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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카르티에 등저/길잡이 늑대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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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농부철학자 보다는 농부 수도자가 더 맞는 것 같다. 간단히, 실천하는 농민의 성공담이다. 농업과 관련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 같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케낫사 오아시스에서 대장장이 집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인 교사 부부의 양자로 성장하였다. 대장장이 아버지의 생산품이 공장생산품에 의해 도태되고, 무너지는 가정을 경험하였다. 양부인 프랑스인 부부는 기독교도였기에, 그의 삶은 두 세계로 분리되었다. 부족과 종교를 등진 배신자라는 낙인, 거기에다 문화적 차이는 그를 더욱 힘들게 했지만, 그는 차별 받는 친구를 보며 고통을 대응하는 내면에 놀라운 힘을 기른다. 예수의 복음서를 읽고, 기독교도의 삶과 교리의 큰 괴리를 느꼈다. 알제리 독립운동에서 “마음이 아팠지만, 그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나는 마치 구경꾼처럼 그 전쟁을 겪었습니다.”
아프리카 등 황폐화는 무리한 개발(환금작물 재배, 연료)으로 나무가 사라지면서, 더욱더 심해졌다. 나무를 신성한 존재이며, 지구의 폐이다. 나무를 잘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 인디언들은 필요 이상으로 쌓아 두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쌓아 두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문제이다. 그래서 더욱 더 많이 가지려 하는 탐욕에 사로 잡힌 것이다. 자연은 균형적이다. 과일나무들이 인간의 간섭(흙과 일조량)을 많이 받았기에, 곤충은 생명을 재생산할 수 없는 개체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집단의 노력이 공평하지 않게 나뉘는 세계 속에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고통은 정신을 예민하게, 무디게도 한다.
피에르-미셀의 결혼, 시골의사 라시드박사와의 만남,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시간은 고통이기 때문에, 현재는 영원한 순간이기에 믿는 건 아닌지? 시골로, 풍요로운 대지는 자연이 준 선물이기에 우리에겐 자연을 오염시킬 권리가 없다. 흙에서 일한다는 것은 삶의 기술을 가꾸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이 힘든 것은 충분히 일하지 않고,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에 있다. 우리에게 의식, 영적, 기술혁명이 필요하다.
비료는 석유로 만들어진다. 리비히는 농업을 화학으로 변질시켰다. 가장 기본이 되는 질소질 비료인 질산염은 폭발물에서 비료로 전환되었다. 지구는 에너지 넘치는 하나의 통합체이다. 우리가 대지의 주인이 아니다. 지금의 농업은 흙을 떠난 농업이 되었다. 또한 자기 종은 물론 다른 종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바로 인간 존재들입니다. 이세상은 존경 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 이겨야 하고, 권력과 돈을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곳이다. 또한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환경보호론자를 경계해야 한다. 현대성이 는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혜택을 받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기에.
현대의 농업은 산업화와 상업화 속에서 무너진다. 거기에다 부패는 모든 곳에 넝쿨을 뻗고 있으며 모든 기회를 거머쥔다. 하지만, 퇴비를 생산하고, 한 가정에 1ha의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면 충분히 자급자족이 될 것이다. 이 사회는 불평등하나, 그나마 참고 견디는 사람들 때문에 유지된다. 더 이상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모든 곳에 오아시스를 만들자. 우리의 신토불이운동과 비슷한 개념으로 운송에 의지하는 방식은 안 된다. 우리의 슈퍼마켓이나 마트를 보라 얼마나 많은 노력(에너지, 운송수단)의 낭비인가? 겨울철의 여름과일과 채소 이것들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식량은 현지에서 생산 가까운 곳의 농산물이 맛과 에너지 효율 면에서 좋다. “하루 동안 행복하고 싶으면 돼지를 잡고, 한해 동안 행복하고 싶으면 결혼을 하고, 전 생애를 행복하고 싶으면 밭을 일구라.” 연대의 장바구니 운동, 녹색수업을 개설한다.
자신은 어떤 생을 살 것인가? 나는 내 능력을 월급과 교환한다. 나는 모험을 하고, 나만의 수익을 창조한다. 종자문제, 기아문제는 이기주의에 기인한다. 우리는 발전의 허상을 바로 보아야 한다. 세계의 1/5의 인구가 4/5의 세계자본을 소비하는 세상은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닌가? 현대 문명 속에 빛이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 컴컴한 암흑 속에 있다고 여겼습니다. 정신은 기술만큼 빨리 변화하지 않습니다. 다시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를..
후진국들을 힘들게 하는 악순환인 환금작물, 무기(국가영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이득을 차지 합니까? 소수의 거대 식량기업과 무기제조 회사들입니다. 농업에서의 비료, 살충제, 교배종 씨앗에서의 독립은 퇴비를 만들면 나아지고, 물은 비를 작은 둑, 소형 탬으로 모아서 잘 관리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됩니다. 기상이변 계절적인 요인이지만, 숲은 비의 량을 조절할 수 있기에, 더욱 숲과 나무를 보호해야 한다. “오늘날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집에 앉아 기도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현지로 가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구과잉과 낭비로 인한 문제들, 단적으로 가난한 나라는 부자나라에서 버려지는 음식물만 있어도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세계화는 시스템의 통일과 약탈을 위해서 존재하기에 더욱 더 가난해진다. 일 예로 서양 젊은이들의 유행으로 인한 가죽점퍼 수요 증가 그리고 소가죽의 소비 증가로 인한 부산물의 수출은 아프리카 목축부족에게는 굶주림을 던져준다. 그들은 왜 인지를 모르는 체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과잉보다는 사람들 각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먹을 거리를 재배할 수 있어야 한다.
오아시스의 예. 작은 오아시스에 관광산업을 위한 호텔(건물)과 물소비가 심각한 문제이다. 여행자 1명이 하루에 200리터의 물의 소비하는데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또한 인산염 생산을 위한 물소비를 통한 소득증대 과연 경제성과 환경보호는 양날의 칼인가? 서양의 농업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게으른 사람들(현지 농민들 주로 아프리카 농부들), 그들은 현지의 사정을 모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하라 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언제나 더 많이! 당신에게는 소비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신이 소비하지 않으면 경제는 무너지고 맙니다!” 절제와 검소의 미덕으로, 쓰레기 처리장를 보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 어떤 쓰레기가 버려지는가? 비료로 인한 토양 속의 질산염은 지하수층을 오염시키고, 다른 곳의 물을 상품화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모든 권리가 인간에게 있다는 오만으로 시작하는 것 아닌지? 가축과 애완동물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창조물들이 이 대지 위에서 우리와 똑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물들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말라.
우리는 국제적인 경제전쟁이 존재하는 광적인 경쟁이 지배하는 눈먼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농부와 의사는 인간의 건강 지키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건강 하려면 먼저 참다운 먹거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여성들에 의해 지금까지 지탱되어 왔다. 여성들이 이끄는 사회가 될수록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남성들은 자신 안에 있는 여성상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남성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좀 아쉬운 점은 그가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 더 있었으면 했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은데. 성공한 사람(농민)은 대부분 정신적 지도자 아니면 종교, 철학, 도니 하는 것에 얽매이는 것은 왜인지? 왜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것일까? 물론 그런 종류의 신념이 있어야 이런 일들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일이겠지만. 하지만 지구는 지구이다. 우리의 오해가 빚어낸 지식으로 인해 왜곡된 것이지. 그 자체인 것이다 그냥 자연이다. 지구라는 자체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단지 생존해 있을 뿐이고,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산다는 변명을 밖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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