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차 키움, 아니, 당시 넥센 히어로즈로 불리던 그 팀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팀이였다.
26차 리그 2위를 시작으로, 33차까지 8시즌 연속 가을야구를 가는 팀으로써, 그 사이에 우승도 한 번 이룬, 그런 팀이였다.
34차 RKBO 무대가 시작되기 전 진행되는 신인 드래프트.
KIA의 첫 우승을 이끈 영구결번의 주인공 윤보미의 주니어 이루다, 마찬가지로 강력한 상위권 후보였던 김태연의 주니어 김태연Jr이 주목을 끌었던 드래프트.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이 해의 주역은 그들이 아니였다.
10시즌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바탕으로 LG에서 시작해 지금은 롯데의 에이스로 자리잡은 "대투수" 이지안.
현역 KIA의 프랜차이즈이자 KIA의 두 번째 우승, 그리고 이번 시즌에도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최예원.
2년 연속 두산의 우승을 이끌었던 공수겸장 3할 안방마님 수민.
그리고 오늘 소개할 키움의 이닝히터, 권은채가 그 주역 중 하나였다.
34차 드래프트의 내로라하는 선수들 중에서도 우수한 제구력으로 주목받았던 신인.
그런 그를 차기 선발감으로 점찍은 키움은 2라운드에서 그의 지명을 기다렸다.
한편 키움 앞에서 지명해야할 팀은 KIA, 아이러니하게도 KIA 역시 그동안 달려왔던 윈나우를 끝내고 리빌딩에 들어가는 순간이였다.
리스트업 한 선수는 제구력이 좋은 좌완 권은채, 그리고 위력적인 강속구를 보여준 우완 송하나.
두 명 중 선택해야만 했던 KIA는 송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키움은 주저하지 않고 권은채를 지명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수뇌부들에게 우수한 평가를 받은 신인 투수.
특히 강점인 제구력은 1군 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평가 아래 곧바로 34차 시즌에 투입되었다.
첫 해 그의 보직은 불펜.
프로 데뷔 첫 해인 만큼 어려울 법도 했으나 그는 장기인 변화구와 제구로 타자들을 요리하기 시작했고. 4점대라는 준수한 성적을 내며 시즌을 종료했다.
이 때 그의 기록은 46게임 97.3이닝, 신인임에도 평균 2이닝 이상을 소화한 그에게 넥센 수뇌부는 2년차 신인인 그에게 바로 선발 보직을 맡겼다.
첫 해 97이닝을 소화한 투수, 미래가 촉망받는 유망주.
그러나 누가 감히 예상이나 했을까?
이 선수가 훗날 통산, 단일. 두 곳 모두 이름을 올리며 레전드들과 이름을 함께 나열되는 투수로 클 것이라고.
33시즌까지 8시즌 연속 가을야구행 기차를 탔던 히어로즈.
그러나 34시즌 그들의 순위는 가을야구에서 완전히 벗어난 8위로 마감지었다.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또 누군가는 단기간의 부진임을 외쳤다.
새로운 선수들과 함께 새 역사를 쓸 것인가, 혹은 과거의 영광으로 남기며 리빌딩을 향할 것인가.
2년차 젊은 투수였던 권은채 역시 구단에서 기대는 남다른 기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스프링캠프에서 그의 투구는 예년과 다르게 더욱 날카로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발진에 합류한 1주차 키움은 11승 13패, NC, 롯데와 더불어 5위라는 성과를 거두며 쾌재를 불렀다.
비록 권은채는 2패만을 떠앉으며 부진했지만, 5게임동안 21.3이닝을 소화하며 최소 4이닝 이상을 던져주는, 먹을 줄 아는 선수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연이틀 언론에서는 이제 키움으로 바뀐 히어로즈의, 영웅 군단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8년 연속 가을무대를 밟았던 팀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시즌 결과는 6위, 초반에 5위를 잠깐 선점한 이후에는 계속해서 추락, 막판에 분전했지만 한 번 밟아보았던 가을야구의 마지막 티켓 자리에는 손도 대지 못했던 결과였다.
권은채는 6승을 거뒀지만 그보다 두 배 이상인 13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듬해 36시즌, 팀이 9위까지 추락하는 와중에도 140+이닝을 소화한 권은채는 이번에도 두 자릿수 패배를 받았다.
37시즌, 2년 연속 팀이 추락하는 것을 막지 못하며 다시 한 번 두 자릿수 패배를 받았다.
3년 연속 두 자릿수 패배, 비운의 투수.
아직 4년차 앳된 선수였을 그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성적이건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38시즌. 예년과는 다르다는 평을 듣던 키움은 임영웅-권은채의 활약과 함께 5위로 등극, 자칫 비밀번호를 만들 뻔 했던 4년간의 악몽을 끊어내며 가을야구 막차에 탑승했다.
개인으로써는 첫 번째 가을, 권은채는 그동안의 아쉬움에 보상이라도 받듯 영광스러운 그 첫 번째 포스트시즌에서 선발로 나서게 된다.
그러나 5.2이닝, 간신히 5이닝을 소화한 권은채는 11안타 7실점. 완전히 두들겨 맞으면서 첫 번째 가을무대를 한 경기만에 끝내고 만다.
" 반드시 2차전까지 가서 더 위를 노려보고 싶다. "
호기롭게 선언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럼에도 큰 무대를 경험하는 것은 다른 것과는 다르다라고 했던가.
그동안 잘 해도 4~5점대를 넘나들던 투수는 이 해를 기점으로 달라지게 된다.
이듬해 권은채는 생애 첫 3점대를 달성, 13승 10패를 기록하며 선발로 올라간 이후 처음으로 승리가 패보다 많은 시즌을 경험하며 팀의 순위를 끌어올렸다.
비록 이 시즌은 6위로 끝나며 아쉽게 가을 무대 앞에서 멈추었지만, 개인으로써는 첫 번째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는 순간이였다.
그리고 이듬해였던 40시즌, 13승 6패를 기록하며 팀의 당당한 선발진으로 거듭난 권은채와 함께 팀은 3위를 달성. 준플레이오프에서 SK를 꺾으며 PO까지 가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PO에서 만나게 된 팀은 롯데.
두 시즌 전에서 WC에서 만났던 두 팀은 이 시즌 PO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권은채는 이 무대에서 비록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완투패를 기록, 자신이 매 해 발전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41시즌 과 42시즌, 권은채는 2년 연속 2점대를 기록, 각각 18승을 거두며 팀의 3년 연속 가을 무대를 이끌었다.
특히 41시즌에 기록했던 8완투 6완봉은 그가 어떠한 투수인지를 증명하는
특히 큰 경기에서 기복 없이, 41시즌에는 RS에서 2점대를, 42시즌에는 3점대 1승을 거두며 자신이 큰 무대에서도 활약할 수 있음을 다시 증명하는 경기였다.
하지만 아직 그가 갈망하는 것이 있었다. 우승.
세 번의 가을무대에서 도전자의 입장이였던 권은채는 매 해 아쉽게 탈락하면서 더더욱 큰 무대에서의 영광의 자리를 갈망했다.
그런 그는 43 오프시즌에서 FA를 선언, 윈 나우를 천명한 LG를 택한다.
9년간 몸을 담았던 키움엔 아쉬움이 담겼던 작별 인사를 남긴 권은채는 LG에서 18승을 기록. 3년 연속 200이닝을 넘기면서 이닝이터의 역할까지 완벽히 책임지는 투수였다.
그리고 43시즌 포스트시즌, 자신에게는 다섯 번째 우승을 향한 도전의 무대.
2승 1패로 앞선 LG의 4차전 선발로 나선 그는 6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제 값을 다 하며 팀의 3승째를 이끌었다.
그리고 맞이한 5차전.
상대 선발 은하를 무너트리며 얻은 리드를 지킨 정윤석과 그 뒤를 따라 나온 유신준.
9회 초 마지막 타자 안유진의 타구가 포수 남성구Jr의 머리 위에 뜨며 유신준은 두 손을 치켜들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선언되면서 그라운드 안에는 줄무늬 유니폼의 선수들이 뛰어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는 다섯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첫 번째 우승을 경험하게 된 권은채도 있었다.
44시즌 권은채는 한화에서 16승을 기록, 7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며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알리고 있었다.
꾸준한, 그러면서도 강력한 선발 투수. 그런 권은채에게 3년 3.6억을 안겨주며 그를 데려온 팀은 NC였다.
45시즌 아쉽게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하지 못한 권은채였지만 3점대를 유지. 제 몫을 충분히 해냈으며 이듬해인 46시즌엔 2점대 16승을 따냈다.
47시즌 역시 17승을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은 여전하다는 것을 증명했고, 48시즌엔 3점대로 소폭 올라갔지만 팀의 우승을 이끌면서 개인 통산 두 번째 우승, 지금까지도 NC의 마지막 우승인 48시즌 V3를 차지하면서 큰 무대에서의 두 번째 반지까지 성공적으로 손에 넣었다.
그리고 맞이한 49시즌, 통산 200승을 넘어 201승에 도달한 그 해의 승리는 16승.
모두가 4시즌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기록한 그의 새로운 길을 기대하고 있을때, 그는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ERA는 3.60, 201승 134패. 그리고, 3000이닝.
각성한 이후로 매 해 A급이였지만 내노라하는 S급 선수에 비해서는 아쉽게도 제대로 된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는 단지 소년가장으로써 아쉬웠던, 그리고 가을야구의 경험과 함께 깨어난 A급 선발투수. 그 정도의 평가면 충분한가?
현대 야구에서 선발은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점수를 주지 않는, 주더라도 적게 주는 투수를 요구한다.
과거의 에이스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은 이닝, 그리고 자신의 경기를 책임지는 완투형 에이스였다면.
보직의 분업화가 시작되는 현대엔 7이닝. 그 이상도 좋지만 최소 6이닝 이상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피칭을 선호하면서 점차 완투형 에이스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수풀이 많은 현대의 기준.
RKBO는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투수 풀이 풍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불펜 투수들을 분업화해 투입한다는 것은 쉽지도 않을 뿐더러 가능성도 적다.
80년대 한국 프로야구가 그러했듯 불펜의 풀이 적은 리그에서의 선발투수는 보다 많은 이닝 소화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권은채는 37시즌 첫 번째 완봉을 기록한 이후로, 47시즌을 제외한다면 매 시즌 하나 이상은 무조건 완봉을 기록하는 가공할만한 이닝이터 기질을 보였다.
그가 기록한 단일 6완봉은 그가 은퇴할 무렵엔 단일 1위를.
그가 평생 기록했던 27개의 완봉은 50시즌이 넘게 된 RKBO의 무대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는 기록이였다.
그리고 그 투수 중에서도 유일하게, 그는 2000이닝이 넘는 투수들 중에서 가장 적은 홈런을 맞은 투수로써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갔다.
3000이닝 44완투 27완봉.
그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닝이터의 상징이다.
첫댓글 필력이 딸리네 고 홈 마렵다 아으
저는요
5명이나 대기순번 있는데 버틸 각오가 되어있는지
이나경도 부탁드립니다
뭣 비정기라 잊힐때쯤 나올것
이거보고 빨리 대기록 쌓기로 마음먹었다
?
MVP 수상이면 이미 대기록 아닐까요
@√KIA。Ash^36 1번수상으로 대기록이라 떵떵거리기엔 여러번 수상하신 괴물분들이 워낙 많아서 ㅠㅠ
필력 충분하십니다 잘 봤습니다
오래 기다리셨는데 그래도 만족하셔서 다행입니다
저요
예원쟝 해위
최고의 알크보 레전드 다큐!
잘 봤습니다..
헉 감사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