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3 水/ 사순 제4주간 수요일.
-평일 미사:
① 이사 49,8-15 ㉥ 요한 5,17-30
* 오늘의 성인('24.03.13)
니체포로 주교/순교 남, 님포라 순교자 여, 루데리코 순교자 남, 마체도니오 순교자 남, 모데스타 순교자 여, 살로몬 순교자 남, 아라비아 순교자 여, 에우프라시아 동정녀 여, 크리스티나 동정/순교 여, 테오도라 순교자 여.
ㅡㅡTㅡ묵 상ㅡTㅡㅡ
♧ 사순 4주 수요일-여태 사랑 ♧
ㅁ
오늘 이사야서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시온에게
하느님께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시는 장면입니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너에게 응답하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49,8ㄴ)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49,14)라고 대답하고,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다시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49,15) 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런 엇박자가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은 사랑하셨다고 하는데 인간은 그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고 하고,
하느님은 은혜의 때에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의 날에 도와주셨다고 하는데
인간은 그 은혜를 받은 적이 없고 그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온만 이런 것이 아니고 사실 많은 경우 우리 인간은 이렇습니다.
고통이 극심할 때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고통일 뿐이고,
고통을 통하여 구원하시는 그 은혜를 그때는 느끼지 못하여 버림받았다고
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은혜로 느끼곤 합니다.
사랑과 고통의 불일치요 때의 불일치인 겁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이런 우리 인간의 불일치와 달리
아버지 하느님과 당신 사이의 일치를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요한 5,17)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요한 5,21)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주님 친히 이렇게 정답을 말씀해주십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요한 5,19)
그러니까 주님의 관상적 믿음이고, 믿음의 관상 때문입니다.
먼저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근본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런 믿음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않는 관상이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은 다 사랑이라는 믿음이 있고,
그래서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져도 그것이 바로 은총임을 봅니다.
그리고 벌어진 일들과 그 일을 벌인 인간들을 볼 때
그것들에 의해 현혹되지 않는 하느님 관상을 하기에
그것들로 인해 실망이나 절망이나 포기를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그 생명의 일을 계속하십니다.
여태 사랑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은 여태 사랑입니다.
여태 사랑은 중단되지 않는 사랑입니다.
여태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좌절감이나 절망감 때문에 중단치 않는 사랑입니다.
내 사랑을 배신하는 그 인간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한국관구/
서울 오류동 공동체<여기밥상>가족/ 인천 석남동 수도원 분원"
(ofs/정릉 아타나시오 韓 옮김)
ㅡㅡTㅡ복 음ㅡTㅡㅡ
◈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7-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17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적독서 후에 잠시 묵상합니다>
<묵상 후 사도신경을 바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