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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생 수컷 시바견
일본개의 이상과 현실
평생을 시바견의 보존과 보급에 바친 나카지로씨는 시바견의 특징을 세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원시성으로 생김새와 성격에서 나타나는 단순,소박,명확성. 두번째는 원종성(原種性)으로 인간이 손을 써서 여러종류의 개를 만들기 이전의 원래의 형질. 세번째는 야성(野性)으로 자연속에서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특성. 세계에 수백종의 개가 있지만 시바견은 개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남아있다는 의미에서 귀중한 존재라는 것이 나카지로씨의 신념이다. 그래서 시바견의 보존운동이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시바견이 모두 문화재적 가치를 지녔는가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일본개는 태고 이래의 긴 세월동안 잡종화의 파도에 부대끼어왔다. 일본개 이외의 피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개는 거의 없다는 가정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래의 일본개의 전형(典型)을 복원하는 과정을 일본개의 [순화純化]라고 한다면, 그를 위해서 한편에서는 불순인자의 식별과 배제에 엄격한 태도로 임하는 것이 필수적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개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조화와 균형을 꽤뚫어보는 예리한 직관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개를 키우는 인간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문제점들이 여러가지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이상과 현실이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한마디로 개의 원래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호에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쿠가씨의 시바견 연구
쿠가씨가 처음으로 시바견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장남의 놀이상대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수소문하여 시바견 전문가인 나카지로씨를 만나고 그가 키우던 강아지를 얻어 키우면서 점점 시바견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시바견을 연구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우선 일본견보존회의 기관지'일본견'의 지난호들을 빠짐없이 숙독하였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일본개에 관한 여러가지 연구성과들을 차례차례 섭렵하였다. 또한 보존회의 고참회원들을 직접 만나서 여러가지의 의문점들을 묻고 경과를 청취하였다.
일본견보존회가 1934년에 제정한 '일본견표준'은 일본개의 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용맹함이 풍부하고 좋은 품성에 소박한 느낌이 있고......."로 시작하는 표준의 표현은 구체성이 떨어지고 여러가지 해석을 낳을 여지를 남기고 있다. 결국 우수하다는 평판이 있는 개를 실제로 보면서 지도자의 설명을 듣는 것이 시바견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쿠가씨는 나카지로씨로 부터 분양받은 '베니고마'를 키우면서 시바견이라는 일본개의 가치를 무조건 인정하게 되었다. 전쟁중에 일본견보존회의 사무국을 인수한 나카지로씨는 견적부(犬籍簿)등의 주요서류를 전쟁통에서도 굳건하게 지키고 전후 재개된 일본견보존회의 활동에서도 중심적인 지도자가 된다. 특히 시바견의 경우, 멸종직전에 가 있던 것을 극(極)근친교배와 신혈(新血)도입을 연계시키는데 성공하여 획기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우수견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순화(純化)의 작업은 잡종화가 덜 된 개를 찾아내고 골라서 교배한 다음, 태어난 강아지를 또 선별하고 그들을 교배하는 것. 이것을 쉬지 않고 착실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카지로씨는 의견대립때문에 일본견보존회를 떠나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시바견보존회'를 창립하고 곤궁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시바견의 순화에만 매달렸다. 교배료조로 보내온 강아지 가운데 씨견을 남기고 남은 개들을 판 것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에 걸쳐 일본경제의 고도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시바견붐'이 일어났다. 여기에 편승하여 연간 5만에서 7만마리의 시바견이 '증산'되었다. 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시바견 그것도 '혈통서'가 붙은 시바견이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이런 세태를 지켜보면서 쿠가씨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자신을 시바견에 끌어들인 나카지로씨의 뜻을 이어서 제대로 된 시바견의 작출에 착수하는 일. 키우는 개도 늘어나 더 이상 도쿄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개들을 데리고 도쿄 인근 치바현의 한적한 시골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는 수십마리의 시바견과 더불어 자연속에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더불어 보다 더 많이 일본개에 대해 연구하고 과학적성과가 뒷받침되는 일본개연구가 되도록 힘쓰는 것이 쿠가씨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제2의 인생목표이다.
진정한 시바견을 찾아서
2차대전이 시작되기 전 5년간 시바견의 등록두수는 약 백마리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전후 폭발적인 애완견붐을 타고 시바견은 급중했다. 숫자가 급증하면서 '코로이치'나 '베니마루'와 같은 기초견(基礎犬)의 풍모가 남아 있는 개들은 점점 사라지고 생김새나 성품이 다른 새로운 타입의 시바견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즉 몸통이 짧고 깊은 이마, 짧은 주둥이에 둥글게 튀어나온 눈을 가진 놈들이다. 쌀자루처럼 짜리몽탕한 몸통에 중량감있는 이들 개들은 동작이나 감각도 둔중하고 짖는 소리에서 쇳소리가 났다. 다른 소형애완견처럼 '안방스타일'로 변한 이들 시바견에서는 경쾌하고 예민한 시바견 특유의 특장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원시적,원종적,야성적이라는 일본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숫자의 위력은 무서운 것이어서 이런 개들이 온 거리에 넘쳐나면서 이것이 시바견이다라고 하면 사람들의 뇌리에 그렇구나라고 각인되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시바견의 모습을 보기 위해 시바견보존회의 이사이면서 좋은 종견을 많이 기르고 있는 테라이씨를 아키타현 타자와호수 근처의 자택으로 찾아갔다. 그는 각종 전람회에서 상을 받은 명견들을 다수 배출한 사육가이면서 저명한 심사위원이기도 한데 시바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나카지로씨로부터 많은 것을 전수받은 후계자로 꼽힌다. 테라이씨가 기르고 있는 20여마리의 시바견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초심자인 나의 눈에도 그의 개들은 여지껏 보아온 시중의 시바견들과는 확연하게 달라보였다. 첫째로 얼굴생김이 달랐다. 넓고 평평한 이마에서 완만하게 뻗은 스톱,뭉툭한 주둥이,쫑긋 선 귀, 무엇보다 눈이 달랐다. 삼각형의 뚜렷한 윤곽, 올라간 눈꼬리, 깊은 홍채. 언뜻보기에도 야성적이고 예리한 힘이 느껴졌다. 돌연스러운 방문자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 지긋이 지켜보는 눈매가 내 가슴속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으면서도 균형잡힌 몸매는 억센 털에 덮혀있고 근육질이 잘 발달된 모습이었다. 힘찬 꼬리의 움직임과 용수철같은 탄력감에 날카로움이 온 몸에 흘렀다. 이것이 나카지로씨가 복원했다고 하는 '즈몬견'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즈몬견'은 즈몬시대(역자주:일본의 신석기시대 전반부)의 인간이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데리고 다녔던 사냥개로서 충실한 반려로서의 신뢰감을 가졌던 일본개의 뿌리다. 일본개는 야성적이면서도 기능적인 체형을 가졌을뿐아니라 오로지 인간에게 의존하는 스타일은 아니어서 날카로운 신경과 현명함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 주인에게는 무조건의 신뢰를 보내고 복종한다. 눈앞에서 제대로 된 시바견을 보면 볼수록 옛사람들이 개를 어떤 느낌으로 함께 했는지가 핑하고 머릿속에 들어온다.
시바견 편력의 시작
테라이씨가 시바견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1963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테라이씨가 시바견에 쏟은 정성과 시간은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시바견과 인연을 맺은 것은 참으로 우연한 일이었다. 이웃사람으로부터 시바견처럼 보이는 암강아지 한마리를 얻어 기른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개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고 그러다보니 점점 개에 빠져들게 되었다. 곧 이어 발정기가 왔지만 당시로서는 개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웃에서 최근 도쿄로부터 요코자와라는 곳으로 이사온 사람이 사냥도 잘하는 시바견을 기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테라이씨는 애견을 데리고 요코자와의 토자와씨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토자와씨의 시바견은 묶어 기르지를 않아 어디론가 나가서 해가 지도록 돌아오질 않았다. 아 오늘은 글렀나하고 발을 돌리려는 즈음에 눈 앞에 한마리의 시바견이 나타났다. 센 기가 품어져나오는 날카로운 눈매, 늠름하고 기품있는 숫개였다. 한눈에 보아도 멋진 놈이었다. 그러나 막상 교배를 시키려고 해보니 간단하지가 않았다. 사흘내리 30킬로가 넘는 먼길을 출근하다시피 했지만 결국 교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삼 교배의 어려움을 알게 된 체험이었다. 테라이씨의 열의에 감동한 토자와씨가 친절하게도 여러가지 개에 관한 책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바견에 개량형과 원종형(原種型)의 두가지 혈통이 있으며 자기가 가진 개는 후자인 원종형으로 나카지로씨가 작출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얘기를 듣자 이번에는 나카지로씨의 시바견이 갖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 바로 도쿄의 나카지로씨에게 전화를 걸어 강아지 한마리를 달라고 매달렸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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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생 숫컷 시바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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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생 숫컷 시바견
첫댓글 비록 일본개 지만 우리 천년동행에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비슷하여 일본사람이지만 인정하며, 우리의 천하명견 진돗개는 더욱더 순수성을 상향시키고 더욱더 연구해야된다고 생각하며 우리세대는 책임감을 느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말씀하신 부분을 알고자 글을 연재하여 올려드리는 것이랍니다.
우리가 살아 온, 살아야 할 날들 속에서 진돗개를 느끼고 알아가는 것을 정리하여 후대에게 물러 줌으로서의 역활이 가장 큰 공헌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일본 개들과 브리더들에 대한 내용이지만 올려드리는 것은 말씀하신 그런 부분을 상기하여 보자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곽원명 진돗개 공부하시는 모습 항상 먼발치에서 보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까이에 생활하신다면 저와 많은이야기 하며 공부 할수 있었을 것인데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비록 멀리있다 할지라도 서로 열심히
공부 하시게요 ~~
@고익상 가까이 살았으면 아마 산에 움막치고 칩거들어 갔겠지요. ㅋㅋ
하산 할 때는 진돗개보다 장모의 두발과 턱수염을 기른체 지팡이 들고 도사님 되서 "니들이 진돗개를 알어?" 하겠지요...^^ 좋은 날 뵈어요.
@곽원명 언젠가 만남의 날 막걸리 한잔에 밤새워 즐겁고 재미난 진돗개 이야기 하시지요~~
@고익상 ...^^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