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기독청년들을 위한 치어리더로 살고 싶다!
이끌기보다 함께 걸어온 청년사역자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
흔히 청년사역자들은 나름으로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을 손에 들고 청년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외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가장 전통을 중시하는 대학생선교단체의 간사로 20여 년을 일하면서도, 오히려 그들의 젊은 신앙이 내포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붙들고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 책은 그렇게 청년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 하며 살아온 청년사역자의 하나님 나라 이야기다. 그러므로 곧 현실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고자 노력하는 청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기독청년들은 그들에 대한 진한 공감과 격려를, 교회의 기성세대들은 이탈해 가는 청년들의 마음을 붙잡을 힌트들을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최성욱
청년사역자.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를 만나고 홀리고 살게 하는 일에 대한 상상력이 고갈될 때까지는 기어코 그들과 어울리며 노닐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무위인(無位人)’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며 삶의 여러 경계에서 청년들과 부대끼며 산다.
19년 동안 캠퍼스선교단체인 SFC학생신앙운동에서 간사로, 서울강남교회에서 청년부담당 목사로 일하며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설교, 강의, 성경공부, 글쓰기를 하고 있고, 캠퍼스선교단체와 기독NGO가 함께했던 ‘전국대학생컨닝추방운동’, ‘대학생부재자투표참여운동’ 등에서 실천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영남대학교에서 철학을,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숭실대학교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기독교사회학을 공부했고, 현재 SFC에서는 대학사역부 총무간사와 학생사역연구소 소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학원복음화협의회 캠퍼스청년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협력하고 있고, QT교재 『날마다 주님과』의 칼럼 및 본문해설에 줄곧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청년, 대학생을 위한 성경공부교재를 써 왔는데, SFC출판부의 ‘하나님 나라 가치 시리즈’ 중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사람들』, 『세상을 변혁하는 사람들』을 혼자 썼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함께 썼으며, 최근에는 ‘SFC 개혁신앙 기초시리즈’로 발행된 『알아보자! 개혁신앙』과 『살아보자! 개혁신앙』도 함께 썼다. 『하나님 나라에 홀리다』는 첫 단행본이다.
📜 목차
추천의 글 7
하나님 나라에 홀리고 청년에 미치다 13
정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만 21
1부_ 공의와 정의를 위한 부르심에 반응하다
1. 하나님 나라의 소확행
?RE: 하늘 뜻에 마음을 건다 31
2.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지금 여기’
?RE: 이 땅 청년의 성대는 커다랗다 65
3.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일탈, ‘다른 삶’
?RE: 초보는 매이되 고수는 일탈한다 103
4. 하나님 나라의 작동원리, ‘공의와 정의’
?RE: 은혜는 인간을 정의롭게 한다! 135
비긋이 쓴 글 1-물음을 바꾸니 삶이 바뀐다: 무엇이 하나님 나라인가? 159
2부_ 평화를 향한 선을 넘어 소통하다
5. 하나님 나라의 핵심가치
?RE: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 나라 167
6.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
?RE: 은밀하게 위대하게? 아니, 담대하게 거침없이! 193
7. 하나님 나라의 기도
?RE: 주기도를 산다 219
8. 하나님 나라의 소통
?RE: 90년생이 온다고? 70년생은 간다! 239
비긋이 쓴 글 2-황제 변기의 추억: 어떤 곳이 하나님 나라인가? 279
감사의 글 285
기타 자료 293
📖 책 속으로
비록 나의 감각으로는 다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하더라도, 청년들이 추구하는 안정성과 공정성과 유희성, 그리고 창의성에서 비롯될 새로움을 마음 다해 응원한다. 분명, 그들은 그것으로 삶의 구석구석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더 또렷이 드러낼 것이다. 새로워서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것이며, 하나님 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는 자발적 헌신을 일상에서 창의적으로 추어올릴 것이다. 하여, 이 글은 지금의 교회가 처한 어떤 궁지 속에서 청년세대가 이루어갈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더없는 뜨거운 애정의 응원가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를 따르라’고 감히 주장하지 않고, 힐러Healer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그들과 함께 하며 응원하는 치어리더Cheer leader로 살고 싶다.(15쪽)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볼 용기를 내자는 말, 분주한 일상에 매여 아슬아슬한 하루하루를 앙버티며 번다하게 살아내는 이들에게 얼마나 한가한 소리인가. 가진 자, 여유 있는 자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게 그리스도인의 숙명인 것을 어쩌겠는가. 가진 것의 유무有無나 다소多少를 넘어 궁구해야 할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과 그 나라 백성의 다른 삶이 있는 것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하신 작정을 따라 그리스도와의 끊을 수 없는 연합 안에서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는 삶이다. 그러니까, 성화聖化. (42쪽)
0과 1이라는 두 개의 비트만으로 복잡한 세상만사를 다 설명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고만큼이나 교리로 모든 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아찔하고 위험하다. 오랜 세월 뭉근하게 고아지되 같은 듯 반복되지 않는 복잡미묘한 생활의 이야기를 어찌 섣부르고 단순한 이론 속으로 욱여넣을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은 생활의 복잡함을 복잡하게 보아내는 마음일 테다. 그래야 약자의 삶에 더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법이다. (75쪽)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많은 이유들 중 하나, 교회가 청년들을 교회 운영과 유지를 위한 소모품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삶에는 아무 관심 주지 않으면서 온갖 봉사에 동원시키는 것에 질려 떠나는 청년들이 있는 교회, 어떻게 봐야 할까? 교회마다 제각각 형편이 있을 테지만, 안타깝다. 떠나는 그들의 뒤통수를 향해 신앙을 버린 배도자나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인 양 취급하며 저주의 말을 내지르는 이들도 있다나. 설마? 이게 사실이라면 유아독존唯我獨尊도 낯 두껍기 그지없다. 진정 교회라면, 참된 목회자라면 지칠 대로 지쳐 너덜해진 그 마음을 먼저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일까? 예수님처럼! 주일만이라도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데. 애당초 안식을 잘 제공하는 주일이라면 생기지 않을 일들인 것을……. (112쪽)
일탈이라는 말 한마디 없는 글에서 나는 일탈을 읽었다. “나의 권한이 없는 영역에 들어서는 것”, 이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고 이해되었다. “붙잡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모든 권한을 하나님께 넘기라는 초대”에 응하기 위해 익숙한 일상으로 부터 벗어나 고독과 침묵에 들어가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얼마간이라도 세상을 향한 걸음을 거둬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틀고, 세상에 주던 마음을 모아 빗장을 걸어둘 심산心算이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가능성에 제대로 마음을 열고 싶었던 게다. 언제까지 신앙의 초보로 살 수는 없기에. (130쪽)
하지만 그는, 이른바 하자(?) 있는 인물들을 차별 없이 ‘단밤’이라는 가게로 받아들이니, 당대 아웃사이더들의 친구이셨던 예수님과 요즘 방식으로 참 닮았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그런 삶을 사셨다. 문화적 기호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실의 허구성을 감안하고 결기에 찬 신학적 우려를 충분히 살피더라도, 여전히 불합리하고 불의하게 보이는 대한민국 기성세대를 향해 정직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 청년들은 박새로이와 같은 인물에 열광한다. 그러니 ‘예수는 좋은 데 교회는 싫다’는 기독청년들의 심정이 이해될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할많하않이다. (145쪽)
이리하여, “자기를 넘어서지 못함으로써 중요한 일이 지연되고 하나님 나라가 방해를 받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다스림을 받아야 다스릴 수 있다』, 230쪽라고 정현구 목사는 말한다. 자기 생각을 유일한 신학적 정설이라도 되는 양 우쭐거리며 타인을 짓누르는 이들이 그렇다. 청년들이 질색하는 꼰대의 전형이다. 과연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테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방해하는 자들일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다. 하나님의 생각을 핑계 삼아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으니, 징그러움을 넘어 무섭다. 너나없이 성자가 되지 못할지언정 조야한 괴물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180쪽)
방탄소년단이 펼쳐내는 초절기교超絶技巧의 노래와 안무는 지구 곳곳 젊은이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이처럼 강단에서 쏟아내는 설교가 궁벽하고 외진 자리에서의 막막함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야 하지 않을까. 교회 문을 나선 성도들의 걸음이 교회를 향해 겨우 손을 내미는 이들의 삶에 가닿는 구원의 역사가 지금 여기에서 역동해야 하지 않을까. 교회가 세상과의 남우세스런 싸움을 위해 칼과 창을 들고서 전쟁을 연습할 것이 아니라, 샬롬의 비전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남과 북이 핵과 미사일과 경제제재와 같은 무기를 내세워 전쟁을 연습하는 일을 접고 진정한 생존을 위해 어렵게 내민 서로의 손을 꽉 붙잡는 일을 위해서만 교회는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190~191쪽)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청년들에게 답이 되는 교회를 나는 많이 만나고 싶고, 또 소개하고 싶다. 무엇보다, 경제논리보다 신학논리가 적중한 삶을 보여 내는 우리 동 네 교회를 청년들은 만나고 싶고, 나도 만나고 싶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롬14:17. 무엇이 정말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지 깨닫고 누리며 사는 성령의 공동체, 곧 정말 사랑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교회를 모든 청년들이 만나면 좋겠다. 진정 하나님 나라를 사는 길을 걸으며 자신의 꿈을 이루는 삶이길. 혹 에움길로 돌아가더라도 결국 답인 삶이길. 그래서 복음에 흔감欣感하는 청춘을 만끽하는 삶이길. 이게 내가 청년사역자로 사는 이유다. (208쪽)
아무리 에덴동산 같은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며 살더라도, 현실은 힘들고 고달프다. 몸 하나 기댈 곳 없는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순간순간 마주하는 많은 상황은 우리를 절망케 하고, 환멸과 거부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마음 하나 편히 내려놓을 구석도 없는 게다. 그때마다 주님께서 다스려 주시기를 기도하고 실제 그 다스림 가운데 거한다면, 그 어떤 상황도 헤쳐 나갈 힘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실 것이다. (234쪽)
애매하니 한마디 덧붙이자면, 청년들과 부대낄 수 있는 힘이 있는 한 그렇게 살려 한다. 청년은 흐르는 물과 같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거꾸로, 고인 물은 썩는다. 꽉 막힌 까닭이다. 청년의 비길 데 없는 천진난만 속에 담긴 역동성 과 생명력은 무릇 발랄하게 노는 데서 툭 튀어나온다. 잘 노는 게 청년의 본연本然이다. 잘 놀아야 청년이다. 이런 청년들과 어 울리기를 포기할 때 나의 정신과 몸은 급격히 퇴보하고 썩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어울려 주는 청년들이 늘 고맙다. (251쪽)
‘펭년배’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어린이부터 중장년층까지 펭수를 좋아한다면 펭수와 동년배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다.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이 우리 시대의 큰 흐름 중 하나인 셈이다. 아무래도 수직적으로 서열화된 집단주의 적 사고방식보다는 수평적 관계 중심의 정서가 지금 우리에게 는 더 친숙하다.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교회가 이런 흐름에 더 빠르게 반응하고 있는 청년세대를 붙들고자 한다면 꼭 연구하고 새겨야 할 트렌드임에 분명하다. 펭수가 어느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른이고 어린이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되는 거예요.” (265쪽)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주십시오.”라고 간구했다시90:12, 『새번역』. 모든 것이 숫자와 그래프로 표현되는 시대 속에서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붙들지 못해 흔들리는 우리의 절실한 기도여야 하지 않을 까. 언컨택트의 시대 속에서도 ‘우리의 날을 세는 법’, 그러니까 제대로 사는 법을 하나님께 배울 때 단절과 고립이 주는 고통을 뛰어넘는 삶의 진실과 대면할 수 있을 테다. 대부분의 경우 시대의 변화는 교회가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사유를 시작할 기회이기도 하다. 진실한 교회라면 시대가 어떠하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품고서 지혜롭게 잘 사는 법을 구하리라. 모세처럼. (275쪽)
실상, 이 땅에서 죽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사는 것 아닐까? 그 힘든 삶을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가꾸는 존재가 있어 세상이 살 만한 곳으로 바뀌어가는 것, 이것이 복음이다. 비교와 경쟁으로 뒤덮인 이 땅의 살풍경으로부터의 일탈. 그래서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것처럼 어울리는 살맛나는 세상의 리얼리티. 아니, 판타지일까? 환상 같은 이야기를 품고 사는 생이야말로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이리라. 그런 까닭에, 지금 여기를 ‘서로 지체’롬12:5로서 살갑게 살아갈 소망 품고 서 청년들에게 이 말 하나 건네기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뿐만 아니라 일용할 환상도 주 시옵소서!” (2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