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7월25일 츄쿠바에서 받은 박철세 사장의 편지:
순구 형!
일본(日本)도 장마철이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상해(上海)는 이미 장마가 시작되어서 매일 비가 내립니다.
습도도 높고 에어컨이 없으면 집안이
눅눅하고 후덥지근해서 지내기 힘듭니다.
지난해 여름은 에어컨을 틀지 않고 견뎌봤는데
올해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전에 잠깐 틀고 잡니다.
츄쿠바통신이 뜸합니다. 일본생활에 적응이 되셨는지
아니면 새로운 실험(實驗)에 바쁘신지,…
최근에 승아가 e-mail 2통 보내서 잘 읽어보았습니다.
형을 닮아서 문장이 좋더군요.
2년차 선생님의 식지않은 열정도 느낄 수 있었고요.
7월초에 Asia Pacific Manager로 있다가 퇴사(退社)당한
David란 친구가 자살을 했습니다. 분명한 이유는 들을 수 없었지만
퇴사당한 게 원인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언제나 웃고 활기 찬 얼굴이었는데
그런 그가 자살을 했다니 믿어지질 않습니다. 상해에 오면 같이 재래시장에 가서
가짜 game pack을 잔뜩 사서 어린 아들들(4살, 6살)에게 전해 줄 생각에 들떠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데, 그렇게 가족을 사랑하던 그가 어찌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는지,…
회사생활을 하면 회사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공간과 시간이 되어 버립니다.
아마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곳이 직장이 아닐까 합니다.
어제 시드니에서 데이비드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많은 직장 동료들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결정에 동정과
함께 공감할 수 없는 분노까지 생깁니다.
풀끝에 매달린 이슬이 햇살과 함께 사라지듯
삶은 그렇게 간단하게 지상에서 지워져 버릴 수 있나 봅니다.
퇴사 당하고 일주일 만에 전화통화한 적이 있습니다.
전화로 기운내라고 너는 능력이 있으니 Biorad에 있을 때 보다
훨씬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라고 했는데, 퇴사당한 충격을
그리 간단하게 극복할 수는 없었나 봅니다.
하기야 14년을 지낸 곳이었고 17개국의 Manager였으니
실적도 훌륭했으나 한 가지 실수로 쫓겨나듯이
그만 두어야 했으니 만가지 감정에 휩싸였겠지요.
소식듣고 저 자신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너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냐?”고. 쉽게 답할 수는 없었지만
저는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견뎌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구석으로 몰리면 어떻게 반응을 할 지는,…
사는 동안 제가 책임을 져야 할 가족이 있는 동안에는
또 제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동안은
그러지 못할 거 같습니다.
우울한 일주일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맥주나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DVD영화를 2편이나 멍하게 보고 잠들었습니다.
그럼 또 다음에,… 7월14일 2005년
상해에서
철세 올림.
첫댓글 편지 필체가 멋진 분이시네요.
클릭해서 확대해 놓치는 글자가 없도록 차분차분 읽어내려갔는데 밑에 직접 다시 써놓으셨네요.^^
음..어린 두아이를 두고 극단적이 결정을 할수밖에 없었을 상황이 맘아픕니다.
큰 충격으로 벼랑끝에 몰리는 기분이 든다면...난 어땠을까..저도 잠시 생각해 봅니다.
잘 읽어주셔서 박수 짝짝짝, 제가 아는 이중에서 가장 펜글씨 잘쓰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글도 참 잘 쓰는 사람입니다. 바이오라드 한국 사장이었을 때(15년전), 체어맨 차뒤에 초보운전을 써붙여 달고 두 달을 수원-서울을 출퇴근했다고 합니다.
비싼 라이카 명품 카메라 싸게 구입하실수있겠습니다.^^
회시이름이 정확하게 '라이카 마이크로시스템 코리아'라서 주로 전자현미경, 콘포컬현미경 등 고가의 생물학실험기자재인 현미경류를 취급하는 회시인 것 같습니다. 슬쩍 카메라를 물어봤더니 같은 스팩의 타 제품보다 단지 라이카라는 상표값으로 200여만원을 더 붙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라이카 카메라를 쉽게 구입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요즘 외로움 느끼시는 분들이 많네요.
힘내세요.~~~~~~
어떻게 제 마음을 그렇게 쪽집게처럼 정확하게 짚어 보고 계십니까, 말씀하신 그대로 힘 내겠습니다.
일무사촉- 마음에 담고 갑니다. 오랜만에 철세 아저씨께 편지 한 통 띄우고 싶은 맘이네요-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비록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 일 납니다. 노랫말이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