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오르는 디딤돌, 오회분4호묘 벽화 청룡의 척목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어떤 소설의 제목이다. 하늘로 비상하려면 날개가 있어야 된다는 관념, 날개가 없으면 날 수 없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중근동과 유럽 사람들에게 하늘은 날개가 있는 존재에게만 허용된 세계였고, 날개 달린 것의 도움 없이는 이를 수 없는 공간이었다. 천사도 등에는 반드시 날개가 달려 있었고, 신들도 천상과 지상 사이를 오갈 때에는 거대한 새나 날개 달린 말의 힘을 빌렸다.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우주적 크기의 산이나 거대한 나무를 두 세계의 통로로 삼을 수는 있었지만 무한한 창공을 날아다니려면 날개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공룡과 비슷한 모습을 한 그리이스나 북유럽신화 속의 드래곤이 등에 박쥐의 가죽날개 같은 것을 달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도 이러한 관념 위에서이다.
(그림1)오회분4호묘 벽화: 청룡
집안의 오회분4호묘 벽화에는 아름다운 오색청룡(五色靑龍)이 등장한다.(그림1) 화려하고도 복잡한 연속무늬 위에 묘사된 까닭에 창공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앞발을 크게 내닫으며 포효하는 모습에서 우주적 수호신 특유의 힘과 기세는 완연히 느껴진다. 벽면에 가득 차게 그려진 청룡의 몸은 온통 비늘로 덮여 있고 몸통 부분은 색동주름치마를 입은 것처럼 긴 띠를 이루며 오색으로 채색되었다. 목과 몸통의 경계는 녹색, 적색 두 줄 목띠로 구분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연속마름모꼴 색띠가 차곡차곡 이어진 것처럼 묘사된 목 위에 덧그려진 불꽃 모양의 무늬이다. 양 어깨에서 날개처럼 뻗어나가는 불꽃 형태의 무늬가 사신이 뿜어내는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낸 것이듯이 목 위의 무늬도 청룡의 기운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 부분에 굳이 눈길을 모을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신과 같은 신수(神獸)를 둘러싼 상서로운 기운은 어깻죽지나 허리, 네 발의 무릎 근처처럼 움직이는 힘이 강하게 나타나는 데에 묘사하는 것이 상식이고, 실제 고분벽화나 전각화(塼刻畵)에서 이와 같은 표현방식이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벽화 속 청룡 목 위의 불꽃 모양의 기운은 무엇을 나타낸 것일까. 어떤 의도를 담은 표현일까.
중국 한대의 문헌 『논형(論衡)』에는 ‘용은 한 치의 나무, 곧 척목(尺木)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구절이 있다. 그런데 시대를 한 참 건너 뛴 뒤 쓰인 당대의 문헌 『유양잡조(酉陽雜俎)』에는 ‘용의 머리 위에 한 가지 물체가 있으니, 박산(博山)처럼 생겼고 이름을 척목이라고 한다. 용은 척목이 없으면 하늘로 오르지 못한다.’는 글이 실려 있다. 수백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용이 하늘로 오르기 위해 디딤대로 삼았던 한 치 크기의 나무가 용의 머리 위에 붙어 있는 박산 모양의 승천 장치로 바뀐 것이다. 박산은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신선의 세계로 한대에는 향로 뚜껑 도안에 많이 쓰인 전설상의 산이다. 박산향로는 한대에 특히 많이 만들어졌지만 남북조시대의 전각화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후대까지 애용되었던 기물 가운데 하나이다.
당대 이전 어느 시기부터인가 척목이 용의 머리 위에 있는 물체로 인식되고 표현되기 시작했음은 고분벽화나 전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북조시대의 전각화 등에서는 화염보주 형태로 묘사된 척목을 청룡 뿐 아니라 백호의 목 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그림2) 박산의 형태가 아닌 화염보주의 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전하는 화염보주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림2)중국 강소 상주 척가촌 南朝墓 전화: 백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척목이 처음 발견되는 것은 장천1호분 앞방 천장고임에 그려진 청룡에게서 이다. 청룡의 엉치 위쪽에 표현된 척목은 삶은 계란을 어슷하게 잘라서 올려 놓고 그 주위에 가는 털들을 붙인 듯한 모습이다. 물론 가는 털들처럼 표현된 것은 상서로운 기운이 어려 있고 뻗어 나가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덕화리1호분 벽화에 이르러서야 척목은 청룡의 목덜미 위에 묘사된다. 형태도 화염보주의 외형과 비슷하다. 오회분4호묘청룡에 이르면 화염보주의 보주에 해당하는 부분은 보이지 않고 상서로운 기운이 강한 불꽃 형태로 뻗어 나가는 것처럼 그려져 또 한 번 변화를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하늘을 나는 존재에 대한 관념은 서아시아 및 유럽의 그것과 달랐다. 중국이나 한국 옛 왕조의 화가들이 용이나 백호와 같은 신수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그릴 때에 등에 날개를 덧붙이지 않은 데에서 이런 관념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도 날개를 달지 않은 채 하늘을 날기는 어렵다고 생각했음을 용의 승천에 척목이 필요하다고 상정한 글과 이에 바탕을 둔 회화적 표현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승천을 위한 매개물에서 몸에 달아야 하는 장치로 바뀐 척목의 형태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변화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승천장치로 보기 어려운 강한 기운의 표현으로 바뀌는 것이다. 아마도 고구려 화가들은 청룡과 같은 우주적 신수에는 승천을 위한 최소한의 보조 장치나 매개물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첫댓글 날개를 달아 날아 보셔요.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