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안성 답사 계획
□ 답사안내
①죽산성지(이진터 성지) 해설사 접견 → ②미리내 성지 ③죽주산성 → ④칠장사 → ⑤서일농원(점심) → ⑥안성맞춤 유기공방 → ⑦대한민국 술 박물관 → ⑧태평무 공연 → 저녁(국밥, 백반) → ⑧남사당 전수관
○ 죽산성지(이진터 성지)
○ 일반현황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서울에서 중부 고속 국도 남쪽을 향해 달리다가 일죽 인터체인지에서 돌아 들어가면 죽산 성당이 나온다. 성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들이 살육됐던 처형지와 교우들을 끌어다 심문과 고문을 하던 관아 터가 자리하고 있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에는 그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부터 일찍이 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고 인근의 교우들이 붙잡혀 오면 지금은 죽산면사무소가 되어 버린 이곳에서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 되곤 했다.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 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이만해도 25명에 이른다. 하지만 척화비를 세우고 오가 작통(五家作統)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 무차별적으로 교우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의 몸서리쳐지는 박해의 서슬을 생각해 볼 때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셀 수조차 없다.
병인박해가 시작된 1866년부터 이곳에 공소가 설립되기 2년 전인 1932년까지 무려 70여 년 동안 신자 공동체의 형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음은 그 당시 박해의 참상과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죽산의 순교 사화는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들뿐이다. 박해를 피해 산 속으로 숨어들었던 김 도미니코의 가족이 교우인 사실을 안 마을사람 십여 명이 작당을 하고 찾아와 열일곱 된 딸을 내놓지 않으면 포졸들을 불러 몰살시키겠다고 협박, 기어이 딸을 빼앗아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60세의 나이에 교수형으로 순교한 여기중은 한 가족 3대가 한자리에서 순교했다. 또 여정문은 그 아내와 어린 아들이 한날, 한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국법으로는 아무리 중죄인일지라도 부자를 한날 한시에 같은 장소에서 처형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죽산에서는 부자와 부부를 함께 처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이들이 죽산 관아에서 심문을 받고 끌려가 순교한 처형 장소가 잊은 터이다. 지금은 굴착기로 깎아 냈고 목장의 한 귀퉁이로 변해 버렸지만 목장이 되기 전에는 노송이 우거지고 길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후미진 골짜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이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 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친지도 한번 끌려가면 영영 볼 수 없는 곳, 그 참담한 비극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그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다. 지형이 조금 도드라져 이렇게 불렸다고도 하고 땅이 진흙이어서 신을 땅에 두드려 패지 않으면 신바닥에 붙은 진흙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두들기는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한 많은 땅으로 변한다.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가는 호송길에 이 주막거리는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 포졸들은 줄줄이 묶어 둔 교우들을 툭하면 갖은 트집을 잡아 두들겨 패곤 했다. 또 뒤쫓아온 가족들은 잡혀 온 교우들이 맞는 것을 보고 땅을 두드리며 원통해 했다. 이래저래 두들기는 두들겨 맞는 곳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기록에만 25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곳으로 전해지는 순교의 터는 오늘도 그 옛날 굳건한 신앙을 지켜 갔던 신앙 선조들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거룩한 순교지에 변변한 기념비 하나 제대로 세울 수 없어 안타까워했던 죽산 성당 신자들은 그동안 포도를 팔아 모은 돈으로 원래의 장소와는 약간 떨어져 있으나 순교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에 땅을 확보하고 개발하여 개방하고 있다.
○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죽림리 703-6 죽산성지 031-676-6701
□ 미리내 성지
○ 일반현황
미리내성지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마련되어 있는 성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모시고 있는 천주교의 유서 깊은 성지이다. "미리내(은하수의 순 우리말)" 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 곳은 지금 보아도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때 경기도와 충청도의 천주교 신자들이 여기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주로 밭을 일구고 그릇을 구워 팔았다.
이 성지에 "미리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이 밝힌 호롱 불빛이 깊은 밤중에 보면 은하수처럼 보인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리내 성지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이 곳에 묻힌 뒤부터이다. 김대건 신부의 왼쪽에는 김 신부에게 신품을 주셨던 페레올 고 주교님이 1853년 4월 12일 모셔졌다. 김신부의 어머니 고 우술라와 김대건 신부와 고 주교의 시신을 미리내로 모시는 일을 하였던 이민식 교우의 묘소도있다.
이 외에도 미리내에는 이름 없는 16위의 천주교 순교자들이 모셔져 있다. 1976년 용인시 내사면 대대 4리에 있던 음다라니 산기슭의 목없는 줄무덤에 묻혀 있던 12분, 용인군 수지면 신봉2리 지붕골 밭기슭 돌무덤에서 4위를 모셔왔다. 용인시 이동면 묵리 산29번지 한덕골에서 모셔 왔던 시신은 뒤에 이윤일 요한 성인임이 밝혀졌고, 다시 이분이 돌아가신 대구 대교구 관덕정으로 모셨다.
미리내 성지에서 성인이 묻혔던 자리만은 보존하고 있다.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였다. 김대건은 1821년 충남 당진군에서 신앙심이 깊은 집안에 태어났다. 그는 1863년,15세 때 조선인 사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프랑스 신부 모방의 눈에 띄어 신학생으로 중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1844년 12월에 부제품을 받았고 이듬해 8월 상해 부근 김가항(金家港) 신학교 성당에서 한국 최초의 신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845년에는 페레올 주교와 함께 비밀리에 입국하여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며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신분이 탄로나서 체포되고, 신부가 된 지 겨우 1년이 되던 해인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당하게 된다.김대건 신부는 "사학죄수"라는 죄목으로 칼을 맞고 죽었다. 김신부가 천주교를 전파하는 것을 돕던 이민식(당시 17세) 소년이 관리들 몰래 죽은 성(聖)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신을 미리내까지 옮겨왔다.
200여 리나 멀리 있는 이 곳에 와서 1846년 10월 30일 자기의 선산인 지금 김대건 신부의 묘 자리에 시신을 모셨다. 1901년 5월 18일, 성(聖)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용산에 있는 예수성심 신학교 성당으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혜화동 가톨릭 대학교 성당에 모셔져 있다. 1928년 9월 18일에는 김대건 신부 묘소 뒤편에 작은 경당을 세우고 이후 성 김대건 신부의 석상과 한국 천주교 103시성 기념 성당을 세우는 등 성지의 모습을 갖추어 왔다.
○ 미사안내
- 미사시간 : (연중평일) 오전 11시 30분 / (연중주일) 공휴일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 고해성사 : 미사전/후
- 성시간 미사 : 매주 목요일 밤 11시 30분
- 철야 : 새벽 1시 30분 ~ 3시 30분 , 장소 : 103위 지하 성방
- 토요선심미사 : 매월 첫 주 토요일 오전 11시
○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141
성지관리실(성지안내/숙식문의) : 031)674-1256 / 묵상의 집(피정문의) : 031-674-1254, 1261 / 순례자의 집(식사문의) : 031-674-1201 / 천주성삼성직수도회(순례버스) : 031-674-1251~2
□ 죽주산성
○ 일반현황
태평미륵이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매산리 비봉산에 죽주산성이 있다. 죽주산성은 신라 때 내성을 쌓고, 고려 때 외성을 쌓았다.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본성은 1.7㎞이고, 외성 1.5㎞, 내성 270m로 세겹의 석성이 지금도 남아 있고 보전상태가 좋다.
죽주산성은 특히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다. 왜군에게 내주고 말았던 죽주산성을 황진 장군이 기습작전으로 탈환에 성공하자 왜군은 더 이상 용인과 이천을 넘보지 못했다. 포루가 만들어진 산정에 올라서면 안성벌, 이천ㆍ장호원이 한눈에 잡힌다.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남과 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군사전략적인 요새였던 이곳을 아군의 기지로 삼으려는 시도는 나라마다, 전시마다 치열하였다.
경기도 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어 있는 산성의 내성 곁에는 몽고군을 물리친 송문주 장군의 전공영각과 재실이 있다. 재실을 지나쳐 내려오면 쉼터가 있다.
죽주산성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보다는 산성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보는 맛이 일품이다.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와 침엽수들이 길동무를 해주어 상쾌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면사무소 031-678-3912
□ 칠장사
○ 일반현황
죽산면 칠장리 칠장사는 칠현산 산기슭에 바짝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철따라 바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울창한 숲에 고풍스러운 칠장사가 안겨 한적한 풍광을 연출한다. 칠장사는 손때가 묻지 않아 찬찬히 살펴봐야 할 보물들이 많다. 칠장사 일주문 전방 700m 지점에 전국에 몇 개 없는 철당간이 서있고, 진흙소조로 만든 사천왕상이 찾는 이들을 압도한다.
칠장사는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곳에서 수도하고 입적한 고려 때 고승 혜소국사가 현재 비각이 있는 자리에 홍제관이라는 수행처를 세웠고, 현종 5년(1014) 크게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칠장사는 예로부터 깊은 차령산맥이 그 줄기를 품고 있어 고려 말 왜적의 침입이 잦을 때 사서를 칠장사로 옮겨 8년간 비장해 소실을 면한 일이 있다.
칠장사의 묘미는 빛바랜 단청이 고색창연한 대웅전을 찬찬히 굽어보는 것이다. 새것을 덧씌우는 것만이 아름다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칠장사 대웅전이 말해준다. 오랜 풍상을 겪은 대웅전은 단청 문양을 세월에 날려보냈지만 힘있게 뻗은 추녀에서 힘찬 자태를 느낄 수 있다.
대웅전의 기풍을 눈여겨 보고 있으면 칠장사의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자연스레 칠장사에 얽힌 이야기에 귀를 열게 된다. 대웅전 오른쪽 옆에 조각솜씨가 빼어난 석불입상 한 기가 모셔져 있다. 본래 죽산리 봉업사터에 있었던 이 불상은, 절이 폐사되자 죽산중고등학교 교정에까지 흘러갔다. 자연 방치되다가 이곳 칠장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불상은 두광 아래로 발께까지 신광이 표현되어 있고,큼직한 꽃무늬 대좌 위에 모셔져 있다. 불상에 비해 대좌는 풍상의 흔적이 적은 깨끗한 화강암이다. 불상은 특히 얼굴의 눈ㆍ코 부분이 마모가 심하지만 불상을 빚은 조각 솜씨는 매우 섬세하고 화려하다. 오른손을 들어 살포시 가슴에 얹고, 왼손은 차분히 내려 무릎 아래로 늘어진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그 자태가 일품이다. 어깨에 걸쳐 가슴을 타고 내린 얇은 법의의 선, 3기의 화볼을 인 두광, 그 뒤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광대의 조각 솜씨가 그 시대의 정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화려한 조각솜씨를 미루어 보면 8세기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우수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
○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칠장사 031-673-0776
□ 서일농원
○ 일반현황
청정한 환경과 비옥한 토지에서 4계절 좋은 여건을 갖춘 곳에서 3만여평의 농원으로 꽃과 나무로 가꾸어 공원처럼 만들어서 배 과수원, 매실원과 원두막, 2000역개의 항아리로 3개의 장독대를 만들어서 전통장류와 우리 음식을 만드는 환경친화적 농산물의 가공업체로서 우리 토속음식의 시식을 통한 확대, 보급을 위하여 마련한 전통음식 시식점이다.
된장을 비롯한 간장, 고추장(2종류), 쌈장, 청국장(환, 분말, 이유식)과 갯잎장아찌를 비롯한 20여가지, 식초, 김치 등을 손수 만들어서 식단에 올리므로 추억에서나 느낄 수 있는 옛날 맛을 느낄 수 있으며 일체의 조미료나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장류로 조리를 하고 있다.
된장과 청국장은 전통식품품질인증(농림부장관)과 G마크, 경기으뜸이, 신지식인 등의 인증과 미국 FDA검사 기준에 합격될 정도로 맛과 안전성, 청결과 위생, 보건과 환경을 생각하는 “경기도지사 지정 슬로푸드 체험실습장”이다.
모든 식기들은 질그릇을 사용함으로써 경기도로부터 ‘토야식당’으로 한국관광공사로부터 “깨끗하고 맛있는 집”으로 안성시로부터 ‘모범식당’으로 인증을 받기도 하였다.
4계절 꽃이 피고 지는 조경과 농촌분위기로 조성하여 편안하고 아늑한 쉼터에서 부담없이 쉬어가고 여가를 즐길 수 있게 만든 공간이 충분하여 도농교류의 관광객은 물론, 식사를 하여 연간 15만여명이 찾아오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식당의 내부에는 설화(雪化), 송화(松化), 이화(梨化), 연화(蓮化), 만월당(滿月堂)이란 4개의 좌식 방으로 앉으면 고향집에 온 듯이 아늑하고 편안감을 주도록 그림걸기, 배열, 인테리어까지 배려하였고 화장실은 신발을 신지 않고 들어가도 된 정도로 청결과 위생을 고려한 모범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식대는 들어오면서 선불을 원칙으로 하고 ‘술’을 팔지 아니하며 물은 셀프를 하고 ‘백련잎차’를 제공하고 후식으로는 숭늉을 제공하고 있다.
단체는 예약이 필수이며 바이어나 거래처의 접대 등으로 외국인도 자주 찾으며 견학과 시찰을 위해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오고 체험과 실습을 하기 위해서 산학협동공동연구를 통해 식품에 대한 특허, 의장등록, 서비스 표 등의 획득하였고 우리식품의 현대화를 위한 연구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음식, 식품 전시회, 경진대회 등에 참여하여 전통식품의 위상을 확립하였고 그 우수성과 안전성을 입증하기도 하였고 전통발효식품의 계승 발전과 신 제품연구에 더욱 노력할 계획이다
가. 된장찌개 - 전통재래방식으로 손수 만든 된장을 일체의 조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무, 감자, 두부, 부추만을 넣고 뚝배기에 끓여서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나는 된장찌개이다.
나. 청국장찌개 - 냄새나지 않는 청국장(특허제품)찌개는 웰빙시대의 최고의 건강식으로서 남녀노소 즐기는 것으로 냄새를 줄여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다. 반찬류 - 된장찌개 및 청국장찌개의 기본 메뉴 이외에 계절별 3색채소와 깻잎, 더덕, 파래, 미역, 달래, 마늘, 무말랭이, 연근, 무, 감등 장아찌류 10가지를 곁들여져 비지, 장떡, 시래기, 김치 씻어 덖은 것, 콩나물, 계절나물 등과 함께 2년 묵은 김치가 나오는 먹음직한 시골밥상이다.
라. 추가메뉴 - 묵은지, 숙주, 녹두를 원재료로 만든 것이며 손두부는 계약 재배한 콩으로 가마솥에 직접 만드는데 응고제를 간수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동해안 심층 해저수’로 만들어서 연하고 위생적인 발효음식이다.
○ 서일농원 연혁
- 1983.11.27 서일농원 설립
- 1998.09.25 농업인 기술개발과제 선정, 수행(한식간장제조)
- 1998.12.28 충북대학교 산학협력 공동연구에 관한 협력체결
- 1999.03.10 경기도 유망 중소기업 선정(99-160호)
- 1999.04.12 수출지원 대상업체 지정(99-206호)
- 1999.05.01 경기도신지식인 선정(전통장 제조)
- 1999.05.11 중앙대학교 산학협력 공동연구에 과한 협약체결
- 2000.06.07 벤처기업평가(우수기술평가)
- 2000.06.15 전통식품품질인증 (농림 제151호, 제152호)
- 2000.06.15 제1회 경기도 우수관광기념품 공모전 입선 (351호)
- 2000.06.21 경기 사이버농장 (kgfarm.co.kr)선정
- 2000.07.31 농업벤처기업기술개발 과제수행(신기능성 장류)
- 2000.09.18 우수농업 벤처기업 확인 (제2000 / 60171-2275호)
- 2000.10.19 경기도지사 통합브랜드 사용권 획득(지역명품인증)
- 2000.10.31 2000 경기 으뜸이 선정(전통장 제조)
- 2000.07.13 FDA(미국식품의약청 장류 검사에 합격)
○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389-3 031-673-3171 ~ 2
안성맞춤 유기공방
안성유기는 "안성맞춤"의 대명사로 통한다. 놋쇠 또는 통쇠라고 하며 장인정신과 뛰어난 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이렇게 불렀다고 전해진다.
안성유기는 한동안 그대로 잘 유지되어 오던 것이 일제침략으로 인하여 1941년부터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전국에 있는 유기를 거두어들임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어 일시에 안성유기가 없어지는 큰 수난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뜻있는 유기공들은 산으로 숨어들어 계속 유기를 만들었다. 전쟁중에는 안성 유기가 별로 성행을 보지 못하여 5~6곳이 있을 정도였으며 대부분 일제의 눈을 피하여 산속 등지에서 숨어 제작하였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안성 유기는 갑자기 성행하여 안성시내 곳곳에서 유기업이 번성하였다. 이때는 식기류인 반상기를 중심으로 하여 수저,젓가락, 담뱃대 등을 비롯하여 해방의 감격으로 급격히 성행한 농악기구까지 만들게 되었다. 본래 농악기구는 방자(놋쇠를 달군 후 두들겨 만드는 방법)식으로 제품을 만드는데 안성 유기의 특징은 주물제작법이었으므로 이때부터 안성유기에도 방자 제작법이 성행하여 안성유기의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안성유기도 거대한 생활 변화로 밀려오는 시련은 어쩔수 없었다. 그것은 광복 후 반짝하고 빛나던 성황이 사라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 생활에 있어서 연료의 변화가 온 것이다. 본래 우리나라의 일반적 연료는 장작을 위주로 한 나무였다. 그러나 6.25가 지나고 대도시의 연료가 연탄으로 바뀌게 되었다. 주로 부엌에서 사용되는 놋식기는 연탄가스와 상극적인 관계가 있어 시뻘겋게 녹이 슬거나 누렇게 변해버려 곧 식기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유기 대신에 알루미늄 그릇이나 스텐레스 그릇으로 바꾸어 사용하게 되고 아울러 유기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6.25를 전후로해서 안성의 유기는 절정을 이루는 듯하여 그 공장의 수만도 37개나 되었으나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계보를 잇고 있다.
안성유기는 사용 용도에 따라 제기 용품, 생활 용품, 반상기 용품, 혼수 용품, 절에서 사용하는 용품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제기용품에는 제사 지낼 때 제물을 담는 그릇으로 대접, 제줏잔과 제잔대, 접시, 적틀, 퇴줏그릇, 촛대, 향로 등이 있다. 또한 생활 용품으로는 수저를 비롯하여 주발, 보시기, 종지, 주걱, 담뱃대, 놋대야, 화로 등이 있다. 오늘날 유기로 만든 학, 사슴, 황소, 재떨이 , 마패, 범종 등이 안성 유기로 만들어져 장식품이나 관광용품으로 팔리고 있다.
제짝이 아니었던 것을 갖다 맞출 때 매우 잘 맞음을 비유하면서 안성맞춤이란 말을 쓴다. 그 만큼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릴 때 이런 말을 쓰는데 안성은 유기제품을 장인정신과 뛰어난 솜씨로 정성껏 만들어 품질이나 모양등 기교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켰기에 "안성맞춤"의 대명사가 되었다.
특히 안성 유기가 다른 지방의 것보다 유명한 것은 서울 양반가들의 그릇을 도맡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안성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유기를 만들어 판매하였는데 하나는 서민들이 사용하는 그릇으로 이것을 "장내기"라고 하였고, 다른 하나는 관청이나 양반가의 주문을 받아 특별히 품질과 모양을 좋게 만들어는데 이를 모춤(마춤)이라 하여 "안성맞춤"이란 말이 생겨났다.
□ 대한민국 술 박물관
술과 관련된 우리 내 생활 추억이 피어나는 곳 술과 관련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안성 술 박물관이다. 술 박물관 입구부터 마당, 1~2층 실내전시관에 걸쳐있는 자료들은 희귀본에서부터 우리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까지 방대한 양을 자랑하고 있다.
제 1전시실에는 각종 민속에 관련된 유물이 전신되어 있는 "민속품 전시관" 전통 술 빚기에 쓰이는 각종 양조도구, 도자기 등의 " 우리 술 전시관" 술 관련 고서적 논문 등의 관련문서 서적을 보관 연람할 수 있는 "문서 자료관"으로 구성되어 과거 우리의 생활상과 우리 술에 대한 역사와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제 2전시실에는 소주, 맥주, 와인, 양주, 전통 민속주 등의 다양한 술과 광고 홍보물 등이 전시되어 근대사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다.
야외 전시관에는 전통 주를 빚을 수 있는 부뚜막 시설과 술 방(발효, 숙성실)이 있어 우리 술 빚기 시연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함께 곳곳에 야외 전시공간(예정)이 마련되어 있다.
술과 함께한 시대적 흐름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어른들에게 옛 향수의 아련함과 전시관 옆 식당에서 옛날곰탕과 같은 옛 먹거리의 향연을 경험 할 수 있는 곳이다.
어른들에게는 과거로의 여행을 아이들에게는 색다른 체험과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 개관시간
오전 11 : 00시 ~ 오후 17 : 00시
○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개산리 204-10 031-671-3903
□ 태평무 공연
화려한 당의와 다양한 무속장단, 그 장단에 맞춘 발짓춤이 일품으로 우리나라 춤 중에서 가장 기교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궁중무용으로 통칭되는 태평무의 특징은 춤의 주제가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의 표현에 있지않고, 조종의 공덕을 칭송하거나 군왕의 장수등을 기원하는 데 있다. 담담하고 유유한 장단과 우아한 춤가락을 가졌으며, 이러한 특징을 가진 춤으로, 현재 국립국악원에 <검무>,<처용무>,<무고>,<포구락>,<수연장>,<춘앵전>,<가인전목단>,<학무> 등 50여 종이 전해진다.
궁중무용이라는 개념은 왕권정치의 체제가 성립한 삼국시대 이후 나라의 각종 행사나 의식, 궁중의 연례 등에 춤이 쓰이면서부터 틀이 잡혀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의식의 한 절차로 만들어지고 연회되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본연의 목적인 의식과 행사는 소홀해지고 그에 따른 춤이나 음악만이 남아 독립적으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히 태평무는 안성의 한성준 선생에 의해 크게 중흥을 일으켜 한국 근대무용의 뿌리를 지키고 있다. 더불어 한성준 선생은 한국 최고의 춤꾼으로 불리는 최승희를 비롯해 현재 태평무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인 강선영 선생 등 우리나라 무용계의 큰 인물들을 배출시켰다.
○ 태평무 전수관
태평무의 원형보존과 후학양성의 목적으로 전립된 전수관은 안성시 사곡동에 있다. 국내 최고수준의정기공연과 태평무 전수, 대통령배 전국전통무경연대회, 전통무용주부강좌 및 어린이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안성시 사곡동 태평전수관(031-676-0141~2)
○ 전통무용 상설무대
태평무 전수관에서는 태평무를 비롯하여 북춤, 바라춤, 즉흥무, 무당춤, 농악, 검무, 장고무, 부채춤, 강강수월래 등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느낄 수 있도록 상설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태평무 전수관에서 매월 넷째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상설 공연 행사를 펼치고 있다.
또한 태평무 전수관에서는 전통무용의 화려한 춤사위와 무용을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남사당 전수관
○ 일반현황
안성에 "바우덕이"라는 여자꼭두쇠가 있었다. 사내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미모와 옹골찬 소리가락, 산들산들 바람에 휘날리는 줄타기 재주가 당내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고 한다. 그녀의 자태가 너무 고와 시름시름 가슴 앓은 남정네가 양반, 상민 할 것 없이 허다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당대 최고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최고 스타였던것. 남사당 최고인꼭두쇠 바우덕이(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암덕(岩德)이기 때문에 岩을 바위로 풀어 바우덕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는 남사당패의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 안성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염불, 소고춤, 풍물, 줄타기 등 온갖 남사당 기예를 익혔으며, 뛰어난 기량으로 세상에 나가 판놀음을 걸판지게 펼쳐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을 정도였다.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미색을 겸비한 총기로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추앙받았고 꼭두쇠로 활동하며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여 남사당패의 전성기를 이루어냈다. 남사당패는 맨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동짐꾼 등으로 구성되어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의 놀이를 행하였다.
안성 남사당의 맥은 조선조 말기의 바우덕이로부터 시작해 김복만 - 원육덕 - 이원보 - 김기복으로 이어졌고 해체와 결성을 거듭하면서 끈질긴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본래 남사당패의 풍물놀이란 옷다리가락을 주축으로 하여 진풀이, 무동, 벅구놀이, 채상놀이, 선서리 등의 몸재주와 묘기에 소리(산타령, 새타령, 모찌는 소리, 논매는 소리등)까지 곁들이니 훌륭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풍물이란 우리나라 특유의 민중 음악이며, 남사당패에 의하여 더돌이 판굿모임에 맞게 놀이성이 풍부하게 짜여진 것이다.
안성의 남사당 풍물놀이는 남도 농악에 비해 무동의 수가 많고 5무동을 비롯한 3무동, 4무동, 단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며 최고의 기량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7무동 무예이다. 안성 최고의 전통놀이인 남사당 풍물놀이를 계승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보개면 복평리에 남사당 풍물놀이 전수관이 조성되었다.
전수관 앞마당에는 황토를 다져 야외무대를 갖추고 있으며 아트센터마노와 한 곳에 있어 문화의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안성남사당 풍물놀이 보존회에서 남사당 전수관 개관을 기념하면서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30분에 남사당 전수관 공연장에서 무료 상설공연을 갖는다.
또한 안성 남사당 풍물놀이 전수교육도 실시한다.
○ 상설공연
◈ 시간 : 매주 토요일 3시, 6시30분(夏)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남사당공연장(031-678-2671)
오후 6시부터 공연(1시간 30분)
◈ 장소 : 남사당 전수관 야외공연장 (우천시 실내공연장)
◈ 출연 : 안성시립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
◈ 주요 프로그램
-고 사 굿
-살 판 (땅재주 놀이)
-어 름 (줄타기 놀이)
-덧 뵈 기 (탈놀음)
-덜 미 (꼭두각시 인형극)
-풍물놀이
-버나놀이
-무동놀이
-상모놀이
-관객과 함께 하는 뒷풀이 마당
○ 소재지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34
안성시청 남사당 운영담당 031-678-2513, 2514 / 031-675-3925
□ 금광호수
○ 일반현황
65년 9월에 준공된 금광호수는 V자 계곡형 호수로서 물낚시와 얼음낚시가 잘 돼 겨울철 빙어 낚시터로 많이 찾는 곳이다. 도로에 인접해 교통이 편리하고,좌대, 연안 낚시 모두 좋다. 봄철 산란기에는 최상류 수초밭에 떡붕어월척이 대량으로 낚이고, 여름철에는 최상류보다는 중ㆍ하류에서 호황을 보이며 포인트 이동이 쉽다.
금광호수 주변에는 소문난 맛집들이 즐비하며 호수를 끼고 산림이 우거진 도로변을 따라 진천방향으로 향하는 드라이브 코스도 일품이다. 경기도 투어호텔로 지정된 금강모텔과 비치호텔 등 고급 숙박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첫댓글 가까운 곳이니 친구들 가족과 맜있는 음식도 즐기고 무료 공연도 함께 하면 얼마나 좋을까
참 태평무 공연은 무료고 남사당 공연은 단돈 1000 원 ㅋㅋㅋ
많은 정보고마워요 우리집에서가까운데도 아직못갔네요 시간내서 예쁜 손녀와 다녀와야겠네요 참 명철친구요즈음 건강은어떠신가
건강은 최고에요 하지만 문제는 그놈의 술 ..... 언젠가는 끊어야죠 ㅋㅋㅋ
고마워 자상도 하시지 한번갈일이 있는데 참고하려고 명철 건강하지요
왜 요즘 갱년기 때문에 그러신가 가벼운 등산을 다니던가 혼자서 여행을 좀 다녀봐
그러면 속이 좀 풀리지 않겠어 집안에만 너무 있지말고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