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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을 가기 위해 밀양으로 가는 도중에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군위 휴게소에 들렀더니, 조그만 휴게소이어서인지 철야 근무하는 직원이 한 명 뿐이라 음식 메뉴도 우동 하나만 된다고 해서 우동으로 아침 식사를 한다.
<군위 휴게소의 사고 현장>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25톤 덤프 트럭 뒤에 LPG를 운반하는 탱크로리가 고개를 박고 서 있다. 새벽 4시 쯤 덤프 기사가 차를 주차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휴게소로 들어간 사이에 졸음 운전을 한 탱크로리 기사가 그대로 박은 것이다. 다행히 마지막에 정신을 차려 핸들을 꺾었는지 조수석만 크게 망가져서 운전사는 다치지 않은 모양이다. 역시 졸음 운전은 무섭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중앙 고속도로, 경부 고속도로, 대구-부산간 민자 고속도로를 거쳐 춘천에서 밀양까지 가는 길은 멀기도 하다. 밀양 요금소(08:17)를 나와 산내면으로 들어서니 온 사방이 사과 천지다. 우리나라에서 경북 북부지방과 충주가 사과 주산지로 손꼽히는데 밀양의 얼음골 사과도 명성이 높단다. 손기사님이 사과 한 박스를 사서 버스에 싣기에 한 쪽 먹어 보니 아직 철이 일러서인지 당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맛이 꽤 좋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구름다리>
얼음골 주차장을 조금 지나 시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산행 준비를 한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인 구름다리 옆을 지나 산행을 시작한다(09:05). 매표소에서 입장료(단체 1인당 700원)를 지불하고(09:11) 내처 걷는다. 이른 아침 공기는 다소 차갑지만 금방 땀이 날 것을 예상해서 얇게 입는다.
<천황사의 대광명전>
건물 몇 채가 전부인 천황사는 아담하고 고요하다(09:17).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약수터 주변을 다람쥐가 빠른 걸음으로 오간다. 얼음골 결빙지로 향하는 길은 너덜 지대에 급경사다. 아직 몸이 덜 풀려 호흡은 가쁘고, 다리는 무겁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결빙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도착한 곳은 결빙지다(09:23). 천연 기념물 224호로 지정되어 보호철책을 쳐 놓아서 밖에서만 볼 수 있다. 3월 중순에 얼음이 얼기 시작해서 삼복에 절정이란다.
결빙지를 지나 계속 오르막 바윗길을 간다. 결빙지 앞에서 천황산, 동의굴은 오른쪽 오르막길이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너덜바윗길, 직각에 가까운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보이는 건 눈앞에 가파른 바윗길뿐이고 양쪽에는 직벽의 바위 봉우리들이 우뚝 솟아 있다.
<허준이 스승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동의굴>
숨가쁘게 오르다 보니 안내판을 만난다. 동의굴이다(10:02).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 선생이 스승 유의태를 해부했다는 장소의 배경과 일치하는 점이 있어서 그 이름을 붙였다지만, 억지로 붙인 듯하다. 동굴의 깊이는 한 3m 정도라 겨우 비나 피할 수 있는 정도다.
다시 높은 바윗길을 차고 올라간다. 조망은 없고 바윗길 양쪽엔 높고 견고한 성처럼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들이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너덜 길을 올라가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높은 철계단이 앞에 있다(10:15). 우측에서 사람들이 올라오기에 물어 보았더니, 웃으면서 말하기를 입장료 낼 돈이 없어서 돌아왔단다.
삐거덕거리는 높은 철계단을 지나고 비탈길을 오르니 얼음골 삼거리다((10:42). 이곳 삼거리에서 얼음골 가지산 천황산 길로 갈라진다. 키를 넘는 관목으로 둘러싸인 능선길은 철도 침목이 깔려 있는데 보폭과 맞지 않아 불편하다.
<전망 바위에서 본 운문산, 가지산>
관목 숲을 벗어나니 바위로 된 전망대다. 우리가 올라왔던 얼음골을 비롯한 산내면 일대가 손에 잡힐 듯하고 그 뒤로는 예전에 우리가 산행을 했던 운문산과 가지산이 웅자를 드러낸다.
<하얀 꽃을 드러낸 억새밭>
전망대를 지나자 억새밭이다. 은빛 바다가 해일처럼 밀려와 눈앞에서 물결친다. 자세히 보면 새 깃털처럼 부드럽고 여인의 손길처럼 섬세하다. 이제 막 피어난 꽃은 잡티 하나 없이 반질반질하다. 열여덟이나 아홉쯤 될까? 화장기라곤 없는, 그러나 잡티 하나 없는 민낯의 소녀처럼 맑고 단아하다. 억새는 단풍보다 더 일찍 피어나 여름의 작별과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 억새꽃의 미모를 완성하는 건 햇살이다. 스타를 위한 조명처럼 은빛으로 빛나게 한다. 가을 산에서 주인공은 억새이고 사람들은 관객이다. 억새는 바람에 맞춰 살랑살랑 춤을 춘다.
재약산(수미봉 1,108m)과 천황산(사자봉 1,189.2m)은 경남 밀양시 단장면, 산내면과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사이에 두 개의 봉으로 솟아오른 산이다. 두 산은 중간 지점인 천황재를 중심으로 2km의 거리를 두고 한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천황산 사자봉 정상석>
들머리에서 약 2시간 만에 천황산 산정에 선다(11:11). 시야는 사통팔달 막힘없이 트인다. 큰 나무가 없이 억새가 덮인 둥실한 언덕이 굼실굼실 물결쳐 간다.
<천황산 정상에서 바라본 간월산, 신불산>
골짜기 건너편으로 운문산에서 가지산으로 뻗어간 능선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역시 우리 산악회에서 등산을 한 적이 있는, 간월산과 신불산이 고즈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발아래로 보이는 표충사>
<천황산에서 본 재약산>
남으로는 발아래 표충사가 장난감 모형처럼 내려다보이고, 남동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는 천황재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재약산정으로 솟아오른다.
<천황산 정상의 돌탑>
천황산(天皇山1189m)의 정상석 곁으로 조그만 돌탑 하나가 서있다.
<청초한 구절초>
<보라색의 수줍은 쑥부쟁이>
천황산 정상에서 내려와 천황재로 가는 길은 잔돌이 깔려 있는 급경사다. 여기저기 패여 있어서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가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하얀색의 청초한 구절초가 바위틈에 꽃잎을 피워내고, 보라색 쑥부쟁이도 여기 저기 군무를 이루어 피어있다.
<천황재의 매점>
도착한 천황재(11:30)에는 간이 매점이 두 곳 있는데, 음식값이 비싸다. 태산님이 동동주와 묵무침을 사셔서 반주와 함께 탁자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무 의자를 쌓아서 바람을 피해 식사를 하고 있다. 텐트도 쳐 있는 것을 보니 비박을 한 모양이다.
<재약산에서 바라본 천황산 사자봉>
점심을 먹고, 한적한 나무꾼의 옛길 그대로인 길을 따라 재약산으로 향한다(12:08). 재약산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천황산 정상의 모습이 아련하게 보인다. 재약산의 산정 오르막 막바지는 온통 험준한 암릉이다(12:42).
<재약산 정상석>
단애의 벼랑을 떨어뜨린 바윗덩어리 위에 아담한 자연석의 정상석이 서 있다. 재약산 (載藥山1108m)이라는 이름은 표충사의 창건 설화와도 관련이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신라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이 절의 약수와 약초로 병을 고쳤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고사리 분교 갈림길의 이정표>
재약산 정상에서 내려오니 고사리 분교 갈림길에 이른다. 지도에는 여기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가면 층층 폭포와 등룡 폭포가 있다기에 그리로 방향을 잡는다. 잠시 내려가다가 갈림길이 있기에 어떤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임도를 벗어난, 샛길을 가르쳐 준다. 가다가 갈림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가라는 말대로 가다 보니 젊은 남녀가 올라오기에 폭포를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폭포는 보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맸단다.
<잘못든 길에서 만난 집 한 채>
조금 이상하게 생각은 했지만, 계속 내려가다 보니 큰 바위 밑에 집이 한 채 있다. 암자같이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 사는 흔적이 있기에 이 집 마당을 지나 계속 진행을 하는데, 아무래도 길이 이상하다. 길의 흔적은 있지만, 좁고 급경사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이다. 할 수없이 무전으로 후미팀들에게 다른 길로 하산하라고 안내하고는, 선두 세 명은 잠시 앉아 쉬면서 바로 뒤따라오는 다른 일행과 함께 급경사의 길을 더듬어 내려간다. 험한 길을 약 30분 정도 가자 정상 등산로에서 태산님을 만난다.
<당겨 찍은 흥룡 폭포의 모습>
하산을 하다 보니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니 골짜기를 가르는 물줄기와 홍룡 폭포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지만 물이 적어 아쉽다. 골짜기 위쪽으로는 아스라한 암봉이 치솟고 암봉의 팔부 능선 쯤으로는 임도가 아득하게 돌아 나간다.
자갈이 깔린 길을 발바닥이 아프게 걷다 보니 표충사 옆 개울에 닿는다. 배낭을 벗어 놓고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발을 씻는다.
<표충사를 병풍처럼 둘러싼 사자산, 재약산 능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표충사에 들른다. 표충사는 천황산에서부터 재약산으로 벋어나간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선 부채꼴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스님과도 인연이 있는 이 표충사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헌종5년(1839년)에 사명대사를 모시던 밀양의 사당 표충사(表忠詞)를 이 절 안으로 옮기면서 비롯됐다고 한다. 사명대사는 밀양에서 태어나 14세 때 출가하여, 서산대사로부터 가르침을 받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승도대장이 되어 수많은 전투를 치룬다. 선조로부터 '승장 유정은 사람으로서 못할 일을 능히 해냈다'는 찬사를 듣기도 하고, 정유재란이 끝난 뒤에는 조선 조정의 대표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회담한 뒤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이끌고 귀국하기도 한다.
<보물 467호인 표충사 삼층 석탑>
<표충사 경내의 꽃무릇 >
보물로 지정된 삼층 석탑과 관음전을 비롯한 건물을 구경하다 보니 조그만 언덕 위에 꽃무릇 몇 그루가 피어 있다. 국보 제 75호인 금동함은향완(향을 피우는 도구)과 서산대사가 도꾸가와 이에야스로부터 받은 대형 목탁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관도 보고 나와서 서산대사와 기허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표충사(表忠詞)를 마지막으로 보고 절을 나선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천황산, 재약산 능선>
절집에서 버스 주차장까지는 1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개울 건너에 마을이 깊숙히 들어와 있는데, 재약산을 중심으로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가 암벽의 병풍을 두른 듯하다. 지친 발걸음은 주차장까지의 길도 멀게 느껴진다.
데친 오징어로 간단하게 하산주를 하고 귀갓길에 오른다. 길가로는 수없이 많은 대추나무 과수원과 산 중턱까지 자리잡은 감나무밭이 넓다. 풍기에서 청국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예상보다 일찍 춘천에 도착한다.
신불산, 간월산을 비롯해 창녕의 화왕산, 철원의 명성산, 정선의 민둥산 보다 천황산, 재약산은 소문만큼이나 억새가 대단하지는 않다는 아쉬움을 느끼면서 산행 후기를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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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랫만의 장거리 여행으로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은빛으로 충만되어서 온통 빛나고 있습니다.
가는 가을을 아쉬워 하면서 가을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항상 후미에서 수고하십니다. 나무가 많이 자라서인지 사자평쪽의 억새가 듣던 것보다 적어서 아쉬운 산행이었습니다. 그래도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억새는 좋았습니다.
표충사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 사진으로 보는 억새는 충분히 아름다운데 실제는 그렇지 않은가 보네요...
그래도 가을빛이 좋은 날이었을것 같네요...
작은 아드님을 반갑게 보셨는지요? 듣던 것보다 억새가 많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웠습니다만, 청량한 가을 햇살아래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시작부터 오르막이 힘들긴했었도 나름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화왕산 억새가 너무 아름다워던 기역이 있었서그런지
이번 억새는 그냥 그러네요. 그래도 가을느낄수있는 산행이였습니다.선두에서 애많이 쓰셨습니다.
어제는 컨디션이 좋으셨는지, 당당하게 중간에서 산행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도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산행이어서 좋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사과 과수원, 대추나무밭, 감나무밭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햇살에 하늘거리는 은빛물결속에 가을을 제대로 느낀거운 하루였습니다얼음골 결빙지에서 얼음을 못본 아쉬움은 있었지만 천황산 정상에서바라본 영남알프스의 산군들에게 마음을 빼긴 행복한 하루였습니다선두에서 급경사길로 하산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총무님 대행까지 하시느라고 애쓰셨습니다. 한여름에 와서 결빙된 얼음을 볼 수 있었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정상에서 본 운문산,가지산, 신불산, 간월산 등 영남 알프스의 산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청명한 가을날에 바람에 누이는 억새도 그런데로 좋았습니다. 또한, 얼음골 사과도 맛났고 장뇌삼+ 털보산장에서의 묵무침과 더덕술에 정상까지의 발걸음이 가벼운 하루였습니다. 행복한 날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밀양에 사과나무 과수원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대추와 감나무도 많았고요, 청명한 가을 날씨에 함께 산행을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산행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전 4년전에 한번 가 본 적이 있습니다만, 천왕재의 매점은 그대로 있고, 끝없이 펼쳐지는 억새밭이며, 하산길의 표충사도 변함이 없군요.
당초 신청했다가, 집안 행사일 땜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푸른의 선봉에서 항상 애쓰시는 소금강님께 감사드립니다.
춘천에 늦게 돌아오는 것때문에 고심하시다가 결국 취소한 것을 알았습니다. 다음에 좋은 곳에 갈 때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