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무대를 뛰다-
시집" 공중정원"은 바그다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이미 생성되었다.
휴일에 관광차 바빌론엘 갔었는데, 바빌론성 안에 흔적이 사라진 공중정원에 대한 안내 표지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만공중정원 이라는 시가 활자화 된 날이 월간 현대시 2004년 7월호인 것이다.
바빌론 성 내부입니다. 사진이 너무 오래 되어서....
바빌론 성문 앞(유프라테스 강변)입니다.
공중정원
내 스물 여덟의 이 오후는
희미한 바빌론 거리를 걷고 있었어
수 많은 세월 흘렀건만
유프라테스강은 뽀얀 젖가슴 열어놓고
이름만 남긴 거리에 젖 물리고 있었지
대추야자수가 내려놓은 그늘에서
비량과 마주앉아
세월 속에 넘어진 언덕 일으켜 세웠어
벌집처럼 뒤숭숭한 바빌론 한 켠
옹벽까지도 휘게 하는 불볕이 작렬하였지
듬성듬성 시야에 들어차는 야자수는
언덕 너머로 빠져 나간
옛 위상을 불러오지 못했어
이따금 꿈틀대는 능선은
뜨거운 열기만 내뿜고 있었지
부푼 가슴에 쌓은 우람한 공중정원
말발굽소리에 자지러졌고
칼부림에 목이 잘렸지만
흔적은 불탄 기둥처럼 으스러지지 않았어
전설로 수유(授乳)받는 둔덕
흐드러질 꽃봉오리로 버티고 있었어
네부카드네자르의 혼에 치솟는 공중정원
모랫바람 황량한데
나의 넋도 초록 언덕을 축조하고 있었어.
*공중정원:네부카드네자르왕이 왕비를 위하여 축조한 정원.세계 제7대 불가사의
귀국하여 낙동강하구언신축공사현장에 배치되었다
얇은 비닐 지갑 속엔 몇 장의 지폐와 주민등록증 뿐이었다.
내 장래를 생각하면 자격증이 필요할 것 같아서 먼저 운전면허증을 지갑에 채워 넣었다.
그래도 왠지 허전하였다. 자격증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내 인생의 밤무대가 시작된 것이다.
수험서와 빨간 지갑
틈만 나면 來日을 치중하던 시절
낙동강하구언 준설선에 승선한 수험서가
파도에 휩쓸려 망망대해로 떠내려갔다
틈을 낚아 챈 바다는 금세 수평선이 되었다
이튿날, 안타까움에 젖은 수험서가
되돌아왔다며 누군가가 건네주었다
그 수험서는 해명 없는 내 수십 년을 견인했다
주말마다 아르바이트하는 혜린
따뜻한 체온을 이탈한 혜린의 빨간 지갑이
인파에 떠밀리며 바람 부는 거리를 헤매다가
오늘 아침에 빨간 우체통에 담겨졌다
돌아오는 길이 평탄치는 않았을 수험서와 빨간 지갑
잃어버린 것도 내 것이었으니
분실된 단서는 해명없이 來日로 인도하리라
오늘 아침에 아시랑 고개에서 푸짐한 예감을 만났다
작년에 벙글었던 청매화 꽃봉오리를.
바닷물에 유실된 내 수험서와 올해 2월에 혜린이의 분실했던 빨간 지갑을 떠올리며
한편의 졸작시가 탄생한 것이다.
다니던 직장에서 2년 간을 틈틈이 노력한 보람으로 1차 시험을 통과한 5,000여 명 응시자에 14명의 합격자 명단 중에 적힌
내 이름 석자를 서울신문의 공고를 통해 알았고, 정말 운 좋게 손해사정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 출근길이 보험회사 보상과로 옮겨졌고
2년 후, 동아손해사정사무소를 단독으로 개소하게 된다.
대학원에도 등록을 했다. 그러나 시련이 닥쳐 왔다
수행하는 업무 전반이 변호사법 위반이라며 검찰의 조사와 법원의 법정 출두 명령으로 두 관공서를 들락거려다
관계 법령 간의 충돌(소위, 밥그릇 싸움)로 5년간을 수시로 검찰청과 법원에서 보내야 했다.
재판관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도, 양심을 스스로 자극해 봐도 의뢰인이나 신에게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다"는 최종 진술을 했다. 이때 졸작이 또 탄생
5년근 인삼
1998년 8월은 유난히 길었다
기회를 포식하는 짐승처럼
8월은 잠복하고 있었다
예고 없이 찾아 온 폭염은
벌레들의 활기를 자극했고
그들의 이기심은 표독하게 발휘됐다
계층상승 꿈꾸는 잡초들의
메스꺼운 탐욕이 가뭄을 거들었다
길의 가시거리는 모조리 차단되었다
그 해 눈바람도 매섭게 불어
5년 세월은 거칠게 흘러갔다
어깨 짓누르던 그늘 걷어내고
칭얼대는 부하(負荷)마저 털었다
돋았다가 지고 졌다가 돋은 세월
주름진 쓴맛은 겹겹이 쌓여졌다
2003년 간행된 본초학(本草學)에도
5년근 효험이 적혀 있다.
법원을 들락거리며 대구대 재활심리학과 겸임교수로 임용되어 사범대 초등특수교육학과와 중등특수교육학과에서 정신건강론으 강의했고
대구보건대 물리치료과에서 재활심리학의을 강의하며 밤무대의 자리를 옮겨 다녔다.
그러나 대학에서 시간강사로서의 교수 능력에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고 내게 그리 보람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출강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종강하던 날
낙엽송 같은 논제가 들락거린 교탁에는
찬바람만 수군거리고
밑줄 단 아쉬움은 솔가리처럼 깔려있다
퉁명스럽게 패인 칠판을 건너다가
툭툭 부러지던 분필조각
답안지는 환했지만
변별력은 그믐달처럼 저물었다
복도 들어설 때 팽팽한 다짐은
무딘 바늘로 옷 깁은 듯 어수선하고
추수 끝낸 들녘의 비닐처럼 너절하다
백지처럼 뽀얀 청각과 수정 같은 시각은
투박스런 창문을 넘어간
내 목소리를 눈치채지 못했다
목련화 피던 자리엔
잎 떨군 그늘만 아른대는데
주위를 배회하던 회상은 교문 빠져나간다
발길에 채는 백열등 불빛
스멀대는 선술집엔 음악도 지쳤고
아쉬움이 머물다 간 탁자 아래
야심은 우화하지 못한 채 넘어져 있다
난로마저 졸고있는데
종강하던 날,
마주앉은 별빛과 밤을 잇고
궐방*의 시간들을 술잔으로 헤아렸다.
*궐방(闕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함.
그러나 대학강의도 인연인지 필연인지 2011년 6월 23일에 1학기 성적을 내는, 내 밤부대는 현재까지 계속이어졌다.
기나긴 시련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동아손해사정사무소는 상처투성이로 기진막진한 채 깨어난다.
그러나 몸에 어울리지도 않는 넥타이가 싫어졌고
특허청으로부터 직접 실용신안권을 받은 문구를 생산하기 위해 "동구라미 교구"라는 문구제조회사를 창업했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컴퓨터의 등장으로 여러 문구들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시기여서 경영이 힘들었으며 재산을 좀 말아 먹었다.
주말마다 쓰라린 마음을 달래려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 땅을 들락거리며 모과나무, 명자나무, 해송,
느티나무, 마로니에 등의 여러 수종의 분재를 가꾸었다.
아이들에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라"라는 말과 "운 좋고 재수 좋게 살아라"라는 말 중에 어느 말도 감히 해줄 수가 없었다.
이때 생성된 졸작시이다.
설원의 푸른 잎사귀
연 이틀 내린 눈으로
대지는 백지처럼 하얗다
광활한 설원에 서 있는 명자나무
그 가지 끝에 매달린 잎새는
눈보라에 아랑곳없이 푸르다
알 수 없는 일은 알 수가 없으므로
된서리 맞은 이파리가 여직껏
푸른 빛 간직한 까닭을 모른다
난설에 나부끼는 외경畏敬을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간헐적으로 자신조차 모를 때 있듯이
세상엔 알 수 없는 일이 하도 많아서
명자나무의 한 해 겨울은 초연하다
두번 겪지 않을 설원의 푸른 몸짓
혹한 견디면 생경스러움 대신에
진득한 나이테 한바퀴를 품속에 두르겠지
혹한 견디고 나면 길도 환해 지겠지.
이럭저럭 그 동안에 많은 세월이 흘렀나 보다.
아이들도 대학 졸업반이 되었고 취업도 결정되고 내 나이도 어느새 쉰을 훌쩍 넘겨 버렸다.
너희 스물 넘고 내 쉰 넘는 날
한 땐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위태로웠다
출생이 임박한 혜린의 목소리 듣기 직전
동짓달 찬바람 가득한 깜깜한 차 안에
네 살 휘영일 맡겨놓고 분만실 복도를 서성일 때
유리창에 서린 성에처럼 세상이 초조했다
최초의 목소리가 들릴 때 기분은
창가의 난초처럼 나긋한 촉을 세웠었다
속 썩인 적 없어 늘 마음 뿐인데
내 조바심을 덜어준 효심에 눈물겹다
태어나면 경유하는 사춘기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이 유리창에 머문 입김으로 대신했지만
멈출 수 없기에 머물 수 없는 날들이 흐른다
너희 스물 넘고 내 쉰 넘는 날
너풀대는 토끼풀처럼 강둑에 앉아 물길 바라보자
너희 갈 길 있고 내 갈 곳 따로 있으니
바다로 가는 너희와 바다에서 돌아오는 내가 만나면
나비처럼 가벼운 날개를 가슴에 달자
개울도 건너가고 고개도 넘어가는 그런 날개를.
지난 6월에 마늘밭에서 못동골 누님의 청탁으로 옛 시절과 작금의 제 심경들을 졸작시에 담아 봤다.
대추나무 사이로
대추나무 사이로 계절마다 그리운 초록이 싹튼다
밤마다 산짐승이 절규하는 뒷산
뻐꾸기 혼자 울어대던 날이면 생각나는
객지에 계시는 형과 누이
나뭇가지에 걸린 달빛에 울컥대는 마음 달래며
추석이면 탐스런 대추의 단내 사이를
설날이면 눈 쌓이는 툭박진 잔가지를 바라보며
나는 미리 툇마루에 앉아서
골목길에 들어올 반가운 얼굴을 떠올린다
나무 사이로 기다림이 들어오면
작은 고무신은 잽싸게 마당에 내려선다
올해 새순을 낸 가지마다
자갈색 꽃이 흐드러졌다
흰 꽃망울도 한껏 부풀어 올랐다
환대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나는
아무 것도 해 드릴 게 없는데
유월의 나뭇가지에 돋는 감하感荷가
내 눈시울을 뜨겁고 붉게 할 뿐이다.
제4막님, 매발톱님, 전향님, 꽃사랑님의 자극으로 다사다란했던 제 인생 이력을 시를 통해 잠시 돌이켜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대나무에 비견하면, 내 인생의 마디를 형성한 시기에 생성된 졸작시들인 것입니다.
그 외에 제 시집을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을 위하여 인생 마디 몇 개를 소개했으니 널리 해량하시기 바랍니다.
부제는 "박칠근, 시 이렇게 썼다" 입니다^^
첫댓글 외길 님의 인생이 담겨진 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조 밑에 사진 보니까 넥타이도 잘 어울리누만요~ 저는 인생의 마디 마다에서 시를 쓰질 못하고 손마디나 발가락 마디, 종아리 같은 것들만 딥따 굵어지게 만들었는데...그렇군요 시는, 인생의 마디에서 써야하는 거였군요. 어쩐지 시가 잘 안된다 자꾸 헤멘다 싶었어요~ 올려주신 시인의 마디에서 형성된 시들, 잘 읽었습니다! ㅎ (꽃미남의 감동이 아즉도....)
저도 10 여년간 1주일에 1일씩 주간과 야간 강의를 하였지요.
두 아이 키우랴...강의 준비하랴 직장 다니랴..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습니다.
그래도 풋풋한 교정과 강의실...그때가 즐거웠고 그립습니다
밤무대....그때 쓴 시가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망울을 보고
별은 하늘에만 있는것이 아니라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열심히 살아온 날들이 있어 오늘의 의료기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위 희뿌연 사진 속의 남자 자막처리인가요?^^ 열심 살아오신 흔적이시지요. 잘하셨습니다.
삶의 굴곡마다, 홀로 여러 어려움들을 견뎌내며 그야말로 피로 쓴 시들이로군요.
누구라도 털어 놓지 않는 살아온 고난의 역사가 다 있는 것이지만, 외길 님께는 이런 남다른 사연들이
있었구나 ... 열심히 잘 이겨내며 잘 살아오셨구나 마음으로 느끼며 읽었습니다.
귀한 이야기 듣게 해 주신 것 고맙습니다. 사람이 다른 이의 진정한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고 귀 기울일 수 있고
또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얼마나 귀한 일인가 생각해 봅니다.
이십대의 외길님 모습이 흐릿하지만 멋져보입니다 구비구비 열심히 사신 흔적에 비해 나는 참 안이하게 살아온게
아닌가싶네요 멋진 시 앞으로도 많이 나오겠지요^^
글에서 피어난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사시면서 건강도 챙기옵고 시도 낳고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글로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한다는 건 욕심일테고
'바빌론'때문인지 희노애락, 흥망성쇠, 이런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고단하지만 이상하게 기쁜, 그런 지금이 되시기를 빕니다.
인생 이야기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온 이력을 보다가 불길한 예감이 들더니 결국 며칠후 운명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