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
운남 북궁가
마대위가 쌍칼 등 동생들과 함께 마교를 떠난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마대위는 일단 잠마대주가 되기는 했지만, 기존에 있던 부대주에게 즉시 전권을 위임했다.
그리고 쌍칼 등도 잠마대의 교관이 되었는데, 후에 마대위가 마교로 돌아오게 된다면 함께 잠마대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중원 어딘가에 정착해 살게 된다면 마교와의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대위는 동생과 함께 말을 타고 무림맹이 있는 호남성을 향했는데, 운남성을 거의 벗어날 무렵 갑자기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었다.
“아니, 형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쌍칼이 의아한 표정으로 마대위에게 물었다.
“친구네 집에 간다.”
마대위의 대답에 쌍칼등 동생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소한 그들이 아는 한 마대위에게 친구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고향인 제령에서 멀고도 먼 운남에 있음에랴.
“쌔꺄! 나도 친구 있어! 그동안 강호에 나와서 놀러만 다닌 줄 알아?”
쌍칼 등이 찔끔하는 사이 사강룡이 나섰다.
“운남 북궁가로 가는 것입니까, 형님?”
순강 쌍칼등도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호곡에서 수련을 하던 도중 사강룡으로부터 북궁웅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뒤에 있던 왕곰이 마대위곁으로 다가오더니 왕방울만한 두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헤헤, 형님. 근데 홍소저…, 아니지. 소미 누님은 어제 보여 주시겠…, 어이쿠!”
왕곰이 말을 하다 말고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감쌌다.
마대위가 주먹으로 그를 쥐어박은 것이다.
“쌔꺄! 보여 주긴 뭘 보여줘? 그냥 때가 되면 만나고 아니면 마는 거지…….”
말은 이렇게 하였지만 막상 왕곰으로부터 홍소미의 이름을 들으니 은근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실 중원 천지에 사내로 태어나 홍소미같은 여인이 보고 싶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물론 마대위에게 있어 홍소미는 친구 이상으로서의 의미는 가지지 못했다.
아니, 매령령의 원수도 아직 갚지 못한 상황에서 그 이상의 의미는 마대위가 애써 부정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언젠가 매령령과 은혜원 고아들의 원수를 모두 갚고, 그녀에 대한 기억이 충분히 희미해졌을 무렵이라도 개방의 방주가 되어있을 홍소미에게 마대위같은 날건달이 어디 가당키나 한 것이겠는가.
따라서 마대위로서는 차라리 북궁웅비와 홍소미가 좋은 인연을 맺기를 바라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로부터 약 반나절 가량 길을 가자 운남성과 사천성 경계에 있는 창성이라는 지방에 도착했다.
바로 정파 최전방의 교두보인 북궁가가 위치해 있으며, 동시에 팔대마가의 하나인 광풍혈사가(光風血邪家)가의 세력이 미치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 운남성과 사천성의 경계를 따라 삼대종가와 팔대마가가 마치 성벽처럼 줄을 지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이는 정파나 다른 세력들이 아예 운남성 쪽으로는 진입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성벽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중, 광풍혈사가는 이곳에서 반경 백여리에 이르는 영역을 세력권으로 하여 운남성의 가장 북쪽 경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마대위와 일행들이 창성에 가까워짐에 따라 점차 행인들의 행적이 뜸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인적이 끊어져 버렸다.
관도를 따라 드물게 보이던 객점들도 창성에 이르자 모두 문을 닫아버려 마치 고을 전체에 전염병이 돌아 모두들 떠나버린 것 같았다.
마대위와 쌍칼등 창성 고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나타나 길을 가로 막은 청의인들 때문에 걸음을 멈추어야했다.
그들 모두 검을 차고 있었고, 가슴 한쪽에 광풍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져 있어 광풍혈사가의 사람들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청의인들 중, 왼쪽 뺨에 긴 흉터가 나 있어 무척 으스스하게 보이는 수뇌인 듯한 중년인이 나섰다.
그가 냉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표정과 분위기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쌍칼이 즉시 나섰다.
“그러는 네놈들은 누구냐?”
쌍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의인들의 몸에서 물씬 살기가 흘러나왔다.
모두 마도의 고수들이라 그런지 정파인들의 웅장하고 압도적인 기세와는 달리, 송곳으로 피부를 찌르고 숨을 턱 막히게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죽고 싶어 환장을 하는 놈들이구나. 소원대로 해 주지. 모두 죽여라!”
정파인들이었다면 정체와 목적을 확실히 밝히기 전까지는 결코 손을 쓰지 않을 테지만 역시 마도인들을 달랐다.
쌍칼의 한 마디 대답에 생사를 간단하게 결정해버린 것이다.
청의인들이 모두 검을 빼들고는 즉시 공격해 왔다.
쌍칼 등도 이에 맞서 싸우려던 순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강한 일갈이 마대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멈춰라!”
마치 마대위의 말에 마법이라도 걸린 듯, 청의인들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마대위의 내공이 대단하여 내부가 진탕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들고 있는 하나의 영패에 온 신경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음!”
청의인들의 수뇌인 중년인이 무거운 신음성을 흘렸다.
마교에서도 웬만한 수뇌급이 아니면 구경하기도 어렵고, 따라서 알아 볼 수조차 없다는 천마령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물론 여기 있는 청의인들 그 누구도 천마령을 구경해 본적은 없었지만, 영패에 새겨진 글이 분명 교주를 상징하는 천마이지 않은가.
천마라는 단어는 천하에 교주 외에는 그 누구도 쓸 수 없기에 그들 모두 천마령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대위와 쌍칼등을 둘러보았다.
천마령을 들고 다닐 신분이라면 두 가지밖에 없다. 교주 본인이거나 아니면 모종의 임무를 띤 특사인 경우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천마령을 들고 있는 인물이 교주는 아니었고, 그의 일행들도 중요한 교의 일을 수행하는 특사단 같지 않았다. 차라리 산적이나 도적단이 더 어울릴 듯한 얼굴들이지 않은가.
그때, 마대위가 쌍소리를 하며 투덜거렸다.
“이런, 씨팔! 그 영감탱이가 거짓말을 했나…….이거만 번쩍 쳐들면 어떤 새끼든지 바닥에 엎드려 엉금엉금 긴다고 하더니……. 젠장, 약발이 다 떨어졌나 보네.”
마대위의 투덜거림을 들은 청의중년인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게 진짜 천마령이라면 분명히 자신과 수하들은 놈의 말대로 바닥에 엉금엉금 기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뭔지 모를 의구심이 도무지 그의 허리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 것이다.
“누구…, 뉘시오?
그의 물음에 대답한 사람은 마대위가 아닌 왕곰이었다.
그야말로 산적이라고 이마에다가 써 붙여 놓고 다니는 놈 같은 거구가 허리에 손을 턱 걸치며 말했다.
“형님께서는 잠마대주시다.”
순간 청의중년인은 얼마 전에 잠마대주가 새로이 취임했는데 무척 젊은 외지인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그는 또 뭔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잠마대주면 그냥 잠마대주지 형님이 잠마대주라는 건 또 뭔가.’
마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자란 그가 왕곰의 건달 말투를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상대가 잠마대주라면 교의 중요한 일을 위해 외부로 나갈 수도 있을 것이요, 천마령도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생기자 행동은 전광석화처럼 빨라졌다.
휘익!
청의중년인은 그대로 땅에 엎어질 듯 쓰러지며 오체투시에 들어갔다.
“삼가 천마령을 뵈옵니다.”
어찌나 땅에 강하게 안면을 들이받았는지 코피가 줄줄 흘러내린다는 사실도 잊었다.
“천마령을 뵈옵니다!”
동시에 천지가 떠나갈 듯한 합창과 함께 십여 명의 청의인들 모두 땅에 엎드렸다.
상황이 이렇게 돌변하자 오히려 놀란 것은 마대위였다.
“어흠! 뭐…, 그렇게까지 엎드릴 건……. 이, 이봐들! 그만 일어나라구.”
“존명!”
마대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들 벌떡 일어나 부동자세로 도열했다.
이 모습을 본 왕곰이 큭큭거리며 조그만 목소리로 곁에 있는 방일에게 속삭였다.
“큭큭큭, 형님들! 쟤들 완전히 얼었수다. 톡 건드리면 부서져버릴 것 같지…, 켁!”
왕곰이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머리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한참 분위가 잡고 있는데 철없이 지껄이는 왕곰의 머리를 쌍칼이 사정없이 쥐어박았던 것이다.
“이, 새끼가 분위기파악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어!”
입이 댓발은 더 나온 왕곰이 구시렁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상황이 정리되자 마대위는 왕곰을 향해 눈을 한번 부라린 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에, 그러니까…,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이번에도 마대위의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청의중년인이 나섰다.
“접니다!”
“음. 좋아.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바로 북궁가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잔뜩 굳은 청의중년인의 얼굴에 흠칫 하는 기색이 보였다. 북궁가에 들어간다는 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의중년인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호, 혹시 아예 쓸어버리라는 명이 떨어진 것입니까?”
그는 마교 본산에서 북궁가를 아예 멸문시킨다고 결정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잠마대주가 천마령을 들고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설명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가의 고수들을 본산에서 파견 나온 사람이 지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천마령 정도의 절대적인 권한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니 말이다.
마교 본산에서 나왔다고 어쓰대던 어쭙잖은 수뇌들이 오히려 마가의 가주들에게 창피만 톡톡히 당하고 도망치듯 교로 돌아가는 꼴을 어디 한두 번 보았던가.
마대위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쓸어버려? 뭘?”
“북궁가 말입니다. 양화문에 대한 도발의 대가로 놈들을 사그리 죽여 버리라는…….”
“뭐야? 도대체 어떤 새끼가 북궁가를 건드리라고 했어?”
마대위의 호통에 청의중년인은 얼굴이 노랗게 질린 채 입을 다물었다.
“한번만 더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면 골통을 부셔버릴 테니 그리 알아!”
“조, 존명!”
마대위는 청의중년인을 잡아먹을 듯 쏘아본 후,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와 아우들이 북궁가를 방문하겠다는 거다.”
“그렇다면 혹시 협상을…….”
“협상은 무슨 협상이야. 그냥 방문하러 왔다니까.”
“저희들은 현재 북궁가를 포위한 채 명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만…….”
다소 곤란해 하는 듯한 그의 목소리에 마대위는 상황을 눈치 챘다.
“너는 마가로 돌아가 가주에게 보고하도록 해. 북궁가에 대한 응징은 내가 책임지고 해결한다고. 교주께서 친히 보내셨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도록 하고.”
마대위의 말을 들은 청의중년인의 안색이 순간 밝아졌다.
싸움도 없이, 언제 끝날지도 모를 지루한 포위망을 구축하느라 얼마나 지겨웠던 지를 생각하면 잠마대주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존명!”
그는 마대위에게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좋아!”
마대위는 짐짓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아우들에게 말했다.
“자, 가자!”
“예, 형님!”
그는 즉시 일행들을 이끌고 창성으로 진입했다.
창성은 여느 고을이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인적이 너무 없었다.
어쩌다가 한두 사람의 행인들이 길을 지나가곤 했는데, 그들도 마대위의 모습을 보고는 겁에 질린 채 도망치기 일쑤였다.
이 모습을 본 마대위가 혀를 찼다.
“쯧쯧…, 마가 애들이 아주 고을 사람들의 기를 죽여 놓았군, 그래.”
쌍칼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당장이라도 북궁가와 전면전을 벌일 분위기에다 고을에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사람과 물건들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벌였으니 무서울 만도 하죠.”
그때였다. 서너 명의 백의인들이 길 저편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이들의 눈에 띤 것은.
그들의 모습을 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띠는 반응을 보인 것은 사강룡이었다.
백의인들로부터 느껴지는 특이한 기세 때문이었다. 잘 벼루어진 장검처럼 군더더기 하나 묻어있지 않은 깔끔한 걸음과 태도.
바로 검을 목숨처럼 여기고 살아가는 검수의 기상이었다.
사강룡의 몸에서도 그들과 비슷한 기세가 피어올랐는데, 백의인들에 비해 좀더 날카롭고 서늘한 느낌이었다.
백의인들도 사강룡의 기운을 느꼈는지 그를 주시하며 다가왔는데, 마대위의 일장 앞에 이르러서까지 사강룡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무형지세의 싸움이 시작되려는 것 같았다.
그때 마대위가 나섬으로서 그들 간의 기세 싸움은 간단히 끝났다.
“혹시 북궁가의 사람들이시오?”
백의인들 중 다소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장년인이 마대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마대위와 쌍칼 등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훑어보았는데, 마치 한 자루의 장검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백의장년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들은 누구인가?”
마대위가 즉시 포권을 했다.
“마대위라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모두 나의 동생들입니다.”
백의장년인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마대위와 일행들을 마교에서 보낸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소속과 직책을 밝히는 대신 이름을 말하지 않는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귀에 마대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북궁가의 소가주인 북궁웅비가 저의 친구입니다만…….”
순간 백의장년인이 흠칫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웅비의 친구라고? 그럼 혹시…….”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 하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그럼 자네가 신독문의 혈사를 함께 했던…….”
마대위가 싱긋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천산까지 함께 동행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개방의 연락을 받고 웅비는 이곳으로 먼저 떠났었죠.”
그의 말이 여기에 이르자 백의장년인의 얼굴도 다소 밝아졌다. 그건 실제로 북궁웅비와 동행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일들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안색은 다시 차갑게 변했다.
“헌데, 어찌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었는가, 마교에서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그건, 저…….”
마대위는 그 일을 설명하자면 더 많은 일들을 밝혀야 하고, 그건 길가에 서서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마대위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웅비의 아버님부터 뵙고 인사를 드린 후에 말씀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짧은 이야기가 아닌 지라…….”
백의장년인은 마대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대위의 태도에서 진위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잠시 후, 그가 한 걸음 뒤쪽에 있던 백의인에게 뭐라고 전음으로 지시를 하자 백의인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즉시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백의장년인이 마대위에게 말했다.
“일단 가주님께 사람을 보냈으니 자네를 어떻게 처리 할지는 잠시 후에 결정하도록 하지.”
이쯤 되면 원래의 마대위였다면 길길이 날뛰고도 남았겠지만, 의외로 그는 깍듯이 고개까지 숙이며 승복하는 게 아닌가.
마대위의 성격을 잘 아는 쌍칼 등 동생들이 오히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대위를 힐끔거리기도 했다.
사실 마대위는 백의장년인이 북궁웅비와 얼굴이 많이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가 숙부쯤 되리라고 짐작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웃어른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고는 깍듯이 대했던 것이다.
한동안 길에 그냥 서서 기다리자면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마대위는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의장년인에게 정중히 말했다.
“길 가운데 서서 기다리기는 뭣하니 객잔이라도 들어가서 기다리시지요.”
마대위의 말에 백의장년인이 이채를 띠며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네. 여기서 기다리지.”
조금 전의 냉막한 표정과 말투에 비한다면 한결 부드러워진 반응이었다.
그는 다소 부드러운 눈길로 쌍칼 등 일행들을 둘러보다가 사강룡에게 가서 시선이 멈추었다.
검수는 검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백의장년인은 자신의 나이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을 청년의 기세가 사뭇 대단함을 깨닫고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하던 중이었다.
‘대단하구나. 가히 인중지룡이로다. 본가 최고의 기재라는 웅비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구나.’
사강룡은 백의장년인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대위도 깍듯이 대하는 어른인지라 함부로 고개를 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강룡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마대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다소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웅비의 말에 의하면 꽤 고수라고 했는데…, 어째 기세를 전혀 느낄 수 없군. 설마 기세를 갈무리하는 반박귀진에 이른 초절정고수는 아닐 테고…….
웅비녀석이 과장을 좀 심하게 한 모양이로군.’
백의장년인이 마대위의 요모조모를 살피던 중, 그의 지시를 받고 가주에게 보고를 하러갔던 백의인이 다시 돌아왔다.
백의인은 즉시 백의장년인에게 뭐라고 이야기했는데 입술만 달싹일 뿐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백의장년인은 잠시 그의 전음을 모두 들은 후 마대위에게 말했다.
“가주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자네를 즉시 데리고 오라고 하시는군.”
마대위의 표정이 순간 밝아졌다.
“아, 그렇습니까!”
“하지만!”
백의장년인이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마대위에게 덧붙였다.
“자네들의 병장기는 모두 거두어야겠네.”
“그렇게 하시지요.”
“그리고 점혈도 하겠네.”
“그, 그건…….”
마대위가 다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의장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안 된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마대위는 대답하기가 무척 곤란했다. 천하에 무슨 재주로 대력금강기를 뚫고 혈도를 점한단 말인가.
“그게 안된다면 가주께 데려갈 수가 없네. 솔직히 내가 보기에 자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뒷말을 얼버무렸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훤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이 마교의 귀계일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마대위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마음데로 하십시오. 하지만 나는 원래 점혈이 잘 되지 않는 체질이니, 이를 이상하게 생각지는 마십시오.”
백의장년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하에 그런 체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즉시 백의인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어서 이들의 병장기를 거두고 내공만 끌어올리지 못하도록 혈도를 점하거라.”
그의 명이 떨어지자 뒤에 있던 두 명의 백의인들이 즉시 나서서 쌍칼등에게 다가왔다.
순간 쌍칼등은 다소 꺼리는 표정으로 마대위를 바라보았다.
“형님!”
마대위가 우수를 휘휘저으며 말했다.
“괜찮다, 괜찮아. 그들이 마음데로 하게 내 버려둬!”
대형의 명이니 어쩔 수 없이 모두들 병장기를 끌러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백의인들이 즉시 그들 사이를 지나가며 혈도를 점했다.
이 모습을 본 백의장년인이 마대위에게 다가와 두 손을 벌렸다.
마대위는 그의 뜻을 깨닫고는 즉시 쌍부를 빼서 그에게 주었다.
백의장년인은 쌍부를 받아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감탄성을 토했다. 쌍부가 기병임을 즉시 알아보았던 것이다.
“도대체 어떤 부법을 익혔기에 손잡이가지 필요한지는 모르나 무척 잘 만들어진 도끼로군.”
“마룡과 혈룡입니다.”
“음!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로군.”
백의장년인은 쌍부를 백의인에게 맡긴 후 마대위를 향해 지력을 날렸다.
핏!
지풍은 정확히 마대위의 혈도에 작열했지만 백의장년인은 갑자기 안색을 찌푸렸다.
점혈 할 때의 느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상대의 기공에 막혔다면 반탄지기라도 있을 텐데, 이마저도 없으니 마치 깊은 물속으로 지력이 사라져버린 듯 했던 것이다.
마대위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점혈이 되지 않는 체질이라고.”
백의장년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점혈을 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력이 종적도 없이 사라져버리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웅비에게 듣기 했지만 사실일 줄은 몰랐군. 세상이 이런 기공이 있다니…….”
그는 마치 신기한 동물을 본다는 듯 마대위를 이리저리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일단 날 따라오도록 하게.”
그는 마대위와 쌍칼 등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잠시 후, 창성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장원 앞에 모두들 걸음을 멈추었다.
만검즉일검(萬劍卽一劍). 일검즉일심(一劍卽一心).
북궁가라는 현판 아래 길게 쓰인 글귀가 눈에 띄었다. 검을 추구하는 검가다운 글이었다.
북궁가의 정문은 곧 열렸고 백의장년인은 지체 없이 마대위등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넓은 연병장이 있었고, 좌우와 전면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어 생각보다 훨씬 대문파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연병장 곳곳에는 백의검수들이 눈빛을 번뜩이며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마교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북궁가 전체가 초비상상태에 돌입해 있는 듯 보였다.
마대위가 이러한 상황을 보더니 지나가는 말로 입을 열었다.
“마교는 이미 물러갔으니 저렇게 할 필요 없는데…….”
백의장년인이 그 말을 듣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마교가 물러가다니.”
“이곳에 들어올 때 마교도들이 모두 철수하는 걸 제가 직접 보았습니다.”
“뭐, 뭐라? 그들이 철수를 했다고?”
백의장년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문과 혈마존의 일로 복수를 하고자 찾아온 마교도들이 어찌 순순히 물러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도 그런 일이 몇 차례 있었지만 피를 보지 않고 마교가 물러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그가 전혀 믿는듯하지 않자, 마대위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사실입니다. 그들의 차림을 보니 광풍혈사가의 사람들이더군요. 모두들 말을 타고 이곳을 떠났는데, 그들을 대신하기 위한 교대병력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떠난게 분명합니다.”
마대위의 말에 백의장년인은 혹시 하는 표정으로 제자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서둘러 외곽지역으로 나가 이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그를 따라왔던 백의인 두 사람이 신형을 날리려는 순간 백의인 한 명이 바깥쪽에서 급히 정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어 다소 흥분한 듯 보였다..
백의장년인은 자신의 명령으로 떠나려는 백의인들을 잠시 멈추게 한 후 그를 소리쳐 불렀다.
“무슨 일이냐?”
백의장년인의 목소리를 들은 백의인 즉시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당주님!”
“너는 외곽 호위를 맡고 있는 황룡당의 제자로구나.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자리를 이탈하여 이곳으로 달려왔느냐?”
황룡당의 제자가 희색을 띤 채 소리치듯 대답했다.
“당주님. 마교도들이 물러갔습니다.”
“뭐라?”
백의장년인은 깜짝 놀라며 마대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대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보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순간 백의장년인도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어서 가주님께 가세. 소식을 전해야겠으니.”
그는 마대위 등을 이끌고 급히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들은 곧 명검전(銘劍殿)이라는 현판이 쓰인 가장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무척 넓은 대전이 있었고, 나이가 지긋한 노인부터 영기가 펄펄 살아 숨 쉬는 듯한 청년고수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는 이마가 훤하게 잘생긴 장년인이 한 명 앉아있었는데
마대위는 그가 바로 북궁웅비의 부친이자 운남 북궁가의 가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북궁웅비와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가주님!”
뭔가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백의중년인이 갑자기 들이닥쳐 소리치자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마대위의 짐작대로 상석에 앉아있는 장년인이 바로 북궁웅비의 부친이자 북궁가의 가주인 모양이었다.
북궁가의 가주, 운남신검 북궁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백의장년인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그는 백의장년인 뒤에 서 있는 마대위등 일행들을 발견하고는 잠시 머뭇거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회의가 끝난 후 접객실에서 만나기로 하지 않았는가?”
“마교도들이 물러갔습니다.”
그의 말에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교도들이 포위를 풀고 물러갔습니다. 이제 본가는 안전합니다, 가주님.”
백의장년인이 희색에 찬 표정으로 다시 말하자 대전은 일순 술렁거렸다.
“마교도들이 물러가다니…….”
“어찌 그런 일이…….”
운남신검 북궁현이 다시 물었다.
“정말 그들이 물러갔다는 것인가?”
백의장년인이 즉시 마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들이 철수하는 것을 목격했고, 외곽호위를 맡고 있는 황룡단의 제자도 그렇다고 알려왔습니다.”
그의 말에 북궁현은 물론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희색에 찬 표정으로 안도해했다.
그러나 북궁현은 이것이 마교의 귀계일지 모르니 아직은 십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고, 당분간 경계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했다. 회의는 그것으로 끝났고, 대전안에는 북궁현과 백의장년인, 그리고 마대위 일행들만 남게 되었다.
마대위가 북궁현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아버님! 저는 웅비의 친구인 마대위라 합니다.”
넙죽 허리를 숙이는 그를 바라보는 북궁현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마대위의 태도로 보아서는 영락없는 북궁웅비의 친구가 분명했던 것이다.
운남신검 북궁현은 잠시 마대위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허, 웅비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네. 자, 이쪽으로 앉게나.”
마대위는 즉시 아우들을 이끌고 가주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백의장년인은 마대위의 맞은편에 앉아 다소 경계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북궁현이 마대위 곁에 나란히 앉은 쌍칼등을 쭉 둘러보더니 말했다.
“이들이 바로 그곳에 숨어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는…….”
마대위는 그가 슬쩍 장소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직접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들이 바로 호곡에서 무공을 수련하다가 나온 흑건회의 아우들입니다.”
마대위의 말이 끝나는 순간 북궁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은밀하게 숨어서 무공을 익혔던 장소까지 맞힌 것으로 보아 북궁웅비가 말했던 사람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때, 마대위가 즉시 쌍칼등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정식으로 인사들 올리거라.”
“예, 형님!”
쌍칼등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쌍칼입니다.”
“물귀신입니다, 아버님.”
“방일입니다.”
“왕곰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아버님.”
“사강룡이라 하옵니다.”
운남신검 북궁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일일이 그들의 인사에 답례를 해 주었다.
“모두들 반갑네. 모두들 본인의 집이라 생각하고 편히 있기 바라네.”
북궁현은 즉시 손벽을 두 번 쳤다.
짝짝!
그러자 대전의 문이 열리며 몇몇 시녀들이 술과 음식들을 가져왔다.
북궁현은 마대위를 데리고 왔던 백의장년인을 직접 소개해 주었는데, 그는 바로 은룡당이라는 조직을 맡고 있는 당주였다.
곧이어 북궁현의 권유로 술을 한잔씩 마셨고,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던 중, 마대위는 북궁현이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듯 느껴졌고, 그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로 결심했다.
그에 앞서 마대위는 대전 곳곳에 은밀하게 숨어 북궁현을 호위하고 있는 고수들부터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암중세력의 첩자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마대위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북궁현에게 말했다.
“아버님! 잠시 주위를 좀 물리쳐 주시겠습니까?”
북궁현은 마대위가 뭔가 중요한 일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잠시 마대위의 두 눈을 직시하더니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순간 은룡당주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가주님! 안됩니다. 아직 정체가 확실하다고 할 수는…….”
그는 말을 미처 마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북궁현이 우수를 휘저으며 명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호위대는 잠시 나가 이곳에 그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하라.”
순간 대전 곳곳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존명!”
그리고는 거뭇한 인영의 그림자가 스치는 듯 하더니 모두 대전 밖으로 사라졌다.
이 모습을 본 은룡당주도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잠시 마대위와 쌍칼등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대전을 나갔다.
마대위는 즉시 내공을 끌어올려 주변에 숨어있는 자가 더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는 대전 안에 북궁현과 자신들 외에는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에 만족치 않고 내공을 끌어올려 주위에 음파를 차단하는 벽을 쳤다.
운남신검 북궁현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굳었다.
반경 2장에 달하는 공간을 내공의 벽으로 둘러버리는 능력은 자신으로서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이정도의 고수라니…….’
마대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웅비로부터 신독문의 혈사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들어 보셨겠지요?”
북궁현은 마대위가 태연히 말까지 하는 것을 보고는 놀라다 못해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과 가문의 무학에 대한 회의감마저 드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10년을 더 수련한다고 해도, 아니 죽을때까지 노력해도 결코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한 북궁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대위는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비교적 거짓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암류의 정체를 벗기고 또 그들을 물리치자면 정파의 명숙이라 할 수 있는 북궁가 가주의 조력이 큰 힘이 될 터였기 때문이다.
북궁현은 그렇지 않아도 북궁웅비로부터 신독문의 혈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암류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대위가 그들의 진정한 정체와, 마교까지 그들의 손에 넘어갈 뻔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생각하면 할수록 두려운 일이라 가슴이 다 떨려 옴을 느꼈다.
자칫했으면 마교의 가공할 힘 전체가 그들의 손아귀에 고스란히 떨어질 뻔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된다면 천하가 혈풍에 휩싸이고 무림 자체가 공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게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 쉬던 그가 갑자기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지나가듯 말했다.
“혹시 웅비가 그곳에 간 것도 그럼…….”
마대위는 북궁웅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급히 물었다.
“아버님. 무슨 일입니까? 웅비가 어디로 갔다는 것입니까?”
“음. 비아는 몇 년 전에 무림맹으로 들어갔다네. 맹주께서 본가의 사람 한 명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셨기 때문이지. 헌데 무림맹 내에 있던 웅비가 몇 달 전에 감숙성으로 갔다네.”
마대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감숙성이라면…….”
그가 어떻게 감숙성을 잊을 수 있겠는가. 천산에서 북해성녀를 만나 단전을 치료하고 무공을 익힌 후, 중원으로 들어오다가 거친 곳이 바로 감숙성이 아닌가.
그곳에서 그는 혈사방도들에게 쫓기는 무상파의 소년들을 구해주었고, 그 과정에서 혈사방의 고수들을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북궁현의 말이 이어졌다.
“최근 혈사방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그곳에 있는 공동파로 비아가 파견을 나갔네. 혈사방이 제 힘으로 그렇게 컸을 리는 없을 테고 자연 조력자가 있을 터인데, 그들이 누구인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지. 헌데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혹시 그들의 조력자가 바로 암류의 주인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
순간 마대위는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시 혈사방의 추적자 한 명과 싸운 일이 있었는데, 검은 안개와 같은 마기를 두르고 나타나 주변을 초토화시키다시피 하지 않았던가.
‘무공의 고하를 떠나서 그 마기 하나만큼은 지독하던데, 혹시 그들이……. 언제 한번 가 보아야겠군.’
그때부터 마대위는 북궁현과 한동안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이 천마지학의 하나를 익힌 관계로 마교와의 인연을 끊을 수 없어 잠마대주직을 맡고 있다고 말하자, 북궁현은 아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지학이라면 현재 마대위가 가진 가공할 능력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북궁현은 오늘 들은 이야기들은 철저히 비밀에 부칠 것이며, 당장 북궁가에 숨어 있을지 모를 간자를 찾아내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대위가 무림맹을 찾아가게 되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를 도와주겠노라고 덧붙였다.
마대위는 그날 밤을 북궁가에서 쉰 후, 다음날 아침 일찍 아우들과 함께 무림맹으로 향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