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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웅의 푸른나무 스크랩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의 나무 이야기
이팝나무 추천 0 조회 623 18.01.21 13:4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국립수목원에도 없는 노란해당화

아름 다운 꽃 담

최종임 여사가 만든 꽃쌈

대구에서 최초(?)로 조림한 구상나무

 

옛 사람들의 나무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전통마을이나 종가 등을 찾아다니는 일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쉽지는 않다. 꽃이 피는 나무의 경우 꽃이 절정일 때 보는 것이 가장 좋은데 개화기간이 짧아 때를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까운 곳이거나 먼 곳이거나 마찬가지다. 달성군 화원읍 인흥의 남평문씨본리세거지(대구시 민속문화재 제3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흥은 삼우당 문익점선생의 18대손 인산재 문경호(文敬鎬, 1812~1874)가 1870년경에 개척하여 오늘날까지 일족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문영박(1880~1930)이라는 독립운동운동가와 문태갑 같은 훌륭한 언론인, 문희갑 같은 걸출한 행정가를 배출하고, 도산서원의 4,400권보다 많은 6,948권의 서책을 보관하고 있는 인수문고를 통해 지역의 문풍 진작(振作)에 기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나무를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더 특별한 것이 있다. 마을 서쪽에 비보숲을 조성하여 풍수지리상의 결함을 보완하고, 자녀들을 훈육하고 선비들을 접견하는 광거당에 학자수로 일컬어지는 회화나무를 심은 점,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수백당을 소나무와 매화, 전나무, 배롱나무, 산수유 등을 심어 고아하게 꾸미는 등 나무 한그루, 꽃 한포기 심는데도 평범하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1,420 평의 연못, 인흥원(仁興園)을 조성하였는데 부지를 문중이 제공했다. 이 역시 보통의 반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다.

특히, 수백당(守白堂) 뒤 안에 5월 초순에 꽃이 피는 귀한 꽃나무 노란해당화가 있다. 이 나무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나무를 모아 놓은 국립수목원의 보유식물 목록에 없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나무는 전나무다. 이 나무는 이름이 둘이다. 하나는 전나무고 또 하나는 젓나무다. 후자의 이름은 1960년대 이창복 서울대 교수의 주장에 따라 부르게 된 이름이다. “전나무의 어린 열매에서 흰 젓이 나오므로 잣이 달린다고 잣나무라 하듯이 젓이 나오니 나무가 맞다”고 주장했다. 옛 문헌에서는 삼수(杉樹)라고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전나무로 표기하고 있다. 산림청의 국가표준식물명도 전나무이다.

백두산 등 높은 산이나 한대지방에서 자라는 상록침엽의 큰키나무로 음수(陰樹)이다. 초기에는 생장이 느리나 10~15년 정도 되면 잘 자란다. 주로 전주(電柱)로 이용되어 일명 전봇대나무라고도 한다. 가야산의 해인사, 청도 운문사, 강원도 오대산 입구의 전나무숲이 유명하다. 주로 사찰을 보수할 때 목재로 활용하기 위해 일부러 심는다. 우리니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가야산 해인사의 학사대의 전나무(천연기념물 제541호)다. 최치원선생이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랐다는 전설이 있다. 여름철 기온이 높은 대구지역에서는 부적합하다고 할 수 있지만 대구시의 시목(市木)이기도 하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전나무를 특별히 선호했다. 안동김씨 의성 사촌 입향조 김자첨이 조성했다는 가로숲(천연기념물 제405호)에도 보이고, 조선 전기의문신 조위(1454~1503)를 기리는 김천의 율수재 입구에도 큰 나무가 있으며 강원도 삼척향교에도 심어 놓았다.

이는 공자(BC551~BC 479)가 심은 회(檜)나무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곡부의 공묘(孔廟) 대성전 문 안에는 공자가 심은 회나무가 있다. 몇 번에 걸쳐 죽고 다시 살아난 것인데 지금의 나무는 1732년(옹정 10, 우리나라 영조 8) 뿌리에서 싹이 돋아 자란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향나무의 일종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전나무로 알았다.

유학을 최고의 학문으로 여기고 공자를 숭모하는 조선의 선비들은 누구나 회나무 한 그루쯤을 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이 너무 멀어 직접 가볼 수 없었기 때문에 글자 회(檜)자만 보고 전나무를 심은 것으로 보인다. 자전(字典)에서 회(檜)를 “전나무” 풀이해 놓았기 때문이다.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한강 정구를 기리는 회연서원(檜淵書院)의 이름에 대해서도 왜 회연(檜淵)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공자가 심은 회(檜)나무에 빗대어 유학의 연원을 계승한 선비를 기리는 서원이라는 의미로 사액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 보면 수백당의 전나무도 같은 맥락에서 심은 것으로 보인다. 즉 수백당을 유학을 공부하는 공간으로 설정하고자 한 것 같다.

이러한 남평문씨들의 나무와 꽃 문화는 집일을 거드는 부녀자들에게도 전해져 그들이 모시고 있는 마님들의 택호(宅號)를 꽃에 비유하여 불렀다.

청도 수야에서 시집온 수야댁에 대해서는 '허리곱살 할미꽃은 수야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수야댁 주라하소'

안동 온혜에서 시집온 온혜댁에 대해서는 '붉은 똑똑 복숭아꽃은 온혜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온혜댁 주라 하소'

밀양 소태에서 시집온 소태댁에 대해서는 '맵고 짠 고추꽃은 소태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소택댁 주라하소'

달성 용진에서 시집온 용진댁에 대해서는 ‘ 알금 살금 대추꽃은 용진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용진댁 주라하소’

의령 내지에서 시집온 내지댁에 대해서는 ‘뒷동산 패랭이꽃은 내지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내지댁 주라하소’

창녕 국골에서 시집 온 국골댁에 대해서는 ‘사랑 앞에 목단꽃은 국골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국골댁 주라하소 ’

청도 금촌에서 시집온 금촌댁에 대해서는 ‘도리 납작 접시꽃은 금촌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금촌댁 주라하소’

칠곡 돌밭에서 시집온 관동댁에 대해서는 ‘논두렁의 메밀꽃은 관동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관동댁 주라하소’

청도 모은에서 시집온 몬담댁에 대해서는 ‘천수봉의 찔레꽃은 몬담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몬담댁 주라하소’

영천 오길에서 시집온 오길댁에 대해서는 ‘허리 능청 담배꽃은 오길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오길댁 주라하소’

창녕 현창에서 시집온 현창댁에 대해서는 ‘바끔바끔 들깨꽃은 현창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현창댁 주라하소’

칠곡 웃갓에서 시집온 웃갓댁에 대해서는 ‘포리 쪽쪽 가지꽃은 웃갓댁 꽃일레라, 그 꽃 속에 이슬 받아 웃갓댁 주라하소 ’

묘한 것은 그들이 붙여준 별명 즉 비유한 꽃이 집 주인들의 용모와 자태는 물론 성품과 닮았다고 한다. 또한 ‘그 꽃에 이슬 받아 00댁 주라하소’ 라는 공통적인 후렴 역시 재미있다. 떡이나 차 등 다른 음식을 제쳐두고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결정체인 이슬을 주라고 한 것이다.

이는 모시고 있는 분에 대한 최상의 존경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문희갑 전 시장은 경력이 말하듯 누가보아도 경제전문가다. 그런데도 대구시장이 되어 나무심기에 스스로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고 말할 만큼 대구를 녹색도시로 탈바꿈 시켰다. 이런 배경 역시 일찍부터 나무와 꽃을 사랑해온 조선(祖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현재 세거지의 나무와 꽃 문화는 문희목님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낙향한 그는 부인 최종임여사와 더불어 정원을 아름답게 꾸민 것도 그렇지만 심어진 병아리꽃나무, 가침박달 등 희귀한 나무와 노랑무늬붓꽃, 큰꽃으아리, 새우란 등 다양한 식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번식이 어려운 노란해당화를 증식하기 위하여 수년에 걸쳐 삽목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보다 앞서 1995년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자생하는 구상나무의 가치를 산림공무원보다 먼저 알고 5년생 20 여 그루를 대구(인흥)에 심었으며 현재 수고 10미터 이상 자랐다고 한다.

어느 기관의 설문 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의 60~70%가 소나무를 좋아한다고 한다. 건축 자재로도 좋지만 애국가에도 등장하고 절개를 상징하는 만큼 가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어 이름은 일본 소나무(Japan red pine)이다. 즉 우리민족의 정서와는 달리 일본적송(赤松)이라고 불린다. 반면에 구상나무는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뜻에서 한국의 전나무(Korean Fir)라고 부른다.

끝이 날카로운 전나무와 달리 잎 가장자리가 부드럽기 때문에 들고 만지기 쉽고 아이들이 마주해도 눈에 찔릴 염려가 없어 일찍이 선교사들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하고 기념으로 심은 나무도 구상나무이다.

문희목님이 자택의 토담에 올려놓은 능소화와 찔레는 꽃이 필 때 전국 사진작가들의 촬영 명소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하찮은(?) 식물로도 최상의 경관을 창출하는 높은 심미안과 나무를 다루는 남다른 세련미가 놀랍다. 수백당의 전나무와 희귀한 노란해당화, 택호를 대신해서 부르는 꽃노래, 꽃잎을 소재로 한 쌈 등을 통해 명문가의 또 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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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1.22 16:08

    첫댓글 언젠가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사계절마다의 경관이 얼마나 멋있을지 정말 기대됩니다..
    두분의 멋진 심미안에 박수 보내드립니다~
    오랫만에 들어보는 외할머니의 택호도 너무나 정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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