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야 해! (조현미)
‘집을 나가겠어!’
내가 이렇게 결심한 건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고부터다. 텔레비전에서는 개와 사람이 바닷가를 산책하고, 한 데 어울려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있는 하얀 개는 긴 꼬리를 끌며 느릿느릿 걸었다. 모래 알갱이들이 꼬리에 달라붙어 있었지만 개도, 사람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작고 살찐 검은 개는 되똥거리며 공을 따라다녔고, 또 다른 개는 볼 살이 늘어져 있었다. 모두 행복해 보였다. 내가 보기에 그곳은 개들의 천국이었다.
화면을 보며 넋이 나가 있는데 도리가 어눌하게 물었다.
“무슨 생가글 그러게 골도리 해? 침가지 흘려네?”
정작 침을 흘리고 있는 건 자기면서 말이다.
“저곳은 어디일까?”
“보며는 몰라? 바다가구만!”
도리가 의기양양하게 한 대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텔레비전에 나왔으니 어딘가 있는 곳임에 틀림없을 것 같았다.
지난봄, 나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이곳에 왔다. 내가 오기 전 도리는 온종일 소파 귀퉁이, 신발, 발 매트나 책 같은 걸 씹었다고 했다. ‘혼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나 보네. 강아지 한 마리 더 데리고 와야겠어.’ 이러면서 엄마가 나를 데리고 왔다고 도리가 알려주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 너를 데리고 왔으니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
잘난 척은 했지만, 그때만 해도 도리는 지금처럼 어눌하게 말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도리가 왜 가리지 않고 집 안의 물건들을 씹어댔는지 알게 되었다. 내 이가 하나, 둘 흔들리며 빠지기 시작했고 잇몸이 말할 수 없이 가려웠기 때문이다. 엄마가 껌을 줬지만, 그것으로는 해소되지 않았다.
“아아 시원해!”
욕실 앞에 있는 수건 서랍의 다리를 씹으며 중얼거렸다.
“야, 야, 그만 좀 씨버. 침 냄새가 진동하자나.”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도리가 핀잔을 주었다. 도리 입 옆으로 침이 흘렀다.
“너 또 침 나왔어.”
자기도 겪은 일이면서 핀잔을 주는 도리가 얄미워서 한마디 해주었다.
“치이!”
도리가 앞발로 침을 쓰윽 문질러 닦더니 돌아누웠다.
도리가 침을 흘리고 말을 어눌하게 하기 시작한 건 여름이다.
“살찌면 건강에도 나쁘지만 볼썽사나워서 안 돼.”
이러면서 엄마는 우리를 데리고 공원에 갔다. 몸에 딱 붙는 운동복을 입은 날씬한 엄마가 우리 목줄을 잡고 공원을 네 바퀴째 뛰고 있을 때였다.
“어머, 윤하야!”
저만치서 엄마처럼 개 목줄을 잡은 아줌마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아줌마가 잡은 목줄에는 귀를 쫑긋 세운 작은 개가 입 꼬리를 올리고 콩콩 뛰고 있었다.
“하아, 하아…. 민경이구나.”
엄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나랑 도리도 있는 대로 혀를 빼고 헐떡였다. 쉬지 않고 달려서 내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펄떡거렸다. 도리도 지쳐 보였다.
“어머 얘, 이게 얼마 만이니? 같은 동네 살면서 참 만나기 힘들다. 그치?”
엄마와 아줌마는 목줄을 잡지 않은 손을 잡고 반가워했다.
“그런데 너 눈이 좀 커진 것 같은데?”
아줌마가 엄마 눈을 뚫어져라 보며 물었다.
“그러는 너는 얼굴형이 완전 갸름해 졌는 걸?”
이번에는 엄마가 아줌마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했구나?”
“했지?”
엄마와 아줌마는 서로를 향해 이러더니 흐흐흐 웃었다.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너도 애기 키우는구나. 두 마리씩이나.”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도리와 나를 봤다.
“응. 얘가 도리인데 낮에 혼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나봐. 아무거나 물어뜯어서 얼마 전에 테라를 데리고 왔어.”
“이 가느라 그런 거 아니야?”
“그렇기도 하지만 스트레스 받아도 그런다네. 그나저나 네 강아지는 귀가 쫑긋한 게 너무 예쁘다. 얘.”
엄마가 아줌마의 개를 보며 말했다.
“귀가 자꾸 쳐져서 끝을 살짝 자르는 수술을 해줬어. 그랬더니 다들 예쁘다고 하네.”
“어머. 그런 수술이 있어?”
엄마가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럼. 입 꼬리 올리는 수술도 해줬는걸. 항상 웃는 거 같아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
“그래?”
엄마 눈이 순간 반짝하고 빛났다.
“우리 도리도 입 끝이 쳐져서 신경 쓰였는데….”
“어디 보자. 도리야. 이렇게….”
아줌마가 쪼그리고 앉아 도리 입 끝을 잡아 위로 올리며 엄마를 쳐다봤다. 도리는 뒷다리 사이로 꼬리를 한껏 말아 넣고 낑낑거렸다. 도리의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 웃는 입을 보자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인상이 훨씬 좋은걸!”
엄마가 기분 좋은 얼굴을 했다.
며칠 후 산책 가는 길에 엄마는 병원에 들렀다. 주사를 맞거나 이를 뽑느라 가본 무서운 곳이었다.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엄마는 도리를 그곳에 맡기고 나만 안고 일어섰다.
“엄마, 엄마. 나도 산책 갈래!”
도리가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도리야, 내일 데리러 올게. 수술 잘 받고 있어. 알았지?”
엄마는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다음 날, 엄마가 도리를 데리고 왔을 때 나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도리 눈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고, 수술이란 게 힘 들었는지 온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런데 입은 한껏 위로 치솟아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엄마가 도리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달려가 물었다.
“네 누네는 갠차나 보이냐?”
걱정이 돼 물어본 것이었는데 도리의 날카로운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입은 또 웃고 있어서 헷갈렸다. 도리가 침을 흘리고 어눌하게 말하기 시작한 게 바로 그 때 부터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리는 침을 더 많이 흘렸다.
“도래야, 더럽게 왜 이렇게 침을 흘려!”
퇴근한 엄마가 나랑 얘기한 후 침을 미처 닦지 못한 도리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서 달려드는 도리를 저만치 밀어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도리는 엄마가 올 시간이 되면 말을 하지 않았다. 요즈음은 침을 더 많이 흘려 나랑 둘만 있을 때도 꼭 필요한 말만 했다. 도리는 점점 과묵한 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썩 다정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도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그리웠다.
그 후, 도리는 수술을 한 번 더 받았다. 쳐진 볼 살을 올려붙이는 수술이라고 했다. 도리는 원래 늘어진 볼 살이 귀여웠는데 볼 살이 없으니 털 뽑힌 수탉같이 볼품없었다. 도리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야.’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어 도리에게 미안했다.
“어대? 나 점점 예버지고 이지 아나?”
처음 수술 받았을 때 우울해 하던 도리는 온 데 간 데 없고, 수시로 거울을 보며 이렇게 묻는 도리는 오히려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 글쎄. 좀 어색하지만, 곧 익숙해지겠지?”
솔직하게 말하면 상처를 줄 것 같아서 대충 얼버무렸다.
어느 날, 내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여겼던 일이 나에게도 닥치고 말았다. 그날 나는 늘 물어뜯던 소파, 발 매트, 가방끈 같은 걸 모두 맛본 후 엄마 구두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어머, 내 구두! 이게 얼마짜린데 이걸 물어뜯었어?”
엄마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즈음 나는 이갈이를 모두 끝냈다. 하지만 웬일인지 잇몸은 계속 가려웠고, 뭔가를 씹고 있지 않으면 불안했다. 특히 도리가 어눌하게 말할 때 그랬다.
엄마는 바로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누군가가 주사를 맞는지, 수술이라는 걸 하는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 이상하네요. 이는 이미 다 났는걸요?”
나에게 주사를 놓아주던 의사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물어뜯을까요? 친구가 있으니 외로워서 그러는 것도 아닐 테고….”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눈을 좀 보세요. 빨갛죠?”
“어머. 정말 빨갛네요.”
엄마가 놀라 대꾸했다.
“눈썹이 눈을 찔러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서불안 증상이 생겼나 봅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으로 이유는 다르지만, 내 상태를 정서불안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 어쩌죠? 눈썹을 잘라야 할까요?”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 예쁜 눈썹을 자르면 안 되죠. 눈 앞 쪽을 살짝 터주면 됩니다. 앞트임 수술이라고 하죠.”
이렇게 대답하며 의사 선생님이 엄마 눈을 빤히 봤다.
“그럼 정말 괜찮아질까요?”
의사 선생님이 눈을 빤히 보자, 엄마는 무언가 들키기라도 한 듯 얼른 고개를 숙여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럼요. 눈이 더 커지고 예뻐질 겁니다. 하하하!”
의사 선생님이 짐짓 큰 소리로 웃었고, 결국 나도 도리처럼 병원에 맡겨졌다.
수술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동안 맞은 주사처럼 따끔한 주사를 맞고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끝나있었다.
“우리 테라, 정말 예뻐졌다. 어머 어머, 얘 눈 커진 것 좀 봐!”
엄마가 연신 감탄하며 내 눈을 들여다봤다. 나는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거실에 있는 전신 거울을 본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내 눈이 놀란 토끼 눈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부릅뜨고 있는지 깜박여질 것 같지도 않았다.
다행히 내가 도리에게 말한 것처럼 며칠이 지나자 부릅뜬 동그란 눈에 차츰 익숙해졌다. 처음의 충격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예쁘다고 안아 주었고, 도리도 흘끔거리며 나를 보는 게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 잇몸은 점점 더 가려웠고, 나는 닥치는 대로 씹고 또 씹었다.
얼마 후, 또 일이 벌어졌다. 그날도 도리와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초겨울 찬바람을 가르며 공원을 달렸다.
“윤하야!”
누군가 뒤에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를 따라 도리와 나도 멈추어 섰다. 엄마를 부른 사람이 우리 앞으로 왔다. 냄새로 봐서는 여름에 만났던 엄마 친구 같은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아줌마가 잡은 목줄에 매달려 콩콩 뛰고 있는 개를 보고 엄마 친구인 걸 알았다.
“민경이 너 이번에는 또 뭐 했어? 몰라보게 예뻐졌다. 얘!”
엄마가 통통한 아줌마 볼을 부러운 눈으로 봤다.
“어머! 나 알아보겠니?”
아줌마는 놀라는 척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얘는! 아무리 예뻐졌어도 그렇지, 우리가 몇 년 친군데 못 알아봐?”
엄마가 맞장구를 쳤다.
“알아보면 안 되는데…. 나 이번에 새로 이것, 저것 했단 말이야. 그런데 난 줄 알아보면 돈이 너무 아까운 거 아니니?”
아줌마 농담에 엄마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 바람에 목줄이 당겨진 나는 목이 졸려 캑캑거렸다. 도리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아줌마 개를 향해 짧은 꼬리를 연신 살랑거리고 있었다.
“네 강아지는 여전히 예쁘구나. 주인 닮아서 그런가?”
이번에는 엄마가 농담을 했다.
“예쁘긴!”
아줌마가 못마땅한 얼굴로 대답했다.
“왜?”
“입술이 너무 얇잖아.”
그 말에 엄마가 아줌마 개를 유심히 봤다.
“개들 입술이야 원래 다 있는 둥, 없는 둥 한 거 아닌가?”
“원래, 다, 모두! 난 이런 게 싫더라. 개성시대인데 남들하고 뭔가 달라야 하는 거 아니니?”
나는 남들하고 달라야 하는 게 왜 꼭 외모여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가?”
그러다 이렇게 말하는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은 앞으로 쭉 내밀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나와 도리를 내려놓고 외출을 했다.
“병원 가서 우리 테라 예쁜 입술에 대해 좀 알아보고 올게.”
이러면서 말이다.
내 뜻과 상관없이 자꾸 바뀌는 내 모습이 속상했다. 엄마가 나를 놀잇감 정도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 같아 기분도 무척 나빴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본 바닷가 생각이 났다.
“그래. 그곳으로 떠날 거야. 개들의 천국!”
나는 이렇게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냐 여기 있는 게 좋을걸. 엄마가 우리 사라해서 예버지라고 그러는데 왜 그래? 너 벼원 가다가 길에 어스렁거리는 집 엄는 개들 모 봐서? 그렇게 더럽고, 모 생긴 어굴로 배고프게 살고 싶지 안타면 마리야.”
도리가 비아냥거렸다. 어눌한 도리 말투가 새삼스럽게 짜증났다. 수술 때문에 말까지 이렇게 하면서 엄마 편을 드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좋으면 너나 여기서 실컷 살아! 나는 이제부터라도 내 모습을 지킬 거야!”
“엄마 하테 이르 거야!”
내가 쏘아붙이자 도리가 큰 소리를 냈다. 나는 현관 앞에 엎드려 엄마를 기다렸다. 도리가 이르기 전에 기회를 잡을 생각이었다. 가려움을 가라앉히려고 엄마 슬리퍼를 씹었지만, 소용없었다.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었다.
얼마 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엄마가 현관문을 열었다. 내가 일어서기도 전에 도리는 엄마에게 달려가 온몸을 흔들어 가며 고자질을 했다. 그 바람에 엄마가 신발을 벗다가 휘청했다. 신발 한 짝이 현관문 쪽으로 날아갔고, 막 닫히려던 현관문 사이에 끼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막상 기회가 오자 망설여졌다. 그 짧은 시간에 도리가 말한 길거리 개들의 모습이 텔레비전에서 본 천국을 온통 뒤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술을 안 시킬지도 모르는데 괜히 집을 뛰쳐나갔다가….’
이런 생각을 하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우리 도리, 오늘은 잘 짖네? 후유증 없어졌으니 이제 예쁜 목소리 수술해도 되겠어!”
엄마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벌어진 문틈을 향해 힘껏 몸을 날렸다.
첫댓글 조현미 작가님, 동화 잘 읽었습니다. 공유해줘서 고마워요.
제대로 된 풍자 동화네요.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재미있는 동화 잘 읽었습니다.
개들의 시선으로 바라 본 성형수술 이야기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