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쳐다보는 것이 마냥 좋아서 천문기상학자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훗날 건축가로 훌쩍 성장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북극성을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과 사회사업을 다짐하던 소년기, 그리고 <제3의 물결>을 읽고 마음이 동하던 청년기의 꿈이 여전히 소리를 내며 흐른다. 소리가 다소 둔탁한 것은 꿈을 이루어내는 장소가 건축 현장이기 때문이다. 건축가 김원철(38)씨의 고민은 그 공간을 채우게 될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남자들의 꿈까지 보태어 온전히 ‘살고 싶은 집’을 짓는 일이다.
“한창 중동 건축 붐이 일던 때여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코너를 통해 부쩍 조명받고 있는 그가 건축계에 입문한 동기는 그다지 남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부모의 권유를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김원철 씨는 욕심내어 떠난 유학 시절 제대로 건축에 눈을 떴다. 프랑스 국립건축6대학에서 보낸 만 6년은 건축 기술이나 디자인 방법 10가지를 더 가르치는 대신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다양한 문화와의 충돌을 겪게 했다. 그 혼란과 고민 속에서 그는 사람 사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잡았고, 건축에 대한 소신도 쌓을 수 있었다.
- 프랑스 공인건축사(CPLG)를 취득하고 돌아오셨는데, 보무도 당당한 귀향이었겠어요.
처음 2∼3년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명동성당 100주년 축성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은 경력까지 얹어져 제법 규모 있는 건축 사무실에 들어갔더랬죠. 그런데 직장 조직은 1을 넣으면 1 이상의 것을 출력해내길 원하더군요.
친구들은 이미 기성 사회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어요. 모난 돌이 무디어져야 했을 시기에 전 그들에 비해 맘대로 살았던 셈이죠. 같은 나이의 친구들과도 생각과 행동이 다를 수밖에 없었어요. 철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죠. 이미 가정을 갖추고 살아가는 친구들은 내게 현실성이 없다고 말하곤 했어요.
5년이 지나 이제야 한국형 생활에 익숙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들었나봐요. 무슨 일을 줘도 어떤 결과물을 내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부터였어요. 그래서 회사를 나와 독립했습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 지난해 4월 (주)포디움 건축사무실 문을 열고서는 이전에 직장인이었던 시절보다 우리 건축계의 현실이 피부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건축 설계사무소는 서비스업입니다. 건축주들은 무한 서비스를 원해요. 사실 일은 넘칩니다. 매일같이 야근하고, 철야를 밥먹듯 해요. 그런데 계약하고 돈을 받은 후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건축주가 여러 사무소에 의뢰해서 다같이 경쟁하게 되어 있습니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이 아니면 일을 따낼 수 없는 셈이죠. 프로젝트를 크게 성공하지 않으면 따로 의뢰받기란 엄두조차 낼 수 없어요.
건축 사무실은 간판이 필요없습니다. 동네 의원처럼 바깥에서 간판 보고 들어오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방송 출연이 신생 건축사로서는 큰 홍보 효과를 가져왔을 듯합니다.
힘든 건 마찬가지예요. 방송 보시고 상담은 많이 늘었습니다. 전화해서 무료로 집을 고쳐줄 수 없느냐고 묻기도 해요.
솔직히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방송을 이용해서 건축 수주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브랜드파워를 갖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로 방송을 시도한 것이었죠.
- 그 ‘불순한 의도’마저 드러내는 솔직함이 주위에서 말하는 ‘철없음’의 정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런 얘기를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건 제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내 자신이 변하고 있는 것을 느끼거든요. 단순히 집을 고쳐주는 사람이 아니라 생활을 고치고 디자인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런 기회를 얻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주거는 삶을 바꾸는 일이죠. 인생이 희망적·긍정적으로 바뀌는 사람들을 보면 제가 더 기쁩니다.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와 인허가 문제로 공무원에게 굽신거릴 때는 ‘내가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는데,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한 것이 가장 좋은 일입니다.
- ‘러브하우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선정 기준이 모호하고,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조건에 대가족 일색이라는 질책도 있죠.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던 그 방이 ~” 하는 식의 선정적인 멘트도 문제라고 지적받고 있어요.
방송 효과 때문에 고가의 장비를 들이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는 저도 같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비싼 장비를 쓰고자 하진 않지만 장애를 겪는 등의 사안이 있으면 필요하거든요. 재료적 특성을 고려할 때도 있고….
협찬사의 자재를 얻어 쓰다 보니 때로는 제가 홈쇼핑의 쇼호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협찬사 쪽에서는 대개 고가인 신제품을 내보이고 싶어하거든요. 운영의 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 인터넷 카페에 팬클럽이 생겼는가 하면, 최근 아이스크림 광고를 찍기도 하셨잖아요. 방송의 영향력을 절감하고 있지 않나요?
얼마 전 방송에서 인터넷 카페에 팬클럽이 생겼단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날로 2000명이던 회원 수가 1만5000명으로 늘더라고요. 서버가 다운될 정도였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인터넷 카페만 해도 이전보다 산만해진 아쉬움이 들거든요.
쑥스럽지만 조금 유명해지면서 제게 주어진 새로운 임무는 청소년들과의 진로 상담이에요. 일일이 답해 주진 못하지만,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합니다. 건축은 단기간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거든요. 도자기 굽듯 평생 좋은 도자기 한번 굽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죠. 죽기 전에 단 하나라도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저도 고민하거든요.
- 청소년, 특히 여학생의 질문이 많을 텐데, 건축계는 여성 인력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다는 인식이 있지 않은가요?
우리 사회 전체에 전반적으로 그렇지 않는 분야가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 와서 다시 절감한 것이 여성에게 불리한 나라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여성이 성적으로 불리하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죠. 노인이나 여성, 어린이를 보호하는 것은 그들이 물리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이나 여성을 보호하거나 존중하지 않아요. 약한 자를 무시하고 맙니다.
직장에서 식사를 할 때면 어린 여직원이 상사부터 챙기더니 맨 마지막에야 여직원 앞에 밥을 놓는 풍경이 재현되곤 하죠. 한심하기만 합니다.
여성은 더 디테일하고 유연하게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점을 더욱 계발하고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겠죠. 다행히 인테리어 방면은 물론이고, 건축 설계사무소에서도 여성 인력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예요.
- 결혼에 대한 생각은 어떠세요?
10여년 전 결혼을 했었습니다. 3년 정도 살다가 이혼했죠. 미완의 생활이었어요. 유학생이었고, 외지 생활 중이어서 상당히 힘들었죠. 배우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고개 숙이게 만들어요. 가지 말라고 엄청 매달렸지만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에 떠난다는 상대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년이 지났고, 함께 사는 부모님은 가정을 가지라고 성화시죠. 하지만 너무 좋아서 결혼하고서도 얼마 가지 못한 처지에 현실적인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지하셋방에서 잘 살아내려면 사랑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해 봐서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 사무실 내부가 무척 소박합니다. 건축에 대한 개인적 철학이 발현된 것인가요?
아뇨, 3주 전 새로 이사온 건물이라 아직 정돈되지 않은 그대로죠. 이전에 증권 사무실로 쓰였다는데, 가구도 그대로 받아쓰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살 공간을 짓느라 정작 제가 생활하는 곳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거창한 철학은 아니지만 집을 하나 짓더라도 ‘생활하고 싶은’ 집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단순히 눈에 보기에 좋은 집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의 몸에 맞는 디자인과 설계를 하는 것이죠.
-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철이 든 것 같은가요?
여전히 저는 변하는 중이고, 자리잡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또래 나이인 사람과 다른 나만의 ‘철없음’이 새로운 건축 아이디어와 나름대로의 사람과 만나는 접근 방식을 만들어주어서 좋아요. 철없음이 여러 사람에게 충실할 수 있게 하고, 내겐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