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의 역사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카스피해,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세계에서 아홉째로 큰 나라이자, 가장 큰 내륙국이다.
[그림 1] 카자흐스탄
1850년경에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으며, 1925년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성립되었고 1936년에는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편입되었다.
1991년 12월 16일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992년 3월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했다. 광대한 평원국으로 기후는 대륙적으로 건조하며 초원·사막이 매우 넓다. 주민은 카자흐인이 절반이다. 에너지자원(석탄·석유·수력) 외에 철, 구리, 납, 아연, 금, 니켈, 크롬, 망간, 보크사이트, 인회도(燐灰土) 등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공업발달의 기초는 이들 자원의 채광 야금업이며, 화학공업(카바이드·인조고무·과린산비료·섬유·플라스틱), 기계장치제조업(농기·광산기계·압연기·석유업장치·압착기·펌프)도 발달하고 있다.
북부 카자흐스탄은 1954년부터 광대한 처녀지가 개간되어 밀·귀리·보리 등을 산출하는 곡창지대다. 카자흐스탄은 동유럽에 영토를 일부 두고 있다.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1991년 카자흐스탄의 독립 이후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이다.
카자흐인들이 15세기부터 이 땅에 민족을 이루어 살기 시작했는데, 주로 유목생활을 했다.
19세기에 제정 러시아는 대영제국과 중앙아시아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인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의 일환으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땅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고 군사기지를 구축하였다.
1735년에 첫 번째 러시아 기지인 오르스크가 건설되었고,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의 모든 학교와 정부기관에서 러시아어만 사용할 것을 종용하였다. 이러한 일방적인 언어정책은 카자흐인들의 반발을 샀고 19세기 말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카자흐인들이 제정 러시아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이는 언어정책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유목생활을 하던 카자흐인들의 삶의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기근, 수자원 분쟁 등 여러가지 요소에 의한 것이다. 이 카자흐 민족운동은 러시아의 흡수정책에 대항하여 카자흐인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는데 그 중점을 맞췄다.
1890년대 이후 제정 러시아로부터 많은 수의 정착민들이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특히 세미레치에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906년 트렌스-아랄 철도가 개통된 이후 정착민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이러한 이민현상은 제정 러시아의 수도인 상트페테스부르크의 이민국(Переселенческое Управление)이 감독하고 장려하였다.
19세기 동안 400,000명의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에 정착하였고 20세기 초 약 백만명의 슬라브인, 독일인, 유대인 등이 카자흐스탄에 정착하였다.
1916년 '중앙아시아 반란(the Central Asian Revolt)'이라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정착민들과의 땅과 수자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원주민인 카자흐인들이 들고 일어나 러시아 정착민들과 군사기지 등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양쪽 모두 상대방을 향한 학살행위가 있었으며, 1919년 말 공산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이어졌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 후 잠깐의 독립기간(Alash Autonomy)이 있었지만, 1920년 공산주의자들이 이 지역에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을 세웠다.
그 후, 1925년에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성립되었고, 1936년에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어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1930년대 초 소비에트 연방의 강제 집단 농장화와 전통 카자흐 지도층 탄압으로 인해 카자흐스탄에 대규모 기아가 발생하였다. 1926년과 1939년 사이 카자흐 인구는 가뭄과 기아로 인해 22% 감소하였다.
또한, 스탈린에 의해 많은 카자흐 작가, 시인, 사학자, 철학자, 정치가 등이 카자흐 정체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학살당했다. 1930년대 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수백만의 추방자들이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송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카자흐스탄은 다섯 개의 부대를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으로 보냈으며, 1947년에는 세미팔라틴스크(현재의 세메이)에 소련의 핵실험장이 개설되었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가 독립 이후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독립 직후에는 알마티가 수도였다가 1998년에 수도를 아스타나로 천도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대통령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지금도 장기 집권 등 독재로 정치를 실행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은2012년 12월에카자흐어는 사용하는 문자를 로마자로 바꾸는 작업이 2025년까지 완성되어야한다면서 카자흐어의 문자를 키릴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지만, 일부는 반발하고 있다.
[그림 2] 카자흐스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