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상암동에 있는 직장을 다니기에 우리 부부는 그곳을 가끔 가게 되었다.
상암동은 서울시 쓰레기하치장이던 난지도를 개발하여 지금은 멋진 공원으로 바뀐 곳이다
아내는 서산이 고향이지만 여섯살 무렵 서울 상암동으로 이사가서 수색초등학교를 5학년때까지
다니다 다시 고향인 충남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상암동에대한 추억이 많아 몇년전
일요일 딸애를 서울집에 데려다 주고 우리는 수색초등학교를 찾게 되었다.
아직 학교는 그자리에 있지만 학교 앞에 있던 아내의 집은 헐리고 그자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시절은 오전오후반이 있어 아내는 아이스케끼를 한개 사서 그네에 앉아 먹으며 오후 수업을
기다렸다고 한다. 마당 한귀퉁이에 보니 5사단이 수색초등학교에서 창설됐다는 표지석과
후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5사단장을 역임했다는 작은 푯말이 있었다
나에게 수색에 대한 추억은 중학교 1학년 무렵 형들과 등촌동 등마루에서 나루배를 타고 강건너
수색까지 조개잡으러 간적이 있었다. 그때 한강은 지금과 달리 강바닥이 보일정도로 깨끗했었고
하얀 모래밭을 지나 강둑엔 키큰 미류나무숲이 도열해 서있었고 그앞은 모두가 땅콩밭이었다.
오는길에 걸어서 난지도를 지나게 되었는데 쓰레기 더미속에 갓난애기 사체를 네구나 보게되었다.
대부분 몸에 벽돌이나 무거운 것을 매단 갓난 애기들의 사체는 상류에서 버린것인데 홍수로
떠내려 온 것 같았다. 그때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문제조차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수색초등학교를 지나 아내가 초등학교때 소풍갔었다는 인근 서오릉에 갔는데 울창한 숲과 함께
보존이 잘되있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았다. 서삼릉은 고등학교때 소풍을 갔던 곳이라 아는데
서오릉은 처음 가보았고 관람을 마치고 나와 입구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너무 좋아 집에 온후 자주 듣게 되었다
첫댓글 내려오는 길 차안에서 들은 사랑하기로 올려드립니다
https://youtu.be/xB5kWMe1BfE?si=moeyYcUqOEU_dGcV
PLAY
옛 추억의 그림자를 찾아서
옛시절의
좋은 추억을
더듬으셧네요. ᆢㅎ
네 몇년전부터 예전 추억이
서린곳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즐거운 한주 되세요!
헉! 몸에 무거운 것을 매단 갓난 아기 시신이라니요ㅠㅠ
에구 끔찍하고 불쌍도 하네요ㅠㅠ
수색 쪽은 가본 적이 없지만 서오릉 서삼릉은 여중 여고 시절에 거의 매년 소풍 가던 곳입니다.
면적이 넓고 숲이 쾌적해서 서대문구와 은평구 쪽 학교들이 소풍 장소로 선호하던 곳이죠.
봄날 혹은 가을날, 또 서오릉이야, 지겨워, 불평하면서
춘추복 얇은 블라우스를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을 맞으며 줄지어 가던 그 시절이 참 그립네요.
달항아리님 반갑습니다
저때가 1970년 8월 중순경인데
난지도앞을 걷다보니 상류에서 밀려온 수많은
쓰레기더미속에 갓난아기 시신을 여러구 보았습니다
학창시절 서오릉서삼릉에 소풍을 자주 가셨군요
저희는 영등포쪽에 살다보니 어릴때는 종묘나 비원등에
소풍갔고 고교때는 서삼릉에 간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공부에 지쳐 하루하루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그랬군요
상암동이.....
리디아님 반갑습니다
당시에는 쓰레기냄새때문에 그앞을
지나치지 못할정도였습니다
무거운 것을 몸에 단 아기라구요?...에궁.
맘이 아파오네요. 엊리 그리 태어났을까요..
가슴아픈...불과..100년도 안되는 현대사의 단면
또...공통분무가...^^
지금 아들방에서 헤어드라이어 소리가
요란합니다.
상암으로 출근하거든요.
좋은날 되십시요~
몽연1님 반갑습니다
아기들의 사연은 제각각이겠지만
미혼모가 낳은 아기나 출생신고하지 않은채
죽은 아기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딸처럼 아드님이 상암동으로 출퇴근하는군요
제딸은 발산동에 살면서 상암동으로 출퇴근합니다
몽연님도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아 좋아요. 다음에 한 번 가볼 예정입니다
네 상암동은 지금은 아주 깨끗하고
살기좋은 곳이 됐습니다
저 역시도 충청도 산골아이로 태어나 수원으로 유학,
수원에서 중고등을 나왔기에 가끔 수원 가는 길에
비록 집이 없어 세 살던 곳이지만 살던 동네(서둔동 웃거리), 남수동, 지동, 연무동(수원 화성 창룡문 옆) 등을
찾아가 보는데 너무도 바뀌고 맘모스처럼 커진 수원시가 낯설기만 하더군요.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비록 가난했던 그 시절이었지만!
박시인님 반갑습니다
어릴때 부모님과 수원딸기밭에 갔었고
군대가기전 잠시 다니던 대학에서
원천유원지 야유회 간적이 있습니다
얼마전 고교동창회가 있어 가보니
서울버금가는 대도시가 되었더군요
서오릉 다녀가셨군요
저희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서오릉이 있어요
고양시 와
서울시 경계선에 산답니다
반갑습니다
경치좋은곳에 사시네요
작년에도 가본적이 있는데
참조용하고 깨끗한 동네였습니다
그때 수색은 시골 같은
풍경으로 기억 됩니다
강둑진흙밭에 오이밭이 있어
오이를 따서 배을 채우고
수색쪽으로 논이 많아
개구리를 잡았던 기억
당시 수색역쪽에
연탄공장과 석탄가루를
많이 쌓아논걸로 기억 됩니다
아련한 기억 입니다
훨훨님 반갑습니다
그시절 수색에 대한 추억이 많으시군요
당시 화곡동에 살았는데 버스타고 양평동과 등촌등을 거쳐
바라보는 풍경은 완전히 시골이었습니다
미류나무숲아래 모래밭에 땅콩이나 채소들을 심었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완전히 상전벽해가 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오래 전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네요.
상암이면 제가 살았던 목동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학창 시절 만원 버스에 몸을 꾸겨 넣으며..
등교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김포인님 반갑습니다
목동에서 사셨군요
그때는 정말 버스타고 통학하기가 참힘들었지요
저는 69년부터 77년까지 화곡동과 신정동에 살았기에
목동일대를 잘압니다. 당시는 완전 논밭인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세상이 되버렸습니다
강원도 강릉작가 이순원씨 작품에 나오는 제목이군요 수색 그 물빛 추억
두 엄마사이에서 갈등하는 소년의 마음 성인이 되어 그리움과 애증으로 수색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는 내용인데 지금 그산님 글 처럼 가슴이 슬픔으로 차오르는 그런 그리움 지난 날에 대한
운선작가님 반갑습니다
수색의 순우리말은 물빛으로 참아름다운 이름인데
벌써 이순원작가가 그이름을 사용했군요
조회해보니 "수색 그물빛무늬"로 약간다릅니다
저는 그책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이순원작가가
먼저 사용했기에 제목을 바꾸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즐거운 한주 되시기 바랍니다 !
강촌 초딩 소풍길에도 머물어 보고 초딩 느티나무에 기대어 본 시간 임당
배경음원 좋네예
졸필 시작 배경음원으로 안아 봅니더
첨 들어 보는 곡면 가사 좋습니더
시작제목으로도 사랑하기로 글 써 보겠습니더
시작 영감주심 고맙심더~~~
반갑습니다
강촌에 여행가셨나 봅니다
사랑하기로는 수색갔다가 오는길
차안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너무 좋아
가끔 글에 인용하고 있습니다
제목만 아시면 유튜브에서 모든음악을
조회해서 들을수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길 되시기 바랍니다 !
수색하면 말씀처럼
여의도와 함께 땅콩밭으로
많이 알려졌엇죠..60년대 당시 여의도 지가가 평당 3원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ㅎ
오늘도 그산님 추억여행을 따라
저도 그시절로 되돌아가 봅니다.
가을이오면님 반갑습니다
여의도땅값이 3원하던 시절이 있었군요
지금은 평당 몇억원일텐데 참 많이 변했습니다
저는 60을 넘기면서부터 어린시절의 추억이 있는곳을
찾아 다니고 제블러그에 글과 사진을 남겨놓고 이렇게
가끔 꺼내봅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더워지는 날씨 건강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추억은 살아있고 사람은 가고없고
그날밤 남포동 광복동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왜그리 애달프던지 다시는 혼자오지 않으리라
했던적있어요
우리도 3학년때까지 2부제 수업했더래요
그네에 앉아서 수업을 기다리던 그소녀는 이제 너무 잘생기고 군소리 한마디도 안하고 설거지까지 다해주는 피부까지 고운 밉상남자를 만나서 나 닮은 이쁜딸낳고 아주아주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는 전설이 수색골에 메아리치고 있다고 합니다^^
몸부림님 반갑습니다
몸님도 못잊을 추억때문에 남포동거리를 헤매고 다니신적이 있군요
함께 거닐던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벤취위에 사랑은 가도 추억은 남는다 합니다
그네에 앉아 수업을 기다리던 그소녀는 나이많고 돈없고 못생겼지만
말잘듣는 남자를 만나 아직도 직장에 다니며 고생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