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葬禮)
재벌이나 거리의 노숙자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죽는다. 그동안 인류 역사가 낳은 많은 영웅이나 권력자들은 수많은 불사(不死)의 신화들을 만들어냈지만, 그들은 인류가 만든 최초의 건축물인 무덤 안에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과정을 지날 때마다 치르는 통과의례(通過儀禮)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좁은 의미로는 관혼상제(冠婚喪祭)가 해당되지만, 넓은 의미로는 백일과 돌, 생일, 회갑, 진갑, 고희 등을 포함하여 인생 의례가 된다. 인생 의례는 모두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자기의 생각에 따라 치러진다. 반면에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정해진 격식과 다른 사람의 뜻대로 진행되는 것이 장례와 제사이다.
장례는 사람의 임종에서부터 묘(墓)를 쓰기까지 모두 아우르는 것으로, 죽음과 관련한 의례와 그 일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우리 사회에는 장묘(葬墓)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이 말은 사람의 주검이 최종적으로 머무르는 묘지와 화장장 그리고 납골당 등과 같은 장소나 시설과 관련하여 주로 사용된다.
장례는 고려 말 성리학과 함께 ‘가례(家禮)’가 유입된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러 양반가를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공포된 ‘의례준칙(儀禮準則)’과 해방 후 1969년에 공포된 ‘가정의례준칙’에 따라서 합리화와 간소화라는 명분으로 변형되고 축소되었다. 최근에는 도시의 핵가족화에 밀리고, 상업주의에 오염되면서 장례는 퇴색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90년대에는 묘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장(火葬) 위주의 장례 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시적인 매장제도를 도입하여 최대 60년까지만 묘지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매장문화에서 화장문화로 일대 전기를 마련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장례 장소가 집이 아닌 전문장례식장과 병원 장례식장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최근에는 망자의 유언에 의해 매장을 하지 않고, 화장 후 산골(散骨), 납골 혹은 자연장을 하는 방식으로 장묘 문화가 많이 변화하고 있다.
세상의 장례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저변의 흐름은 한 가닥임을 알 수 있다. 토장(土葬)(매장)을 주로 해오다가 화장으로 옮겨 가는 추세이다. 드디어 우주공간에 그 유골을 뿌리는 우주장시대가 열렸다. 5천 달러만 주면 5.7g의 유골을 캡슐에 담아 우주공간에 뿌려준다는 것이다.
광복 이후에는 화장이 일제 강점기의 식민 문화의 잔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1971년의 화장 비율은 7%에 불과하였고, 1980년대까지 화장 비율의 증가는 미미하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증가하여 2005년에 전국의 화장 비율은 절반을 넘어선 53%에 달하였고, 작년에는 84.6%에 이르렀다. 매장(埋葬)은 자연친화적이고 전통적 정서에 적합한 장례방식이지만, 무덤으로 인한 국토의 잠식, 산림의 황폐화, 무연고 무덤의 증가 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친환경적인 대안으로 화장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일반인은 공공화장장인 승화원(昇華園)에서 화장을 한다. 승화원에 관을 인도한 다음, 순서가 되면 화구(火口)를 배정받고, 화장이 끝나면 유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로에서 나온 유골을 수습하여 유골함에 담는다.
화장은 화장 후 유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수반한다. 유골은 대개 화장을 마친 날 모시지만, 사찰이나 가정에 49일 또는 일정 기간 두었다가 탈상을 겸하여 모시기도 한다. 유골을 모시는 방식으로는 산골, 봉안시설 안치, 자연장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산골(散骨)은 유골을 가루로 만든 다음 지정된 장소나 산, 강 또는 바다에 뿌리는 방식이다. 고인의 마지막 흔적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산골은 화장의 전형적인 방식에 해당한다. 산골을 할 때는 골분(骨粉)을 그대로 뿌리거나, 환(丸)(환약)을 만들어 뿌린다.
또한 유골을 용기에 담아 봉안시설에 안치하는 방식이 있다. 유골을 안치하는 것은 고인의 유체를 남겨 추모하기 위함이다. 봉안 방식은 하나의 시설 안에 유골함을 대량으로 보관하는 것에서부터 무덤이나 탑의 형태로 만들어 계속 합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봉안당(奉安堂)은 대부분 도시근교에 조성되어, 무덤보다 더 자주 고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끝으로 자연장(自然葬)은 나무, 잔디 또는 화초 등 식물 주위에 골분을 묻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자연장으로는 나무 주위에 땅을 파서 골분을 묻는 수목장(樹木葬)을 꼽는다. 고인이 묻힌 나무를 찾아 추모하고 정성 들여 가꿈으로써, 정서적인 위안을 얻고 나무의 성장에도 도움을 주므로 수목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상은 인터넷과 사전에서 장례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한 것이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장례를 지내고, 유골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자신의 장례 방법 정도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맡기지 말고, 자기의 뜻대로 미리 결정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난해에 파주에 있는 교하성당의 벽에 마련된 '성 요셉 추모의 벽'(사진 1)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위패(位牌)와 같은 ‘추모의 십자가’(사진 2)를 모셨다. 유골이 없는 사당과 같은 성격의 위패 봉안소이다. 부친은 1962년에 돌아가셨고 그 후 화장하여 유골은 산골로 마무리하였으며, 모친은 2014년에 돌아가셔서 부산의 봉안당에 안치되어 있지만, 대구의 선산(와룡산)에 날을 잡아 수목장으로 모실 생각이다.
우리 부부도 사망 시에는 부모님의 '추모의 십자가' 옆에 두 개의 십자가를 새로 설치하기로 예약되어있다. 화장 후 유골은 선산에 수목장을 할 것이다.
‘추모의 십자가’에는 이름과 본명(세례명), 양력 생년월일과 사망일이 음각되어있다. 성당이 존재하는 날까지 망자(亡者)의 기일에 연미사를 올려주며, 매년 11월 위령성월에는 망자를 위한 미사와 기도를 바친다. 아들네 식구들은 조부모와 부모님의 위폐를 모신 성당에서 매주 미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장례방식은 새로운 형태의 장례의식이 될 것이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위폐를 성당에 안치하고, 유골은 수목장으로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손들에게 장례와 성묘의 부담을 주지 않고, 돌아가신 조상으로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오는 봄에는 유골을 묻을 선산에 백목련과 자목련의 묘목을 몇 그루 심을 생각이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992FA8455CA751EB21)
성 요셉 추모의 벽(사진 1)
![](https://t1.daumcdn.net/cfile/blog/9940924A5CA751B62B)
조부모의 추모의 십자가(사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