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장수 (검정우산과 할머니)
이태호
벌써 한 시간 째 저렇게 앉아 계신다.
월력은 입추를 알렸지만 된 더위는 아랑곳없다. 그야말로 염천(炎天)이다.
바다는 적당한 남동풍을 앞세워 시원한 파도를 만들어낸다. 불볕더위에 시달리던 피서객들은 정오의 햇살을 비웃듯이 바다를 향하여 거침없이 뛰어든다. 순식간에 바다는 온통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중요 부분만 살짝 걸친 아슬아슬한 수영복도 있지만, 반바지와 헐렁한 반소매셔츠를 입고 입욕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남성들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 가끔 육체미를 뽐내는 사람과 용이나 호랑이 같은 문신으로 위압감을 조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저 나와 가족, 아니면 애인이거나 친구지간이 바다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지금’을 최대한 만끽하면 된다는 태도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가 그늘장사의 절정이다. 특히 정오의 햇볕은 자외선으로 달군 날카로운 칼과 같아서 피부에 치명적이다. 어제오늘은 그늘이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였다. 그늘이 동그랗게 모일 정오를 조금 지나면서 일반석까지 다 팔렸다. 그늘에도 특별석과 일반석이 있다. 특별석은 바다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그늘장수 본부석에서 잘 보이는 곳이다. 일반석은 맨 뒤쪽이거나 본부석과의 사각에 있는 파라솔들이다. 특별석이라고 그늘 값이 더 비싼 것은 아니다. 재빠르게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다. 선착순인 셈이다. 특별석엔 유, 무형(有無形)의 혜택이 있다. 우선 앉거나 누워서도 거칠 것 없이 수평선까지 한 눈으로 감상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자리를 비웠을 때도 그늘장수 본부석이 감시초소가 된다. 그 때문에 특별석 그늘은 가장 먼저 팔린다.
그늘은 다 팔렸다. 이젠 물놀이기구인 튜브나 보트만 대여해주면 된다. 그때였다. 본부석에서 남쪽으로 11시 방향, 펄펄 끓는 모래밭에 검은색 우산이 보였다. 조그마한 공간에 할머니 한 분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늘장수 10년의 통계로 볼 때 아들 며느리와 함께 온 할머니인 것 같았다. 홀로 짐을 지키고 계신 분들에게 여쭤보면 대부분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며느리는 애들 데리고 수영하러 갔어.” 하지만 딸과 사위를 앞세운 할머니들은 우산 속에 홀로 앉아 짐이나 지키고 앉아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특별석 그늘 안에서 융숭한 대접과 함께 당당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만큼은 아직도 정확한 통계를 산출하지 못했다. 아마도 ‘우먼은 파워! 그 자체다.’ 라든가 ‘모권사회로의 회귀현상의 과도기’인 듯하다.
벌써 한 시간 째 저렇게 앉아 계신다.
염천에 달구어진 복사열 위에 검은 우산을 펴고 가족의 짐을 지키고 있다. 시간인들 얼마나 질기고 초조할까? 잔뜩 두 다리를 모으신 모습이 자꾸만 쪼그라들어 금방이라도 뜨거운 태양열에 하얗게 재가 될 것 같았다.
“할머니 혼자 오셨어요?”다 알면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저리로 가시지요. 아들이 돌아 올 때까지 저곳에서 쉬세요.” 내 팔에 의지한 할머니의 몸뚱이는 앙상한 만큼 가벼웠다. 본부석의 그늘은 특별석보다 훨씬 더 넓고 시원하며 안락하게 꾸며졌다. 평상도 있고 아이스박스엔 시원한 물과 과일 등 먹을거리도 많다. 종일 뙤약볕과 씨름하자면 호강이 아니라 필수적이다. 처음엔 좌불안석이시다가 십 여분이 지나면서부터 어머니나 고모님처럼 다정과 다감이 절로 익는다. 할머니와 나는 마치 혈육을 나눈 사이처럼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도해도 아들이나 며느리는 절대로 욕하지 않았다. 그저 장한 이야기만 하신다. 대화 중에 가끔 요즘 젊은이들이란 효에 대하여 무관심하다고 에둘러 말할라치면 손사래부터 치신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가슴을 들여다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들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임을 새삼 깨닫는다. 책을 덮어 놓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내가 살아볼 수 없었던 세월을 공짜로 낚는 즐거움 때문에 할머니와의 거리는 바싹, 좁혀져 있었다.
“어머님! 한참 찾았잖아요. 가면 간다고 하실 것이지…….”
며느리의 눈초리가 사납게 보였다. 마침 내가 드린 시원한 수박 한쪽을 베물던 참이었다.
“그게, 이 아저씨가 오라고 해서…….” 라며 죄지은 사람처럼 먹던 수박을 쟁반에 놓으신다. 그런 볼썽사나운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대신 대답했다. “아줌마! 검은색은 태양열을 더욱 잘 흡수한다는 것 잘 아시죠? 그런 우산을 쓰고 계시기에 제가 이리로 모셨습니다. 행여 일사병(日射病)으로 쓰러질까 염려도 되었고요.”
말은 공손한 것 같았으나 말마디마다 옹이가 잔뜩 박힌 그런 투로 전했다. 사실 나는, 인간성은 부드럽지만, 성질은 더러워서 그런 경우 참지 못한다.
아들이란 친구는 더 가관이다. “아저씨 저거 얼마요?” 다섯 손가락을 다 펴서 그늘을 가리킨다. 사내의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물속에서 어미 생각 없이 오래오래 신나게 놀았다는 방증이다. 손가락을 채뜨리고 싶었지만, 얼른 이성이 가로막았다.
“없습니다. 다 팔렸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인마! 애초부터 빌렸어야지, 이 불효막심한 X아!”
노을이 붉게 번진다. 내게 할당된 50개의 그늘을 접으면서 그늘 하나하나의 풍경을 되돌려 보았다. 정다운 풍경도 있고, 외면하고 싶은 모습들도 있었다. 바다에 떠 있던 물놀이기구의 다양한 크기와 색깔, 모양처럼 인간의 개성과 심성 역시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나를 낳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에게는 개성이거나 자존심, 체면까지도 모두 죽일 필요가 있다. 부모에게 효를 외면하는 사람이 어찌 사회나 가정에서 존중받길 원할 수 있을까.
돈 통은 묵직했지만,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善과 惡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선은 지향이며 선택이라지만, 모든 인생의 저울추가 선한 쪽으로 기울어지길 희망하면서 주자의 십회훈을 떠올렸다.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風樹悲啼身且老(풍수비제신차로)
創然空自撫殘骸(창연공자무잔해)
자식이 어버이를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리지 않고.
불효자는 슬피 울며 몸은 늙어가고
스스로 서글퍼 공연히 늙은 몸만 만져본다.
* 회원여러분 무더운 여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이제 그늘장사도 접어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임시공휴일인 14일과 광복절, 주일만 장사하면 나에게도 자유가 찾아옵니다. 그늘장사를 접으면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돈을 셀 겁니다. 무조건 절반은 이곳보다 더 뜨거운 사막으로의 어린 왕자를 만나러 떠날 예정입니다.
5대 사막은 이미 다녀왔으니 또 다른 사막여행을 계획할 겁니다.
동안 메모해 둔 그늘장수 이야기는 시간이 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여름이 시나브로 스러지고 있다지만, 냉큼 물러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건강히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