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 자녀 중에 두 아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됨을 감사합니다. 두 아들이 학교에서 선교사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당부를 합니다.
한국에 가 있는 광림 선생이 한국에 가기 전에 가르쳤던 학교의 마지막 날에 다른 인터미디에이터 학교로 간 흑인 학생들이 광림 선생이 한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는 인사를 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 흑인 아이들은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뉴질랜드에 이민을 왔지만 여전히 피부 색깔로 인하여 아웃 사이더 였고, 가난했습니다.
광림 선생이 이 아이들의 인성을 보면서 칭찬하고 친근히 해주었습니다. 한 번은 학교대항 육상대회에 그 아이들을 인솔해서 참석하고 집으로 데려다 주면서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그를 사주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그 흔한 맥도날드 햄버그를 처음 여기서 먹어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서 광림 선생님에게 “그 아이의 인생에서 너는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음 속의 선생님은 이렇게 학생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사주일을 맞이해서 우리의 영원한 선생님이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요13:13-15을 다시 읽어봅시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본문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세족식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 주신 일이 발 씻어준 것뿐 일입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발을 씻어주는 일만 행하면 되나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본보여 주신 일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중에 일부가 신약성경의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일용할 양식으로도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본보여 주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으시고 한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혹은 내일을 염려하며 물질을 쌓아 두기에 정열을 쏟으셨나요? 그렇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셨던 주님! 마지막에는 자신의 살을 찢어서 한 방울의 피까지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들과 소외 받는 자들에게 다가가셨고, 외롭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해 주셨으며, 아파하는 사람들의 곁에 있어 주시며, 심지어 가족의 죽음 앞에 슬퍼하며 고통하는 저들에게 죽은 자를 살려 한없는 그들을 위로하며 기쁨을 주셨던 주님이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행하시며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스승되신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때에 교회 선생님의 부인 되시는 권사님께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실 때에 마침 한국 방문 중이라 문상을 갔습니다. 영안실에는 제가 주일학교 교사 시절의 코 흘리개들, 전도사 시절 때에 가르쳤던 고등학생들이 중년의 신사 숙녀가 되어 많이들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중년의 아이들이 선생님, 전도사님 하며 인사를 하며 장난을 걸어왔습니다. 얼마나 흐뭇하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반성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때에 더 잘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문상을 마치고 후배 목사님 내외와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다가 고등학교 시절에 지도했던 목사님과 마주쳤습니다. 저의 인생에서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셨던 고맙고 감사하고 좋아하는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에 저는 섭섭함과 상처가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 목사님께서는 저에게 눈 인사 정도를 하시고는 옆에 있는 후배 목사와 단 둘이서 열심히 이야기를 주도하셨습니다. 마치 저는 옆에도 없는 것처럼 ….
나중에 함께 했던 아내가 저에게 말하기를 “당신을 마치 투명 인간처럼 대하더라”고 했습니다. 저에게는 그 선생님 목사님은 마음 가득하게 있는데, 그 목사님에게는 저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에는 ‘두 번 다시 볼 일이 있겠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기를 2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의 섭섭한 마음을 돌아보면서 저는 저 자신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가르쳐 주시고, 기도해 주셨던 선생님에 대한 마음이 늘 있었지만 말로써 행동으로써 구체적으로 행한 일이 있었는지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그분에게서 나는 아무 존재가 아니라도 나에게서 그분의 자리는 크므로 내가 해야 할 도리는 하면서 앞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여전히 저의 선생님으로 마음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 선생님은 한계가 있습니다. 흠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하신 스승 예수님은 다르시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교훈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좋은 관계가 교사의 실력과 인격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과 학생 사이의 좋은 관계가 되지 않는 중요한 책임이 학생에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나 원죄적 본능이 있습니다.
보십시오. 성경은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합니다(롬 1:28). 이러한 원죄적인 본능은 발전하여 사람은 마음에 부모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 어른 섬기기를 싫어하는 마음, 스승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말씀대로 살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며, 학생들은 공부하기 싫어하는 마음 때문에 마음에 스승 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좋은 인격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스승을 존경하고 섬기는 법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녀들이 스승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어 그 관계를 통하여 교육이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라도 밟지 마라’고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영락교회의 은퇴하신 장로님으로 대광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을 역임하셨던 분이 계십니다. 그 장로님은 학생들에게 아주 엄하여 한 때는 호랑이 선생님으로도 불렸던 분이십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 영어 시간에 들어가셔서 한 학생에게 영어 교과서를 읽게 하셨답니다. 그 학생이 영어 교과서를 아주 잘 읽자 지나가는 말처럼 '너 참 발음 좋다'라고 칭찬을 하였답니다.
그 호랑이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그 학생은 훗날 대학교의 영어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가 된 후 그 장로님을 찾아와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께 '너 발음 좋다'는 칭찬의 말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영어에 더욱 취미를 갖게 되었고 결국 영어 교수까지 되게 되었다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칭찬의 그 말 한마디가 그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선생님과의 좋은 관계가 그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영어 과목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국은 교육을 잘 받아 성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사의 영향력이란 이렇게 한 학생의 인생을 좌우하고 흔들어 버립니다. 이런 막강한 영향력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는 스승의 날이 있는지 모르지만 학기 중에 꽃 한 송이라도 카드와 함께 정성껏 아이들 손에 들려 보내면서 선생님에게 인사하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참 좋겠습니다.
선생님을 위하여 선생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하여 선생님을 높여드리고 귀히 여겨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선생님들을 매도하고 우습게 여겨 놓으면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누구에게서 교육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스승을 존경할 줄 알도록 집 안에서 교육을 하여 선생님의 관계를 바르게 하는 것이 성공적인 자녀 교육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신앙을 가진 부모들이 먼저 앞장 서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를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배우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가르쳐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말씀대로 살기 싫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님에 대해서 때로는 거부하려고 하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악한 사탄 마귀가 성도들의 신앙을 방해하기 위해서 가장 잘 쓰는 작전 중에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도들이 목회자와의 관계를 틀어 놓으므로 신앙생활에 실패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목회자와의 바른 관계입니다. 목회자와의 관계가 좋아야만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잘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방문했던 어느 교회에서 목격한 것인데, 예배 시간에 대표기도를 하러 단 위에 올라간 장로님 때문에 제가 참 힘들었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특별히 목사님의 설교 시간에 고개를 푹 숙이고, 굳은 얼굴로 시종일관하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나오기까지 상당한 책임이 목사에게도 있겠지만 상당한 부분은 그 장로님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책임은 혹 서로 나눌 수 있을는지 모르나 신앙적인 손해까지 함께 나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늘 조심하고 노력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과 인생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미국의 부자 록펠러를 아십니까? 그가 그렇게 훌륭한 신앙과 그로 말미암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실한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록펠러의 어머니가 유언을 남기기를......
첫 번째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라는 말씀이었고
두 번째는 목사님과의 관계를 잘하도록 힘쓰라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록펠러 어머니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일러준 두 번째 말씀의 원래 내용이 무엇인줄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이러한 표현은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록 펠러의 어머니가 자기 자녀들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하였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록펠러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의 유명한 최고의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는 단지 돈을 많이 번 재벌로만 유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돈을 잘 쓴 재벌로 유명합니다. 그가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 된 것과 그 어머니의 가르침과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교육이 그의 자녀를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록펠러 어머니가 자녀에게 남긴 유언 10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을 친아버지 이상으로 섬겨라.
친아버지가 아들에게 생계를 공급하듯,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목사님과 좋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복을 받는 첩경이라는 말입니다.
3)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충성해야 하며 본 교회에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4)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십일조를 우선적으로 구별해 놓고, 나머지를 가지고 생활하라는 말입니다.
5) 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리를 두기 때문에 일마다 장애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이 모든 일에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는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7)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알게 모르게 계속적으로 짓는 죄를 가능한 빨리 회개하여 죄로 인한 어려움과 고통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하루를 성공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9)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그러나 절대로 발표하지 말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10) 예배 시간에 항상 앞에 앉아라.
은혜를 받기 위해서 말씀 듣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록 펠러 어머니의 유훈에 대하여 거부하는 마음을 가진 자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의미와 중심에 대한 교훈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노년에 믿음의 아들이요 제자였던 디모데에게 스승으로써 당부하고 당부한 내용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4-15)
두 가지를 스승은 제자에게 당부합니다. 누구에게 배웠느냐? 스승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존중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배웠느냐? 스승의 가르친 말씀인 성경을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성경으로 온전한 삶을 살기를 당부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의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이들은 누구보다 일찍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을 섬깁니다. 기억해주고 격려와 기도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분들을 기억하고 존중하며 그 가르침인 성경대로 살아서 우리 모두 세상의 빛과 소금 되어 제자 된 삶 동시에 스승 된 삶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의말씀 듣고서(204, 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