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 가운데 다섯 벗,이른바 견중오우(犬中五友)는 식용견,애완견,유기견(버려진 개),투견,맹인안내견 다섯 종을 일컫는데,이들이 7월 스무날 초복을 맞아 같이 모여 신세를 한탄하였다.
먼저 식용견이 침울한 표정으로 이르되,
"벗들은 들으라,나는 복날에 희생이 가장 큰 종(種)이니 그 뉘라서 신세가 나보다 험악하다 하리오?
나는 출생의 내력도 모르는 터에 생후 8개월이면 죽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생후 1년이 넘으면 육질이 안좋아 지는 소이연(所以然:까닭)이다. 견(犬)들의 평균 수명이 10년임을 감안하면,생후 8개월은 인간 나이로 20대 초반이라 할진대,오호 애재라 한창 때에 교미 한번 못 해보고 저승길로 접어드니 '총각귀신 견(犬)' 되어 구천을 떠도는 신세 면키 어렵겠다.
견(犬)시장 비좁은 철창에 갇히기까지도 그 과정 눈물 난다. 내 본디 강원도 태생인데 트럭 짐칸 작은 우리에 갇혀 부산까지 대여섯 시간 도로 위에서 시달렸다. 울렁증으로 하늘이 노랬고 피똥을 싸기도 했지만 인간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질을 못 이긴 한 벗은 운송 중에 비명횡사 해 버렸다. 견시장에서는 우리 앞에 와 서는 인간과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그 또한 노심초사 하였다.
우리 식용견들의 몸이 쇠약한 인간들의 기력회복과 폐결핵에 효과가 있다 하니,우(牛:소),해(亥:돼지),계(鷄:닭)를 취하여 먹는 인간들이 하물며 우리 몸을 마다할까. 다섯시간 동안 온갖 보약제와 뒤섞여 살이 흐물흐물해 지면서 개소주로 화하는 기분을 또 뉘라서 알아줄까.
식용견의 생이 그러한데,인간들 하는 짓 너모하다. 내 먹는 것이라곤 주로 인간들 먹다 남긴 짬밥 헹군 것인데,짜고 매워 무시로 위장 탈 나고,축적된 염분 탓에 무시로 신장염에도 걸린다. 인간사를 빗대 '눈물 젖은 짬밥을 먹어본 견(犬)만이 견생(犬生)을 논하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들아 아무리 생각해도 너모한다.
사정이 이럴진대,인간들 사랑 듬뿍 받는 애완견들,우리같은 종의 설움을 어찌 헤아릴꼬."
이때 애완견 잘 다듬은 털을 뒤로 넘기며 식용견의 말을 받아 가로되,
"우리 처지가 너에 비해 호사스러운 건 사실이다. 근래들어서는 국산 생닭에 최고급 양고기,질좋은 오리고기,국산 유기농 재료를 쓴 참살이 사료들을 섭취하기도 한다. 인간들도 잘 못한다는 머드팩을 하기도 한다. 벗들 중에는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1천750만원 짜리 연미복을 입는 이도 있다.
하지만 식용견 벗의 생이 자못 딱하다고는 하나,우리라 하여 신수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내 본디 털이 났음에도 종종 의복을 걸치니 이는 주인의 취향이라,답답함을 이루 설명할 길이 없구나. 우리는 땀구멍이 없는 탓에 의복을 입으면 피부병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주인은 예쁘다고 허구헌날 안고 다니지만 정작 우리는 숨막히고 다리가 저려 광분할 지경이다.
그뿐이랴. 견종(犬種)은 본디 집단으로 생활하게 되어 있으나 인간 가옥에서는 애완견 홀로 집을 지키기 일쑤라 우울증에 걸리는 빈도가 높다. 누층가옥(累層家屋:아파트)에서는 이웃이 꺼린다 하여 짖을 적마다 전기충격이 오는 목걸이를 채우기도 하고,아예 성대수술을 하기도 한다.
벗들은 혹 '소형 잔 아동견(미니컵 강아지)'을 아시는지. 아동견은 일본국에서 개량한 종인데,이 나라에서는 먹이를 주지 않아 더 작게 만드는 패악도 서슴지 않는다.
공원에서 실례라도 할라치면 '페티켓'이 없네 어쩌네하면서 혐오스런 눈길로 쳐다보기 일쑤다. 이러고서야 어찌 우리를 '가까이 두고 만지고 보는 사랑스런 개' 애완견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애완견 말이 그치매 유기견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말하길,
"벗 애완견은 가족의 정을 나누던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심정을 이해하겠는가? 실로 애완견은 아무렇게나 큰 식용견 류와 삶의 방식부터가 상이하다. 애완견이란 인간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이 불가한 종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애완견이란 함께 생활하는 종(種)을 동료이자 가족으로 여기는 바,주인한테서 버림받는다는 건 곧 가족한테서 버림받는다는 걸 뜻한다. 주인한테서 버림받은 견(犬)의 스트레스 강도는 부모를 잃은 5세 아해의 스트레스와 비슷한 수준이란 연구결과도 나와 있으니 부디 참고하시라.
사정이 이럴진대 인간들은 너무나도 쉽게 우리를 유기해 버린다. 식비며,병원비가 만만찮다 싶거든,심하게 아프기라도 하거든 스스럼 없이 바다에 숲속에 여기저기에 버려 버리는 것이다. 내 벗 중에는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 유기됐다가 차에 치여 장애견이 된 경우도 있다. 이 벗의 주인왈,견(犬)이 다시 집으로 찾아 올까봐 고속도로상에 유기했다고 한다.
유기견 수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행인들이 이유없이 때리기도 하고,이즈음과 같은 복날에는 견(犬) 매매상들에게 붙들려 한 그릇 탕으로 화하기도 한다.
용케 보호소로 옮겨지더라도 안락한 삶이 기다리는 건 아니다. 외려 안락사를 당하기도 한다. 한 달이 지나도록 주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보호소에서는 우리를 안락사시켜 버리는 것이다. 혹자는 '개같은 삶을 사느니 안락하게 사망에 이르는 게 더 낫지 않은가'한다지만 인간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간혹 입양되는 바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비율이란 유기견 전체의 0.1%에도 미치지 않는다. 우리 유기견들 사이에서는 입양되는 게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과 동일하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소용이 다했다 싶으면 이내 낯빛을 달리하는 인간들은 들으라. 당신들로 인해 야생의 생존 방식을 잃어버린 탓에 자생이 불가능해진 우리같은 애완견들에게 부디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라."
묵묵히 다른 견(犬)들의 하소연을 듣고 있던 도사 투견이 나서서 이르되,
"식용견들은 내 늘 육고기를 상식하고,사랑받으며 운동이나 한다고 부러워 하지만 내 사정 또한 벗들과 다르지 않으니 한번 들어보라. 우리같은 투견들로는 나같은 도사,미국서 건너온 아메리칸 피플페리어,진돗개 따위가 있다.
나를 대하는 인간들은 대개 겁먹은 눈빛을 하는데,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다. 나같이 잡것이 섞이지 않은 종은,개들은 물되 사람은 물지 않는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지레 겁을 집어먹어 버리는 것이다.
싸움장에 들어서면 네 다리가 모두 후들거릴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인간들은 내가 축축 늘어지는 피부를 가진 덕에 물리더라도 통증을 덜 느끼고,인내심이 탁월하다고 하지만 생각해 보라 왜 안 아프겠는가. 나도 천성적으로 싸우는 걸 즐겨하지만 무서운 놈을 만나면 오금이 저리긴 매한가지다. 언젠가는 악마처럼 생긴 피플테리어와 마주 섰더니 소변이 삐져 나오려고 했다.
그 놈은 견(犬)이란 견은 다 물어죽이겠다며 설쳐대는 놈인데,아닌게 아니라 도무지 겁이란 게 없어서 곰한테도 달려들고 별명도 '동물병기'라고 한다. 전에 한 벗이 그놈한테 물려서 갈비뼈가 부러지고 피를 많이 흘리는 바람에 뇌세포가 파괴된 일이 떠올랐다. 나는 몸서리를 쳤고,결국 도망을 치고 말았다. 나는 그날 집에 와서 주인한테 복날 개맞듯,비오는 날 먼지나듯 맞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 진다.
우리는 싸움개로서 가망이 없다 싶으면 식용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슬프다,우리들의 생이라니."
좌중이 술렁이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맹인안내견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길,
"난 제대로 된 성직자같은 삶을 살고 있는 고로,심지어 꼬리를 밟혀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가 움찔하기만 해도 앞 못보는 주인이 경천동지하기 때문이다. 지능이 높고 순종적이라고 해서 간택됐지만 말이 났으니 말이지 아파도 아프단 시늉조차 못할 정도라니 그 훈련 과정이 어땠을 것이며,또한 심적 고통이 어떠하겠는가. 한번 역지사지의 심정이 되어봐라,벗들아."
마침내 견중오우의 오랜 하소연이 끝나자 행사를 후원했던 수의원(獸醫員:수의사)이 조용히 나서,"듣자하니 너희 견(犬)들의 신세가 가련하구나. 우리 의원들이 앞장 서 그대들의 권익 보호에 힘쓰고자 한다. 무엇보다 견(犬)을 양육하는 인간들이 견을 제대로 이해하고 견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널리 홍보하고자 하니 그대들은 인간을 너무 원망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만 기다리라"하니,견들은 반신반의하다가 반색하다가 하면서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