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애(兄弟愛)
막냇동생과 약속 날 새벽,
구약 성경 가장 짧은 오바댜를 펼쳤다.
절망 속에 좌절한 자에게 하나님이 행할 장래를 보게 했다.
형제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며 악을 자행한 에돔!
남보다 못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동생을 기다리는 즐거움에 문자를 보냈다.
‘동생, 좋은 아침이네.
오는 길에 누나가 역에서 만나 태우기로 했어.
차분하게 내려오라고..’
‘네 형님, 중간에 톡 드릴게요.’
‘그래 알았어.’
어머니 가신 한 달, 눈을 떠도 안 계셨다.
마음 덮어 아침 맞아 줄 분 말이다.
만사에 밀린 세월에 삼 남매의 어울림이라 좋았다.
‘오빠! 점심, 어디가 좋을까요?’
생전에 함께 나눈 효령 흑염소 전문점을 떠올렸다.
마중 간 여동생 문자가 떴다.
‘동생 만나면 전화드릴게요. 그때 나오세요?’
‘북부 경찰서 4거리 일곡동 방향 횡단보도에서 탈 게..’
시간 계산하고 나섰다.
근처 썬 베이커리에 들렸다.
후르츠스틱, 소금 빵.. 네 가지를 골랐다.
‘방금 나온 것이라 개별 포장 비닐을 열어 둘게요.’
양손에 들었다.
여름 날씨라 가까운 도서관에서 기다리려고 발을 넣다.
이지성 작가가 추천한 ‘플라톤의 대화편’을 검색하려 섰다.
빵 냄새가 올라왔다.
민폐임을 알고 뒤돌아섰다.
정한 곳에서 동생 차에 탔다.
반갑게 만나 산소로 갔다.
영락공원 모퉁이만 돌면 가슴 앓이가 시작되었다.
어머니 앞에 설 때마다 할 말을 잃었다.
동생들 보는데 울 수 없어 눈만 깜박거렸다.
보이지 않은 눈물도 깊은 상처를 씻었다.
그렇게 가심이 아쉽고 그리웠다.
식당 어머니 지정석은 다른 분이 앉았다.
감사 기도 후 오랜만에 맛을 봤다.
‘형님! 친구 딸 결혼한 여의도 호텔식보다 낫네요.’
흐뭇한 얼굴이었다.
세컨드 원 카페를 찾았다.
수국 피크였다.
푸름을 입은 나무 천지였다.
빛에 잘 닦인 잎사귀를 보는 호사를 누렸다.
정성 들여 가꾼 땀방울이 굵었다.
사랑 없는 인생은 여름 없이 보낸 사람과 같았다.
‘개인 관리가 힘든 정원이네요.’
휴심정! 쉼의 장소였다.
창가에 앉아 셋이 차 마시며 삶을 나눴다.
‘재수할 때 형님이 가계수표 끊어 준 일을 평생 담고 사네요.
하지만 어머니 연결로 거래한 돈에 힘들었어요.
채무자가 중국으로 도피해 그 이자를 지금까지 내네요.
어머니와 아내만 알아요.
사업 실패하고 막노동판에 나갔을 때었어요.
목사님, 심방 오셔서 봉투 놓고 가셨단 말에 통곡했네요.
외지에서 밤을 하얗게 새웠어요.
어머니는 늘 생활력 강하다 하셨지만 도움은 없었어요.
그래도 막내로 최선을 다했어요.
이제 사는 것 괜찮아요.
큰 조카가 삼촌 운동하고 다닌 것 부럽다 하데요.
유산! 일도 관심 안 뒀어요.
도장 찍어 드릴 거예요.
부의금 배분한 것 보셨지요.
형님보다 정이 더 많아요.
단 보험 때문에 형제들, 조카들과 소통이 문제지요.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했어요.
처가 쪽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극한 어려움에도 손 벌리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어떻게 계약을 잘하냐? 물어요.
감동시켜라 하지요.
고객 결혼 기념 위해 엘도라도까지 꽃다발 들고 갔어요.
교회에서 남들 1년 하는 재정 3년 차 맡았어요.
그만큼 신임 얻었어요.
내 고집 꺾을 자 없어요.
형님 성품하고 달라요.
어려운 골프장 예약도 지인들 통해 잡아내면 놀라지요.
자식들 인성 교육 제대로 시켰어요..’
과일 속 씨앗처럼 숨겨진 사실이었다.
난형난제(難兄難弟)! 형 노릇하기도, 동생 노릇하기도 어려웠다.
가난이 죄였다.
형으로 지난 일을 모르고 산 것에 눈물 흘렸다.
모든 것 인정하고 보석 같은 형제애 위해 용서를 구했다.
동생의 꽃 진 자리에서 열매를 봤다.
‘소나기 30분' 속담이 기억났다.
먹구름 뒤에 변함없는 태양의 기다림을 믿는 막내였다.
죽을 고생하며 딛고 유지로 활동함이 고마웠다.
우리 머문 곳에 더 큰 사랑이 싹트길 바랐다.
뒤축 닳은 신발 끈을 맸다.
‘잘 들어가셨어요.
빵을 오빠랑 나눌 걸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잘 먹을게요.’
‘동생, 오늘 고생했어.
점심은 내가 대접하려 했는데..
익산 동생 마음 풀렸으면 좋겠네.
언제 익산 밥 먹으러 한번 가자고..
빵! 많은 거 아니어.
월요일 건강 빵 고르면 하나 더 줘서 그래..’
‘익산, 제가 모시고 갈게요.’
‘서로 이해하며 어머니 뜻 잘 이어 가는 게 남은 자의 할 일이지..
서로 잘 섬기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익산 동생에게 도착 시간 예측하고 톡을 보냈다.
‘동생 잘 갔어.
오늘 함께 하는 시간 좋았네.
일부러 내려와 고마웠고..
광주 동생하고 익산 한 번 가자 했어.
같이 밥도 먹고 또 이야기하고 더 가깝게 지내기로..
지난날, 서운하게 한 일 참 미안하네.
알고도 무심하게 챙기지 못한 부분도 할 말이 없네.
숨죽이며 살았을 제수씨에게도 죄송하고..
앞으로 전철 밟지 않고 섬기고 싶네.
어려운 삶 열심히 살아 낸 일에 박수 보내고..
바라는 큰 계약 잘 이뤄 보탬이 되면 좋겠네.
더 기도할 게 힘내라고..
늘 건강한 삶 꾸리길 바라네..’
‘네 감사합니다!’
그날 밤, 형다움 드러내려고 뒤척였다.
더 갖지 못해 아쉽기보다 더 베풀지 못해 안달하는 삶을 그렸다.
나눌수록 커지는 서로 귀히 여긴 사랑 말이다.
사랑이 답을 찾는 법,
갈대 상자를 만들어 어머니 영정 아래 뒀다.
은혜 넘치는 형제애 위해서다.
동생을 짊어지면 짐이지만 가슴에 품으면 사랑이다.
아픔만큼 성장과 성숙이 사랑으로 거듭날 일이다.
최고의 덕목 중 하나가 형제애다.
형제를 오래 살게 할 복이다.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은 형제 우정과 신뢰다.
그 꿈! 해산하고 싶다.
2014. 6. 22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
첫댓글 형제 사랑,
그 아름다운 필라델피아가 광주에 있었군요.
보고 듣는 이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글에서 애잔한 감동을 먹습니다.
장마가 신고식을 제대로 하네요.
장모님도 잘 계시죠?
혹여 빙모상이 날지라도 내년 농선회 수련회와 겹치진 않겠죠?
ㅎㅎ
값진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강 목사님!
감사합니다
헬라어 인용하며
격조 높은 차하에 몸 둘바 모르겠네요
감동 먹었다니 할 말이 없네요
부모님 잃고
대신하여 장자 노릇하려는 몸부림이네요
이제 시작이니 응원해 주세요
교회 어르신들 수요 예배 오시면서
오만 군데 아프다 하실 때부터
장마 예감했네요
그 비를 뚫고 순대 사온 분이 계셔
점심을 거뜬하게 먹었네요
장모님!
화요일 요양병원 예배 가면
안수 집사님이 모시고 내려 오지요
예배 마치고 악수하며
내가 누구요? 물으면
손에 힘을 주며 우리 목사님! 하시네요
식욕이 좋으셔서 백수하실 것 같네요
지난 주 98돌 지내셨어요
우리 어머니처럼
농선회 수련회 기간을 맞추지 마시길..
주말 건강 챙기시고
행복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