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가들에 의하면 팔음지맥은 구봉산 맞은 편 경북 상주 백두대간상의 봉황산에서 분기되어 천택산,
팔음산을 거치고 천금산, 천관산을 들른 뒤 금강가에 있는 충북 옥천 철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라 한다.
하지만 맥길에 한번 발을 잘못 들여 놓으면 마루금이라는 말에 홀려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쓰레기가 가득 쌓인 공장 담벼락을 따라 가거나 개들이 개떼같이 덤벼드는 개사육장을 통과해야
하는 일까지는 수용할 수 있어도 나침반에 스틱2개, 군화 진배없는 등산화에 60리터 배낭으로 중무장하고
밭고랑 사이를 지날 때 김매는 아주머니가 우스꽝스런 모습을 놓치지 않고 ‘아니 여기 무슨 산이 있다고
그러구 다닌디야’ 라고 한마디라도 하신다면 제 아무리 강심장이라 해도 뜨끔해지게 마련이다. 줄기중에
좋은 산이 있다면 골라서 가보면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팔음산과 지난 번에 갔던 포성봉, 주행봉은
상주 서남부의 꽤나 이름있는 산이고, 천택산은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택리지에 길지로 소개된 곳이라
지금도 그 신앙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과연 그 산세와 품속이 어떨지 자못 궁금한 바라 하겠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336A49525AAE2422)
팔음산은 지형도로 보면 앞뒤로 길쭉하고 양옆으로 좁고 경사가 급한 게 마치 한척의 해적선처럼 생겼는데
, 아쉽게도 그곳으로 향하는 노상에서는 올망졸망한 산에 가려 그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지점을
찾지 못하였다. 아침에 출발하다 보니 도착시간이 늦었으므로 임도를 타고 들어가 되도록 산밑에 바짝 붙는다.
알고도 찾아오기 힘들 산골마을에서는 확성기로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아 때아닌 팝송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있어 기묘한 부조화에 웃음이 나온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보이는 집뒤로 바로 올려친다. 일행은 사계님,
젊디 젊은 신예, 나 3명이다. 주력부대는 대간길 – 큰재 신의터재 구간을 운행중. 신예의 체력이 걱정되어 –
기우임이 밝혀졌다 - 대간팀에 남겨놓을까 하다가 장가도 안간 처지에 아줌마들 손탈까 봐 데리고 간다.
예전에 월명광업소가 있던 곳이라 하는데 탄광이었는지 흙이 시커먼게 마치 기름진 곡창지대 같은 느낌이다.
이게 웬떡이냐 싶어 잔뜩 기대를 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갈지자 행보로 고도를 높힌다. 지능선에 올라
입산주를 마시며 입산의식을 치른 다음 다시 급해진 능선을 따라 정북방향으로 진행하면 갑자기 남동쪽으로
마치 미니 세석평전 같은 느낌이 드는 넓은 초원지대가 나타나는데 그곳이 팔음산 정상이다. 일행인 사계와
신예에게 잠시 대기 싸인을 내고 풀밭을 다 뒤져 보지만 아무 것도 없다. 이런 걸 빛좋은 개살구라고 한다던가.
개떡평전이라 이름붙여 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50F4347525AAEDD2B)
맥을 따라가면 천택산에 닿을 것이지만 천택산과 팔음산 사이의 구간이 미약하여 도로를 두세번 건너야 되고
논밭에 치우쳐 지날 경우가 있으므로 그럴 바에야 우리는 더 번듯한 도계를 따라 가다가 최후의 순간에
바닥에 내려 마을안길, 지방도를 거쳐 천택산을 가장 길게 오르는 코스를 잡았다. 정상에서 도계를 놓치지
않으려면 북서방향으로 이래도 되나 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꺽어 내려야 한다. 하강중 능선이 살아나는
느낌도 거의 없다 시피하여 과연 이게 맞는 길인가 하는 의심이 들 무렵 지도상 큰곡재라고 표시된 곳에 이른다.
정상부에 차가 몇대 주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뭐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하긴 억수로 많은 도토리와 산밤,
그리고 지천으로 널린 연보라색의 끈적끈적해 보이는 버섯군락이 오늘 산에 발을 들이는 시점부터 벗어날
순간까지 같이 했다. 기분나쁘게 생긴 자주색 버섯은 나중에 뒷풀이 시간에 가지버섯이라는 명칭을 가졌으며
느타리 비슷한 맛을 가진 식용버섯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능선 여기저기 피부에 솟은 물집처럼 물컹한 느낌,
괴상한 생김새에 엄청나게 많은 개체수로 빽빽하게 분포되어 있는데다가 여느 때 같으면 아름다웠을 보라색마저
칙칙하고 침침하여 공포영화을 위해 마련된 촬영셋트장처럼 사람을 으스스하게 만들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7DA14E525AB0981C)
그래도 날씨는 좋다. 시야도 좋고 모든 게 깨끗하다. 문제는 바람이다. 태풍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불어댄다.
단풍은 아직이고 녹음은 한풀 꺽여 산속은 진격의 가을이라기 보다는 퇴각의 여름인 상태인데, 간단없이 불어대는
서늘한 바람은 초겨울 어디 께를 연상하게 만든다. 이 역시 부조화이다. 우리와 같이 평범한 사람은 질서속에서는
안온함을 느끼지만, 무질서속에서는 편안치 않다. 더군다나 제멋대로 자란 잡목과 거친 풀이 진행을 방해하여
이거야 말로 “바람은 세고 하늘 높은데 원숭이 울음소리 애절하고 … 만리타향 슬픈 가을에 언제나 나그네 신세 …
고통스런 한에 백발이 되고 이제 늘그막에 거친 술마저 끊었다”(登高 – 두보)라는 상황에 놓인 것 같다.
3명이 함께 가는데도 이러니 혼자 간다면 얼마나 쓸쓸하고 무상한 기분이 들랴. 그런 점에서 킬문님과
케이님은 대단하다. 우리는 밤중에 자다다 변소가기도 겁나는 판에 킬문님은 새백 두세시에 단신으로 산에 붙어
무덤가건 뭐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케이님도 거기에 못지 않다. 아침에 동서울에서 만난 케이님은
배낭속에 막걸리 4통, 소주 1리터가 들었다 한다. 술을 마신다면 이 정도는 마셔야 술 좀 마신다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본다. 등산업계의 거포들을 알고 지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영광이다.
도계가 콱 꺽이는 곳에서 사계님이 새벽에 일어나 직접 부쳐온 계란후라이를 곁들여 점심을 먹고, 길을 재촉한다.
등로가 좋지 않아 잘못하다가는 대간팀에 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둘러 걷는데 갑자기 오른 발이 뒤로
붕들리면서 몸이 허공에 뜨는 순간, 가까스로 정면에 있는 나무줄기를 잡고 균형을 잡는다. 올무에 제대로 걸렸다.
날랜 날세 망정이지 가이버 같았으면 못이기는 척 넘어져, 손바닥이 아프다는 핑계로 한달간 자진 휴가를
챙겼을 것이다 – ㅋㅋ. 산이 고도는 낮아도 별로 사람이 다니지 않아 분위기가 거칠다. 더군다나 능선이 쉬지 않고
좌우로 꺽여 여간 신경을 쓰지 않고는 골로 가기 쉽다. 이래저래 여유없는 산행이다. 거시기라도 있어 준다면
새침해진 기분도 돌려 보겠는데, 개뿔이나 이렇게 안면몰수하는 뻔뻔한 산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지도상 농로가
천택산과 멀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내려선다. 마을안길을 걷는 동안 유명한 상주감은 별로 달리지 않은 대신
사과가 꽃처럼 매달린 과수원을 여럿 지난다. 마을 한켠에서는 홍두깨로 팥을 두들겨 내리고, 젊은 처자는
들깻단을 거두어 들인다. 어쨌든 가을은 가을이고 촌은 촌이다.
지방도로 들어서 천택산 등로에 접근하기 위해 걸어 가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거나해서 휘적 휘적 걸어 오신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오, 어디~가?’ ‘천택산 좀 가려구요’ ‘천택산?’ ‘네!’ ‘잘들 댕겨오슈’ ‘네, 근데 할아버지는
어디 가세요? ‘나? 보은에 볼 일 있어서 가’ 예의바른 신예가 ‘할아버지 건강하세요’라고 깍듯이 인사한다.
‘오, 그래 잘들가요~’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상주 화서면 중눌리 삼거리에서 천택산에 붙는다.
도로를 걷다가 오르려니 힘이 배로 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복지라 그런지 능선상에 무덤이 연이어 나타난다.
‘안녕하세요? 가이버는 저쪽에서 뛰고 있어요’ 역시 무덤마다 깍듯이 인사를 드린다. 여기도 분위기는 좋다.
미련을 버리기 힘들어 또 갈지자 행보를 해보지만 별무 소득이다. 사계님이 이러다 메아리 대장에게 뒤지게
혼나는 게 아니냐고 걱정을 하길래 합리적인 메대장이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안심을 시켜준다. 천택산은 높이가
683.2미터에 불과하지만 삼거리의 고도가 100여 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에 500미터 이상을 올려쳐야 한다. 쉬지
않아 본다. 요즘 이렇게 쏴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신예가 잘도 따라 붙는다. 거의 신발 뒷축을 발로 찬다. 다행이다.
아무리 젊어도 다리에 쥐나고 토가 나올 것 같으면 의지가 강철 같은 들 무슨 소용있으랴. 앞으로 시간나는 대로
나온단다. 혹시 나오게 되면 남자친구는 말고 여자친구로 데려 오라고 특별~히 당부해 두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69F33A525AB1250F)
![](https://t1.daumcdn.net/cfile/cafe/251DE033525AB18C1F)
![](https://t1.daumcdn.net/cfile/cafe/2703AB37525AB20A06)
천택산 정상은 아무 것도 없고 정말 헬기장이 맞는 지 궁금할 정도로 좁은 시멘트 공간에 잡풀이 무성하고
한쪽켠에 삼각점만 덩그라니 놓여 있다. 북쪽으로 속리산이 보일 텐데 정작 무슨 산이 무슨 산인지 잘 구별도
못하겠다. 동서남북을 둘러봐도 마찬가지이다. 나무들이 빾빽하게 둘러쌓여 산세를 가늠할 길이 없다.
저녁때가 다 돼도 여전히 불어대는 서늘한 바람 때문인지 포근하다는 느낌도 안든다. 왜 우복길지라는 건지
결국 해답을 못 찾았다. 하산길로 잡은 능선은 하산지점을 제외하곤 지맥길을 진행하는 것인데도 대단하다.
가끔씩 사람다닌 흔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인적이 흩어졌다고 보면 된다. 오늘 도토리,
산밤, 가지버섯 이외에는 흔한 풀벌레 하나 울지 않고, 날파리, 모기도 없고, 날아다니는 새한마리, 무서운
벌도 없으며, 뱀도 못 본 그런 산행이었다. 어수선하게 자란 나무들, 키넘게 자라 무질서하게 누운 잡풀,
어쩐지 시종일관 귀곡산장가는 길 같은 느낌이다. 한번 이상하게 보니 계속 이상한 것만 보인다.
남들은 길지라는 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나도 이상하다. 어쨌거나 청원 – 상주간 고속도로가 보이는
하산지점에 서 보니 애초 내려가기로 한 화서휴게소에서는 건너편으로 넘어갈 방법이 없어 보인다.
산행중에는 불확실한 최선보다는 확실한 차선이 최선인 법. 고속도로 밑을 관통하는 마을도로가 보이는 곳을
목표로 무조건 쓸어 내린다. 드잡이 전투를 한바탕 치르고 드디어 도로로 내려선다.
고속도로를 가로 질러 화남면 소재지에서 화서로 가는 지방도상의 버스정류장에 배낭을 벋어 놓고
택시를 부르려고 전화를 하는 순간 버스가 지나간다. 손을 흔드니 마침 기사아저씨가 보고 버스를 멈춰준다.
이게 왠떡이냐. 정신없이 뛰어 올라탄다. 버스안에는 단 한명의 손님. 아까 천택산에 오르기 전에 만났던 바로
그 할아버지다. 우리도 할아버지도 반가워 재회의 기쁨을 한껏 누린다. 우연한 인연을 진정한 인연으로 만드는 곳 –
그곳이 우복길지인가?
첫댓글![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총대장님의 구수한 산행기 모처럼입니다...재미있네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거사 대장님!! 아줌마들 손타도 좋으니 그런데 데려다 주세요.
오랜만에 뵙게 되는 대장님의 명문 산행기입니다.
아니...대장님!!
오지 아줌마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나요~~!
오랜만에 본 먹잇감을.... ㅠ.ㅠ
그 동네 할아버지와의 인연이 묘합니다~~~^^
오지팀의 미래를 두어깨에 걸머질 미혼의 신진기예.
인물도 훤한게 복덩이가 들어 왔네요.
가파른 사면에서 올무에 제대로 걸렸으니
신가이버 같았으면 나둥그러져 족히 한달은 드러 누워있을 만한
위기상황에서 재빨리 나무를 잡아 모면하셨다?
"모쳐라,날랜 낼시 망졍 애혈질 번 하괘라"라는 옛말이 절로 나올만합니다 그려.
ㅎㅎ, 천택산, 팔음산 식물분포상태가 궁금하여 그쪽으로 둘러본다고 하면서 가셨는데, 도토리, 산밤, 보라색의 가지버섯 (?) 만 많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날이었군요,
거시기없다고 개떡평전이란 평지이름만 붙여주시고, 언제 시간되면 개떡평전 확인하러가야겠습니다........ㅋㅋ수고하셨습니다.
후후 ~ 연신 웃음을 멈출 수가 없네요!
이 날 쫓아가지 않은게 억울하단 느낌이 들 정도로 ^^
전 그 시각 오대산 소금강 계곡을 룰루랄라 오르내렸지요 - 요즈음 지긋지긋한 오지 고행(苦行)을 안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그러면서도 버스안에선 오지팀의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곤 했답니다.(귀가 무렵, 대간거사님께 안부전화 드릴까 하다 취중에 못받으실것 같아 참았는데 .... )
글 자주 올려 주세요!!
거사님 산행기 처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