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미자가 써온 프로필이며 환경 조사서를 찬찬히 읽으며 쾌재를 불렀어. 요즘은 개인 정보다 뭐다 해서 환경 조사는 못 하는데 목적이 다른데 있었던 그는 입학 사정때 그걸 요구 했고 대략 오십줄 넘어선 할망들이라 별 이의 없이 받아 들였어. 적당히 자신을 들어내고 싶은 맘도 있었을거고 예전엔 자연스러웠으니 별 태클들은 없었어.
대부분 건성 건성이었는데 미자는 속속들이 꼼꼼하게 적어 냈어. 자기 소개서는 완전 자서전 급.
70살 남편에 아들이 하나. 아들은 출가해 서울에 살고 며느리에 손자 하나. 아들은 금감원서 미국 파견 근무 중이고 헐~ 영등포에 작은 빌딩도 장만 했네. 남편은 속초 변두리 영랑호 근처에 물려 받은 땅만 이만 여평에... 자가에 연금이 삼백 정도에 현금이 오억! 생각 이상이었어. 거기다가 요가로 다져진 몸매. 나이 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데다 적당히 백치미 까지.
A+
어쩐다? 어떻게 한다? 머리를 굴리기 시작 했어. 대충 견적 내서는 손해날거 같은 생각에 꼼꼼히 시물레이션 했어. 애초 부터 내거 아니었어도 잡았다 놓지면 손해난 기분 들게 되지. 괜히 더 억울하고 자꾸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두고두고 복기 하잖아.
그는 매년 진급때 마다 1순위라 했고 누구도 의심 하지 않았지만 매번 탈락 했어. 그렇게 그렇게 십여 년. 강산도 변할 세월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위로가 어느새 동정으로 이어져 무시로 변해 갔어.
누가 커피라도 점심이라도 쏠때면 그냥 사들고 오거나 쏠께요~하면서도 언제 부턴가 그에게는 물어 보기 시작 했어. 부장님도 커피 드실래요? 부장님도 같이 가실래요?
신입들도 첨엔 멋 모르고 대하다가 이내 분위기에 익숙해 졌어. 점점 구석으로 밀려 나고 업무 마저 허드렛 일로 변해 갔어. 알게 모르게... 그리고 마누라 마저 대놓고 무시 했어.
무시하고 구박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완전 투명인간 취급 했어. 유일한 내편 이었던 딸아이 마저도 작은새가 되어 파랑새 따라 날아 갔어. 소송 직전에 협의 해 줬어. 이것마저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아서 원하는거 거의 다 들어 주기로 하고.
언제 준비 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혼 하고 아기도 가졌다는 야그가 들려 왔어.
그에게 허락된 행복은 거기 까지. 그래도 재기 해서 다시 제자리 찾겠다 했지만 그게 그렇더라고. 내리막 타기 시작 하면 끝간데 없이 떨어지고 사는게 사는게 아니라 매달려 있는 기분. 그런데 구세주 처럼 맹구가 손을 내밀어 준겨.
말이 교수지 보따리 장사나 매한가지 조건 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자리가 쉽게 오나? 쉬키는 그리 가진게 많으면서도 월급은 꼬박 꼬박 챙겨 갔어. 계좌 주인이 여자인걸 보면 아마도 애인 아닌가 싶지만 관심 두지 않기로 했어. 이런거 관심 가지면 남은 인생도 대리로 살아야 할 팔자 된다는게 자명 하니. 얼핏 보니 연봉은 꽤나 책정 돼 있었어. 누가 보면 정교순줄 알 정도. 게다가 뽀나쓰에 이런 저런거 까지.
맹구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고 학교에서도 알게 모르게 밀어 줘선지 캐리어도 일천 했지만 평균작은 했어. 이게 학생 수가 다 돈이거든. 대학은 고상하고 낭만적일 줄 알았는데 실상은 회사 보다 더하네.
교생은 도내 국립대에서 왔어. 남녀 공학이 학교는 변두리에 있었지만 가끔 그 대학 까지 진학 하는 애들도 있었어. 물론 서울쪽에 도전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도전은 도전일 뿐 무모하게 끝나기 일쑤.
여기서 도내 국립대면 하바드고 캠브릿지 급이지. 대부분 여학생은 작은 공장이나 집안 살림 하고 4년제라야 강릉까지 나가야 되고 대부분 전문대.
넉넉잖은 집안이라 대학은 생각도 안했는데 국어 과목 들고 온 교생을 보고 생각이 바꼈어. 훤칠하고 아우라 마져 풍겼어. 어느날 미자를 콕 찍어 채점 도와 달라고 하숙집으로 불렀어.
소문만 무성해 지고 교생은 실습이 끝나고 돌아 갔어. 소문이란게 그렇잖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잦아 들 기색도 없고. 사실은 손목 한번 잡아 보지 못 했는데 애 까지 지웠대.
그후론 이넘 저넘 달라 붙었어. 두어번 만나면 달라 그러고. 다 뿌리 치고 지켰는데 왼쪽 가슴에 손톱만한 점도 생겨 났고 하지도 않은 맹장 수술도 생겼어. 고3 내내 따라 다니더니 대학 까지 따라 왔어.
그렇게 미자는 헤픈 년이 됐어. 소문만으로 애를 가진다면 벌써 성모 마리아 되고도 남았겠지. 사내 콧김 한번 안 쐬고도 헤픈 여자가 됐고 자신도 헛갈릴 정도가 된겨.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소문대로 돼 갔어.
운동만 해서 세상 물정 모르고 제법 있는 집안에서 자라선지 여느 남자들과 달리 이해심도 배려심도 있었어. 시부모들도 넉넉한 분들이고.
가끔 가끔 넘의 살 맛도 보곤 했지만 남편을 떠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따라 붙은 사모님 자리가 어디 쉬운가? 더군다나 굳게 믿어 주는 남편. 여유로운 가정 형편. 출장이 잦은 직업이다 보니 조심만 하면 자유롭고.
오히려 세미나 가는걸 자랑 스러워 하는 남편. 해외 견문 간다면 또 가? 소리 한마디 않고 혼자 잘 지내 주고. 이정도면 환경은 최고!
핸펀 프샤도 사진사 한테 찍어 올리고 가족 사진도 다 지웠어. 알 듯 모를 듯 선문답 써놓고. 이젠 저녁만 되면 흰색 벤츠가 집 앞으로 지나 가네.
다 늦게 어디? 아! 대학원 세미나가 있어서... 앞에 '대학원' 접두사는 꼭 붙여. 이수가 '집'자 붙이듯. 어린이 집. 유치원 집. 이제 학교 집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