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에서도 확실한 너클볼러는 없었다. 한일 야구계가 김경태의 투구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사진=순스포츠) |
Q. 한국야구만큼이나 미국야구를 좋아하는 야구팬입니다. 특히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투수 팀 웨이크필드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의 너클볼을 볼 때면 감탄을 넘어 경외심을 느낍니다. 한편으론 ‘어째서 한국프로야구엔 웨이크필드 같은 너클볼러가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우연히 전 LG 트윈스 투수 김경태가 전문 너클볼러로 변신 중이란 소식을 들었습니다. 과연 김경태가 너클볼러로 성공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인천 오민한 -
A. “그의 공이 어떻게 올지 알 수 없었다. 따라서 미트로 공을 못 잡으면 프로텍터로라도 떨어뜨려야 했다. 그렇다. 난 포수라기보다 아이스하키의 골리에 가까웠다.” ‘너클볼의 귀재’ 톰 캔디오티의 전담포수였던 크리스 밴더워스의 회상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처럼 ‘너클볼의 위력’을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싶은데요. 정말이지 너클볼은 야구의 포수를 아이스하키의 골리로 만들 만큼 위력적인 마구 가운데 마구라는 생각입니다. 여기서 잠시 너클볼을 설명하겠습니다.
너클볼은 검지와 중지의 관절(Knuckle)을 이용해 공을 ‘쑥’ 밀듯이 던지는 구종입니다. 일반적인 변화구들이 손목을 채거나 팔꿈치를 비틀어 던지는 것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납니다.
사실 너클볼 그립으로 던지면 구속은 시속 60~100km 정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에 회전이 생기지는 않는 통에 공기 저항을 받으면 받을수록 타자 앞에서 불규칙한 변화를 일으키는 특징이 있습니다. 어찌나 변화가 심한지 메이저리그에선 공이 나비처럼 춤을 춘다고 ‘버터플라이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너클볼러의 대명사' 팀 웨이크필드(사진=이와미) |
너클볼은 투수나 포수 모두 도대체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해야 합니다. 특히나 포수가 그렇습니다. 오죽했으면 형제 너클볼러로 유명했던 조 니크로의 전담포수였던 앨런 애쉬비가 “너클볼을 포구할 때마다 치과의사에게 가는 것 같은 공포심을 느꼈다”고 했겠습니까.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뛰어난 너클볼러에겐 그래서 항상 전담포수가 붙습니다. 각설하고.
독자께서 말한 바와 같이 전 LG 투수였던 김경태는 올 시즌부터 일본 독립리그 시코쿠-큐스 아일랜드 리그의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스에서 뜁니다.
시코쿠-큐스 아일랜드 리그는 베이스볼챌린지리그(BC 리그), 간사이리그와 함께 일본 3대 독립리그로 꼽힙니다. 리그 실력만 따지면 BC 리그와 간사이리그를 압도합니다. 여기서 ‘독립리그?’ 하며 고개를 갸웃하실 분들이 계실 텐데요. 일본 프로 2군 바로 아래 리그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6개 팀이 소속된 시코쿠리그는 해마다 팀당 80경기를 치러 리그 우승팀을 가립니다. 김경태가 뛸 가가와는 이 시코쿠리그에서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강팀입니다. 2008년 보스턴과 마이너 계약을 맺었던 마쓰오 데루마사가 바로 이 팀 출신입니다.
시코쿠리그 출신으로 일본프로야구(NPB)에서 뛰는 선수들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2007~2009년 3년 동안 시코쿠리그에서 NPB로 진출한 선수는 7명입니다. 2군까지 합치면 20명에 가깝습니다. 독립리그가 단순히 ‘낙오자들의 리그’에 그치지 않고 ‘패자부활의 무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김경태가 시코쿠리그에 진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시코쿠리그를 재기의 무대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연말 LG에서 방출된 김경태는 여러 팀을 알아봤습니다. SK를 비롯한 몇몇 팀에선 테스트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때마다 김경태는 겨우내 가다듬은 너클볼을 선보이며 날카로운 투구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팀들이 하나같이 ‘세대교체’와 ‘LG 시절의 활약상’을 들며 김경태의 영입을 주저한 것입니다.
http://video.naver.com/2010012618394467304
김경태의 너클볼 투구 동영상. 지난해 12월 16일 미네소타 트윈스 스카우트 앞에서 피칭테스트를 받을 당시의 화면이다(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김경태의 가능성에 집중한 건 오히려 국외였습니다. 미 메이저리그 유수의 팀들이 ‘왼손 너클볼러’ 김경태에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미네소타 트윈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등은 아예 스카우트를 한국으로 파견해 그의 상태를 자세히 관찰토록 했습니다.
그 가운데 캔자스시티가 김경태 영입에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너클볼이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가다듬으면 빅리그에서도 통할 것”이란 결론을 내린 캔자스시티 스카우트는 “마이너리그 더블A 계약을 맺자”고 제의했습니다. 김경태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찬밥 더운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국외 진출을 위해서라면 계약 형태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윈터리그가 끝나고서 캔자스시티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김경태를 선발자원으로 생각했던 캔자스시티가 너클볼러로 풀타임을 뛴 바 없는 그의 경력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결국, 캔자스시티행은 좌절되고 맙니다.
이후 김경태는 우여곡절 끝에 시코쿠리그의 트라이아웃에 참가합니다.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한 까닭일까요. 그는 온 힘을 다해 투구했고, 가가와는 두말하지 않고 그의 영입을 결정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야구관계자들도 감탄사를 연발했는데요.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모 투수코치는 “이런 너클볼 투수는 처음 본다”며 “지금처럼 공을 던지면 시즌이 끝나기 전 반드시 영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스포츠춘추>가 일본 현지에서 확인한바 그의 말이 빈 소리는 아닌 듯합니다. 가가와와 요코하마는 전통적으로 유대관계가 각별한 팀으로, 과거부터 요코하마엔 가가와 출신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일본 현지에선 가가와를 요코하마의 ‘선수 공급처’쯤으로 인식하더군요. 다시 각설하고.
'꿈은 포기하지 않는 이에게만 현실이 된다'는 말을 김경태가 실현해주기를 많은 이가 바라고 있다(사진=LG) |
김경태의 너클볼 평균 구속은 시속 107km입니다. 속구 구속은 시속 135km입니다. 너클볼을 중심으로 간간이 속구와 커브를 섞어 던지는 김경태의 투구패턴을 보고 일본야구관계자들은 “너클볼 제구만 조금 잡히면 1군 진출도 어렵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너클볼 제구’는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너클볼의 대가’ 필 니크로가 “현역시절 한 번도 완벽하게 너클볼을 제구한 적이 없다”고 털어놓은 건 겸손이 아닙니다. 풍향, 풍속, 기후, 습도에 따라 변화무쌍한 너클볼은 ‘제구의 문제’가 아니라 ‘제어의 문제’인 것입니다.
김경태도 같은 생각입니다. “너클볼을 마음먹은 코스로 던지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물론 팀 웨이크필드처럼 바깥쪽, 안쪽으로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도 있지만, 그건 특별한 경우다. 원하는 코스에 가깝게 공이 가도록 제어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김경태는 선결과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두 번째 과제도 풀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바로.
“강약조절이다. 너클볼도 속도의 가감을 조절해 타자를 현혹할 수 있다. 단, 몇 km 차이라도 느린 너클볼과 빠른 너클볼은 확실히 타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김경태의 너클볼 그립은 웨이크필드와 같습니다. 엄지와 약지로 공을 잡고 중지로 강하게 찍는 형태입니다.
너클볼이 손이 작은 아시아인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종임을 고려할 때 웨이크필드식의 그립을 잡는 것도 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김경태는 “너클볼은 팔꿈치와 어깨에 부담이 없는 대신 손톱 훼손이 잦다”며 “손톱이 부러지고 피가 나는 게 일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은 경험이 많아져 어떻게 손톱을 관리해야 하는지 알았다고 하네요.
김경태가 너클볼러로 재기한다면 한국과 일본야구계엔 큰 사건이 될 것입니다. 한·일 프로야구사를 통틀어 지금껏 성공한 너클볼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현대의 장정석(현 히어로즈 매니저)이 너클볼러로 변신을 노렸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 적이 있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뛰었던 전 OB 베어스(두산의 전신) 투수 박철순은 너클볼이라기보다는 팜볼에 가까웠다는 게 당시 선수들의 증언입니다. 히어로즈 마일영은 너클볼을 간혹 결정구로 사용하지만, 너클볼러로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 현역에서 은퇴한 마에다 유키나가가 일본 유일의 너클볼러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의 너클볼은 회전이 많고 구속이 높아 체인지업에 가까웠습니다. 지바 롯데 마린스의 고미야마 사토루 역시 시속 80km의 느리고 변화가 심한 공을 던지는 통에 ‘너클볼 투수’로 알려졌지만, 실은 포크볼 그립으로 던지는 ‘셰이크’란 구종을 던졌습니다.
일본 현지 취재 도중 한 일본야구관계자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시아 투수들이 빅리그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가 깼다. 그 뒤 이치로 스즈키가 메이저리그에서 대활약하며 ‘아시아 타자는 성공할 수 없다’는 선입견마저 무너트렸다. 이제 ‘아시아 투수는 너클볼러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릴 때가 왔다. 김경태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과연 김경태가 너클볼러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요? 글쎄요. 미래를 누가 알겠습니까. 하지만, 뭔가를 걸어야 한다면 ‘성공’쪽에 걸고 싶군요. 대상이 김경태라면 후회하지 않는 결정이 될 듯합니다.
첫댓글 참 성실한 선수인데... 너클볼러로 꼭 재기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