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이 어디 있는지 뻐꾸기가 알린다. 숲속 고요함을 고운 목소리로 새가 알린다. 대나무 숲에서 딱따구리는 매번 같은 음으로 사랑을 알린다. 자연은 인간이 나서 돌아가는 영원한 원초적 고향이다. 물소리, 새소리는 아름다운 소리다. 음악은 여기서 태어난다. 5월의 산빛은 어느 그림보다 아름답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가 들이 대봤자 직접 눈으로 보는 느낌을 표현하지 못한다. 6월의 푸른 열매는 작은 우주다. 엊그제 꽃이 푸른 우주가 된다니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산과 물은 우리의 거울이다. 그 시간 속에 변함이 우리의 삶인지도 모른다. 꽃이 어느 날 열매가 된다. 이 순간을 분간할 수 없도록 시간과 공간이 변했다. 아마 자연은 순간순간 이어지는 점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창조해 낸 것이다. 먼 우주에서 지구를 봤을 때 푸른 별이다. 그 작은 별에서 수많은 창조의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 먼 거리에서 이해하는 것보다 가까운 산과 물에서 이해하는 것이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다. 산과 물은 직접 만지는 것이 아니다. 좀 떨어져서 생각하는 존재다. 좀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선 거리를 두는 것이다. 내 마음을 보기 위해선 산과 물을 멀리서 바라본다. 어느덧 꽃이 푸른 열매가 되었다. 살구, 매실, 명감나무가 꽃의 자리에 서 있다. 삶의 자리엔 지난 역사를 남긴다.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실재하고 있다. 하찮은 사물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시간 속에 변함은 다 이유가 있고 아름답다. 푸른 매실은 이른 봄에 꽃향기로 선물했다. 이제 매실로 우리 손에 안긴다. 명감나무는 꽃이 연한 녹색이다. 열매는 여름 가을 푸르다가 늦가을에 빨갛게 열린다. 열매는 꽃송이처럼 달린다. 예전에 꽃과 같은 기풍으로 열매로 성장하지 못한다.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기존의 나를 잊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모두 낙과하고 만다. 비바람과 벌레들에게 이기려면 그 나무의 기초체력이 필요하다. 사람 같으면 기본 인격이 있어야 한다. 나무는 그 자리에 있지만 과실은 그 자리가 아니다. 해마다 다른 공간에서 낳고 자란다. 창의력과 상상력도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기존의 나를 버리고 앞으로 매진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상상력이 좋은 것은 기존의 관성의 법칙이 없기 때문이다. 늦봄의 푸른 열매는 상상력의 응집이다. 멀리서 보이는 지구의 푸른 별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 앞에 작은 열매도 내 얼굴인지 모른다. 이른 봄부터 위대한 열정으로 응축하고 있는 푸른 열매는 계절의 눈빛이다. 천 만개의 눈물을 머금고 있어도 부족하다. 그만큼 계절의 열정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이 익을수록 더 푸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