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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시대의 애호파
우리 꼬마 친구,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나도 피곤해. 벌써 128번째인데.
알았어, 알았어. 이 박스에 들어가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는 말이야, 네게 나쁘거나 어려운 게 아니란다. 닝겐들은 말이야, 시간을 움직여서 마음대로 옛날옛날씨와 나중나중씨로 가고 싶었단다. 그런데 그러려면 시간을 넘어야 했단다. 실장채씨보다, 빗물씨보다도 빨라야 했어. 닝겐들이 가진 세레브하고 튼튼한 붕붕씨도 만족스러울만큼 빠르지 못했단다. 그래서 ‘블랙홀’ 이라는 물건을 쓸 수 밖에 없었어!
여기 닝겐들이 ‘슈뢰딩거 골판지’ 라 부르는 골판지가 있단다. 그래, 네가 그토록 찾던 분홍색에 단단한 투명투명 박스씨야. 튼튼하고 세레브해보이지? 무시무시한 태풍도 이 박스를 부수진 못한단다. 당연하지. 반물질 복제체로 구성돼서 세월도 블랙홀도 차원이동도 구조를 뽀개 놓지 못하고 항상 다시 현실로 토하는 엄청난 물건이거든.
아, 알았어, 어려운 이야기 안 할게. 네 말대로 이제부터 헛소리하면 머리에 운치범벅하기, 약속.
만약 네가 성공한다면, 이 안에는 예전부터 네가 들어있는 상황이 될 거야! 아, 잘 이해가 안된다고?
음… 말 그대로야. 네 임무가 성공하면 이 안에 네가 들어있을거란다. 네가 들어있는 골판지니까, 옛날부터 네 것이었던 게 되겠지!
그래! 그러신 레치! 너님 것이었던 레치! 그렇지!
그래서, 각설하고… 네 도움이 필요하단다! 세레브한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네가 성공하면, 물론 뛰어난 네가 실패하지는 않겠지만, 성공하면 너는 시공간을 뛰어넘은 최초의 존재가 되는 거란다!
온 세상에 시간을 넘어선 실장석은 너 하나뿐일거야!
정말 간신히, 녀석은 박스에 들어갔다. 나는 마지막 박스를 무인선에 태워 블랙홀로 내보냈다.
수십개의 무인선이 블랙홀 궤도로 날았다. 빙빙 돌다, 에너지 임계점에 달하면 사라질 것이다. 얇고 복잡한 단 하나의 길을 통해, 한 달 전의 과거로.
마침내 모든 일이 끝났다. 결과를 관측하고, 샴페인을 까면 된다. 동료들은 적어도 일주일 씩 걸리지 않았노라며 화상연락으로 비꼬았다. 나는 대답하기도 싫은 기분을 느꼈다.
나도 실험윤리에 대해선 안다. 피실험자에 대한 의식주 제공, 충분한 정보제공, 선택권 제공. 근데 그게 사람이면 몰라. 맞아죽을지도 모르는데 가택침입하고, 수거통에 들어가면서도 선택받았다며 짖어대는 동물에게 ‘말이 통한다’ 는 이유로 이런 복잡한 동의 절차를 요구하는게 말이 되냐는 말이다. 협회가 존폐를 걸고 덤벼서 온갖 규제 뿐만 아니라 영상, 녹취 감시 수단까지 마련하다니. 이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걸까. 사람을 태워서 블랙홀에 보낸대도 놈들이 이만큼 신경썼을까.
뭐, 이젠 상관없다. 그 치들도 나름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
내가 나쁜놈이어서 놓쳐버린 도덕적 딜레마가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들이나 내 인격이 어쨌건 내 관심사는 하나다.
마침내 인류는 위대한 발견을 앞두고 있다.
혹은 이미 지나쳤거나.
같은 한 표
수조 안에서 구더기들을 안고 떠는 엄지에게 말했다.
다수결에 달렸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저녁먹기 전에 모두 입마개를 풀어주마.
그때, 멈추자는 의견이 많으면 멈출 수도 있어.
다가오는 온기를 느끼고, 어느 구더기가 레후웃 하고 웃으며 꼬리를 흔들어 똥을 튀겼다.
고개를 들어 달궈진 바늘을 볼 수 있는 엄지는 구더기의 몫까지 피눈물을 흘렸다.
한차례 난장이 끝나고 나서 한시간 뒤, 온몸에 구멍이 난 채 묶여 있는 엄지와 구더기들에게 인간이 찾아왔다.
엄지는 첫번째 구더기의 입을 막은 가죽마개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한 시간동안 위석을 깎아가며 짜낸 힘으로 구더기들을 설득했던 엄지는, 구더기의 입 끝을 홀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눈앞의 콘페이토보다 간절한 열망을 담아 바라본다. 제발.
“오늘은, 바라는게 뭐니?”
[우지챠는 프니프니 바라는 레후!]
같은 한표 2
[프니프니후?]
[분명 우지챠가 간절히 바라는 다른 게 있을 것인 레치!]
[프니프니후?] [명답인 레후! 프니프니가 분명한 레후!]
[제발, 프니프니가 아닌 레치… 명심하는 레치. 닝겐상이 오면 이렇게 말해야하는 레치.]
화면으로 지켜보던 친실장은 환호했다.
[데즈우웃! 그런데스! 말하는데스! 학대를 멈추어달라고 말하라고 가르치는 데스!
제발! 제일 현명한 자인데스! 과거의 와타시를 꼭 빼닮은 장녀챠인데스으!
장녀어어어! 이제라도 좀 정신차리는 데샤아아아!]
[고귀한 와타시가 경고한대로오오! 세레브한 와타시만 먹을 콘페이토를 먼저 내놓고!
와타시만이 즐길 아와아와한 목욕을 대령하면!
그때서야 똥닝겐 노예와 말이나 섞어보겠다고 말하는 레챠아아아!]
친실장은 파킨했다.
빠루도, 코로리도, V8엔진 슈퍼카의 풀악셀 로드킬도 그렇게 신속하고 명쾌하게 친을 절명시키진 못했을 것이다.
우주시대의 학대파
양자컴퓨터의 계산으로는 분명 이 녀석은 내 설명을 들으며 레프픗거리며 웃고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계산값 수정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발견이다.
양자 뒤틀림으로 무언가 잘못되어버린 엄지, 또는 엄지였던 것은 무언가 깨달은 모양이다. 실장석의 대가리로는 이해해선 안되는 무언가를 알아버리고 공포에 질린 눈.
녀석은 나의 130번째 설명, 또는 녀석이 목격한 130번째 우주에 있는 나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했다. 말도 하지 못하는 녀석을 대신하듯, 녀석의 위성이 공명하는 소리를 링갈이 번역해 알려준다.
[삼대를 운치에 장을 담구어버릴 똥닌겐의 빡대가리에서 꾸덕꾸덕 기어나온 마라같은 설명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레챠아아!
아야아야한 데스! 괴로운 테스! 알 순 없지만 알게되는 레삐야아아!
백번 일가실각해 마땅할 노예 똥닝게엔! 왜 하필 와타시를 ‘자꾸’ 던지는 테챠아아아아… 데엥? 레후? 우지챠는 어려운거 모르는…테치? 데스우? 레에에! 데챠아아아!!]
그래. 네 현실은 반복되고 있었단다. 동시에 연속되고 있었지.
그래서 놈은 망가졌다.
어떤 이론 – 내가 깊이 신봉하며 오늘로 인해 완벽히 검증된 이론 - 에 의하면, 가변현실에 무언가를 보내거나 받는다고 나머지 우주 구성원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은 없다. 우주에 박스 하나, 실장석 하나가 있거나 없는 정도의 영향 뿐이다. 따라서 이 실험은 안전하다. 반면, 보내진 무언가는 형태는 유지할지언정,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도약을 거칠수록 ‘자신을 잃을’ 확률이 높아진다. 3차원을 넘었다 돌아온다는 건, 3차원의 존재가 붕괴되었다가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예를 들어, 2차원 세상에 살던 미키마우스가 만화책에서 벌떡 일어난다고 쳐보자. 2차원에 있는 미키마우스가 처음 3차원의 자신을 자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질량과 두께가 생긴 자신을 발견하고 놀랄지도 모른다.
0의 질량과 0의 두께를 가지고 있던 것이 무한히 늘어난다. 2차원 세상에서는 분명 존재했던 기존의 존재는, 3차원 세상에서 0에 수렴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두 미키마우스는, 엄밀히 같은 존재가 아니다.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시간을 되돌려 누군가를 과거로 보내는 것은 3차원에서 4차원으로 보낸 미키마우스를 다시 3차원에 쑤셔넣는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우린 모른다. 현재 우리가 하려는 실험은, 물론 대단한 투자와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단지 궤도를 측정해 블랙홀의 손에 들려 보내는 일종의 ‘탁아’에 가까울 뿐이다.
이 엄지에게 일어난 일이 그것과 비슷하다. 붕괴와 재구성. 그것은 어쩌면 생물에겐 가혹한 고문일지도 모른다.
당장 내가 ‘슈뢰딩거 이론 박스’를 통해 129번째에게 인계받은 이 실장석을 다시 블랙홀에 태워 가변우주로 쏘아 보내진 않을 것이다. 그 전에 안전성도 가설도 검증해야 할 게 많으니까. 아마 수천 기의 AI가 같이 연산해도 한 달은 걸릴것이다. 아, 의미심장한 한 달.
129번째 나도 분명 그 한 달 전에 박스를 받았겠지.
슈뢰딩거 밀폐물질은, 처음엔 단지 ‘블랙홀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 설계된 혁신적 발명품이었다. 그 마법의 물질을 이용해 시간이동 실험에 쓰려고 수 십개의 박스로 가공한 뒤 기지로 옮겼는데, 그 박스들은 어느 순간 이미 실장석들을 담고 있었다. 우리가 담아서 보내려고 마련해놓았던 실험용 실장석들을. 실험이 시작도 전에 성공한 셈이었다.
AI의 연산은 그것이 시간도약 성공임과 동시에, 지난 세대의 SF 창작물들의 주장처럼, 같은 우주에서의 과거나 미래가 아닌 ‘평행 우주’로 보내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 우주에 A의 시간 총량은 일치한다. 결국 물고 물리는 발송만이 가능할 뿐이다. 우리는 실망하는 동시에 만족했다.
AI의 설명은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다.
만약 2번 우주에서 실장석 A를 미래에 보내면, 똑같이 A를 미래로 보냈기에 이미 A가 없는 3번 우주가, A가 미래로 돌아오기로 한 시점에서 2번 우주가 보낸 A를 받는다. 그리고 A가 없는 2번 우주는, 언젠가 1번 우주가 보낸 A를 받는다.
A를 미래에 보낸 우주가 하나뿐이면 어떡할거냐고? 그럴 수 없다. 우주는 무수히 많으니까. 실장석을 우주에 던져버리는 행동을 저지른 우주도 무한히 많다.
더 큰 차원 단위에서의 질량보존을 존중해줄만큼 넉넉하게.
과거로 보내도 마찬가지다. 그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니까. 우리 우주는 들에서 이 엄지를 주워서 블랙홀로 날려버린 대가로, 이미 이전에 다른 우주에서 과거로 쏜 엄지를 받았다.
그럼 만약, 우리 계획이 방해받아서 이 엄지를 쏘지 않는다면, 받지 않게 되는 걸까? 과거로 무언가를 보내는 타임머신이 미래의 행동을 예견한다는 SF작가들의 머리 아픈 주장은 현실이 되는걸까?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 당장 더 쉽고 재미있는 것이 있다.
내 눈앞의 엄지는 수십 달을 산 동시에 한 달도 살지 않았다. 또는 한 순간에 수백 번 덮어씌워졌다. 녀석은 그것을 깨닫고 미친듯이 발광하고 있다. 통각이 감지하지 못하는 영혼의 고통을 느끼며.
이 엄지 뿐이 아니다. 다른 실장석들에게 일어난 반응도 마찬가지로 놀랍다.
완전히 구더기로 퇴행했다가 몇시간에 걸쳐 고통스럽게 돌아오는 녀석, 언어중추는 멀쩡한데도 말을 잃어버린 녀석은 그나마 멀쩡한 거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자기 팔다리 떼서 분대속으로 쑤셔넣은 녀석들이 상당수다. 의료기구의 역할을 겸해 이상현상이 감지되면 정지장을 형성해 물리적 상태를 고정하는 상자의 기능 때문에 옴짝달싹 할 수 없어 불가능하지만.
나는 학대파다. 하지만 녀석을 더 학대하고픈 욕구는 들지 않는다.
녀석에게 더 무슨짓을 한들 녀석이 더 의미있게 괴로워할 수는 있을까?
멀쩡한 몸이, 무의식이 쏟아내길 요구하는 검은 눈물을 흘리다 당황해 과부하가 온 엄지는 박스의 기능 때문에 발작조차 맘대로 하지 못한다. 박스의 기능 덕분에 장기 기능이 일정히 유지되어 행복회로에도 파킨에도 도달할 수 없을 녀석의 운명은, 이미 더 이상의 학대가 필요 없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영원히 타임머신을 탈 운명, 영원히 반복될 존재론적 학대.
정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기형적인 비명을 지르는 엄지에게 영양액을 주입한 뒤 뚜껑을 닫아 보관고에 넣었다. 131번째, 132번째, 그리고 그 다음의 나는 더더욱 만족스러워 하길 바라며.
학대파들도 위대한 발견을 앞두고 있다.
혹은 이미 지나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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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한표 편은 공론화된 어느 이슈와도 무관합니다.
어느 진영 어느 입장에서나 하는 말이고 생각이죠. '저런 인간도 똑같은 한표다' 라고요.
다수결이나 협동과제는 정신 똑바로 안차리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조별과제 경험때문에 적은 단편입니다.
1편의 엄지가 2편에서 친실장인지 엄지인지
정답을 맞추시는분에겐 십만탁아를 선물로 드리기는 개뿔이
우주시대의 학대파는 거의 뭐 항문으로 적은 난문입니다.
읽기 뭣같으시면 이거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엄지를 다른 우주로 보냅니다.
그 과정에서 스타크래프트 스카웃같은 우주쓰레기 실장석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버전 우주쓰레기가 됩니다.
영혼이 요단강을 넘어 고통받습니다.
고통받은 엄지를 다른 우주로 보냅니다. 엄지의 영혼은 한번 더 요단강을...파킨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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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려운거 모르는레후~프니프니해주는레후~
다른건 모르겠고 이벤트 호라이즌이 떠오른 레후~오마에는 지옥으로부터 오마에를 구하는 레후~
반바지같네요
명작이네요
뭔가 어려운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