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뉴밀레니엄시대의 과학과 종교의 통합 패러다임
근대 과학과 전근대 전통 종교 사이의 통합은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아직은 풀리지 않는 화두 같은 것이다. 이 책에서 윌버가 적시하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다섯 가지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관념론적이거나 포스트모더니즘적이거나 신과학적인 접근에 의한 다양한 통합 시도들이 있었지만 극히 일부만이 호기심 차원의 관심을 끌었을 뿐 모두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 『신의 과학: 과학과 이브의 창조론의 조화The Science of God』(슈뢰더 지음, 이정배 옮김, 범양사출판부)라는 책에서, 슈뢰더는 창세기의 창조의 6일 간의 의미 속에 빅뱅의 150억 년이 들어 있다는 자기 방식의 수리적 추리로 과학과 종교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식의 흥미는 있지만 엉뚱한 발상으로 기독교 창조론을 경험주의적 현대과학에 의해 지나치게 확대하여 해석하려고 하는 시도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과학적 사고에 젖은 이성적인 현대인에게 과학과 종교의 통합이 당장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앞에서 언급한 바대로 최소한 화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 것은, 바로 윌버가 말하는 이성적인 현대인에게 그럴싸하게 들리는 신물리학과 신과학적 직관과 유비를 바탕으로 접근하는 그럴싸함 논법들이다. 예컨대, 이 책에서 윌버도 지적하고 있지만, 카프라는 양자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유사성을 통해 자연 현상 너머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신비의 세계를 드러내고자 시도했고, 데이비스는 양자론적 천체 우주의 과학적 발견을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있거나,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신물리학자나 뉴에이지 과학사상가들이 빅뱅 급팽창 우주론에서 시공간 이전에 비물질적 로고스logos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든가, 과학이 빅뱅을 발견했으므로 과학 스스로가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다는 주장이나, 또는 자연의 이면에 불가사의한 예지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주장 등을 펴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윌버가 지적하듯이 일반인들에게는 모두 그럴싸함 논법으로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통 과학자들은 가벼운 관심 정도나 황당한 논법으로 간주하고 있고, 정관의 눈(영안)이 깨어 있어 정신 세계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성의 눈(심안)에 의해 초월적인 세계를 넘보려는 어리석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서 윌버는 그럴싸함 논법뿐만이 아니라 왜 낭만주의자, 관념론자, 포스트모던적 신 패러다임주의자, 해체주의자들에 의한 통합을 향한 종래의 시도들이 모두 실패했는가를 체계적으로 설득력있게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과학과 종교의 통합은, 분명 복고적 낭만주의와 같이 과거로의 회귀에 의해서나, 포스트모던 신 패러다임주의자들의 해체와 이론주의에 의해서는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니란 점을 윌버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진정한 과학적 방법(타당한 지식의 세 요건)은 육안뿐만이 아니라 심안과 영안에 의해 획득된 자료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하고, 그래서 그가 말하는 진리의 네 상한의 심층과학적 네 상한/네 차원 특성이 주요 전통 종교에서 나온 영원의 철학의 존재의 대사슬의 다수준과 어떻게 서로 상응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통합적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윌버는 과학과 종교의 진정한 통합의 길을 밝히고 나서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는 신화적 교리를 강요하지 말고 오히려 각 종교의 창시자와 성현들의 전승 지혜에 충실해야 하며, 반면에 과학은 편협한 육안에 의한 경험주의적 경험과학이 아닌 인간의 세 가지 수준의 인지 능력(육안, 심안, 영안)에 의한 심층적 경험(체험)과학으로서 과학적 방법의 세 요건을 만족하는 것은 모두 심층과학으로 인정해야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통합적 시각과 함께 자연스레 과학과 종교의 통합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윌버는 이 책에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나름대로의 화해와 포용의 방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다른 것이고 별개의 문제라고 무관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과학과 종교는 진리에 대하여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지 서로 적대적이거나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특히 그는 앞에서 언급한 그의 통합적 진리관에 바탕을 두고 과학과 종교 양쪽 진영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로, 그리고 서로의 화해와 통일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통합의 방법을 명석하고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아직도 실증주의적 경험과학과 과학 지상주의의 최면이 걸린 수많은 현대인들이 부지불식간에 과학주의적 사고와 깊이가 없고 단조로운 의식에 갇히게 됨으로써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세계의 실재성만을 인정하고 정신, 영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그 실재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실증적, 경험적 인지의 회로에 빠져 단조로운 평원적 의식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이 과학적 진리에 대한 심층적이고 통합적인 시각과 정신 세계에 눈을 떠서 열린 지식을 갖게 될 때 비로소 과학과 종교의 통합의 길이 기초가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전근대 종교의 신화적 교리를 맹신하는 종교인들이 신화는 그냥 신화로서 받아들이되 종교의 참 가치는 동서양 종교의 창시자와 성현들의 전승 지혜에서 나온 영원의 철학/종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명상, 기도, 수행을 통한 초월적 세계에 대한 신비 체험과 정신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영성은 정관/명상/기도를 통해 깨어나게 하되 초월적 세계의 실상에 대한 참된 앎은 정신과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과학과 종교의 통합은 결코 어려운 탁상공론만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현실적 장애를 넘어서는 실질적인 통합의 길을 제시하게 위해 이 책 『감각과 영혼의 만남』에서 윌버는 과학과 종교에 대한 단순히 선호하는 어떤 편향된 하나의 포스트모던적 통합 방향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마디로 동서양의 전승 지혜의 핵심인 영원의 철학/영원의 종교에서 말하는 존재의 대사슬/대원환(의식의 스펙트럼)의 각 수준과 근대성의 존엄성인 가치권의 차별화로 인한 진리의 네 상한 사이의 통합적 대응이라는 진리에 대한 완전한 시각을 통한 통합 패러다임의 전형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 대사슬/대원환에서 나온 온우주의 대홀라키의 각 수준에는 과학, 도덕, 예술의 3대 가치의 네 상한적 차원이 존재한다는 통합적 진리으 구도를 통해 과학과 종교의 진정한 통합 패러다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좀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앞에서도 강조한 바와 같이 윌버에 의하면, 과학과 종교의 통합은 전근대 종교의 존재의 대사슬과 근대성의 가치권에 대한 차별화와의 통합이므로 대사슬(존재의 각 수준, 의식의 스펙트럼, 의식의 기본 구조)의 각 수준을 다시 네 상한이라는 대등하지만 서로 상관되는 차원으로 구분함으로써, 존재의 각 수준에서는 3대(과학, 도덕, 예술) 가치권들이 의념적(내면적, 개체적), 행동적(외면적, 개체적), 문화적(내면적, 집합적), 사회적(외면적, 집합적)으로 차별화되고 통합된다는 것이다. 윌버가 제시하는 과학과 종교의 이와 같은 통합은, 우리가 열린 의식을 가질 때 "과연, 진리에 대한 접근과 그 표현은 다양하지만 진리는 심층적이며 상보적이고 통합적인 조망으로 보아야 하는구나"라는 깨달음과 함께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는 그러한 통합 패러다임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21세기에 우리 인류가 상생의 시대, 영성의 시대를 열어나가려면 참 과학적인 진리에 대한 올바른 혜안을 가진 과학적 예지로 빛나는 종교인과 영성의 체험을 못하여 영안(정신의 눈)은 뜨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정신 세계를 직관이나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심안을 가진 과학자들이 서로를 열린 의식으로 이해하고, 서로를 포용하며, 종교의 전승 지혜와 과학의 진리를 심층적인 완전한 시각에서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과학과 종교는 하나의 진리관으로 통합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통합 패러다임이 보편적인 진리관으로 정착하는 날이 오면 영성을 상실한 오늘의 우리 인류는 뉴밀레니엄의 21세기 상생相生의 시대, 영성의 시대에 고도의 과학기술 문명을 누리면서도 정관/명상/참선/요가를 일상화함으로써 지혜와 영성이 넘치는 신인류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