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1년 겨울이다. 아마 2월인가 3월로 기억한다.
먼지 가득한 희뿌연 하늘엔 수없는 연들이 자중을 다투고있다.
하루에 40루피씩이나 연을 사서 날려보지만 대부분 10분만에 연들은 내손을 떠난다.
몇달연습 했다고 돼는게 아니지. 저멀리서 내연줄을 잘라버린 놈이 원숭이처럼 킥킥 비웃는다.
나는 거리의 소똥들과 강가 강물로 만든 짜이 맛에 익숙해 가고있었다.
가끔식 내가 세든집 옥상에 올라가 대나무 피리도 열심히 불었다.
강뚝에 앉아 기우뚱해진 탑을 그리기도 했다.
오늘 점심은 뭐먹을까 아침을 먹으며 고민했다.
그렇다. 나는 심심했다. 그리고 혼자였다.
나는 베낭여행에 아무관심이 없었다.
인도에 타지마할이 있단는 것도 와서야 알게되었다.
내가 여행을 떠나려고 한건 단지, 모든걸 잊고 싶어서 였을 뿐이었다.
내가 몇년동인도로 오기 몇달전 이었다.
안 짝사랑한 여자에게 최후의 통첩을 받았다.
방학은 끝났지만 출석을 할수가 없었다.
졸업을 압둔 마지막 학기였고, 수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리고 잊었다.
딱히 계획도 없이 당시 가장 물가가 싼나라에서 나는 몇년동안 지내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나의 여행은 한도시에 박혀있는 '여행'아닌 여행이 되었다.
아무튼, 지금 내가 할 이야기는 아직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잘못을 지적받고 싶지도 않았다.
싸구려 소설취급 받는것도 싫었고, 놀라움에 감탄사를 연발하는것도 참을수 없었다.
그리고 제대로 이야기할 자신도 없었다.
가장 망설이게된건 락시미의 순수함이 퇴색될것 같은 두려움에서 였다.
옥상에서 되지도 않는 자작곡 피리를 '필리리~ 필리리' 불고있었다.
오전의 한가한 시간을 나는 인도의 태양속에서
20루피짜리 대나무 피리로 매우고있었다.
옆집 창문이 빼꼼열리더니 초등학생같은 여자아이가 나왔다.
'헬로~'
이게 왠떡이냐, 지겨운 피리는 이제 불지 않아도 된다.
서로 자기 소개를 하자
초등학생 여자아이는 잠시 들어가 제 언니를 불러왔다.
한 중학생정도 되보였다.
관광지가 아닌곳에 사는 바람에 멀리 극동에서 온 내가 신기 했다보다.
이야기는 다시 첨으로 돌아가, 어디서왔고, 뭘하는지, 나이는 몇살이고
여자친구는 있는지 뭐 이런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둘이 잠시 집으로 들어가더니
잠시후 더디어 그녀가 등장했다.
그렇다, 인도의 중산층이 그렇듯이 깨끗한 펀자비 드레스를 차려입은
이목구비 뚜렷한 예쁜여자아이었다.
꼬마들도 나름 귀여웠지만, 그녀는 제법 풍만한 가슴에 주먹만한 얼굴, 크고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있었다.
인도인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약간 까무잡잡한것만 빼면 왠만한 서양 여자들보다 더 예쁘다.
단지 충격적인건 나이가 15살이라는 거다. 어디 길에서 마주치면 분명히 스물한두살 처녀로 보이는 그녀가.
예쁜생김새와 달리 그녀는 나를 꾀나 살갑게 대했고, 웃음이 많았다.
"내일이 내 생일인데, 너도 와서 축하해줘"
그녀가 말했다.
아무리 예쁜여자라도 여기는 인도가 아닌가?
집으롤 꼬여내서 뭔짖을 할려고 하는게 아닌가?
나도 나름 바라나시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래 뭐, 갈께, 그런데 확실하지는 않아"
나는 얼버무려서 그냥 오늘 오전의 즐거운 기억으로 끝낼려고했다.
"그래? 그러면 내가 초대장을 보내줄께"
신난다는듯 그녀는 말하고 사라졌다.
잠시후 내가 세들어 살든 집 옥상으로 예의 그꼬마 소녀가 손에 편지봉투를 들고있었다.
그리고 뭐라 말하기도 전에 까르르웃으며 도망치듯 제집으로 돌아갔다.
편지를 열어보니
" 만나서 반가워 '시바드'(당시 그냥 그런 인도식 이름을 쓰고있었다. 가명).
내일 내 생일 파티에 참석해줬으면 고맙겠어.
그리고 넌 참 재미있는것 같아.
from 락시미 to 시바드
오전 11시에 문을 두드리면 나갈께"
꾀나 진지한 초대인듯 했다.
뭐, 어짜피 남는게 시간이니 사기를 좀당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11시 되기 전에 그집 문을 두드렸다.
왠 40대 아저씨가 나와서, 인도식영어로 웰컴을 외치고있었다.
그럴듯하게 기른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말을 하지 않을대 굳게 다문 모습은
마치 지방관리인듯한 인상을 풍겼다.
엉겹결에 따라 들어갔다.
그집은 바라나시 전통가옥답게 중앙의 큰홀이 옥상까지 뚤려있었다.
더운날 이 바람구멍을 굴뚝처럼 더운 공기를 빨아낼것이다.
2층에 올라가니 할머니쯤으로 보이는 분이 티비를 보고있었고,
아주머니는 인도말로 뭐라뭐라 환영의 말을 했다.
이쯤되니 좀 겁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고도 했다.
'나, 나마스떼' 인사를 마치자 아주머니는 차를 날라왔다.
길거리에서 사먹든 짜이와는 좀 다른 향이 코끝을 스쳤다.
뜨거운 스텐레이스 짜이잔을 들고 아저씨는 옥상으로 나를 데리고갔다.
그리고, 한달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인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업은 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면접관이 사람을 뽑을때 처럼
차근차근 빠지지 않고 물어봤다.
우리는 옥상에서 강가를 내려다보면서 이야기를 마쳤다.
나를 데리고 2층 티비가 있는 방으로 가자 어제의 그 예쁜 그녀가
동생들과 함께 나를 맞아 주었다.
이것이 인도식 손님 맞는 방법인가? 아직까지 확인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족들과 이런 저런이야기를 나누면서 꾀나 부끄러워 하던 락시미의 표정이 아직 기억난다.
그녀가 왜 그렇게 부끄러워 했는지.
아무튼 그렇게 가족들과 인사를 마치고 드디어 동생들과 그녀의 방에 들어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에 책상이 하나 달랑있고, 그 위에는 소박한 옛날 스트레오 카셋트가있었다.
창문은 매우 작아서 채광이나 통풍을 위한건 아닌것 같았다.
책상위에는 너덜한 노트가 가지런히 몇권인가 놓여 있었고, 인도의 아이돌스타 잡지가 중간에
삐져나와있었다.
그것보다, 네다섯명의 그녀친구들이 이미 방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저마다 호기심을 감추지 못해서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다과 파티를 했고 모두 힌디어로 말했다. 나는 그냥 미소를 지으면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카세트 테이프가 곧 돌아가고 서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 광경을 믿을수 없었다. 다과 파티에서 갑자기 댄스 파티라니..
꼬마들은 신난듯 뛰어놀고, 그녀또래의 남자, 여자얘들은 무슨 영화속의 춤을 흉내내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한국땅에서 태어난 난, 술도 않먹고 춤을 - 그것도 점심도 먹기전에- 추는 문화적 충격에 휩싸였다.
어색하게 박수를 치면서 주춤주춤 하고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나의 춤을 보여달고 한다.
'나의 춤?' 도데체 비보이도 아니고 나의 춤이 어디있냐 말이다.
카셋트를 바꾸니, 그속에서 80년대 런던보이즈도 울고갈 올드한 디스코가 흘러나왔다.
도데체 이런 테이프는 어디서 구한거야?
분위기상 거절할수 없었고, 나는 최선을 다해서 손과 발을 휘저었다.
나도 모르게 진땀이 베어났고, 얼굴은 빨게 졌다.
다른이들은 모두 방구석에 등을 기대고 않아. 나의 춤사위를 구경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던 순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음악이 끈어졌다.
'그만하면 충분한데' 그녀가 말했고, 모두 실망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한국에서 온 최신댄스를 어제밤부터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한 분위기다.
어디서 팝송 테이프도 급하게 하나 빌리고 말이다.
솔찍히 말해서 나는 춤치다. 라는 사실이 모두에게 백일하에 들어났다.
그렇게 파티는 끝나고 친구들은 돌아갔다.
그리고, 나와 그녀의 가족은 오붓한 점심식사를 했다.
뜨거운 달을 손을로 퍼먹는게 고난이었다.
아무리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손가락은 죽는다고 아우성을 쳐뎃다.
그것보다 문제인것은 손가락 사이로 달이 질질 흐른다는거다.
진땀이 식을 무렵 나는 셋방으로 돌아와 그 일을 회상하며 웃었다.
그리고 몇일이 지나서 집근처 골목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안녕 시바드'
'안녕 락시미, 잘지냈어?'
인도의 푸른 교복이 꾀 잘 어울렸다. 붉은색 머리장식으로 단정하게 빚어 넘긴 스타일도 그렇고
역시 교복을 입으니까 확실히 학생같다.
'응, 난 잘지냈어, 지금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중이야'
'그렇구나, 그때 춤못춰서 미안해'
나는 우선 그렇게 사과했다.
'꺄르르르, 뭐 그얘긴 그만하자고, 학교에서 애들이 난리야, 한국인은 원래 그렇게 못춰?'
'아,아니.. 나만 그렇꺼야, 아마'
그렇다 나는 한국의 대표인것이다. 춤을 잘추어야만 했다.
'학교 마치면 뭐해?'
내가 물었다.
'숙제도 하고, 티비도 보고, 가끔 영화도 보러가고 그러지'
'아 그래? 요즘 까비꾸시 까비감이 한참인데 그영화 봤어?'
'아직, 왜? 보여줄려고? 근데 내가 너하고 외출하면 사람들이 너무 처다봐서 않되'
살짝 눈웃음을 치는게 여간 귀엽지 않았다.
'하하하, 왜 나도 인도인처럼 입고 나가면 잘모를걸, 얼굴도 까맣게 탓고'
얼굴이 까맣다는 말에 그녀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말했다.
'그럼 우리 극장에서 만날까?, 같이 가는건 너무 눈에 띌것같고 그래서'
'지금? 아니면 언제?'
예쁜인도 학생과 데이트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다만, 원조교제 같아서 마음한구석이 편치는 않았다.
'저녁에, 바라나시 대학교에 있는 극장알지? 거기서 4시반에 어때?'
바라나시 대학이라, 여기 바라나시에서도 반년가까이 있었지만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그러나, 뭐가 문제랴, 나에게는 가이북이 있는데.
'그래 그럼 4시반에 기다릴께'
그렇게 우리의 첫번째 데이트가 시작됐다.
그때 본영화는 당시 대 히트작이었던 까비꾸시 까비감이 아니라 그냥 그런 힌디영화였다.
웃고 소리치면서 그녀는 꾀나 적극적으로 즐겼고, 힌디어를 잘모는 나는 대략의 스토리르 이해할려고 노력했다.
중간중간 그녀가 요약해서 설명도 해주었다.
영화를 보니 저녁 8시가 다되갔다. 그녀는 집에 전화를 하는듯했고, 집작으로도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저녁도 먹고 가겠다는 것 같다. 거짓말이다. 힌디어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그런 상투적인 느낌이
언어를 초월해서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바라나시 대학 변두리에 있는 이스라엘식 뷔페식당에 대려갔다.
대부분이 나같은 여행자였고, 이스라엘사람들었다. 화장실에서 본 몇명 짖꿋은 젊은 이스라엘놈은
어떻게 인도여자를 꼬시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리고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나와 그녀의 집이있는 철교 근처의 집으로 왔다.
잠시 동안 우리는 한산한 가트의 구석에 앉아 있었다.
달빛이 점점 고개를 처들고 있었고, 아주 멀리서 뿌자의식을 하는 한 무리의 불빛도 보였다.
강물이 아무리 탁해도 강가를 둘러싸고 있는 가트를 달빛아래에서 바라보는 즐거운 일이다.
그녀가 살짝 나에게 기대왔다.
그녀의 가슴이 내팔에 조금씩 스치듯 닿았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그 느낌은 남자를 사랑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작은 목소리로 자신은 어떤 꿈을 가지고있는지, 어떤 영화에 나온 옷이 예뻣었는지
자기가 좋아하던 남자가 자기 친구를 좋아했었다는둥 이런 저런 얘기를 속삭였다.
인도인들이 즐겨 이야기 하듯이, 나와 그녀는 전생의 업으로 이렇게 다시 만난건 아닐까.
나는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그녀의 눈이 얼마나 큰지 감히 처다볼수가 없었다.
그녀의 머리칼에서 나는 나그참파향이 이국적인 매력을 더해 주었다. 작은 얼굴에 살짝 처진 큰눈이 박혀있었다.
오똑한 콧날아래 화장끼 없는 입술이 살짝벌어져 윗니가 드러나 보였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오래된 카르마가 나를 전생의 삶으로 돌아가는듯하게 불렀다. 아득히 오랜 옛날 마치 나는 이것과 똑같은 경험을 한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락시미'
짧은 키스였다. 그러나 진향 마살라의 향기는 아직도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건 마치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잊혀지게 할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렇게 첫 데이트는 끝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아직 우리는 1만년 인도의 문화가 허락하지 않는 풋사랑의 서막이었기 때문에 함께 갈수 없었다.
그리고 한번도 손을 맞잡고 걸어 갈수 없었다.
나는 목마른 낙타가 물을 마시듯 50루피짜리 맥주를 한병 들이키고 셋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저녁 10시가 넘었지만, 간간히 그녀의 집쪽에서 큰소리가 났다.
우리는 예의 그 꼬마를 통해서 간간히 연락을 하며 약속을 잡았고, 사르나트나 주변의 작은 소도시를 여행했다.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는 곳을 찾아 헤멧다. 주말이면 조금 멀리 기차를 타고 알라하바드로 떠나기도 했다.
검은 야무나 강과 황토빛 강가상류가 만나 본격적인 강가의 장엄함을 만들는 곳이다. 많은 인도인들이 이상한 여행객인 우리를 주목했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좀더 자유로웠다. 바라나시는 기차로 약3시간이나 떨어저 있었고, 그녀를 아는 인도인은 한명도 없었다.
강이 만나는 곳 건너편의 초라한 짜이집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평원의 일몰이 그러하듯이 서서히 그러나 거침없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갔다. 공기속의 먼지는 붉은 태양의 빛을 받아 주변을 처녀의 뺨처럼 더욱 붉게 만들었다.
돌아가는 기차안에서 우리는 문밖으로 반쯤나가 기분좋게 뺨을 스친는 바람을 맞기도 했다.
그때는 그녀의 활기차고 밝은말투와 흠하나 없는 까무잡잡한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시련도 이겨낼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자 우리에게 현실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당당히 외쳤다. 그 소리가 너무커 소스라치게 놀랐다.
처음 데이트로부터 한두달이 흘렀던것 같다. 우리는 점점 대담해 졌고, 그녀의 부모님이 외출하고 나의 셋방주인이 시장에 나갈때면
가끔 그녀는 내방으로 놀러 오기도 했다. 나는 저녁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앉은 그녀의 모습을 그려주기도 하고, 삼각대를 세워놓고
둘만의 다정한 사진을 찍어서 그녀의 책갈피로 쓰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꺼라는 우리의 상상은 여지 없이 깨졌다. 그곳은 사람으로 넘처나는 바라나시였고, 우리가 아무리 주의 한다고 해도
그녀가 왔다가는걸 본이가 있었을것이다.
어느날 어렴풋하게 들리는 노크소리에 눈을 뜨자 그녀의 아버지가 문앞에 서있었다. 나는 다리의 힘이쭉빠지고 이제 모든게 끝이구나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황급하게 대충 차려입고 내려갔다. 주인집 식탁에 앉아 짜이를 마시며 기다고있는 그녀의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잠기운이 달아나자 그녀의 아버지의 표정이 그렇게 험악하지만 않은듯 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렸고, 그녀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렸다.
'네가, 락시미하고 친하다는건 이미 알고잇다'
'그러나, 더이상 만나려면 결혼을 해야만 한다.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그녀 또한 인도인이다. 네가 인도에 왔으면 인도의 규칙을 따라야한다'
여기 까지 듣자 무슨 말인지 확실히 깨닳았다.
'한국에서온 너에게는 별거 아니겠지만, 남부끄럽지 않게 지참금은 확실히 준비해놨다.'
나는 순간 어지러웠다.
나의 인생은 이제 인도 바라나시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야하나. 힌디도 서투르고 딱히 할줄 아는 것이라고는
그림그리는것 밖에 없는데. 그리고 결혼을 한다면 집에 있는 부모님께 뭐라고 말해야 하나. 집을 바나라시에서 사야하나.
돈은 어떻게 벌고 처자식은 어떻게 먹여살린 것인가? 아에 인도에서 자리를 깔고앉는걸 듣고 우리 어머니는 졸도나 하지 않을지.
온간 걱정걱정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녀 아버지의 말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우리집안은 브라만 계급이다. 비록 초라하게 살고있어도, 카스트도 없는 너에게 어떻게 보내겠나?'
'아직 어린애가 세상을 모르고 좋아한것이니, 이제 더이상 만나지 말고, 당장 여기를 떠나 주게'
'집주인하고는 잘 얘기 했으니 아무 문제 없을거네'
얼들결에 결혼을 하라고 잘못 이해했다.
순간 모든게 아찔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걱정은 순식간에 날라갔다. 인도면 어떻고 홍콩이면 어떠냐.
지금 나에게 그녀는 나이상이다. 그녀와 더 이상만나지 못하면 더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을것 같았다.
나는 한마디도 할수 없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얘기 할수 있게 해달라. 그녀의 인생이니 그녀의 의견도 듣고싶다'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대답은 '노' 였다.
나는 할 수 없이 세들어 사는 집을 나와 메인가트와 조금더 가까운 게스트 하우스로 그날 베낭을 싸서 이사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일동안 그녀를 볼수도 없었고, 그 동네에 내가 얼씬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바라나시를 떠돌아 다니며 그녀와 비슷한 교복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이름을 알기 위해서 많은 인내심을 가져야했다. 사랑의 힘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수 있게 만들었다.
같은 교복을 찾는것도 어렵지만, 비슷한 교복이 너무 많았다. 또 학교이름을 물어보면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까르르 웃으며 도망치기 바빳다.
주변의 인도인들은 무슨 치한이라도 되는양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모든걸 극복하고 더디어 그녀의 학교를 찾았다.
진을 치고 기다린지 몇일 되지 않아. 다른 몇몇의 학생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녀를 볼수가 있었다.
아주 멀리서.
순간 누가 수도꼭지를 틀어놓은것 처럼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소매로 눈물 훔치고 그녀에게 걸어갔다.
아주 멀리서.
인파와 소란으로 누가 누군지 구별할수 없을 정도 였지만, 그녀도 나를 알아봤다.
친구들을 뿌리치고 그녀는 뒤돌아서 뛰어갔다.
나는 놓칠수가 없었다. 주황색옷을 입을 사두들과도 부딪히고 사이클릭사에도 글켰지만 센달이 떨어지도록 달렸다.
머지 않아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을 수 있었다.
나를 돌아 보는 그 큰눈엔 이미 먼지와 눈물이 번벅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울먹였다.
'너를 만나면 않돼'
'너를 만나면 않돼'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있었다.
친구들은 무슨 강도인줄 알고 뛰어왔고, 그녀를 감싸 않았다. 주변의 구경꾼은 이미 몰린데로 몰려 있었다.
교통사고 구경으로 막히는 고속도로 처럼 그 구간은 사람들로 한때 정체가 되었다.
나는 그녀를 잡아끌고 골목 구석에 있는 짜이집으로 갔다. 친구들도 이미 함께였다.
나를 본 그녀의 친구들은 이미 무슨 사연이 있는지 훤히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무슨 말인가를 하고는 사라졌다.
우리는 다시 둘만의 시간과 공간을 되찾았다.
뜨거운 마살라짜이가 담겨진 스텐레이스 잔을 사이에 두고.
그날 그녀는 평소 보다 늦은 시간에 돌아가야만 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보고싶었는지에 대해서, 옛날 알라하바드에서 바라보던 일몰의 시간이 얼마나 멋졌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헤어저서 못만나게 될때는, 바라나시 대학의 그 극장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나는 말했다.
언제까지라도 나는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언제가 되도 좋으니까 나는 너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 집근처 까지 오토릭샤속에 몸을 숨기고 그녀의 손을 꼭잡았다. 이손을 놓치면 다시는 만날수 없을것 처럼.
그녀가 내려서 집으로 걸어 가는 모습을 몰래 바라봤다. 종종 그녀의 손이 눈가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속에서 울리는 작은 외침소리를 들었다. 조용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외침소리가 들렸다.
이네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어야만 했고, 우리는 다시 만날수 없는 나날을 보냈다.
나는 절망했다.
나는 방황했다. 바라나시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가트에 쭈그리고 앉아 강가를 바라 보았다. 그러나 끈임없이 달려드는 호객꾼들의 등살에 조용히 있을수도 없었다.
이곳은 관광지 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한 가트가 있는 그 동내를 떠올렸다.
타다 남은 시체의 조각들과, 깊이를 알수 없는 탁한 물속에 떠다니는 온간 언어로 써여진 쓰레기들이 보였다. 강가는 더이상 낭만적이지 않았다.
비릿한 냄세를 풍기며 썩어들어가는 강속에 헤엄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지옥의 검은물속에 이리저리 뒤틀리는 작은 악마들처럼 보였다.
이세상은 잘못 되고있다. 1억3천만 신들이 보살피는 이땅에서 왜, 사랑하는 두사람은 만날수 조차 없는것일까.
나는 그 썩어빠진 신화속의 강에 대고 외쳤다.
나는 바라나시 대학근처로 숙소를 옮기고 극장앞 짜이가게에 매일 같이 출근을 하게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그녀가 예전에 걸어오던 뱡향을 바라 보았다.
릭샤꾼들이 끈질기게 베낭을 맨 유럽인들을 따라가는 모습.
한국인들로 보이는 한무리의 젊은 남녀들. 청바지를 차려입은 세련된 인도 아가씨와 얼굴에 웃음꽃이 핀 인도젊은이의 모습.
할일없이 벤치에 나와 앉은 바싹마른 노인들의 모습. 여기저기 노점을 구경하는 일본인들의 모습. 극장을 때지어 나와 각자의길로
걸음 제촉하는 모습. 이스라엘청년이 릭싸꾼과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는모습.
그 모든것이 꿈속인냥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아마 한달쯤 뒤였더것 같다. 이제 내가 왜 여기오는지 조차 잃어버린듯 했다. 비둘기가 하늘을 날듯이. 물고기가 헤엄을 치듯이.
나는 그냥 그곳에 앉아 매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냉정을 되찾아, 그녀가 그냥 이데로 나타나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매일같이 그곳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리고 그녀는 나타지 말았어야 했다. 분명히.
이제 제법 우기로 가끔식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인도의 겨울과 다른 맑고 푸른하늘이 나타났다. 후덥지근한 습기와
변함없는 극장앞의 모습이 지겨움넘어서 내몸의 한부분이 된듯이 느껴지는 일요일이었다.
나무잎 사이로 조각 햇볕이 짙은 그림자를 돋보이게 하는 그 길숲으로 낮익은 사람이 보였다.
나는 순간 벌떡일어섰다. 그리고 냉정을 찾았다고 하는 마음은 순식간에 혼돈으로 휩싸였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별할수도 없었다. 그녀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교복과 펀자비드레스에 속에 감추어저 잘몰랐던
그녀의 어른스러운 모습이 확 눈에 띄었다.
그리고 평소 볼수 없었던 스포츠백을 어깨에 매고있었다.
그녀는 집을 나왔다.
가출.
이제 더이상 나는 물러설수 없는 선을 넘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반드시 그녀를 지켜주어야 할 의무를 부여받았다.
이세상으로부터, 그리고 편협한 인도의 문화로부터 그리고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로부터 나는 그녀를 지켜한다.
그날저녁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베낭을 쌓다. 우리는 이제 이전과 전혀다른 세상을 향해서 첫걸음을 딛였다.
네팔로 떠나기전 마지막밤을, 그리고 우리의 첫번째 밤을 캔톤먼트에 있는 타지-겐지스 호텔에 묵기로 했다.
그 호텔은 아주 예쁜 정원이 딸려있으며, 돈많은 부자들이 그렇듯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
짐을 풀지도 않고 방에 처박아 놓고, 호텔근처의 고급식당에서 채식용 마살라요리를 먹었다.
아마 그날밤은 잊혀지지 않는 밤이었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와 내일아침 네팔 포카라로 출발하는 8:30분 버스표를 두장 예약했다. 우리는좀더 멀리 가고싶었으나
그녀는 여권도 없었고, 나이도 어렸다. 여권없이 인도인이 갈수있는 나라는 네팔밖에 없으니까. 우리는 좀 쉬면서
어떻게던 여권을 만들어 한국으로 같이 오기로 했다.
마치 그날밤은 신혼여행을 온것 같았다.
베게에 얼굴을 맞대고 지금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킥킥 되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치 우리는 텔레비젼에나 나올듯한 사랑의 도피를 하고 있다고 농담을 했다.
나는 그녀의 진한 눈썹을 쓰르내렸다. 큰눈은 손동작에 따라 떳다 감았다를 반복했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그녀는 눈을 질끔 감았다. 나는 심장이 쿵쾅되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내가 할수 있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 안았다.
그녀는 보는것 만큼 매끄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고있는지 분명하게 들을수 있었다.
세상에 아무리 따뜻한게 많아도 지금 그녀 만큼은 아니라고 나는 단언했다. 상기된 그녀의 뺨에 키스 했다. 그녀의 눈에 키스했다.
그리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키스했다. 그녀의 콧날이 나의 볼을 찔렀다.
그녀는 말했다.
'너는 나의 것'
그리고
'나는 너의 것'
우리는 세상에서 더이상 부러울게 없었다.
아주 늦게 잠들었다. 그리고 아주 일찍 깨어났다.
이제 그녀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는 첫번째 날이었다. 월요일었다. 그날 새벽에 비가 온듯 세상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고, 태양은
힘차게 떠올라 있었다. 각자의 짐을 울러메고 버스에 올랐다.
대부분이 외국인들로 인도인이라고는 그녀를 제외하곤 없었다. 몇몇 동양인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녀와 무슨관계인지 휴게소에서 묻기도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별로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앞으로의 일이 너무나 걱정이었다.
일단 포카라에 도착해서 셋방을 하나 얻고, 여권을 위조하는 사람들 찾아가 여권을 만들고 어떻게던 한국비자를 받아야했다.
버스가 바라나시에서 출발하자 그녀는 뒤돌아 보았다.
아마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망처온 아버지 ,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한참동안이나 그녀는 바라나시 쪽을
바라봤다. 나는 우울해 하고 있는 그녀를 위해서 한국은 어떤나라인지. 내가 아는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네팔에서 해야할 일들과, 앞으로 매일 같이 지내면서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날들이 가득할지 말해 주었다.
나도 네팔은 이번이 처음이고 어떤 동네인지 잘 몰랐다. 단지 가이드북을 슬쩍읽은것 뿐이지만 상상력을 총 동원해서 아름다운 곧으로 바꾸었다.
버스는 12시간을 달려서 국경 마을인 소나울리까지 다다랐다. 각자 배정받은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우리는 내일은 국경을 넘어 포카라로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얼마나 더 고생스러울지 야단범석을 피우고 있었다.
형편없는 탈리로 저녁을 때우고 나는 맥주를 마셨다.
그날밤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 올라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몇명이나 낳을건지, 자기는 한국에 가면 뭐를 하고 싶은지, 그리고 그녀는 흰눈을 보고 싶다고 했다. 하늘에 떨어지는 눈을 말이다.
그 눈이 어떤 맛이나는지, 감촉은 어떤지. 그리고 한국사람들은 뭘 먹고, 어디서 살고있는지. 서울은 얼마나 북적되고 얼마나 높은 빌딩들이 늘어서 있는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별을 바라 보았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는 그때 하늘에서 많은 별동별을 보았다. 넓은 하늘을 순식간에 가로지는 별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우리의 새로운 인생과 새로운 삶을 축복하는듯 그렇게 아름다운 별들의 밤이었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가 조용하게 들리고, 낮에 북적이는 인파가 줄어들어 소박한 시골의 풍경을 느끼게했다.
우리는 그렇게 두번째 밤을 낭만이 가득찬 북인도의 끝자락에서 보냈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국경으로 걸어갔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건 나나 그녀나 처음인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인도인들이 사용하는 게이트로 걸어갔고, 나는 외국인들이 비자를 받아서가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가는데 갑자기 엄청난 소란이 일었다.
순간 총성이 들리면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흩어지기도 하고 모여 들기도 했다.
그순간 나는 베낭을 버리고 달려갔다. 불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모여든 구경꾼을로 무슨 일이 일이났는지 알수 가 없었다.
인파를 겨우 헤집고 들어가니, 믿을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이세상에서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으며 슬픔과 분노로 잠을 이룰수 없다.
주변에서 어떤 한 남자를 말리고 있었는데 그 남자의 손에는 총이 들려저 있었고,
또다른 남자는 집요하게 손에서 총을 뺏고 있었다. 멀리서 경찰관같은 사람들이 고함치는
소리도 들렸고, 국경경비대 같은사람들도 슬슬 다가 오고 잇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한 여자가 손에는 가방을 꼭 잡고 있으며 바닥에 쓰러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락시미라는걸 달려오기 전부터 상상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 머리속이 텅비어 버렸다. 도데체 무슨일이 일어난거지?
나는 알수가 없었다. 여기서 지금 내가 뭘하는지도 알수 없었다.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건가, 아니면 무슨 연극을 하고있는건가,
환상인지 현실인지 도저히 분간할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아무소리도 내지 못하면서 울고있었다.
매섭게 그녀를 끌어않고 울부짖는 그녀의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한손에 총을 쥐고있는 그남자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가 날 보자 더욱 길길이 날뛰었고, 총을 찾아 헤메다가 보이지 않자 발길질로 얼굴을 걷어찾다. 피할수도 없었다. 아니
나는 처음부터 움직일수도 없었다. 그대로 나가 떨어졌다. 빙글빙글 도는 수많은 얼굴들과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피냄새다.
그녀의 피인지 나의 피냄새인지 알수 없었다. 그리고 몇번인가 발길질이 오고가고 하는동안 나의 눈에는 점점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세차게 나의 이름을 불렀다. 눈을 뜨자 온몸이 쑤시고 아팟다. 한쪽은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고, 고개를 들수도 없이 목뒷부분이 아팟다.
그리고 점점 기억이 돌아왔다. 그녀가 이제 더이상 세상없다는 생각을 하자, 나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지처서 더이상 울수 없을때까지 울었다.
그리고, 나는 빌고 또 빌었다. 1억3만인도의 신에게 빌었고, 하느님, 부처에게도 빌었다. 제발 이게 꿈이기를.
오랜시간이 흐렀다.
나는 병원에 누워 간단한 치료를 받고있었다.
그리고 더욱더 뼈저리게 아픈건 이게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곧 나는 인도의 어느 경찰서에 감금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내가 그녀를 납치해서 도주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했으므로 아버지인 자신이 처벌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역시 어느 경찰서에 강금됐었다는 설명이다.
몇일동안 철창에서 있으면서 싸구려 커리와 짜파티 그리고 물을 마시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영사가 찾아왔다. 나는 최대한 있는 사실대로 설명했다.
영사는 인도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나의 잘못이라고 했고, 납치,강간,도주등의 협의는 무협의 처리 되겠지만, 일종의 부녀자를 꾀어내
도주한 죄는 인정될거라고 했다. 결국나는 보석으로 2만4천루피를 내고 2주일만에 풀려났으며, 내 베낭은 행방이 묘현했다.
나중에 영사와 통화할때 알았는데, 이사건이 인도 신문에 짤막하게 났다는 이야기였다. 그 아버지는 무죄로 풀려났으며,
바라나시에서는 진보적인 인사들 사이에 잠깐동안 이슈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여권과 거기에 껴있던 현금카드만 남게 되었다. 네팔비자를 받기위해서 여권을 들고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포카라로 갔다. 잊을수 없는 사건은 계속 나를 괴롭혔고, 내가 그녀를 죽인것 마냥 죄책감에 시달렸다. 포카라의 좁은 골목 셋방에서
나는 매일밤 울었다. 달리 할 수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미소, 그녀의 목소리는 환영과 환청처럼 계속 들렸다.
정말 죽고 싶었다. 가끔은 그때 내가 네팔에서 죽어야 했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손이 떨린다.
나는 그렇게 포카라에서 4개월간 있었다. 누구에게도 단한마디의 말도 하지않았다. 침묵의 4개월있다. 말하는 방법도 잊어버릴정도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들은 세상의 끝이라는 무스탕으로 걸어갔다. 걷고 또 걷고 걸었다. 어디 쯤인지 언제인지 몰라도 여권도 버렸다.
티벳의 어느조그만 마을에 도착했을때 내 발은 이미 갈라지고 새끼발가락은 떨어저 곪고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공안에 신고를 했고.
나는 북경으로 후송된뒤 강제 추방을 당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한 해는 갔다.
나는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잊을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가끔씩, 코끝에서 인도의 진한 향기가 느껴진다.
그러면 그녀의 얼굴이,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얼굴이 그녀의 얼굴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단지 분명한건
끝을 알수 없는 슬픔에 잠긴다는 것이다.
참 !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두사람 사이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것 같네요! 소중하게 딸을 키운 아버지로서 배신감과 가문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와 이일로 인하여 상처 받았을 사람들!!! 기운내시구요 잊기 어렵겠지만 현실에 충실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살수만 없죠!
안습ㅠㅠ 글쓴님을 포함해서 그 여자분 과 그 아버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한편의 비극이네요. 그러니 혼자서 죄책감을 모두 뒤집어 쓰지는 마세요...라는 피상적인 말밖에는 해줄수가 없네요. 어찌 그 슬픔과 죄책감이 쉽게 가시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저는 그 말을 어느정도 믿습니다. 힘내세요...
첫댓글 정말 슬프네요.. 힘내세요.. 후....
그녀도 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을겁니다.. 축복을..
참 !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두사람 사이는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것 같네요! 소중하게 딸을 키운 아버지로서 배신감과 가문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와 이일로 인하여 상처 받았을 사람들!!! 기운내시구요 잊기 어렵겠지만 현실에 충실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살수만 없죠!
영화같은 일이 주변에서도 일어나네요.. 힘내세요
슬픈사랑이야기ㅠ
이런일도 일어나는군요,,,참으로 슬픈현실입니다. 넘 마음이 아프네여~ 힘내세요
너무 가슴 아프내요.. 이제 마음속에 짐은 내려놓고 일어나세요~! 락시미양도 그걸 바랄꺼예요..
ㅠㅠ
인연이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말로도 님의 슬픔을 위로할 순 없고 님의 슬픔을 같이 할 순 없지만... 힘내세요...
안습ㅠㅠ 글쓴님을 포함해서 그 여자분 과 그 아버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한편의 비극이네요. 그러니 혼자서 죄책감을 모두 뒤집어 쓰지는 마세요...라는 피상적인 말밖에는 해줄수가 없네요. 어찌 그 슬픔과 죄책감이 쉽게 가시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는 말..저는 그 말을 어느정도 믿습니다. 힘내세요...
항상 그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밝게 사세요. 아마 님을 보시면서 같이 가슴아파하고 계실지 몰라요.
음... 이건 소설인것 같은데요?
ㅋㅋㅋ 웃기고 자빠졌네.. 인도가 뭐 터키인줄 아나..공공의 장소 그것도 국경지대에서 총살했는데..무혐의라..ㅋㅋㅋ
글쓴이 면상좀 보고싶군 ㅋㅋㅋ
실화(리얼스토리) 맞나요? 넘 넘 가슴이 시린 이야기입니다.
소설 잘 읽었습니다_-_
정말 사실이라면..이렇게 글을 쓸수 있을까...난...못할거 같다.......
확실한건 시간이 님을 도와줄거예요....
전 여자라....... 그 인도 여성분 너무 걱정되네요........평생동안 안고 살아야 할 상처랑......... 님의 순수한 사랑했던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 존경하지만 너무 이기적이셨던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