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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4일(월) 출애굽기 31:1~18 ‘주일성수’ 새찬송가 213장(통 348장) 나의 생명 드리니
오늘 본문 출애굽기 31:12~17 말씀을 중심으로 ‘주일성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은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영원한 언약을 삼으라고 하십니다. 출애굽기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날은 거룩한 날이며, 여호와의 날이고, 안식의 날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이날을 거룩한 날로 구별하셨습니다. 이날은 다른 날들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날입니다(창 2:1). 다른 날은 우리가 일상으로 사는 날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다릅니다. 그런 날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마치 같은 물건이라도 안수하여 구별할 때 성전에서 쓰이는 성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이날은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것은 소유권에 관한 선언입니다. 이날은 인간이 소유한 날이 아니며 철저히 하나님께 속한 날입니다. 물론 이날만 여호와의 날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날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임을 선언하면서 우리에게 속한 모든 날들도 하나님의 날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날은 안식일입니다. 이날은 쉼을 얻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안식해야 하는 이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시한다는 점입니다. 계명을 받는 당사자인 ‘너’로 시작해서 아들과 딸, 남종과 여종이 포함됩니다. 거기에 더해서 심지어 가축들에게도 쉼을 주라고 합니다. 신명기는 가축에 대해서도 ‘소’나 ‘나귀’라고 더 명확하게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안식일의 중요한 의미는 피조물에 대한 배려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7일마다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입니다. 당사자인 ‘너’와 그 자녀들까지, 그리고 그 종들까지도 쉼을 얻게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안식의 범위가 가축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점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인간을 넘어 피조물에 대한 배려로 나아갑니다. 심지어 안식년에 이르러서는 땅으로까지 배려의 대상이 확장되는 것을 보면, 생명체를 넘어 모든 창조물에 대한 배려가 이 계명에 포함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징입니다. 안식일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케 하시는 여호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과 열심은 끝이 없습니다. 안식일이 없으면 인간의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안식일은 우리를 창조주요 구원주이신 하나님 앞으로 끌고 갑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기억하며 자신의 피조물됨을 깨닫게 됩니다. 쉼을 얻어야 생명을 누립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따라 주일에 예배드리고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안식일과 주일을 많이 혼동합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은 창조를 완성하신 후 안식하며 창조를 완성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안식하여 이 날을 거룩하게 하였고, 모든 사람들에게 이 날을 지켜서 쉬도록 했습니다. 안식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은혜 아래 쉬면서 더욱 경건하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함께 예배드렸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부활을 믿지 않았기에 더 이상 함께 예배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주님은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였고, 이날을 ‘주의 날 또는 주일’이라고 부르며, 이 날을 기념하여 함께 모여 예배했습니다. 그냥 쉰다고 안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안식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그 삶을 새롭게 하는 것이 주일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마무리하며 안식한 날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따라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였습니다. 안식일엔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쉬었으며,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면 처벌받았습니다. 주일은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날에 모여 예배하였고, 주일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것이 안식일을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율법정신과 결합하여 주일성수의 개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모든 날이 거룩한 날이지 특정 날만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성수를 하는 이유는 단지 주일만 특별해서 그 날만 거룩하게 지키는 의무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모든 날을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모든 날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어떤 날만 특별하게 구별 짓는 것은 또 다른 미신이 될 수 있습니다(롬14:5-6). 초대교회는 매일 모여 예배하며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사회의 여건 때문에 하루를 구별해서 예배해야 할 필요가 생겼고, 그래서 주일성수가 제도적으로 정착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잘 이어받아 매일 새벽기도회를 하고,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등 모이기에 힘쓰는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단지 주일에 예배드림으로 내 책임을 다했다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이 주일성수를 하는 이유입니다. 주일성수는 기독교인의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주일성수는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 행동을 제시해주고, 교회에 나와야할 의무감을 주어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데 도움을 줍니다. 또한 현대의 바쁜 생활 속에서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영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게 합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쉬는 날을 가짐으로 노동에서 해방되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성수는 성도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믿음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며, 신앙의 성장을 돕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주일성수는 십일조와 더불어 성도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인 것입니다. 주일성수에 대한 예화입니다. 미국 12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 장군은 헌번에 의거, 1849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해야 되는데, 그날이 주일이라 취임을 거부하며 에치슨 상원의장이 24시간 대통령 임무를 대신했습니다. 주일성수는 대통령 취임보다 우선하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1924년 프랑스 파리 올림픽 당시 100m 세계 신기록 보유자 영국의 에릭 리델 선수는 100m 경주가 주일에 열리자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높여 주셨습니다. 400m 경주에 출전하는 다른 선수가 갑자기 뛸 수 없게 되어 그 대신 뛰었습니다. 그는 한번도 400m 경주를 해본 적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47.6초의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에서 1945년 병으로 죽을 때까지 순종과 복음전파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천국에서 받을 그의 상급은 올림픽 금메달과 비교할 수 조차 없을 것입니다. 적용의 말씀입니다. 나는 예배와 교제와 섬김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고 있습니까? 쉼을 빼앗고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나의 욕심과 열심은 무엇입니까? 바라기는 주일을 거룩히 지키며 주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시간 함께 기도할 때에 우리가 주일을 거룩히 지킬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세 번하고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