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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당시 스위스 FIFA 본부를 방문해 아벨란제 회장(가운데)과 블래터 사무총장(오른쪽)과 함께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photo 정몽준 |
“블래터 회장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임기응변에 능하다. 너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다 바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여러 의견을 경청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무 말도 듣지 않는다. 본인이 혼자 다 한다.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연락한다. 자기가 혼자 다 하고 나머지는 기구들은 다 장식용으로 생각한다.”(정몽준)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은 17년간 FIFA(국제축구연맹) 부회장으로 일했다. 그는 FIFA 개혁파로서 일관되게 반(反)아벨란제-반블래터 노선을 걸었다. 1998년 FIFA 회장 선거 당시 개혁파로 다수의 지지를 받던 요한슨 유럽축구연맹 회장(스웨덴)을 지지했다. 결과는 아벨란제 회장의 지지를 받는 제프 블래터 사무총장(스위스)의 당선.
2011년 1월, 그는 FIFA 부회장 5선(選)에 도전했다가 낙선해 한국 스포츠계에 충격을 던졌다.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할 인물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해외 언론은 블래터 회장이 자신의 잠재적 경쟁자의 낙마에 소리 죽여 웃고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다.
블래터 회장이 지난 6월 1일 FIFA 부정부패 스캔들로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차기 FIFA 회장이 누가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지난 5월 말 FIFA 회장 선거에서 5선에 성공한 블래터는 미국 FBI(연방수사국) 수사가 옭죄어오자 사임 의사를 밝혔다. FIFA 집행위원회는 회장 선거 일정을 곧 결정한다.
이런 돌발 상황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FIFA 부회장을 역임한 정몽준 명예회장이다.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낙선 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며 조용히 지내오던 정 명예회장은 지난 6월 초 독일을 방문해 미셸 플라티니 유럽축구연맹(EUFA) 회장을 만났다. 6월 말에는 U20월드컵이 진행 중인 뉴질랜드로 날아가 FIFA 관계자들과 만난다.
지난 6월 15일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정 명예회장을 만났다. 축구팬의 관심은 그가 FIFA 회장 선거에 나갈 것이냐 여부다. “FIFA 회장 선거는 내년 2월로 예상한다. FIFA 관계자를 두루 만나보고 8월 말까지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이미 사퇴 의사를 밝힌 블래터 회장을 놓고 유럽 언론에선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온다. 왜 그럴까.
“블래터가 사퇴하기 싫은 거다. 아시아축구연맹과 아프리카축구연맹이 자신의 사퇴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그런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 유럽의회(EU)는 사퇴를 촉구했다. 사퇴하는 게 맞다.”
그동안 쉬쉬하던 FIFA 부패는 이제 세계적 이슈가 되었고, 급기야 G7정상회의에서도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FIFA 부패척결을 강조했다. 정 명예회장은 인터뷰 도중 영문으로 된 캐머런 총리의 페이스북 코멘트를 보여줬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6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는 FIFA 부패에 대해 충분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이것은 변해야 한다. 우리는 드러난 FIFA의 문제에 대해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FIFA 부패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을 깨야 한다.”
지금 FBI는 스위스에 있는 FIFA본부를 국제범죄조직에 준해서 수사한다는 입장이다. 스포츠 NGO인 FIFA가 범죄조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언론은 FIFA의 부패는 뿌리 깊고 체계적이며, FIFA에는 부패가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고 쓴다. 그에게 차기 FIFA를 이끌 사람의 조건을 물었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이거나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FIFA 개혁을 잘 해낼 사람이 되어야 한다. FIFA 개혁을 하려면 FIFA 내부 사정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FIFA를 화합하고 통합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블래터 회장의 신세를 진 사람이거나 블래터 세력에 편승해 다른 사람을 낙선시키거나 탄압한 사람은 제발 나오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는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FIFA 부회장을 17년간 맡았다. 일본 단독 월드컵이 될 뻔하던 2002월드컵을 한·일 공동 유치로 만든 것은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일반인의 관심은 그가 FIFA 부회장으로서 FIFA의 부패상을 얼마나 감지했을까 하는 점이다.
“17년간 FIFA 일을 하면서 술수가 난무한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다. 부회장 겸 집행위원을 하면서 (이 직책이) 결코 명예롭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곤 했다. 1년에 6~7회 FIFA 회의에 참석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심적 갈등을 많이 겪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비행기 타고 잘 놀고 오는 것으로 알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아벨란제(브라질)는 1974년부터 1998년까지 24년간 FIFA 회장이었다. 아벨란제의 공은 월드컵을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로 격상시킨 것이다. 부정적인 평가는 부패다. 그가 아벨란제를 처음 만난 것은 1993년이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장에 당선된 직후 FIFA본부가 있는 스위스 취리히로 날아갔다.
“그때 가서 보니 한국축구협회장으로 FIFA본부를 찾아온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나는 축구협회장이 되었으니 마땅히 FIFA에 가서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블래터가 아벨란제 회장 밑에서 사무총장을 하고 있었다. 아주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
1994년 FIFA 부회장에 당선된 후 스위스본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그는 마치 어제 일처럼 털어놓았다.
“아벨란제 회장이 회의를 끝낸 후 안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더니 유럽축구연맹 요한슨 회장을 쳐다보면서 책상을 두드리며 버럭 화를 냈다. ‘당신들이 나한테 투명성을 요구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아벨란제 회장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섞어가면서 화를 내서 통역을 못할 정도였다. 나는 처음 보는 광경이라 그냥 보고만 있었다.”
1997년 12월, 파리에서 FIFA집행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그는 투명성 문제로 아벨란제 회장과 얼굴을 붉혔다. “회의 도중 아벨란제가 나를 지목하더니 ‘정 부회장이 투명성 얘기를 했던데, 무슨 말인지 설명하라’고 했다. 이 말은 내가 직전에 박갑철 회장이 주최한 세계체육기자연맹 총회에 참석해 FIFA가 잘 운영되려면 투명성이 보장되고 집단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FIFA를 지칭하지도 않았다.
투명성은 조직운영에서는 어디서나 해당하는 문제 아니냐? 그런데도 아벨란제는 투명성을 거론한 배경이 뭐냐고 흥분했다. 나도 아벨란제와 마찬가지로 FIFA총회에서 선출된 사람인데 그는 마치 어린아이나 범죄인 취급하듯 내게 책상을 치고 소리를 질렀다. 블래터도 비슷했다. 투명성 얘기만 나오면 화를 내곤 했다. 드라큘라가 햇빛과 십자가와 마늘 앞에 꼼짝 못한 것처럼 역대 FIFA 회장에게 투명성은 드라큘라의 햇빛과 십자가와 같은 것이었다.”
주앙 아벨란제는 24년간 FIFA에서 장기집권했다. 1998년 24년 만에 회장선거가 치러졌다. 반아벨란제 개혁파인 요한슨 유럽축구연맹 회장과, 아벨란제 회장의 심복인 블래터 사무총장이 맞붙었다. 이미 아벨란제 회장의 전횡과 부패가 문제가 되었던 상황이이어서 요한슨 회장의 낙승(樂勝)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블래터 사무총장의 당선이었다.
“요한슨 회장은 아벨란제 회장의 도덕적 문제가 불거져서 깨끗한 선거운동을 표방했다. 일부러 선거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단적인 예가 투표 전날 파리에 도착한 거다. 나는 요한슨 회장을 밀었기에 집행위원들을 찾아가 악수라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요한슨은 당선을 자신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과는 30여표 차의 낙선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2011년 9월,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김영사)을 출간했다. FIFA 부회장에서 낙선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이 책에서 FIFA의 부패문화와 블래터에 대해 작심하고 견해를 밝혔다. 그는 블래터에 대해 ‘아무리 봐도 국제신사는 아닌 것 같고 악동처럼 느껴졌다’고 썼다.
- ▲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FIFA의 비리 문제가 드러난 것은 2007년이다. 뉴욕 법원은 FIFA에 1억달러를 신용카드업체 마스터카드에 지불하도록 판시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이 끝난 후 공식스폰서 재계약 과정에서 블래터 회장은 친구가 회장으로 있는 비자카드에 공식스폰서 자격을 주기 위해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다. 이에 마스터카드사가 소송을 제기했고, 뉴욕 법원은 FIFA가 13회나 거짓말을 했다며 마스터카드의 손을 들어줬다. FIFA가 비자카드 사장 서명까지 위조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2007년 6월 27일 FIFA집행위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한 정 명예회장의 증언이다.
“내가 집행위원회 회의 전날 만찬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집행위원에게 마스터카드 얘기를 꺼내자 그는 그냥 가버렸다. 나와 그런 얘기를 하는 걸 꺼렸다. 회장이 잘못해 FIFA에 1억달러의 손해를 끼쳤는데, 그 얘기가 당연히 의제에 올라와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그 다음날 회의에서 보니 이 사안은 제목도 없이 ‘기타사항’에 들어있었고 ‘원만하게 해결됐다’로 끝나더라.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아니라고 말하자 블래터 회장이 눈으로 레이저 광선을 내게 쐈다.”
아시아, 유럽, 북미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집행위원들은 왜 블래터 회장의 명백한 비리에 대해 한마디도 벙긋하지 못했을까.
“블래터는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가지고 있다. FIFA 회장은 17세 월드컵, 20세 월드컵, 여자월드컵, 월드컵 등 각종 대회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 여러 가지 감투를 줄 수 있고 거액의 축구발전기금을 주무르고 있다. 물론 이를 결정하는 기구와 위원회가 다 있지만 책임자를 측근을 앉혀 사실상 자기가 다 하는 것이다. 이번에 독일 베를린에 가서 FIFA 관계자들을 만났다. 어떤 집행위원은 나를 식당 구석으로 데려가더니 ‘블래터가 잘못한 게 있으면 한 가지만 말해달라’고 하더라. 이게 바로 현 FIFA 내부의 실상이다.”
미국 FBI(연방수사국)가 FIFA 고위 책임자들을 기소하자 블래터는 FIFA 집행위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집행위원들은 블래터 앞에서 다른 얘기를 한 마디도 못했다. 앞서 설명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굳이 책임이 있다면 집행위원들이 한마디도 못한 책임, 블래터를 무서워한 책임이 있다. 블래터는 집행위원회 회의를 하고도 회의 내용을 사후에 변경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비자카드 회장 사인을 조작하는 일을 하겠나.”
그는, “개인적으로 블래터와는 어떤 관계였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블래터 회장을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항상 나를 경계했다. 한 번도 나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눠본 일이 없다. 뭔가 감추는 게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은 4강에 올라갔다. 독일과의 4강 경기는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치러졌다. 그 당시 심판 3인(주심, 선심 2명)을 모두 독일계 스위스인으로 배정됐다. 세계 언론은 회장이 스위스 사람인데 독일계 스위스 심판을 배정한 게 공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나중에 내가 어느 집행위원들한테 들었다. 블래터가 직접 ‘한국대표팀이 현해탄을 건너오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때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면서 느낀 게 한국 선수와 독일 선수가 공중에서 부닥치기만 하면 한국팀 파울을 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당시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사전에 그걸 막지 못한 건 내 책임이다.”
2006 독일월드컵 때 한국대표팀은 첫 원정 승리를 이뤘지만 1승1무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우리는 예선전에서 토고, 프랑스, 스위스와 같은 조였는데 블래터 회장이 스위스인이어서 심판 판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말이 무성했다. 심지어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블래터 회장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중에 피터 벨라펜 아시아축구연맹 사무총장으로부터 블래터가 한 얘기를 들었다. ‘FIFA 회장인 내가 스위스 편을 들었다고 하는데 2002년 월드컵 때 MJ(정몽준)는 심판을 다 매수해서 한국이 4강까지 갔다. 스위스는 16강밖에 못 갔다. 그 정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블래터가 실제 그렇게 믿으니까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나. (블래터는) 내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2022 카타르월드컵은 개최지 선정 당시부터 각종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은 2022월드컵 유치신청을 했다가 탈락했다. 미국 FBI는 2022카타르월드컵 개최지 선정 과정을 수사하고 있다.
“카타르가 개최지로 선정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후보가 된 나라는 월드컵을 개최할 자격이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2022 카타르월드컵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IOC는 하계올림픽이든 동계올림픽이든 7년 전에 개최지를 선정한다는 원칙을 정해 놓았고, 이것이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블래터 회장은 달랐다. 자기 마음대로 2010년에 2018년 개최지와 2022년 개최지를 한꺼번에 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에 나를 제외한 모든 집행위원들이 찬성했다. 나 혼자만 반대하는 것 같아서 가만있었다. 블래터 회장은 해서는 안 될 결정을 했고 집행위원회에서 이를 추인했다. 여기서부터 잘못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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