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歸農)이란, 본래
도시에서 살아왔다가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사이농농촌출신 중 도시에서 살고 있다가 고향생각이 나거나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는것은 귀농이 아니라 귀촌이라고 부른다. 직장을 도시에 두고 주거 등 생활권을 이주하는 경우도 귀촌이라고 칭하며 굳이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조건을 갖추면 세금이나 지원금의 혜택을 받게된다. 또한, 도시에 살다가 농촌에 들어가서 거주만 하고, 농사 이외의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도시로 출퇴근하는 경우에도 귀농이 아닌 귀촌이라고 한다.
도시로 몰려들었던 과거시절에는 귀농하면 도시에서
취업포기자나
백수 또는
명예퇴직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할 일도 없어서 그거라도 지어서 먹고 살아야한다는 편견 및
고정관념대부분의 경우 TV, 드라마, 다큐에서만 보여주는 거짓된 가짜 농촌의 이미지만 보고 귀농을 시도한다. 강력한 각오와 다짐, 충분한 정보와 경험 그리고 돈과 귀농지에 인맥조차 없는 사람들은 이 문서를 잘 읽어보길 권유한다. 값싸보이는 시골의 전원주택이라도 건설비, 자재비, 각종 시설비 및 쓰레기 처리비 등을 합하면 몇억씩 깨지기 일쑤다. 2~3억에 다 정착할 수 있으면 대박인 수준. 게다가 마을에 수천만원의 발전기금도 내야 한다. 엄청난 돈이 날아가는데, 심지어 잘 팔리지도 않는다. 즉, 환금성이 형편없다.
서브컬쳐에서는 큰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주연 및 조연이 '이 일만 끝나면 귀농을 하겠어.'혹은 '이것만 끝내면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나 짓고 살자!'라고 권하는 죽마고우같은 식으로 훌륭한
사망 플래그과거 1960~70년대 경제발전기 당시 서울 등 도시로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이로 인해 농촌의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어서 이제는 노인네와 아이들 몇몇만이 남았던 쓸쓸한 곳으로 전락하였고 그나마 남은 아이들 마저도 부모를 따라 도시로 전출가는 등 다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농촌에 있는 일부 학교가 폐교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기또
매스컴을 통해서 널찍한 잔디와 정원이 있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동네와 동화같은 농촌마을의 집들을 보면서 그들의 여유로움과
개인주의 라이프가 부럽기도 하고, 빽빽한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살아가는 자신들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되는 현실이 답답해서 농촌의
전원주택처음 농촌에서 귀농하시면서 사시다보면 가장 힘든 것이 농민들의 텃세와 부심 때문이라고들 하는데 농촌의 경우 성향에 따라서 농민들이 향토 부심이나 텃세를 빌미삼아서 갓 귀농하였던 사람들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는 고충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 군청 공무원
농촌의 경우에는 도시와는 다르게 인구가 적은 편에다가 그렇기 때문에 서로 면식이 있거나 아는 사람에 대한 친근감이 높아보이는 반면에 도시에서 갓 귀농한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꺼리거나 싫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농촌의 경우 공동체 생활성향이 강하고 마을 사람들끼리의 협동과 단합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드물어보이는 도시에 비해서 향토적인 자부심이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그런 경험이 없어보이는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를 하거나 불신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 - 대학교수
농촌이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은 지역이니만큼 문화 시설, 여가 시설 등 사람의 편의를 위한 시설은 도시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다.
교육군 및 학군의 부족
이촌향도가 이어진 1960년대 이후로 농촌 소재 학교들은 소아 및 청소년 인구의 이탈로 학교 대부분이 폐교되거나 폐교위기에 처해있다. 당연히 학생들 상대로 하는 학원도 점차 사라지고 있어 사교육을 받기도 어렵다. 공립학교에서 시행하는 방과후학교도 학생 수 부족
[2], 강사를 구하기 어려운 점
[3]
교통 문제
당연하지만 전철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어느 나라든 전철은 대도시 위주로 짓지 사람도 거의 없는 농촌에 지을 이유가 없으며 한국도 마찬가지다. 버스야 있긴 한데 1시간에 두 대 오는 것도 농촌 기준에서는 많이 오는 거다. 정말 심하게는 하루에 두 대 오는 노선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즉 운전 면허 + 자기 차량이 없다면, 대도시 근교가 아닌 완전한 시골 지역으로의 귀농은 거의 포기해야 한다고 보면 된다.
도시에서 운전하는 데 익숙한 귀농인들이 당혹감을 일으키게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농촌 지역에는 가로등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동네 안에는 있을 수도 있지만, 동네까지 들어가는 길은 대부분 흙길이나 자갈길에 양옆은 논밭인데 가로등은 고사하고 인가조차 없어 밤이면 그냥 칠흑같은 어둠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게 가로등은 농작물 생육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농촌에서 마음껏 불을 켜댈수가 없다.
비포장 도로인 경우도 많다. 도로는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되고 밤새 쌓인 눈도 출근시간 지나면 거진 녹아있는 도시에서 운전하던 사람들은 자갈길을 운전하면서 차 안에서 팝콘이 된 기분을 맛보거나 아침에 일어났더니 길에 눈이 허리까지 쌓여있고 심지어 아무도 그 위를 지나다닌 흔적이 없는 사태에 직면하면 동공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이게 특히 부각되는 점이, 농업 특성상 트럭의 사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눈길의 트럭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사람이 걷는 게 차라리 나아보일 정도의 굼벵이같은 속도를 보여준다. 오르막 눈길에서 교통정체가 일어나는 주범이 트럭과 버스일 정도. 승용차는 그나마 낫지만 안심할 수 없다. 길이 좁아 다른 차가 말썽을 부리면 그대로 갇혀있어야 한다.
의료 문제
농어촌 지역은 병의원, 특히 상급 종합병원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고, 진료 과목도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혹여나 병원에 가야할 일이 있는데 가까운 병원이 휴원을 한다면 최소 인근 중소도시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게다가 응급 상황 발생 시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라 생존 확률이 떨어질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몇년전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주민들이
성서동산병원
농업 비용 문제
원래 그 지역에 조상 대대로 내려온 토지와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땅값, 자재비, 시설비, 농기계, 아무리 지원을 받아도 적어도 투자할 비용이 억대 이상이 든다. 농촌 집값이 싸다고 하지만 거저먹는 수준으로 싼 집은 애초에 없을뿐더러 재산 가치로서는 거의 빵점이라서 다시 팔고자 할 때에는 팔리지도 않는다. 간혹 대지 면적이나 건물 면적에 비해 너무 저렴한 주택이 매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허물어지고 있는 주택이거나 폐가이므로 적당히 수리하면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중개업자의 말을 절대로 믿으면 안된다. 게다가 후술하는 수천만원 단위의 마을발전기금, 그리고 그와 별도로 매해 조합원 회비를 뜯어가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다.
우선 몇 가지 사례부터 제시한다.
#1. 귀촌을 꿈꾸던 A씨(37)는 경기 남양주시의 한 계곡 주변에 전원주택을 짓기로 하고 2011년 토지를 매입했다. 전원주택 대지 기반공사를 마쳤을 때 마을 주민들이 찾아왔다. 주민들은 “기반공사 중 발생한 폐기물을 불법적으로 묻는 것을 확인했다”며 “마을발전기금 7000만원을 내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후 주민들은 마을 행사 등 주택공사와 관련도 없는 일들이 있을 때마다 찬조금을 요구했고, A씨는 결국 귀촌을 포기하고 땅을 팔아버렸다.
#2. 2011년 강원 영월군 S면으로 귀촌해 하천부지에서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 여름 성수기만 되면 원주민들이 운영하는 캠핑장의 ‘공공의 적’이 됐다. 원주민 캠핑장 대부분이 하천부지를 이용하고 있는데 유독 이씨의 캠핑장만 군청의 단속을 받았다. 최근 100만원이 넘는 과태료 고지서를 받은 이씨는 “캠핑장을 운영하는 지역 주민들이 신고한 것”이라며 “캠핑장을 지을 때는 하천의 돌 하나만 옮겨도 불법이라며 공사를 방해했다”고 말했다.
#3. 귀농을 도와준다면서 집이나 밭을 알아봐 주고
고부가가치 작물이라면서 종자를 심을 걸 추천사기#4. 시골마을은 도시와 달리 물탱크에 물을 저장해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탱크 시설 등을 건설하는 데 마을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냈지만, 외지인들은 뒤늦게 들어와
무료로 이용하면서#5. 토지 소유에 대한 기준 차이도 원주민과 외지인의 골을 깊게 만드는 원인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외지인들은 농촌에 이주해 집을 지을 때 “내 소유의 땅”이라며 자기 땅을 지나가는데 마을 주민들이 쓰던 길이나 농업용수용 도랑을 막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시에서는 땅 3.3㎡(약 1평)가 큰 재산이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공동 소유’ 개념이 강한 마을 주민들은 평소 쓰던 길이나 도랑을 못 쓰게 되면서 불만이 쌓인다. 이 경우 소송까지 갈 수 있으며, 판례상으로도 이런 관습을 인정해주기도 하므로
[4][5]텃세
귀농인들의 실패 사례 중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이
원농민들의 텃세였다. 발전기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토박이 지역주민이 귀농인들을 깔보거나 아니꼽게 보며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다. 도시에서도 경우에 따라 텃세와 부심이 간혹 있지만, 농어촌에 비해서 매우 드물며
[7]농어촌 지역의 일부 텃세부림과 부심성향 때문에 귀농살이가 힘들다는 고충이 많다고 한다.
농민에 따라서 향토 자부심과 텃세가 심하여 도시에서 내려온 귀농인들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경우는 대체로 도시 출신의 귀농인에 대한 콤플렉스와 원농인들의 자기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비뚤어진 형태로 결합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이를 모르고 귀농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농민들과 갈등 및 분쟁을 벌이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고 결국에는 촌놈들과는 살 수가 없다며 다시 귀도(歸都)를 하는 등 농민들만이 가진 향토적인 텃세와 부심 때문에 갈등도 깊은 편이다.
[8]참고로 텃세 문제는 귀농인보다 귀어인이 더욱 심각하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귀농인의 경우 텃세라는 것이 심리적 측면에서 압박을 주는 것에 주로 한정되어 귀농인의 농업 활동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귀농인이 농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땅에 농사를 지을 수는 있다. 그러나 어촌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마을공동어장에서 비허가인이 수산물 채취, 양식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즉, 어촌계가 귀어인의 어촌계 가입을 막아버리면 귀어인의 어업 활동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버린다.
[9]관련 기사마을 고유의 규칙 적응 문제
그 지역의 향토적인 풍습이나 그에서 나오는
마을 공동체의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면서 주민들로부터 불신과 증오를 받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10] 드물게는 마을 전체가 토속 신앙 혹은 미니
종교에 심취해 있을 수도 있는데, 만약
개신교나
천주교농촌의 무서움.
마을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의 어려움
원래 고향이 농촌이거나 향우들과 친밀한 편이라면 몰라도 농촌과 인연도 없고 도시가 싫어서 무작정 귀농귀촌을 하게 되었다가 현지에서 문전박대와 외면 등을 당한 귀농인들이 가장 고충을 겪는 사례이다. 도시에서는 웬만큼 친하지 않은 이상 이웃집 열린 현관문도 멋대로 안 들여다보는게 매너인데 농촌에 와보니 남이 내 밥상에 올라가는 숟가락 개수까지 참견한다든지, 술자리에 멋대로 끌고 간다든지(더 심한 경우로는 나 없는새 내 집에서 멋대로 술자리를 벌이기도 한다)하는 식으로 사생활에 간섭받는 불만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답이 없다. 특히 젊은 부부가 귀농한 경우 짬밥(...)은 물론 연령상으로도 마을에서 거의 막내가 되기 때문에 마을 공인 노비가 되기 십상이다. 남편은 시내 나갈 일 있으니 차 대라
[11]도시사는 우리 애가 내려왔으니 와서 음식 해내라라는 해괴한 명령도 내려온다. 그리고 기껏 해주면 생판 남으로부터
애미야 국이짜다
농촌 분위기 적응의 어려움
고향이 농촌이라 농촌에서 자라고 향우들과도 인연을 맺은 경우라면 몰라도 애초부터 도시 태생으로 도시에서만 살아오다가 농촌으로 내려가니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낯선 분위기와 역한 집짐승 냄새, 그리고 농사 등 고된일을 죽어라고 해야 하니 도시에서보다 사는 것도 힘들고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이다. 여성의 경우는 더 심해서 농촌이나 어촌에는 아직도 가부장적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 도시 여성이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기가 매우 힘들다. 갓 귀농한 신참 농민들이 마을사람들과의 관계와 더불어 가장 불만을 표출하는 고충거리이다.
여기에서 미경험자란 원래부터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농촌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거나 농사를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농촌에서는 완전 초보적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특히 농촌 출신이라도 집 안 사정으로 일찍이 도시로 갔다면 농촌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기존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면 장비를 빌리거나 작물 시세나 모종 정보 등 유용한 정보나 농업에 관한 노하우를 많이 얻을 수도 있다. (이마저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나 앱 등을 통해 혼자서도 얻을 수 있다.) 좀 돈 있는 노부부라고 하면 어느 작물이 잘 자란다고 돈을 많이 벌수 있으리라 권유를 많이 받는다.
[12]원래부터 도시에 살던 사람이 농촌으로 가는 것을 두고 '귀농'이라는 표현은 합당하지 않다라는 비판도 있다. 귀(歸)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도시에 살던 사람한테는 맞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귀농이 아닌 취농(就農 = 농업에 취직한다)이란 단어를 쓰기도 하고, 그냥 농촌으로 돌아와서 소일거리만 하는 경우는 귀촌이라고도 한다. 다만, 농촌에 고향을 두고 유년기를 고향에서 지냈다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상경 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는 귀농이 맞긴 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많이 드물다. 그 이유는 다음 문단에 잘 설명되어 있다.
어쩌면 이 항목에서 가장 중요한 문단일 수 있는데 시골에서 자라서 공부 잘 해서 올라온 친구들이 시골에 대해 괜히 혐오 감정을 품는게 아니다. 시골 생활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재미있게도 시골 출신인 경우가 많은데
[13]닫힌 사회현실은 전원일기가 아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귀농에 회의적이다. 일단 도시의 장점을 잘 알고 농촌과 비교할 줄 알기 때문이다. 누가 편한 백화점을 옆에 두고 있는데 굳이 사서 고생하겠는가? 현재 시골에는 태생이 시골인 사람과 귀농하려고 왔다가 정착한 소수의 사람 말고는 없다.
당연하지만 시골 사람이라고 반드시 순박하고 착하다는 고정관념도 버려야 한다. 오히려 도시보다 더 거칠다고 보면 된다. 도박, 술, 폭력 등의 빈도도 시골이 훨씬 많다. 특히 농촌보다는 탄광, 어촌이 이러한 경향이 심하며, 어촌의 경우에는 이웃간, 가정간의 폭력이 만연해있다. 전과자 대다수가 나이를 먹고 농사 말고는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귀농을 하는 불편한 현실도 엄연히 존재하고, 이웃집 사람이 순박한 시골 이웃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고 먹고 살 길이 없어 은퇴한 조폭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기도 한다.
나가 사람 회 댓명 뜨고 조용히 살라했더니그리고 정말 운 좋게, 좋은 이웃들을 만나서 정착한다 하더라도 농사로 먹고사는 것 자체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후술할 내용과
농사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농업으로 가구당 1억원 정도의 적당한 수준의 소득
[14]을 벌어들이려면 사실상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수준의 지식[15]과 경영 능력[16]이 필요할 정도로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냥 농사나 짓자."라는 마인드로 내려왔다가는 수익은 없고 늘어나는 빚만 돌려막기 하다가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무리 좋은 이웃이라도 이웃을 먹여살려주는 것은 아니니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대비와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시골 출신 사람들은 방송에서 나오는 시골의 좋은 점을 미화해서 설명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일반적으로 마을 간에 끈끈한 정과 우애와 서로 음식 나눠먹으면서 친해진다는 인심있는 곳이니 아파트하고는 다르게 매연이 없고 깨끗해서 시골에 살아야 한다느니 한적해서 편안하다느니 한 말 같지도 않은 말은 태생이 도시사람이면 속아 넘어가겠지만, 애초에 시골이나 소도시에서 살다가 대도시로 이사간 사람들은 안 속는다.
시골의 오지랖과 온갖 민폐들에 대해서는 "시골이니깐..."으로 넘어가려 들고 또한 매연이 없다 한들 중국 미세먼지가 오면 시골이나 도시나 똑같은 상황인거고, 음식 나눠먹는 재미로 사는 것도 적극적인 사람이나 가능해서 애초에 시골이 싫어서 떠난 도시사람에게는 적합할 리가 없고 시골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마냥 낭만을 원해 간 도시사람에게도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도시도 저출산 고령화와 인구유출 현상이 일어나는 판국에 시골은 이미 무출산 고령마을에다가 유출할 인구도 없는 곳이라 모든 면에서 인프라가 부족하다. 교통편도 불편해 자가용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시골의 매력이라고 주구장창 흥보하고 있는 시골의 산 공기는 이미 시골 출신 사람들은 충분하다고 느낄만큼 느꼈고 지겨워서 도시로 온 경우도 있기에 시골사람들이 도시에 살면서 향수에 빠질 거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현재 시골에 있는 사람도 대부분 도시로 이주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그 곳에 남아있는 것이지 시골이 진짜 좋아서 시골에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경험자들은 귀농을 안하려고 한다.여기에서 경험자란 원래부터 도시가 아닌 농촌지역의 농가에서
[17] 태어나 자라며 어릴 때 농사일을 도우며 마을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입학이나 취직 등을 목적으로 이농(離農)하였다가 정년퇴직 등의 이유로 귀농하게 된 농촌 출신자들
[18]물론 경험자의 귀농이라고 해도 만만치 않다. 비축된 퇴비나 정리된 밭이 없는 상태에서 인력만으로 농사를 짓는건 자급자족하는 레벨에 불과한데, 그래봤자 채소류나 자급자족할 뿐이고
농기구, 밑거름, 난방비,[19] 종자값, 쌀값 기타등등은 다 지출이다!
생각보다 상당히 힘들다. 낭만적 전원생활은 노후 자금이 충분하여
[20] 농업을 하지 않고도 생계 유지가 가능한 일부 사람들에게나 해당되지 여유로운 생활의 귀농자는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현실은 농사지어 생활비 벌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삶의 터전이 바뀌고 익숙치 못한 문화와 환경에 맞닥뜨리는 것이 가장 불편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골에서 자라서 교육이나 취업을 이유로 도시로 이주했다가 퇴직할 때 돌아오는 귀농자의 경우 "내가 소싯적에 해본 일이니 크게 힘들지는 않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 귀농했다가 크게 데이는 사람들도 많다. 일단 바뀐 농촌의 일상에 놀라기도 하고
[21]
그동안 제주살이 열풍으로 각광받던 그 제주도에서 2019년 들어 10년만에 전출인구가 전입인구를 앞질렀다.
1년 전에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싶어서 도시를 떠나 귀농을 하였는데 막상 와보니 촌사람들이 자꾸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질 않나, 밥도 같이 먹으라고 강요받는 것 같아서 생활에도 맞지 않아 다시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 충청남도 홍성군 농촌마을로 귀농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온 전직 귀농인
도시에서 살기 힘들어서 농촌으로 왔는데 도시 때와는 다르게 사람들도 야박해보이고 별 참견도 다하고 정말이지 농촌생활이 전혀 맞지 않아서 다시 도시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 한때 귀농을 했다가 농촌생활 적응 실패로 도시로 돌아온 전직 귀농인
촌사람들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내 일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지들한테 간섭을 못하게하니 아예 마을에서 미운털이 박혔더군요. 그래서 다시 도시로 오게 되었지요.
- 전직 귀농인
도시 사람들은 전부 우리 잘못이다, 야박하다고들 하는데 우리도 마을 대대로 내려온 풍습에 익숙해서 그런거지 지들이 그런 것에 적응을 못하고 있으니 답답해서 하였던 것이지요. 지들이 농촌이 좋다고 왔다는데 농촌에 왔으면 농촌법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거 아닌가요?
- 농민들
농촌은 도시와는 다르게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도시에서의 개인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며 마을사람들끼리 협력하고 단결하는 분위기가 짙기 때문에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새로 생활하실 분들은 무엇보다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를 신경쓰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농촌에서는 마을사람들의 협업을 중요시하는 편이고 마을의 풍속과 민속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외부인에 대한 경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귀농을 준비하려는 분들이 먼저 마을사람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하거나 그 생활에 동화되어야 마을사람들도 경계를 풀며 친구처럼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사회학자
마을사람들의 공동체 생활이나 농촌에서 내려온 풍습은 행정적으로 제재하기 어려운 사항입니다. 딱히 나쁜 문제가 아닌 이상은 그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풍습이기 때문에 관청 등에서 행정적인 제재나 권고를 하기는 어려운 사항입니다. 그것도 마을사람들의 풍습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에게 그것을 고치라고 강요를 할 수도 없는 편이기 때문에 귀농을 하시려는 분들이 마을사람들에게 먼저 나에 대한 경계심과 의심을 낮추게 해주시고 내가 먼저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서로 친근하고 다정하게 지내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
농촌진흥청
귀농의 실패 사례를 보면 대부분의 귀농인들이 돈을 벌려는 수익성 목적이나 그 곳에서 돈벌이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오점 때문에 실제로 귀농을 하다가 마을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인간관계가 틀어져 사람들과 싸우고 다투는 일이 잦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도시에서 오랜 생활을 하셨거나 농촌에 대한 지식이 없으시거나 그 고장의 사정을 모르시는 분이시거나 오직 돈벌이 목적으로만 가시는 분들일수록 귀농 실패 사례가 잦은 편입니다. 농촌은 도시와는 다르게 원주민들 대부분이 텃세가 심하고 농업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고장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지 않고 귀농할수록 원주민들과 다투는 일도 잦으며 그 고장에 순수하게 동화되지 않는 이상은 귀농상의 정착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귀농은 돈벌이 수단으로 갈수록 실패할 확률이 높으며 그 고장이 좋아서 가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장기 정착도 힘들 수 있습니다. 또한 농업에 대한 지식도 충족해야하고 원주민들과 꺼리낌없는 인간관계를 가질수록 성공적인 귀농을 할 수 있습니다.
귀농을 하였다가 농민들의 향토 텃세와 부심 그리고 농촌에서의 적응을 느끼지 못하고 귀농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귀도(歸都)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은
촌놈들이 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 같아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며 불신과 불만을 품게 되기도 한다. 그럴수록 경우에 따라
농촌과 농민에 대한 증오감을 가지게 될 수 있으며 농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키울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고령화가 심한 농촌의 인구 또한 비켜갈 수 없었다.
[22] 농촌 인구 대부분은
50대 및 60대 이상이 많기 떄문에 젊은 귀농인의 경우는 노인들과의 불협화음과 갈등도 심하여
틀딱충여촌야도 문서에서도 보다시피 농촌의 50대 및 60대 이상 인구는 대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고
[23]실제로 농촌이 없는 서울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경기도, 강원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제주도 등 도청들의 귀농귀촌 실태를 조사한 결과 관할 시군청 조사를 인용하여 귀농인 일부가
이 같은 농촌 및 농민들의 고집스런 텃세와 고정관념 때문에 농촌 적응이 힘들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각 시군청 공무원간의 고충상에서도
농민들의 텃세와 지인 띄워주기 등으로 낯선사람에 대한 경계와 불신 때문에 농촌을 떠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귀농인들이 이러한 불만을 가진다고해도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
그 마을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풍습은 제재나 처벌을 받기가 어렵다는 점이 있다. 딱히 나쁜 점이 아니고서는 마을의 풍속이나 풍습을 행정적, 법적절차 등으로 제재 등을 가하기는 딱히 어렵기 때문에 이런 점은 귀농인들이 먼저 농촌에 잘 적응하거나 농민들에게 마음을 열어가면서 다정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수 밖에는 없는 형편이다. 농촌에서 내려오는 풍습이고 민속이기도하니 굳이 행정적, 법적인 처벌이나 제재 등을 내려야할 이유도 없을 정도다.
귀농을 하려면 먼저 마을에 적응하면서 마을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경계심이나 의심을 풀 수 있도록 먼저 마음을 열며 다가가는 수 밖에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내가 농민들의 이러한 풍습 때문에 도청이나 시군청에 민원을 건다고해도 이것은 도청이나 시군청에서 딱히 개입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농촌에서 내려오는 풍속이자 전통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로 마을사람들을 행정적으로 제재를 하는 것은 어려우므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편, 이런 일이 곪다 곪다
2017년에 마을주민들이 산적질을 해버린 사례까지 생겨버렸다.[24]도시에서 원래부터 자랐다고해도 농촌마을 이장과 친하거나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다거나 자원봉사를 왔던 적이 있다고하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기는 해요. 농촌과 인연이 없다고해도 집 안이 마을 이장과 빽 정도가 있으면 농민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거든요. 마을 이장과 친분 정도라도 있으면 낯선 도시 사람이라도 함부로 건들지를 못해요. 마을 이장이니까 말이지요.
- 귀농인
제 부모님이 오래 전부터 마을 이장님과 면식이 있는 분이시라 제가 귀농을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지요. 저같이 이장님과 부모님 사이에 연고라도 있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귀농이 힘들 수 있어요. 그 사람들도 이장 같은 사람과 연고가 있으면 도시 사람이라도 함부로 못하거든요.
- 귀농인
사실 이게 가장 좋은 선택이다. 적어도 농촌 사회의 텃세만큼은 확실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 이장, 면장, 농협 조합장 등 지역 내에서 권력이 있는 사람과 연고가 있다면 아무리 도시인을 경계하는 농민들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시골에서 권력자에게 찍힌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니까.
저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 마을과 오래 전부터 인연이 있거나 친척 등이 있으면 아무리 낯선 귀농인이라도 야박하게 구는 대신 "타지에서 고생 많이했다."라면서 오히려 반겨주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바깥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연관이 없는 외지인임에도 내부인은 원래 있던 친척의 가족정도로 인식하는 것이다. '들어온 사람'이기보다, '원래부터 우리 마을에 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냥 땅이 있어서 시골로 귀농하는 경우라면 어쩔 수 없지만 만약 귀농할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 되도록 대도시권(
수도권,
부산·울산권,
대구권,
광주권,
대전권[25]특히 수도권이라면
수도권 전철이 지나가는 지역이 꽤 많고, 부산·울산권에는
동해선 전철과
경전선 광역전철다만, 이런 지역들은 땅값이 비싸다는 점, 재개발지구 지정으로 행정절차에 의해 쫒겨날 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귀농한 사람들이 꽤나 여럿 있고, 일종의 귀농인들의 마을이나 공동체가 형성된 곳으로 가는게 좋다. 그렇게 되었을 때 폐쇄적인 공동체로 인한 문제의 상당수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저렇게 정착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존 원농인과도 어느정도는 관계가 좋을 가능성이 크고, 정 안될 경우에는 깔끔히 해당 농촌 공동체 동화를 포기하고, 대신 귀농촌 같은 귀농인들끼리의 공동체를 통해 일종의 분리주의적인 방법의 형태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을 해서 먹고 살지도 중요하다. 보통 전라도를 갈까? 경상도를 갈까? 어디가 경관이 좋다더라? 식으로 환상적인 전원생활에 근거한 막연한 생각으로 땅을 고르기 일쑤인데, 군지역에 산다고 꼭 농사를 지을 필요는 없다. 물론 본인이 농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충분한 사람이라면 농사를 짓는 것이 귀농해서 먹고 살 좋은 방법이겠지만, 농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기왕이면 도시에서 쌓아올린 기술, 노하우, 자본을 최대한 활용해볼 방법을 찾아볼 것. 시골 내려가서도 농사 말고 다른 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