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모두 제(齊)나라 왕이 된 전담(田潭)· 전영(田榮)· 전횡(田橫)은 호걸들인데다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진승이 초나라 왕이 되었을 때, 전담은 제나라 땅을 평정하여 왕위에 올랐다.
전담이 죽자 아우 전영은 형의 아들 전시(田市)를 왕으로 삼고, 자신은 재상이 되어 제나라를 지켰다.
한편 전영은 초나라에 반기를 들었는데, 제나라 왕 전시가 항우의 말을 따르자 그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러나 전영은 초나라 군대에 대패하여 평원(平原)으로 달아나다가 붙잡혀 죽었다.
전영의 아우 전횡은 제나라의 패잔병을 수습하고,
전영의 아들 전광(田廣)을 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재상이 되어 제나라를 평정하였다.
전광이 왕이 된 지 3년, 한나라 유방은 역생(酈生)을 사자로 보내 세 치의 혀로 제나라를 항복시켰다.
그런데 이때 괴통의 말을 들은 한신은 한나라 군대를 몰아 제나라를 들이쳤다.
유방은 원래 역생을 사신으로 보내기 전에 한신으로 하여금 제나라를 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었다.
그리고 뒤에 역생을 보내 항복을 받아낸 것인데,
술수에 능한 괴통은 한신을 꾀어 제나라를 손아귀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한신은 아직 유방으로부터 제나라 공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없고
또한 자신이 제나라 왕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괴통의 책략을 받아들였다.
한신이 대군을 거느리고 제나라를 치자, 제나라 왕 전광과 제상 전횡은 역생이 자신들을 속였다고 단정하였다.
“저 여우같은 역생을 당장 가마솥에 삶아 죽여라!”
전횡의 명령에 따라 역생은 졸지에 삶은 고기 신세가 되어 버렸다.
한신에 의해 제나라가 평정되자, 제나라 왕 전광은 사로잡혀 죽었다.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횡은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발붙일 곳이 없어 잠시 팽월에게 의탁하였다.
그런데 한나라 유방이 팽월을 위나라 왕으로 임명하자, 전횡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어
자신을 따르는 무리 5백여 명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가 작은 섬에 숨어 살았다.
유방이 한나라 황제가 되고 나서, 어떤 신하가 다음과 같이 건의 하였다.
“원래 제나라는 전횡의 형제들이 평정하였습니다.
제나라의 많은 현인(賢人)들이 그를 따라 바다 가운데 섬에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난을 일으킬지 모르니, 사자를 보내어 전횡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중히 쓰십시오.
아니면 아예 죽여버려야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
고조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전횡을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고조는 곧 사신을 보내 전횡을 불렀다. 그러나 전횡은 다음과 같이 사절하였다.
“저는 폐하의 사신 역생을 가마솥에 삶아 죽여 버렸습니다.
지금 그의 아우 역상(酈商)이 한나라 장수로 있다 합니다.
저는 두려워 감히 폐하의 부르심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서인(庶人)이 되어 이곳 바다 가운데 섬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사자가 돌아와 고조에게 그대로 전하였다. 한고조는 즉시 역상을 불러 말하였다.
“만일 제나라 왕 전횡이 오게 되었을 때 그를 수행한 인마(人馬)나 수행원을
감히 불손하게 대하거나 불안에 떨게 하는 자는 삼족을 멸할 것이다.”
그런 다음 고조는 다시 사자를 전횡에게 보내 다음과 같이 전하도록 하였다.
“전횡이 오면 크게는 왕으로 삼을 것이고, 작게는 후(侯)를 봉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오지 않는다면 군대를 보내 모두 주멸해버리겠다.”
전횡은 할 수 없이 고조의 명령을 받아들여 수행원 두 명과 함께 한나라의 수도 낙양으로 향했다.
낙양을 30여리 남겨놓은 시향(尸鄕)에 도착했을 때였다.
“신하로서 천자를 알현하려면 몸부터 깨끗이 씻어야 할 것입니다.”
전횡은 한나라 사자에게 이렇게 말한 후 역사(驛舍)로 들어갔다.
그리고 전횡은 함께 간 수행원 두 사람을 따로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전에 한왕(漢王)과 같은 직위에 있었소. 그러나 지금 한왕은 천자가 되었고,
나 전횡은 패망한 포로가 되어 그를 섬겨야 하니 치욕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소.
더구나 나는 예전에 한 사람을 삶아 죽였는데, 이제는 그의 아우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같은 군주를 섬겨야 하오.
그 사람이 설사 천자의 조칙이 두려워 나에게 감히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마음 속에 있는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어찌 할 수는 없는 것이오.
지금 폐하께서 나를 보고자 하는 것은 내가 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어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오.
지금 폐하는 이곳에서 30리 떨어진 낙양에 있소. 그러니 지금 내 머리를 베어가지고 달려가더라도
내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오.” 전횡은 말을 마치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자에 의하여 전횡의 목은 곧 고조에게 바쳐졌다.
“아아,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일이로구나!
일개 서민에서 몸을 일으켜 형제 셋이 모두 번갈아 왕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삼 형제 모두 현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말하며 고조는 전횡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전횡을 따라왔던 두 수행원에게 도위(都尉)의 벼슬을 주었다.
전횡의 장례는 병사 2천을 동원하여 왕자(王者)의 예식을 갖추어 치러졌다.
그런데 장례가 다 끝나고 나자 전횡의 수행원 두 사람도 그 무덤 곁에 구덩이를 판 뒤 스스로 목을 찔러 죽어버렸다.
이 이야기를 듣고 고조는 전횡의 수행원들조차 현인(賢人)들이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전횡을 따르던 5백여 명의 무리들도 전횡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자결 하였다.
-《인물로 읽는 사기》-
첫댓글 싸움이나 전쟁은
끝없는 죽음과 죽음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네요
인간들의 동물 근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싸움과 전쟁은 끝이 없을 것이고,
그러다가 핵전쟁이라도 터지면 지구의
모든 생물들은 멸종을 맞게 되겠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