하고 세련된 교향곡 2번은 상대적으로 단순 발랄한 교향곡 1번처럼 쉽게 이해되는 작품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음악평론가는 “교향곡 2번보다는 교향곡 1번의 유연한 발전 기법과 자연스러운 흐름이 더 돋보인다”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베토벤이 교향곡 2번에서 새롭고 놀라운 시도를 하려 했던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었다.
부드러움과 대담함, 반전의 연속
1악장 Adagio molto – Allegro con brio
1악장은 전통적인 교향곡 1악장의 전형적인 방식대로 느린 서주로 시작한다. 마치 하이든의 교향곡처럼 드라마틱한 느낌의 느린 서주에서 베토벤은 풍부한 화성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며 교향곡 제9번 1악장을 예고하듯 웅장한 음향을 선보인다.
느린 서주에 이어 활기가 느껴지는 제시부로 이어지면, 고양된 분위기를 담은 제1주제가 연주된다. 이 주제는 처음에는 여리게 제시되었다가 다시 전체 오케스트라에 의해 크게 연주된 후 갑자기 엉뚱한 C음이 날카롭게 강조되며 화성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1악장의 종결부에 이르기까지 대담한 표현과 약박을 강조하는 강한 악센트, 반음계적인 전개가 손에 땀을 쥐게 하는데, 그 스릴 넘치는 전개방식에서 베토벤의 능숙한 작곡기법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한때 베토벤을 가르쳤던 하이든도 이 교향곡 1악장의 대담한 전개에 대해 무척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2악장 Larghetto
2악장 라르게토는 베토벤이 만들어낸 느린 악장들 가운데 매우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악이다. 이 음악은 하이든과 모차르트로부터 벗어나 더욱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느린 템포를 타고 흐르는 현악의 유장한 선율은 [브루크너 교향곡] 아다지오 악장의 장엄한 로맨티시즘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러나 온화함과 서정성이 흐르는 가운데서도 유머러스하고 변덕스러운 음악이 공존하고 있어 놀라움을 준다.
3악장 Scherzo, Allegro
3악장 스케르초는 베토벤이 교향곡에서 최초로 시도한 스케르초다. 전통적인 교향곡의 3악장은 프랑스 궁정에서 유행하던 보통 빠르기의 미뉴에트로 작곡되기 마련이지만, 베토벤은 이미 교향곡 1번 3악장에서 빠른 3박자의 스케르초 풍의 음악을 넣어 좀 더 재치 있고 활기찬 느낌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교향곡 2번에선 3악장에 아예 ‘스케르초’라는 말까지 써넣었다. 본래 ‘스케르초’라는 말에는 ‘농담’이란 뜻이 있으며 음악적 성격도 농담처럼 가볍고 재치가 있어서 지휘자들이 스케르초가 3박자의 음악임에도 지휘할 때는 한 마디를 한 박으로 지휘할 정도로 음악을 빠르게 진행시킨다. 빠른 스케르초와 대비되는 중간 ‘트리오’ 부분에서는 오보에의 음색과 부드러운 선율선이 돋보이지만 현악기가 갑작스럽게 F#음을 강조하며 충격을 주기도 한다.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말을 하다가 갑자기 같은 단어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점점 크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줘서 흥미롭다. 음악으로 농담을 구사할 줄 알았던 베토벤의 특별한 재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4악장 Allegro molto
4악장에서도 베토벤의 유머감각이 돋보인다. 오케스트라는 마치 건방진 어조로 끼어들듯 갑자기 연주를 시작하며 코믹한 느낌을 준다. 베토벤은 4악장에서 의외의 희극적인 도입으로 놀라게 할 뿐 아니라 그와 정반대되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음악을 선보이며 그 능수능란한 작곡기법을 마음껏 뽐낸다. 우아함과 장난기를 오가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4악장의 변화무쌍한 전개는 세련된 ‘하이 코미디’를 연상시킨다.
=== 작품 해설 === <2009년 12월 9일 네이버캐스트 / 노태헌 글>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b장조 Op.55 'Eroica 영웅'
특성 :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 소식에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을 '신포니아 에로이카'로 수정
초연 : 1803~1804년 사이에 작곡. 1804년 12월에 초연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당당한 자기 확신이며 거칠 것 없는 외침과도 같은 곡이다. 베토벤은 1802년 고질적으로 앓아오던 귓병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거의 들을 수 없었으며, 그해 10월 6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작성하여 두 동생에게 남긴다.
“…… 만일 죽음이 나의 모든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기회를 갖기도 전에 찾아온다면, 아무리 내 운명이 험난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일찍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이 조금 더 늦게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대로 죽는다 해도 난 행복해 할 것이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테니까. 죽음아, 올 테면 오너라, 용감하게 그대를 맞아주마…….”
베토벤은 이 비장한 유서에 담긴 각오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음악적으로도 1801년~1803년 사이엔 하이든, 모차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어법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그의 특징적 작법은 매우 건축적이며, 장대한 기상과 함께 강렬한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토벤의 가장 유명한 교향곡들 중 하나인 [영웅 교향곡] 역시 이러한 배경 아래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베토벤은 그의 창작 시기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혁신적이라고 불리는 시기로 완전히 들어서게 된다.
귓병을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의지 – 새로운 창작시기
물론 참담하고 비장한 분위기로 가득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 처럼 베토벤이 목숨을 끊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유서에 담겨있는 예술가로서의 투쟁과 불굴의 의지는 당시 베토벤의 창작세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이 무렵에 작곡한 작품들에서는 투쟁, 갈등, 대립이 화해되며 종결되는 양식이 드러난다. 특히 [영웅 교향곡]에서 나타나는 개별 악장들의 확장된 스케일, 50여 분에 이르는 긴 연주시간, 내용적 심화는 습작적인 면모를 보이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큰 변화를 보이고 있는 요소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나타난 비장한 각오가 [영웅 교향곡] 전 악장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02년에 작곡하기 시작하여 1804년 봄에 완성되었고 180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의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대중들은 이 곡의 거친 형식미, 광폭하고 야수적인 음향, 긴 연주시간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때부터 자신의 내면을 담은 열광적인 작품들을 미친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3번 교향곡]을 통해 비로소 베토벤만의 세계가 폭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아 작곡을 시작한 교향곡
베토벤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전제 군주정치에서 비롯된 폐해를 누구보다도 깊이 실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은 베토벤에게 프랑스 혁명의 혼란으로부터 나라를 일으켜 세운 나폴레옹에게 강하게 이끌리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베토벤의 전기를 쓴 안톤 쉰들러(Anton Schindler)에 따르면 당시 빈 주재의 프랑스 공사였던 베르나도트 장군이 이런 의지를 촉발시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베토벤은 베르나도트 장군에게서 나폴레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 위대한 교향곡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공화주의의 이상과 새로운 시대의 지도자 나폴레옹에 대한 존경심이 이 교향곡에 대한 최초의 발상을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영웅 교향곡]의 음악적 실체는 베토벤이 이 작품의 형태를 구상하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베토벤은 기존에 완성한 자신의 작품인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시골풍 무곡 WoO 14-7], [피아노를 위한 주제와 변주 Op.35]을 [영웅 교향곡]의 피날레 악장에 인용했다. 이 3개의 곡 중에서 [영웅 교향곡] 해석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지니고 있는 작품은 1801년에 작곡한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이다. 이에 관해서는 음악학자 콘스탄틴 플로로스의 주장이 다소 설득력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플로로스는 발레곡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에서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보내는 은밀한 찬사가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의 구심점을 이루는 작품은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빈첸초 몬티(Vincenzo Mont)의 서사시인 [프로메테오]이다. 베토벤은 이 서사시를 통해 인류에게 불을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를 ‘공화주의자’에 비유하면서 나폴레옹의 혁명 정신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베토벤 자신의 새로운 예술을 불멸의 프로메테우스에 빗대고 있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소식에 불같이 화를 낸 베토벤
나폴레옹에 대한 베토벤의 지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영웅 교향곡]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갖지도 못했고, 헌정되지도 않았다. 베토벤은 완성된 악보에 “보나파르트 교향곡”이라고 써넣었고, 그를 로마의 위대한 집정관으로 비유하곤 했다. 그러나 결국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소식을 듣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도 역시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 이외의 모든 인간 위에 올라서서 독재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라고 소리치며 나폴레옹의 이름이 적혀있던 악보의 표지를 찢어서 내팽개친 것으로 전해진다.
베토벤의 제자이자 전기 작가인 페르난디트 리스에 의해 전해지는 이 유명한 일화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애꿎게도 당시 나폴레옹을 깎아내리고 싶어 했던 영국의 속셈을 드러내는 단편적인 사건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에 크게 실망한 베토벤은 작품의 제목이었던 “보나파르트 교향곡”을 빼버리고 [신포니아 에로이카 – 한 위대한 인물을 추념하기 위해]라고 제목을 수정했다. 이 흔적은 현재 사본 악보와 함께 오스트리아 빈에 보존되어 있다. 한편, 이 혁신적인 교향곡에 대한 인상은 공개 연주회를 본 하이든의 전기 작가인 카를 아우구스트 그리징어가 당시 출판사에 보낸 서신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무엇이 있다. 여기 한 편의 교향시는 더 높은 대지로 다가왔다!”
1악장 - Allegro con brio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두 개의 주제에 의해 풍부한 악상을 지닌다. 1주제는 저음역의 현악기에 의해, 2주제는 온화한 클라리넷 선율로 시작되어 바이올린으로 이어진다. 마르크스 같은 음악학자는 1주제의 선율을 ‘영웅 주제’로 명명했으며 음악학자 쾨르너는 이 ‘영웅 주제’를 군대적 심상을 지닌 동기로 간주하였다. 또한 1악장에서는 반음계적인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데 이것이 전쟁의 긴장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2악장 - Agadio assai
유명한 ‘장송 행진곡’ 악장이다. 현악기에 의한 주제는 영웅의 장중한 걸음걸이를 나타내는것 처럼 느껴진다. 중간부에서 나타나는 C장조의 밝은 분위기는 생전의 영웅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나 다시 어두운 분위기의 ‘장송 행진곡’으로 마무리 된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용된 쉼표는 절뚝거리는 영웅의 걸음걸이를 그려내고 있다.
3악장 - Allegro vivace
3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빠른 스타카토의 움직임을 보인다. 가벼운 악상은 점차적으로 힘을 키워가며 무거운 움직임을 보인다. 트리오에서 사용되는 코랄풍의 호른 선율은 위풍당당하며 마치 일사불란한 군대의 행진을 보는것 처럼 느껴진다.
4악장 - Allegro molto
이 악장의 주된 주제는 베토벤의 작품 [영국풍 시골 무곡] 선율이다. 1주제인 피치카토 주제에 이어 등장하는 2주제는 평온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며 이후 대위법적 기교들이 얽히면서 장대한 정점, 압도적인 스케일을 향해 치닫게 된다. 마지막에는 거대한 코다가 등장하며 작품을 힘차게 마무리 한다.
추천음반
명성만큼 뛰어난 연주가 많아 4장 외에도 명연이 수두룩하다. 칼 뵘(DG)의 연주 중에는 베를린필과의 연주가 뛰어나다. 베를린필의 중후한 음향과 공격적인 진행이 인상적이다. 줄리니(DG)의 연주는 유려한 흐름과 서정적인 전개가 돋보이인다. 카라얀(DG)의 80년대 녹음 역시 디테일한 표현력과 특유의 화려한 색채감각, 박력으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하이팅크와 LSO의 연주는 명확함이 빛나는 연주로 미세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작품을 지휘했다. 이외에도 푸르트뱅글러, 토스카니니의 명연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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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0월 4일 네이버캐스트 / 최은규 글>
베토벤 교향곡 제4번 B♭장조 Op.60
특성 : 낭만적인 홀수 교향곡들과는 달리 여성적 미, 유머와 위트가 돋보이는 작품
초연 : 1806년 작곡. 1807년 빈에서 초연
베토벤의 교향곡들 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들은 대개 홀수 번호의 교향곡들이다. [교향곡 제3번] ‘영웅’과 [교향곡 제5번] ‘운명’, 리듬이 강조된 [교향곡 제7번]과 성악이 들어간 [교향곡 제9번] ‘합창’은 오늘날 베토벤 교향곡들 중 가장 자주 연주되고 있으며 강하고 투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가장 베토벤다운 음악으로 여겨진다. 반면 베토벤의 짝수 번호 교향곡들 중에서 [교향곡 제6번] ‘전원’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우아함과 유머감각을 갖추고 있음에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베토벤의 짝수 교향곡들이 베토벤 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여성적이고 서정적이며 유머러스한 점이 많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짝수 번호 교향곡들은 베토벤 음악의 색다른 모습을 담고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여성적, 서정적 특성을 가진 베토벤의 짝수 교향곡
베토벤의 짝수 번호 교향곡들 중에서도 [교향곡 제4번]은 그 뛰어난 작품성에 비해 그다지 널리 연주되지 않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이 곡은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 중에서도 영웅적이고 남성적인 힘으로 가득한 [교향곡 3번] ‘영웅’과 [교향곡 5번] ‘운명’ 사이에 낀 작품이기에 작곡가 슈만은 이 교향곡을 가리켜서 “두 명의 북구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스의 미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리스’라는 말은 이 작품의 고전적인 특성을 가리키고 ‘미인’이라고 한 것은 [교향곡 4번]이 [교향곡 3번]과 [5번]에 비해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베토벤 [교향곡 4번]을 ‘그리스의 미인’에 비유한다면 그 미인은 아주 활동적이고 발랄하고, 또 변덕스럽기도 한 미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그리스 미녀는 1악장에서부터 종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변덕스럽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교향곡 4번]에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1악장에나 나타나는 혼란스럽고 신비로운 서주가 나오는가 하면, 하이든 풍의 활기찬 음악도 들을 수 있으며, 아다지오 악장의 숭고한 아름다움과 베토벤의 장난기와 유머도 나타나고 있어 무척 변화무쌍하다. 이는 하이든의 고전주의 교향곡의 명랑한 활기와 유머감각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베토벤이 이 곡에서 보여준 것은 하이든의 고전주의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세련된 고전주의라 할 수 있다.
이미 [교향곡 3번] ‘영웅’에서 낭만주의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베토벤이 그 다음 교향곡을 이렇게 생기발랄한 고전적으로 작곡한 것은 다소 의외다. 아마도 베토벤은 [교향곡 4번]의 작곡을 의뢰한 프란츠 폰 오퍼스도르프 공작의 취향을 배려하여 고전주의적인 음악양식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베토벤은 1806년에 오퍼스도르프 공작의 영지인 북부 슐레지엔 지방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곳에서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제2번]을 선보였다. 하이든도 마음에 들어했던 이 교향곡은 고전적인 정신과 우아한 서정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아마도 오퍼스도르프 공작의 마음에도 들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작품 의뢰인인 오퍼스도르프 공작을 위해 공작이 이미 들어본 적이 있는 자신의 [교향곡 제2번]의 고전적인 스타일에 준하여 새로운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고, 그 결과 베토벤의 가장 낭만적인 [교향곡 제3번]에 이어지는 [교향곡 제4번]은 고전적인 명랑함을 지니게 되었다.
반전과 활력, 유머와 위트 - 베토벤의 색다른 매력
1악장 Adagio – Allegro Vivace
1807년 3월, 베토벤의 [교향곡 제4번]이 그의 [코리올란 서곡]과 [피아노 협주곡 제4번]과 함께 프란츠 조세프 폰 로브코비츠 공작의 저택에서 초연되었을 때 대부분의 청중들을 1악장 도입부의 느린 템포와 떠도는 화성에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악보에 표시된 조성 기호에 따른다면 분명 이 도입부는 B플랫 장조가 되어야 하지만 들리는 음악은 B플랫 단조이며 매우 신비롭고 어두운 색채로 가득하다. 1악장의 느린 서주가 현악기의 피치카토(현을 퉁기는 주법)가 가미된 관악기의 화음으로 시작되면 현악기들이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3도 하행 선율을 연달아 연주한다. 베토벤은 이 신비로운 서주 부분에서 매우 과감한 전조를 감행해 B플랫 단조에서 갑작스럽게 B단조로 건너뛰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마치 전혀 다른 시공간의 차원으로 이동하는 듯 기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또다시 C장조와 d단조로 정처 없이 흐르는 조바꿈이 계속되다가 팀파니와 화려한 트럼펫이 가세하면서 드디어 1악장의 악상은 확실한 윤곽을 잡기 시작한다.
팀파니와 트럼펫에 힘입어 곧바로 전체 오케스트라가 힘차게 빠른 알레그로 비바체 부분에 진입하면 바이올린이 경쾌한 주제를 연주하면서 1악장의 활기 찬 제1주제가 연주되는데, 신비로운 도입부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이 주제는 잠시 후 목관악기들이 릴레이를 하듯 연주하는 장난기 어린 제2주제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간결한 형식미와 위트가 돋보이는 1악장은 간결하고 명쾌한 형식으로 음악에 추진력을 더하는 베토벤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2악장 Adagio
2악장에서 베토벤은 매우 느린 ‘아다지오’(Adagio)의 템포 기호를 사용한다. 이는 [교향곡 제9번] 3악장에 나타나는 템포로,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매우 느리고 장중한 성격을 지닌다. 제2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부점 리듬의 반주음형을 타고 흐르는 제1바이올린의 노래는 마치 천상의 음악처럼 아름답고 신성하다. 그러나 때때로 제2바이올린의 반주음형이 전면에 나타나 강박적으로 반복되며 아름다운 제1바이올린의 주제와 대비된다.
3악장 Allegro - Vivace
3악장은 전형적인 스케르초의 빠른 템포의 위트 넘치는 음악이지만, 형식이 크게 확장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대개의 스케르초는 리듬이 강조된 스케르초 부분에 이어 소수의 악기들로 실내악적으로 연주되는 트리오 부분이 나온 후 다시 처음의 스케르초로 되돌아가는 단순한 'ABA' 형식을 취하지만, 이 곡에서 베토벤은 이 악장 뒷부분에 스케르초와 트리오, 스케르초를 더하여 규모를 좀 더 확장했다.
4악장 Allegro ma non troppo
베토벤의 [교향곡 4번]은 바이올린과 목관악기의 뛰어난 기교가 요구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에게는 다소 부담을 주는 작품이기도 한데, 이런 특징은 4악장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제1바이올린 주자들은 마치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연주할 때처럼 매우 빠른 16분 음표들을 끊임없이 연주해야하고 바순과 클라리넷 주자 역시 중간 중간 매우 빠른 악구를 화려하게 연주해내야 하기에 4악장은 연주자들에게 꽤 부담이 되는 곡이다. 하지만 그만큼 청중에게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간과 즐거움을 전해주는 음악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시종일관 빠르게 질주하는 4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바이올린과 바순이 주제 선율을 느리게 주고받는 악구를 끼워 넣어 청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하지만 곧바로 빠르게 휘몰아치는 템포로 음악을 마무리하는데, 이는 베토벤이 구사한 음악적 유머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초연 당시 베토벤이 이 교향곡에서 선보인 유머감각과 정교한 작곡기법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811년, 독일의 <일반음악신문>은 교향곡 3번과 5번 사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이 걸작 교향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4번]은 아직까지 그다지 잘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위트로 가득한 작품이다.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운 서주와 격정적이고 화려하며 임찬 알레그로, 세련되며 우아한 안단테와, 완전히 독창적이며 놀랍고 매혹적인 스케르초, 그리고 매우 효과적인 피날레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즐거우며, 이해하기 쉽고, 매우 매력 있다."
만일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나 [합창 교향곡]에 익숙한 청중이라면, 베토벤의 [교향곡 4번]에서는 뜻밖의 반전과 활력을 느끼며 베토벤 음악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은규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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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출처 : 2013년 12월 6일자 발행 네이버캐스트 / 황장원 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운명' Op.67
교향곡, 나아가 클래식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강력한 음악적 드라마
1804년에서 1808년 사이에 작곡, 1808년 12월 22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초연
1804년에 [교향곡 제3번 E♭장조], 즉 ‘영웅 교향곡’을 발표하며 음악사에 새 장을 연 베토벤은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다음 교향곡에 착수했다. 그것은 전작 이상으로 베토벤 자신의 개성이 강조된 작품으로서, 한층 절약된 소재와 극도로 치밀한 기법, 그리고 더없이 강렬한 극적 전개를 통해서 교향곡사에 또 한 번의 변혁을 일으킬 운명이었다. 이 작품이 바로 오늘날 모든 교향곡, 나아가 ‘클래식 음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교향곡 제5번 c단조], 일명 ‘운명 교향곡’이다.
그런데 그 작업은 얼마 후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1806년, 베토벤은 어둡고 강렬한 ‘c단조 교향곡’ 대신에 한결 밝고 유려한 [교향곡 제4번 B♭장조]를 먼저 완성한다. 또 [피아노 협주곡 제4번 G장조],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등 주로 밝은 성향의 작품들을 연이어 완성시켰다. 아울러 ‘여성에 의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내포한 그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의 초기 형태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 무렵이다. 대체 그 당시 베토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고난의 삶에 잠시 비춘 햇살
1804년, 베토벤에게 필생의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의 이름은 요제피네 폰 다임. 그녀는 원래 헝가리의 귀족인 브룬스빅 가문의 둘째 딸로서, 1799년 봄부터 비엔나에 체류하면서 언니 테레제와 함께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시절에 그들 자매와 베토벤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속될 마음의 우정’을 맺기도 했다.
1799년 여름, 요제피네는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 27세 연상의 요제프 다임 백작과 결혼식을 올리고 비엔나에 정착했으며, 이후 ‘다임 백작부인’으로서 네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녀는 꾸준히 피아노 레슨을 받고 때때로 집에서 음악회를 개최하면서 베토벤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는데, 한편으론 문학과 음악에 별 관심이 없는 남편 밑에서 외롭고 불행했다. 더구나 집안의 경제사정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급기야 1804년 1월에는 남편이 병사하고 말았다. 꽃다운 20대 중반의 나이에 미망인이 되어 경제적 곤궁에다 신경쇠약에까지 시달리고 있었던 요제피네에게 위로의 손길을 뻗친 사람이 바로 베토벤이었다. 이제 우정은 연정으로 발전했고, 두 사람은 1804년 가을부터 한동안 연인 관계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밝은 성향의 작품들이 작곡된 것이 바로 그 시기였다. 덕분에 ‘c단조 교향곡’의 완성은 무기한 연기되었는데, 아마도 요제피네와의 행복한 시간이 베토벤의 마음을 어둡고 격렬한 음악에서 밝고 온화한 음악 쪽으로 돌려놓았던 것이 아닐까? 그 시절의 작품들에 잘 나타나 있듯이, 요제피네와의 사랑은 베토벤의 고달픈 삶에 비친 가장 찬란하고 감미로운 햇살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애초부터 오래 지속되지 못할 운명이었다. 요제피네가 귀족이었던 데 비해 베토벤은 평민이었고, 만일 베토벤과 결혼하게 되면 요제피네는 법에 따라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을 상실하게 될 처지였다. 또 베토벤은 예나 지금이나 앞날이 불투명한 ‘음악가’라는 직업에 몸담고 있었고, 치명적인 청각이상에 시달리고 있기까지 했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요제피네의 고민도 깊어졌고 베토벤의 호소는 절박해졌다. 그러나 결국 요제피네는 집안사람들의 반대에 굴복하고 만다. 1807년이 저물어갈 즈음 그녀는 베토벤에게 결별을 선언했고, 그 후 두 사람의 사이는 소원해졌다.
교향곡과 드라마
베토벤이 어둡고 투쟁적인 음악으로 복귀한 것은 요제피네와의 연애전선이 하강곡선을 그리던 무렵의 일이었다. 즉 1806년 말의 [32개의 변주곡 c단조]와 1807년 초의 [코리올란 서곡]을 거쳐, 베토벤은 마침내 ‘c단조 교향곡’을 다시 붙잡았던 것이다. 그 사이 번호가 4번에서 5번으로 밀린 새 교향곡은 1808년에 완성되었고, 같은 해 12월 22일 안 데어 빈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자매작인 [전원 교향곡]과 함께 초연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토벤의 가장 성공적이고 상징적인 역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런데 때때로 이 교향곡의 표제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운명’이라는 호칭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서 ‘운명’은 그저 별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 별명은 베토벤의 후년에 비서 노릇을 했던 안톤 신틀러의 증언에서 유래했는데, 그가 곡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유명한 ‘4음 모티브’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냐고 물었을 때 베토벤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틀러의 여러 증언이나 주장들이 후대에 와서 거짓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이 증언도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이 곡을 ‘운명 교향곡’이라고 부른다. 거기에는 편의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 곡이 ‘어둠과 고난을 헤치고 광명과 환희로!’라는 베토벤 고유의 모토를 다른 어떤 곡보다도 명료하게, 효과적으로 응축해서 구현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첫 악장에는 일평생 청각장애, 신분의 장벽, 정치적 격변기의 혼란 등을 겪으며 숱한 역경과 맞서 싸워야 했던 베토벤의 처절한 투쟁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한 편의 교향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감동적인 휴먼 드라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원래 이 작품이 ‘영웅 교향곡’의 바로 다음 작품으로 구상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전작이 '이상적 영웅상' 혹은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의지'를 펼쳐 보인 것이라면, 이 ‘운명 교향곡’은 그 이상을 향한 인간의 투쟁과 고뇌, 그리고 궁극적 성취 과정을 형상화한 음악적 드라마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작품을 ‘운명’이라는 표제 아닌 표제에 묶어둠으로써 범할 수 있는 오류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잠시 시선을 돌려 보면, 이 작품이 당시 나폴레옹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독일-오스트리아의 민족주의 또는 애국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역사적 고찰도 존재하며, 베토벤이 즐겨 언급하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비극을 암시한다는 견해도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 편의 ‘교향곡’이다. 베토벤이 딛고 서있었던 ‘고전주의의 총아’이자 ‘기악음악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작품에 담긴 베토벤의 정신이나 주제의식을 논하는 것에 못지않게, 그 순수한 음악적 측면을 주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상상을 초월하는 리듬의 응집력, 주제 재료의 경제성(‘운명의 동기’로 대변되는), 진취성과 혁신성(제1악장 중간의 절묘한 오보에 카덴차, 제3악장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빚어내는 효과, 관악 파트에 피콜로와 콘트라파곳을 추가한 것, 피날레에서 트롬본을 등장시킨 것, 스케르초 악장의 주제를 피날레 악장에서 다시 등장시킨 것 외) 등을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이 작품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온전히 가늠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첫 악장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무쌍한 리듬 및 프레이징의 변화, 즉 ‘리듬의 역동성’이야말로 우리가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감탄하며 압도되는 이유의 핵심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외형적으로 고전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는 이 교향곡이 종래의 모든 규칙과 제약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제1악장 - 알레그로 콘 브리오, c단조, 2/4박자
첫 악장은 이른바 ‘운명의 동기’가 갑작스럽게 포르티시모로 터져 나오며 시작된다. ‘세 개의 짧은 음표와 한 개의 긴 음표’로 이루어진 이 유명한 동기는 처음에 현악기들과 클라리넷에서 음높이를 달리하여 두 번에 걸쳐 나오는데, 그 마지막의 붙임줄과 페르마타까지를 아우르는 다섯째 마디까지가 이 악장의 제1주제이다.
이후 ‘운명의 동기’는 열띤 흐름 속에서 꾸준히 반복⋅변형⋅확장되면서 곡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호른 신호와 함께 시작되는 제2주제는 제1바이올린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데, 리듬적인 속성이 강조된 제1주제와는 달리 다분히 선율적이다.
이 악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투쟁적인 열기’로 요약될 수 있겠지만, 사실 이 긴박한 드라마에는 꽤나 다양한 장면들이 밀집되어 있다. 즉 투쟁의 강렬함 외에도 (그 투쟁의 주인공으로 상정될 수 있는) 영웅의 늠름함과 유연함, 그리고 다소 때 이른 환희의 쾌활함까지도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은 '운명의 동기'의 가공할 마력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며, 결국 비극적인 파국과 패배 속에서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제2악장 - 안단테 콘 모토, A♭장조, 3/8박자
격렬한 전장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듯한 이 느린 악장은 두 개의 주제에 기초한 변주곡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첼로와 비올라로 제시되는 제1주제는 느긋하고도 리드미컬하게 흐르며, 클라리넷과 파곳으로 제시되는 제2주제는 우아한 춤 또는 행진의 느낌을 자아낸다. 이후 이 주제들은 때로는 장대하거나 당당하게, 때로는 유려하거나 소박하게 모습을 바꾸면서 다채롭게 변주되어 나간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휴식과 위안, 사색과 명상 등 실로 다양한 감정과 이미지들을 경험하게 된다.
제3악장 - 알레그로, c단조, 3/4박자
다시 전장으로 복귀한 듯한 스케르초 악장이다. 저현부에서 음산하게 솟아오르는 주제로 시작되고, 이어서 트럼펫이 ‘운명의 동기’의 변형을 장렬하게 연주하며 다시금 투쟁의 분위기를 곧추세운다. 중간의 트리오로 들어가면 급속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첼로와 베이스에서 출발하여 점차 밝아지는 푸가토가 등장하는데, 베를리오즈는 이 부분을 ‘코끼리 춤’이라고 부른 바 있다. 이후 다시 처음의 주제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어딘지 기묘한 풍자 또는 해학의 기운을 띠고 있다.
혹자는 이 스케르초가 마무리되고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나오는 조용한 이행부가 이 교향곡의 진정한 절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긴장감과 신비감을 함께 머금은 이 이행부는 실로 경이로운 것이어서, 베를리오즈는 그 뒤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 수준을 능가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고, 같은 맥락에서 슈포어는 마지막 악장을 ‘무의미한 바벨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4악장 - 알레그로, C장조, 4/4박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팡파르와 함께 시작되는 피날레 악장은 우리에게 언제나 벅찬 감흥을 안겨준다. 음악이 찬란한 C장조로 전환된 가운데 먼저 금관이 이끄는 투티로 ‘승리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제1주제가 힘차게 부각되고,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오는 제2주제는 마치 흥겨운 춤을 추듯 쾌활하게 펼쳐진다. 영웅은 다시금 투쟁에 임하지만 이번에는 승리에 대한 확신에 차있고, 발전부 말미에서는 앞선 악장의 기묘한 주제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내 사라진다. 재현부 이후는 마침내 승리를 쟁취한 영웅의 개선행진곡이자 환희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초월적인 걸작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언젠가 베토벤은 “보다 아름다운 것을 위해서라면 파괴하지 못할 규칙이란 없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슬로건으로 통용되기도 했던 이 발언은, 그러나 과도한 일탈이나 방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베토벤의 파괴는 고리타분하고 정체된 낡은 질서를 허물고 보다 참신하고 역동적인 새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낭만적인 동시에 고전적이고, 고전적인 동시에 낭만적인 ‘운명 교향곡’은 그에 관한 가장 뜨겁고 힘찬 웅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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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 2010년 7월 5일 네이버캐스트 / 최은규 글>
베토벤 교향곡 제6번 B♭장조 '전원' op.68
특성 : 각 악장에 표제가 붙어 있으며 3, 4, 5악장이 연달아 연주된다.
초연 : 1806년 작곡. 같은 해 빈 극장에서 초연
베토벤은 비슷한 시기에 전혀 다른 성격의 작품들을 동시에 내놓는 경향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교향곡 제5번]과 [교향곡 제6번]이다. 강한 추진력이 돋보이는 [교향곡 5번] ‘운명’과 이완된 리듬과 평화로운 멜로디가 담긴 [교향곡 6번] ‘전원’은 각기 1807년과 1808년에 연달아 작곡된 후 1808년 12월 22일에 빈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그날의 음악회는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해 밤 10시 30분까지 무려 4시간에 걸쳐 계속됐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마라톤 음악회에서 베토벤은 작곡가로서, 지휘자로서, 독주자로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교향곡 5번]과 [교향곡 6번]뿐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독주곡, 몇 곡의 아리아, 그리고 [합창 환상곡]까지 연주하고 지휘했다.
4시간의 마라톤 연주회 - [운명 교향곡]과 같은 날 초연
이 역사적인 연주회를 지켜본 라이하르트는 지인에게 보내는 12월 25일자 편지에 그날 연주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지독한 추위 속에서 6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그 곳에 앉아, 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장점과 강력함을 가질 수 있다는 격언을 확인했습니다. 여러 가지 작은 실수들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긴 했지만, 음악회가 끝나기 전에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음악회가 워낙 길고 힘들다 보니 공연 후반부에 연주가 엉망이 되는 사고도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또 다른 환상곡(합창 환상곡 작품80)이 연주되었는데, 이번에는 관현악단이 연주에 동참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합창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이한 편성의 연주는 크게 실패하고 말았지요. 관현악단의 연주는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베토벤은 예술가로서의 열정으로 인해 청중과 주위사람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채 연주를 멈추고 다시 시작하라고 소리쳤습니다. 나를 비롯한 베토벤의 친구들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때 나는 빨리 그곳을 떠날 수 있는 마차가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이 야심만만한 연주회는 결국 엉망이 되긴 했지만, 장장 4시간 동안 진행되는 베토벤의 심포니 연주가 가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베토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바로 그날 연주된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은 같은 날 초연되었으니 쌍둥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닮지 않았다. ‘운명’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교향곡 제5번]이 운명과 싸워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교향곡 제6번] ‘전원'에는 인간의 괴로움과 투쟁이 아닌 자연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제5번이 인간을 표현한 것이라면 제6번은 자연을 다루었으며, 전자가 응집력과 추진력을 갖춘 역동적인 음악이라면 후자는 관조와 명상이 흐르는 이완된 음악이다. 초연 당시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이 먼저 연주된 후 [교향곡 제5번]은 나중에 연주됐는데, 18세기 빈 고전주의의 우아하고 균형 잡힌 음악에 길들여진 그날의 청중들은 두 곡의 교향곡 중에서 ‘전원’ 교향곡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고 전해진다.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의 표제는 작곡가 자신이 직접 붙였고 각 악장에도 표제가 붙어있다. 그러나 베토벤이 교향곡에 담아낸 전원의 모습은 단순히 전원 풍경을 묘사한 ‘음화’(音畵)는 아니며 자연에 대한 감정과 관념의 표현이다. 베토벤 자신도 [교향곡 제 6번] ‘전원’의 표제에 대해 이런 메모를 남기고 있다. “전원 교향곡은 회화적인 묘사가 아니다. 전원에서의 즐거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의 감정 표현이며, 그에 곁들여서 몇 가지의 기분을 그린 것이다.”
<전원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4시간짜리 거대한 콘서트를 열 정도로 인기있는 작곡가였다.
전원에서의 즐거움, 마음 속에 떠오르는 기분을 표현
베토벤은 ‘전원’ 1악장의 악보에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기분’이라 쓰고 전원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단조로울 정도로 반복적인 음형으로 표현해냈다. 전개부에서 무려 72회나 계속되는 반복음형과 느린 화성 리듬을 통해 베토벤은 자연의 무한함과 자연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움을 담고자 했다.
2악장 ‘시냇가에서’에는 비교적 구체적인 묘사가 나타났다. 제1바이올린이 평화로운 선율을 연주하는 사이 저음 현 파트에서 물결치는 듯한 반주 음형이 나타나는데 이는 시냇물의 잔잔한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2악장 후반에는 구체적인 새소리도 들려온다.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를 표현한 플루트의 연주에 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각기 메추라기와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실감나게 묘사하며, 시냇가의 새소리에서 느껴지는 목가적인 분위기를 전한다.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과 ‘폭풍’, 그리고 ‘폭풍이 지난 후의 감사한 마음’을 노래한 3, 4, 5악장은 하나의 음악처럼 쭉 이어서 연주된다. 베토벤은 후반 세 악장을 연결시켜 마치 전원을 산책하며 보고 듣는 여러 가지 체험을 하나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엮어놓는다. 먼저 시골풍의 소박한 춤곡이 펼쳐지는 3악장에서는 평화로운 전원을 배경으로 농부들이 즐겁게 먹고 마시며 춤을 추는 모습이 펼쳐진다. 그러나 흥겨운 음악은 갑자기 중단되고 제2바이올린이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음형을 연주하면 갑자기 폭풍이 몰려오듯 음악의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지고 난폭해진다. 찌르는 듯한 피콜로의 고음과 무시무시한 트롬본의 연주가 가세하여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부는 폭풍의 격렬함을 묘사한다. 짧지만 강렬한 4악장의 폭풍이 지나가면 5악장에서 폭풍이 지나간 것을 감사하는 아름다운 노래가 갖가지 형태로 변주되며 전원 교향곡은 절정에 달한다.
최은규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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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9월 1일 네이버캐스트 / 최은규 글>
베토벤 교향곡 제7번 A장조 op.92
특성 : 리듬의 역동성을 통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창조해낸 걸작 교향곡
초연 : 1812년 완성해 1813년 빈에서 초연
일찍이 베토벤은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커스이며 그렇게 빚은 술로 사람들을 취하게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그의 [교향곡 제7번]이야말로 이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다. 특히 리듬의 역동성은 이 작품의 핵심적인 매력으로 리스트는 이 교향곡을 가리켜 “리듬의 신격화”라 표현하기도 했다. 강박적인 리듬의 반복을 통해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이 교향곡을 듣고 있노라면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원초적인 리듬충동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베토벤 음악 인생에 길이 기억될 초연 연주회
베토벤이 [교향곡 제7번]을 완성한 1812년은 그의 작품 활동이 주춤하기 시작한 시기다. 1802년부터 1809년까지 7년간 베토벤은 다섯 곡의 교향곡과 현악4중주곡 ‘라주모프스키’,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과 ‘열정’ 등의 걸작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1809년에도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와 현악4중주 작품74, 피아노 소나타 ‘고별’ 등 걸작들을 계속 발표하며 지칠 줄 모르는 창작의욕을 과시했으나 1810년부터 차츰 작곡의 속도를 늦춰갔다. 그러던 중 1812년 4월 13일에 드디어 4년간의 교향곡 공백기를 깨고 몇 곡의 음악을 다 합쳐놓은 것만큼의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담은 [교향곡 제7번]을 완성해내면서 교향곡 작곡가로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이루어진 [교향곡 제7]번의 초연무대는 베토벤의 경력에 있어 길이 기억될 만한 연주회였다. 연주 당시 부악장을 맡았던 작곡가 슈포어가 남긴 위의 증언을 보면 [교향곡 제7번]을 지휘할 당시 베토벤은 이미 청력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날 공연은 베토벤의 공연들 가운데도 기억에 남을 만한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연주 당일 베토벤의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관객들이 환호한 작품은 [교향곡 제7번]이 아니라 그날 공연에서 함께 연주된 [웰링턴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흔히 ‘전쟁 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하는 [웰링턴의 승리]는 메트로놈의 발명가 멜첼이 고안한 ‘판하르모니콘’이란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으로, ‘전쟁’과 ‘승리’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팡파르, 군대의 호출, 대포소리, 전쟁장면 등이 단순하게 묘사되고 마지막 종결부의 압도적인 클라이맥스로 인해 대중들은 이 작품에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웰링턴의 승리]보다 [교향곡 제7번]이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이라 생각했던 베토벤은 청중의 이런 반응에 실망했고, 빈 신문에서 [교향곡 제7번]을 가리켜 [웰링턴의 승리]의 “들러리 작품”이라 칭한 것에 몹시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 청중이 [교향곡 제7번]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특히 장송행진곡 풍의 2악장에 열광해, 베토벤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2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하기도 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연, 광란의 춤곡
[교향곡 제7번] 1악장은 매우 길고 복잡한 서주로 시작된다. 1악장의 서주는 그때까지의 교향곡에서는 거의 들어볼 수 없었던 가장 거대한 서주로, 신비로운 화음과 계속되는 음계, 목관악기에 의해 반복되는 단순한 모티브가 이어지면서 긴장감을 더한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독특한 부점 리듬형이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템포는 매우 빠른 비바체로 바뀌고 마치 춤곡과도 같은 리듬형이 강박적으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빠르고 경쾌한 음악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대개 4/4박자로 되어있는 일반적인 교향곡의 1악장과는 달리 [교향곡 제7번]의 1악장은 바로크 춤곡 ‘지그’(Gigue)를 연상시키는 6/8박자로 되어 있어 특별하며, 여기에 팀파니까지 리듬의 향연에 가세해 집요하게 같은 리듬을 반복하면서 광포함을 더한다. 그야말로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연이라 할 만한 광란의 춤곡이다.
알레그레토(Allegretto, 조금 빠르게)라는 애매한 템포로 설정된 2악장은 장송곡 풍의 독특한 음악으로 초연 당시 청중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이다. 2악장이 시작되면 목관악기의 불안정한 화음에 이어 저음 현악기들이 장례행진을 연상시키는 리듬 주제를 연주한다. 저음현의 어두운 음색이 침통한 분위기를 더하는 가운데 어느새 제2바이올린 파트가 끼어들어 주제를 연주하고, 저음현은 또 다른 선율을 연주하면서 제2바이올린과 조화를 이룬다. 새로운 악기들이 끼어들 때마다 감정의 깊이는 더욱 강해지며 청중을 음악 속으로 끌어들인다. 2악장 중간 부분에서 클라리넷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잠시의 위안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저음 현악기들은 계속해서 장송음악의 리듬을 집요하게 반복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3악장은 베토벤 음악의 역동적 에너지가 최고조에 달한 스케르초라 할 수 있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만으로 흥분을 일으키며 그 과격한 리듬은 21세기 청중에게도 여전히 놀라움을 안겨준다. 때때로 강한 악센트와 제2호른의 갑작스런 돌출 등 예상치 못한 반전에서 베토벤 특유의 블랙 유머도 느낄 수 있다. 반면 3악장의 중간에 등장하는 트리오 부분에선 현악기가 지속음을 연주하는 사이 목관악기들은 한층 이완된 리듬을 선보이며 역동적인 스케르초 부분과 대비된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한 트리오 부분에선 출렁이는 목관악기의 움직임이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4악장은 처음부터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와 강렬한 리듬으로 충격을 준다. 마치 완벽한 기계장치가 돌아가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의 합주에서는 어느 정도 규칙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악장에선 특히 약박을 강조하는 규칙적인 악센트와 반음 모티브로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저음현의 독특한 움직임에 주목해보자. 다른 음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거칠고 사나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4악장은 베토벤의 가장 자극적인 교향곡을 마무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압도적인 결론이다.
추천음반
옛 거장들의 역사적인 명연을 비롯해 수많은 명반이 존재하며 4개만을 꼽기엔 어려움이 많은 작품이다. 베토벤 [교향곡 제7번]의 역동적인 리듬감을 느끼고 싶다면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반(DG)을 추천하고 싶다.
2악장의 진지함을 느끼고 싶다면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의 음반(BBC)도 추천할 만하며,
그밖에 귄터 반트가 지휘하는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음반(RCA)과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는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반(Teldec)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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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1월 17일 네이버캐스트 / 최은규 글>
베토벤 교향곡 제8번 F장조 op.93
특성 : 하이든, 모차르트의 틀로 회귀한 고전형식의 교향곡
초연 : 1812년 여름 ~ 가을 사이에 완성, 1814년 2월 초연
그토록 역동적이고 열광적인 [교향곡 제7번]을 작곡한 바로 그 베토벤이 이렇게 고전적인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을 들으면서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7번]을 완성한지 6개월이 지난 1812년 10월에 내놓은 [교향곡 8번]에서 마치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기라도 한 듯 3악장에 제대로 된 미뉴에트를 써넣는가 하면 중간 중간 하이든 풍의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대체 이토록 전혀 다른 성격의 [교향곡 7번]과 [8번]을 거의 연달아 내놓은 베토벤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
대중적인 인지도로 보았을 때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은 [제7번]에 비해 인기가 없다.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청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며 압도적인 연주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제7번]을 선택하지 옛 양식으로 되돌아간 듯한 [제8번]을 연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회가 아닌 이상 베토벤 [교향곡 8번]을 일반적인 관현악 연주회에서 듣기란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은 베토벤 당대에도 마찬가지였다. 베토벤의 [교향곡 8번]이 1814년 2월 27일에 초연되었을 때에도 <일반음악신문>의 평론가는 “이 작품은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평해 베토벤을 화나게 했다.
과거 양식으로의 회귀를 가장한 ‘대담한 진보’
하지만 베토벤 자신은 교향곡 제8번을 더 사랑했다. 누군가 베토벤에게 [교향곡 제7번]이 [제8번]보다 더 인기 있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제8번이 더 낫기 때문이야”라 답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교향곡 8번]을 자세히 들으며 이 음악의 매력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그 기막힌 반전과 풍자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이다. 이 교향곡 속에 숨어있는 어마어마한 혁명을 발견해낼 수 있는 음악애호가라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보다 [제8번]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교향곡 제8번]을 완성한 후 12년 동안 교향곡 분야에서 아무런 작품을 내놓지 않은 베토벤은 1824년에 인간의 목소리가 들어간 대작 [교향곡 제9번]을 작곡했다. 교향곡에 성악이 들어가는 [교향곡 제9번]은 교향곡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는 면에서 진정으로 혁명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교향곡 제8번]은 겉보기에도 순수한 기악 교향곡일 뿐 아니라 형식상으로도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세운 틀을 간직하고 있는 교향곡이기에 베토벤이 마지막으로 완성한 ‘정상적인’ 교향곡이며 그다지 혁명적인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교향곡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베토벤의 [교향곡 제8번]은 ‘과거회귀’를 가장한 대담한 ‘진보’다. 베토벤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 교향곡 속에 앞으로 그가 추구하게 될 새로운 길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고전파 음악을 풍자하는 베토벤의 도발적 시도
베토벤은 [교향곡 8번]에서 교향곡 1악장으로서는 드물게 춤곡 풍의 3/4박자로 설정하고 서주 없이 곧바로 주제를 제시한 후 떠들썩하게 전개시킨다. 언뜻 들으면 [교향곡 제7번]만큼 광포한 느낌은 없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간혹 음악적인 희열이 지나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발전부에서 재현부로 들어가며 다시 주제를 확신있게 재현해야하는 부분에서도 분위기가 지나치게 고조되어 중요한 제1주제의 선율이 어설프게 들린다. 그래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는 후에 이 부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개정해 주제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주제의 성격을 모호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베토벤의 본래 의도인 지도 모른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고전주의 음악을 풍자하려 했으리라.
베토벤은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느린 악장에서 위대한 음악성을 드러내곤 했지만 이 교향곡에선 느린 악장을 쓰지 않았다. 느린 악장이 들어가야 할 2악장의 자리에 그는 위트 넘치는 음악적 농담을 선사했다. 메트로놈을 발명한 멜첼에게 감사를 표하려는 듯, 목관악기들은 똑딱거리는 메트로놈의 단조로운 16분 음표 음형을 반복한다. 여기에 현악기들이 귀여운 멜로디를 연주하며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미뉴에트로 대체된 스케르초 악장
베토벤은 [교향곡 제1번]에서 이름뿐인 미뉴에트를 작곡한 것을 제외하고는 교향곡의 3악장의 미뉴에트를 스케르초로 대체해왔다. 그런데 교향곡 제8번에선 그 자신에 의해 다시 미뉴에트로 되돌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베토벤은 과거 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다. 이상하게 비틀린 악센트와 과장된 듯한 제스처로 가득한 이 음악을 들어보면 베토벤이 마치 거대한 가발을 쓴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옛 궁정악사들을 조롱하는 듯하다. 귀족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강요할 수 있을 만큼 당당해진 자유음악가 베토벤은 이 미뉴에트를 통해 과거의 음악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4악장에서 베토벤은 빠른 속도와 거친 유머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바이올린이 벌이 윙윙거리듯 빠른 음표들을 연주하면 곧 플루트와 오보에가 맞장구를 친다. 웬일인지 주제선율은 점점 작아져 결국 매우 여린 피아니시시모(ppp)에 이른다. 그러다 돌연 엉뚱한 C#의 음이 돌출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는 곧바로 으뜸조인 F장조의 주제가 크게 연주된다. 전 오케스트라가 힘차게 연주하는 주제 선율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순진하게 들린다. 바로 직전의 C#의 충격적인 돌출이 주제의 단순함을 조롱하는 듯했기 때문이리라. 이것이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유머를 구사하는 방식이다.
베토벤의 유머는 이 악장 전체를 통해 계속된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이상한 전조와 예상을 깬 전개방식이 펼쳐지며 순간순간 놀라움을 안겨준다. 이 곡은 마치 하이든 교향곡의 피날레처럼 가볍고 빠른 음악이지만 곳곳에 베토벤이 시도한 가장 위험하고 도발적인 모험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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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09년 12월 30일 네이버캐스트 / 최은규 글>
베토벤 교향곡 제9번 d단조 op.125 '합창'
특성 :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으로 합창 형식을 도입한 첫 교향곡이다.
초연 : 1824년 2월 작곡, 1824년 5월 7일 케른트너토어 극장에서 초연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은 환희와 인류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4악장에서 독일의 시인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합창이 나오는 까닭에 ‘합창’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은 작곡가 베토벤이 완성해낸 마지막 교향곡이자 오랜 세월에 걸쳐 작곡된 역작이기도 하다.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을 완성해낸 것은 그의 나이 53세 때인 1824년 2월의 일이지만 이 교향곡은 이미 1812년경부터 구상되었고, 실러의 ‘환희에 붙여’의 송가에 곡을 붙이려 생각한 것은 그가 고향 본을 떠나 빈으로 가기 이전부터였으니 베토벤은 교향곡 제9번을 30년 이상이나 구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 편성 : 피콜로1, 플루트2, 오보에2, 클라리넷2, 바순2, 콘트라바순1, 호른4, 트럼펫2, 트롬본2, 팀파니, 큰북, 심벌즈, 트라이앵글, 현악5부, 소프라노 1, 알토1, 테너1, 베이스1, 혼성4부 합창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변화무쌍한 교향곡
1824년 5월 7일,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합창 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 변화무쌍한 교향곡에 청중들은 놀라움과 경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정작 베토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 위대한 교향곡이 초연되는 그 순간 단지 참관자의 역할만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날 음악회의 실질적인 지휘자는 미하일 움라우프(Michael Umlauf, 1781~1842)였고 악장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인 이그나츠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 1776~1830)도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베토벤은 지휘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중요한 부분에서 지시를 내리기도 했으나 불행히도 음악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당시 합창단의 소프라노 파트에서 노래한 그레브너 부인은 베토벤의 모습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는 연주에 맞추어 악보를 읽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한 악장이 이미 끝났는데도 페이지를 계속 넘기곤 했다. 공연 때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건드리고 청중석 쪽을 가리켰다. 박수 치는 손 모습과 손수건이 휘날리는 광경을 보고 그는 머리를 숙였고, 그러면 더욱 큰 함성이 일었다.”
교향곡의 역사에 비추어볼 때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합창’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통의 틀을 벗어나 있다.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도입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통상적인 2, 3악장의 템포를 바꿔 2악장을 빠른 스케르초로, 3악장을 느리고 가요적인 악장으로 설정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또한 피날레 악장이 전통적인 음악 형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 역시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우주의 문이 열리는 듯한 1악장의 신비스러운 도입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특징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제1악장의 신비스러운 도입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교향곡의 첫 도입부를 듣는 순간, 베토벤 교향곡이라면 으레 크고 웅장하게 시작되리라는 우리의 추측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들릴 듯 말 듯한 호른의 지속음과 현악기의 살랑거리는 트레몰로가 슬그머니 교향곡의 시작을 알린다.
다이내믹은 피아니시모(pp). 10여 마디가 지나도록 들리는 음이라고는 단지 A와 E음 뿐이다. 이 텅 빈 완전 5도를 채워줄 중간 음마저 빠져있어서 대체 이 음악이 장조인지 단조인지조차 감이 안 온다.
이처럼 애매모호한 도입부는 베토벤 이전의 교향곡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파격적인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이론가들은 이 도입부를 가리켜 아무 것도 없는 혼돈 속에서 서서히 우주가 생성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 부분은 또한 어둠 속에서 서서히 해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훗날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는 거의 모든 그의 교향곡에 이러한 개시 방법을 도입해서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이다’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신비로운 1악장의 도입부가 지나면 d단조의 주제가 단호한 어조로 등장한다. 쓸데없는 수사나 장식 없이 전 오케스트라가 큰 소리로 단순 명쾌한 주제를 연주하는 순간 압도적인 숭고함이 뿜어 나온다. 그러나 1악장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바순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가 D에서 A로 반음계적으로 하행했다가 다시 D로 되돌아오는 선율을 반복해서 연주하며 어둡고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확신에 찬 어조를 다시금 비탄의 정서를 자아내며 1악장을 마무리한다.
2악장에서 비극은 익살극으로 얼굴을 바꾼다
태초의 혼돈과 우주의 생성으로 시작해 비탄으로 끝난 1악장은, 이런 심각한 슬픔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활기찬 2악장으로 이어진다. 베토벤 연구가 솔로몬이 이 악장에서 비극은 갑자기 익살극으로 바뀐다고 말했듯이, 2악장의 기괴한 음악은 1악장의 고뇌를 한 순간에 하찮은 농담으로 전락시킨다. 그 농담은 유쾌하다기보다는 냉소적이며 지극히 악마적인 것이다. 여기서 팀파니는 2악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희극 배우로 활약한다. 보통 방식대로 완전 5도로 조율되지 않고 옥타브 음정으로 조율된 팀파니는 갑자기 큰 소리로 끼어들며 우리에게 섬뜩한 농담을 건넨다. 2악장의 열광적인 무곡이 끝나면 사랑으로 넘치는 3악장 아다지오가 뒤따른다. 음악학자 조세프 커먼은 베토벤의 후기 기악곡에 ‘인간의 목소리’(voice)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아다지오야말로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아다지오는 순수 기악곡이지만 여기에는 마치 성악곡과 같은 유려한 멜로디가 흐르며 천상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4악장 ‘환희의 송가’를 통해 모든 인간은 하나가 된다!
4악장이 시작되면 오케스트라의 서주를 지나 베이스 독창자가 일어나 “오, 벗이여! 이런 곡조는 아니오! 더 즐겁고 환희에 찬 곡조를 노래합시다!”라 말한다. 그러면 지극히 단순하지만 강한 설득력을 지닌 환희의 선율이 시작된다. 그 뒤를 이어 터키풍의 행진곡과 느리고 장중한 음악, 환희의 멜로디를 기반으로 한 변주, 소나타와 협주곡 형식 등이 합쳐지면서 거대한 음악적 통일이 성취된다. ‘모든 인간은 한 형제’라는 환희의 송가를 통해 청중은 모두 하나가 된다.
베토벤 [합창 교향곡]의 자필 악보
악보 중간에 'seid umschlungen, Millionen(백만인이여, 서로 껴안으라)'라고 씌어진 베토벤의 육필이 보인다.
기악을 마치 성악처럼 다루는 방식은 4악장에서 더욱 돋보인다. 9마디 상박부터 시작되는 첼로의 기악 레치타티보는 그 대표적인 예로, 이 멜로디는 후에 나타날 ‘오, 친구여’로 시작되는 베이스의 레치타티보에 해당된다. 4악장은 기악곡을 성악곡처럼 쓴 곡일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간 성악곡이기도 하다. 베토벤의 시대에는 교향곡에 성악을 사용하는 예가 거의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 혁명적인 시도여서 당시의 몇몇 평론가들은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넣은 것은 큰 실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애초의 계획을 그대로 고수하여 그의 마지막 교향곡을 기악과 성악을 혼합한 장엄한 대서사시로 만들어 후대의 교향곡 작곡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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