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관한 시모음 60)
가을 하늘이 더 높아요 /이영지
하나님
나에게도 그리움 주세요오
땅 보다 하늘이 더 높아요 감나무도
어저께 심었는데
열리네요
하나님
감나무 주렁주렁 돌 감을 달아가며
뛰기도 걷기도 해 달리는 열매들이
하늘에 빨갛게 달려
열리네요
하나님
나무잎 그 안에서
쏘 오옥 내밀어 본
가슴꽃 빠알간 숨
하늘이 땅 보다도
더 높아
별미의 맛이
열리네요
하나님
가을! 떠나가는 날 /김국현
까마귀 떼 오는 날
나뭇가지 끝에는
빛바랜 낙엽이 훌쩍이며
온종일 떨고 있다
강물 따라 흘러간 사랑
그리워하며
눈시울 적시는
가냘픈 여인의 절규로
북풍 불어오면
스러져 가는 얼굴로
나그넷길 스러워
하염없는 눈물 쏟아진다.
손발이 얼어 붇고
귀가 떨어져 가는
차디찬 시련 겪어야 하는
고뇌를 그대는 아는가?
가을 2020 /오길원
창파에 배 띄워
푸른 하늘 깊숙이 노 저어 가노라면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이
예쁜 색동 옷 입고 반기련만
코로나19로
자꾸만 거리를 두고 다니라니
높아진 하늘 사이로
마음은 나 홀로 멀어져 간다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가
일상을 멈추게 하여 만나지 못하니
하늘도 고통스러워 웃음을 잃은
천고마비(天苦痲痺)라
마스크로 하늘을 가려
끝내 빛을 보지 못한 2020의 가을이
어둠의 공포에 맥 못 추고
잊혀진 세월의 바다에 빠졌다
가을 사랑 /서봉석
아마 그게
그 집 문간 외등이 흔들리면
기우뚱하고 생기는
그림자에 숨어
사랑한다고 고백 했을 때
너는 빨개진 귓불
콩닥거리며 숨어 버렸고
활활 불이 난 나는
마음조차 복사꽃빛이었는데
오늘
긴 장마 뒤
날 개인 저녁을 보노라니
누가 하늘보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지
서녘은 빨갛게 수줍음 돋고
거뭇거뭇 뜬 구름에
귀걸이처럼 매달린
석양이 애간장 타네
이제
숲도 가을 타는지
어느 산에서는
나뭇잎 붉게 물들이기에
바빠진
가을하고 바람이
뜨겁게 스리 살짝 하겠네.
가을아 덤벼라 /강효수
내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버린
술병이 술잔을 차버리고
내 기다림을 털어버린
담배는 담뱃갑을 탈출해 꽁초를 찾아도
내 그리움은 하도 지겨워
노을로 떨어져 뒹구네
나는 기도를 하지
별들이 말이야
다 뭉쳐서 저 달을 깨뜨려주기를
크크크크크
꼼짝 않는 밤하늘을 보며 낙타처럼 웃지
의미 없이 찡그리는 거야
크크크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나저나 정신 차리고
가을아
덤벼라
아직
몇 푼 남아 있으니
달밤에
아뵤
크크크크크
그리고 다시 가을이 왔다 /김정란
핏줄,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
핏줄, 이라고, 가을이
내 핏줄 곁에 와서 가만히 눕는다고
그러면 내 존재가 다
다
흩어진다고, 맑은....... 하늘이.....
저...... 너머로.....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부터
알아들었던 근원적인 떨림이
내 안에서, 가을에, 참을 수 없이, 회복한다고
핏줄, 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핏줄, 이라고, 가을이
내 핏줄 곁에 와서 가만히 눕는다고
가을의 뒷면 /최영호
가을은 어수룩한 사람의
부러진 뼈마디가 굳어가는
단련의 시간인가 보다
앞앞이 해맑은 태양 아래
갈바람은 움츠리며
뒤돌아서서 낙엽처럼
붉게 붉게 화장을 한다
절정을 향하는 걸음으로
딱 한 번만 오로지
죽도록 사랑이 고픈 계절인가 보다
하늘은 높아서 닿을 수 없고
땅은 넓어서 모두 품을 수 없지만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어둠이 내리면 봄을 닮은 그대와
달빛 아래 걷다가 가을의 뒷면이 된다.
가을빛 닮은 사랑 /정연화
향기 너무 짙은
색 진한 사랑말고
잔잔하고 은은한
가을빛 닮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눈이 너무 부셔
눈을 감아야 하는 사랑말고
나뭇잎이
갈 빛으로 채색되듯
마음을 물들이는
가을빛 닮은 사랑이면 좋겠습니다
이 가을에
사랑이……
그대가……
나란히 손잡고
내 품에 안겨왔으면 좋겠습니다
달콤한 가을 /예향 박소정
계절따라 삶도 흐르고
뜨거운 여름을 지나왔기에
가물어도 잘 견디고 지나왔기에
맛보는 식감이 달콤한 가을입니다
인생의 쓴맛을 맛보고
사랑의 쓴맛을 알기에
인생무상 상처를 치유하는 과일
그 맛은 달콤새콤한 맛입니다
비바람 몰아치는 인생
험난한 고비를 헤쳐왔기에
노을지는 땅에서 잘 익은 과실
그 맛은 달콤 쌉쌀한 맛입니다
가을이라네요 /이희숙2
가을이라네요
낙엽처럼 쓸쓸한 사람이
어디론가 떠나고픈 사람이
수신인 없는 편지를 쓰고픈 사람이
노래 가사 한 줄에도 가슴 무너지는 사람이
집으로 향하는 차량의 불빛이 부러운 사람이
불 켜진 창가에서 나오는 인기척이 그리운 사람이
좋은 사람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고픈 사람이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픈 사람이
색색의 단풍처럼 물들어가는
지금은 가을이라네요
가을에 문득 /권규하
가을에 문득
떠오르는 내음이
가슴속 깊이 저며들때,
바람마저 그리운 광활한 적막속에서
문득 그 장면 그 내음 흐를때
조심스레 들이키며
한 아름 구슬려 음미하다
아른한 눈꽃내음마저
날아갈까 두려워
고요히 내려앉은
하얀 융단위에 수 놓아둔
가을 내음을
창밖 너머로
별과 함께 헤아릴 뿐입니다
가을의 서정 /김경희
실개 바람 코스모스 흔들고
뻐국나리 난 영원한 당신의 것이지
푯말을 바라보다가 웃음지을 때가 있어
파란 하늘 뭉게구름 살살 틀어져서
한 장도 안 되는 나의 마음을
막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주는 거야
오솔길이 열려있는 은밀한 곳에
무한한 감동을 안고 피어나는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즐기고 있지
하늘 한번 땅 한 번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한낱 보잘것없는 생물은 미물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했어
운명을 믿는 건 아니지만
태어나기로 작정을 하면
여름이고 가을이고 뭐고 간에 난
꼭두새벽부터 시를 쓰는 거야
가을 앓이 /최혜정
또, 가을
무뎌질 때도 됐건만
말없이 떠나는 낙엽이 외롭다
아무 일없이
은행잎 쌓인 거리를 조심스레 걸어도 보고
단풍잎 떨어지는 가을비 속을 걸어도 보고
정녕 그리움은 끝은 보이질 않아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싶은 계절이지만
아픈 만큼 더 큰 외로움을 껴안은 채
기껏,
한 구절의 노래가사에 위로를 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의 눈빛으로 위로하며
가을을 견디고 있다
소복이 쌓인 낙엽위로
가을비가 내린다.
가을 그리움 3 /은파 오애숙
향그러움 곱게 스미는 밤
이 밤 잔 별 초롱초롱 이는
별빛 속에 일렁이는 심연
어린 날의 무채색 그 추억
포근히 내게 입 맞추고 있어
이 가을 속에 휘날리는 맘
그 어린 시절 철둑 길 거닐 때
곱게 피어 하늘하늘 휘날리며
웃음꽃 내미는 코스모스 곁에
하늬바람 살랑 사~알랑일며
꽃잎 사이사이 살갗 스치어
쪽빛 하늘 속에 노래 불렀지
그 노랫소리에 연서 쓰려고
첫사랑의 향그러움에 노니는
빨간고추잠자리의 그 향연
그 시절 방해꾼 되어 낚아채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어린 향수
밤하늘 별빛 속에 오롯이 핀다
가을, 그 아득한 고독 /(宵火)고은영
나에게 사랑은
가상의 바다 위에서나 떠도는 유령
저 어느 별에서
몽환의 은유로 외로움을 견디다
가을의 빈 여백 위에
바람의 허무로 쓰러지는 꿈
행복했던 청춘의 반어적 모순으로
시간은 수척하다
그 무엇도 새로 돌아오는 것들은 없다
이 가을의 파리한 입술을 비비며
끊임없이 기다리는 그리움의 부호들
도도하기엔 너무나 나약해진
늙어감에 굴종하는 의식
나는 입맛을 잃고 저녁도 잊은 채
늦은 시간까지 커피만 줄창 마셔대고
늦은 밤
피아노 음향만이
작년 겨울 추위에 얼어 죽은
오동나무 빈 가지를 흔들며
산화돼 가는 영혼의 페이지 위로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