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달 말 공과금 지불을 위해 인터넷으로 계좌이체 작업을 하다 OTP(one time password)생성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공과금의 지불기일을 어기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버턴을 누르면 숫자가 나와야 하는 OPT 생성기에서 숫자 대신에 END 라는 문자표시가 나오면서 제 기능을 상실하여 적잖게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은행에 가서 새로운 OPT 생성기를 발급받아 정상적으로 공과금 이체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탈 진실 시대풍조에 맞추어 나이를 거꾸로 뒤집어 2.8청춘이라고 농담처럼 자랑하고 다닙니다. 이번에 경험한 OPT 생성기 같이 아무 예고 없이 불시에 생명을 앗기는 변고를 당하면 본인은 물론 고통 없이 세상을 하직하니 하나도 억울 할 것 없지만 가족과 친지들이 적잖게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8청춘이 아무런 징후 없이 별안간 갔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선종(善終)을 간구하는 젊은 노인으로서 갑자기 영면하더라도 친인척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매순간 신변을 잘 정리하며 깨끗하게 살아야 할 내 나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던바의 숫자(Dunbar’s Number)’ 라는 말을 들어 보신적이 있으신 지요?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진화 심리학자인 이안 던바(Ian Dunbar)가 고안한 이론으로 한 개인이 맺을 수 있는 관계는 최대 150명이라고 한계를 지우고 있습니다. 던바는 150명 가운데 가까운 친구(close friends)는 35명, 신뢰할 수 있는 친구(trusted friends)는 15명, 그리고 정말 친한 친구(intimate friends)는 5명의 범주를 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SNS에서 거느리는 팔로와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부담스런 이야기 입니다만.
결국 한사람이 생에 마지막에 다다르면 주위에 남는 인연은 기껏해야 아주 친한 친구 한두 명과 가족뿐이라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만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한 개인의 성공을 논할 때 ‘가정을 우선하라’ 라고 말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말한 ‘America First’ 그리고 ‘Make America Great Again’등의 구호와 같이 좀 이기적으로 들리지만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매우 합당하며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나는 가정에 더 충실하기 위해 소임을 사직한다’는 말을 하며 공직을 떠나가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보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성직자들이 신자들에게 “우선 가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가정의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라.”라고 신앙보다 가정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내비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매우 이성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가족 아홉 사람이 7월말에서 8월초에 걸쳐 7박 8일간의 런던과 오슬로의 두 도시 여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필자의 가족 여행 이야기와 여행 길에서 느낀 점을 간단히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필자의 아들과 딸이 자신이 태여 난 곳 노르웨이 오슬로시로 가족 여행을 해보자는 제안이 오래전에 있었습니다. 아들과 딸은 40여년전 오슬로에서 태여 났으나 유아시절에 서울로 돌아와 어린시절 자라난 환경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 구성원을 살펴보면 필자 부부,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부부 그리고 친손녀 유아원생 그리고 외손녀 대학 2학년생 그리고 외손자 국민학교 6학년생으로 구성 되여 있습니다.
시기적으로는 여름 방학 때 직장에 다니는 아들과 사위가 휴가를 얻어야 단체 여행이 가능한 형편이었습니다. 손자 손녀 들의 방학 기간 중 아들과 사위가 직장에서 각각 일주일간의 여름휴가를 얻어 토요일 오전에 한국을 출발해서 그 다음주 일요일 오후에 인천으로 귀환하는 7박 8일의 일정을 기본 여행 계획으로 세웠습니다. 여행일정은 일주일을 목적지 오슬로와 노르웨이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분산하여 대도시 문화 여행을 편입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했습니다. 필자의 강력한 권유로 후자를 선택하여 짧은 기간에 런던과 오슬로 두도시를 여행하기로 가족간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리 가족의 구성원 중 며느리와 사위 그리고 손자와 손녀들은 대도시의 문화 여행을 선호한다고 필자가 짐작하여 이를 여행 일정에 반영한 것입니다. 일주일을 나누어 4일은 런던에서 나머지 3일은 오슬로에서 보내는 여행 일정을 만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런던을 경유하려 하다 보니 노르웨이 오슬로와 베르겐에서 일주일을 보내는 것보다 이동거리와 시간이 더 소요 되여 의문의 여지없이 비 효율적이였습니다. 하지만 모처럼 온가족여행에서 최대한 가족구성원들의 욕구를 고르게 충족하여 사기를 높인다는 차원에서 오슬로와 런던의 두 도시 여행계획이 더 합리적으로 판단했습니다.
런던의 체류 기간이 4일이라고 하지만 오슬로로 이동하는 오후에 SAS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런던에 체류하는 시간이 3일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 부부, 아들부부와 가족 그리고 딸부부와 가족이 하루는 자유 시간을 갖기로 하여 함께 다니며 런던의 관광과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은 더욱 짧았습니다.
교통수단은 TO-OT OPEN TOP BUS의 이틀 이용권을 구매하여 이용하였고 하루는 런던시장이 발급하는 Oyster 교통카드에 10파운드를 충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세인트 폴 대성당, 테이트 모던 박물관, Big Ben and the Houses of Parliament를 관람했습니다. Borough Market에서는 음식점거리 풍경과 군중속에 휩쓸려 시끌벅적한 도시형 먹자골목의 분위기를 체험했습니다. 버킹검 궁전의 위병교대식을 관람했으며, 세인트 제임스 파크, 하이드 파크를 산책했습니다. 각기 취향에 따라 오페라의 유령(우리부부), 라이온 킹(아들 며느리 가족), 그리고 위키드(딸과 사위 가족)등의 뮤지컬을 관람하며 공연 문화 체험을 했습니다.
런던에서 하루 자유 시간에 아들 부부는 쇼핑, 딸과 사위가족은 토턴햄 축구장 방문(손자 손녀들이 손흥민 선수의 홈구장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셔츠 등 기념품을 사기 위해), 우리 부부는 백화점 구경과 공원 산책을 했습니다.
런던에 머문 숙소는 에어 비&비를 통하여 타운 하우스를 임차하여 지냈습니다. 타운 하우스의 장점은 베드 룸이 많아 호텔처럼 각자 방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저녁에는 거실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낮에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 다음 날 일정을 의논했습니다. 타운하우스의 출입문은 열쇠를 이용하는 시스템인데 다행이 주인이 열쇠를 3개주어 우리 일행중 어른 한 팀이 각각 열쇠를 하나씩 소지하며 자유롭게 숙소를 출입 할 수 있었습니다. 9명이 함께 여행하기 때문에 우버를 이용해도 승용차 3대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공항으로 오고 가는 급행기차가 있는 Paddington 역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히드루공항에 도착하여 웨스민스트구에 있는 숙소로 갈 때 그리고 숙소에서 런던 일정 마치고 오슬로로 출국하기 위해 공항 행 급행 기차를 탈 때 Paddington 역까지 각자 캐리어를 끌고 걸어서 이동하였습니다.
오슬로에서는 중앙역부근에 있는 Amerikalinjen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호텔은 중앙역에서 내려 3-5분정도 걷는 거리에 있어 편리 했습니다. 오슬로에서 주요 일정은 오슬로항구에서 배를 타고 오슬로 내항 투어하고, 뭉크 뮤지움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 방문 그리고 프로그너 파크 산책 등의 일정을 소화 했습니다.
무엇보다 40여전 전 아들과 딸이 태여 난 오슬로시내 아파트 주소지(Kirkeveien 102C, Olso 3)를 방문하러 갔을 때 옛 아파트가 그때 그 시절에 우리가 살던 그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지금도 현지인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야 말로 business as usual 이었습니다. 아파트의 출입문만 push & pull에서 sliding구조로 바뀐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파트 뒤에 잔디밭과 느티나무가 왕성한 생명력을 유지 한 채 옛날 그 자리를 수호신처럼 늠름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앞 공원에서 손자와 손녀들이 옛날 필자의 아들이 어린시절 타고 놀던 그네도 타고 놀이기구를 즐기며 노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니 먼 거리를 달려온 피로가 한꺼번에 확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오슬로 여행을 떠날 때 사십 수년 전에 살던 집이라 혹시 재개발로 인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 져 추억여행을 함께한 가족들이 실망할까 마음속으로 걱정도 되었습니다만 이는 단지 기우에 불과 했습니다. 서울에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건축한지 35년 밖에 되지 안았는데 재건축한다고 야단 법석인데. 서울의 도시 재생 사업이 빠른 지 오슬로가 느린 지 도시계획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아무튼 오슬로 옛 아파트와 주위 환경의 건재는 추억여행을 하는 우리 가족에게 더 없이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오슬로에 머무는 마지막날 저녁에는 오슬로시내에 있는 가장 오래된 식당인 Engebret Café(1857년 설립)에서 주방장이 추천하는 Half-dried Cod Fish와 Reindeer Steak와 와인을 주문하여 먹고 마시며 무사고여행을 자축하며 런던-오슬로 가족 추억 여행의 마지막 밤을 장식했습니다.
노르웨이 여행을 제대로 하자면 Oslo에서 Bergen으로 가 노르웨이에서 제일 긴 Sognefjord를 구경해야 하는데 런던을 경유하는 도시 문화 체험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노르웨이 Fjord 관광을 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필자는 1971년-1973년까지 현대중공업 런던 사무소에서 ECGD(Export Credit Guarantee Department, 영국수출신용보증국) 보증 차관으로 당시 현대 울산조선소 기자재를 구매할 때 coordinator로 계약관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1976-1978에는 현대중공업 초대 오슬로 지사장을 역임한바 있습니다. 이번 두 도시여행은 필자 부부에게는 추억 여행이고 가족들에게는 추억 만들기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위와 며느리 손자 손녀들은 초행이라 추억 만들기 여행임이 더욱 확실합니다. 아들과 딸은 오슬로에서 태여 났지만 아주 어릴 때 오슬로를 떠났기 때문에 이번에 태여 난 곳의 영상을 기억속에 확실히 담아 왔으리라 믿습니다. 때문에 그들 에게도 사실상 추억 만들기 여행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50여년 전 런던에 주재할 때 사무실이 런던의 Brompton Road에 있었습니다. 당시 현대중공업 런던사무소에 근무했던 임직원들이 Brompton Club이라는 친목 모임을 만들어 요즘도 격월로 만나고 있습니다. 필자가 10년째 그 모임에 좌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재원으로 런던에 근무할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정주영 회장님께서 런던에 자주 출장 오시곤 했습니다. 고정주영회장님은 그때마다 주재원들을 Soho에 있는 Gallery Rendezvous라는 중국식당으로 불러 맛있는 중국 요리를 사주며 우리를 격려했습니다. 특히 집게로 까먹는 게요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번 가족 여행시 Gallery Rendezvous 식당으로 가족들을 초대하여 그때 먹었던 맛있는 게요리의 추억을 되살려보려고 했으나 옛날 그 식당이 10년전에 폐업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가 40여년전 오슬로에 주재원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현지호탤 조식 buffet때 marinated herring 이라고 해서 청어를 단지에 넣고 소금에 재워 둔 청어 온 마리 절인 음식이 있었는데 이번 여행시 호텔 조식 buffet에서 그 자취를 찾아 볼 수 가 없었습니다. 아울러서 훈제연어나 새우등을 작은 빵조각위에 얹어 노르웨이사람들이 즐겨 먹는 전통음식 open sandwich를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었으나 취급하는 식당을 끝내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머문 amerikalinjen 호탤의 조식 뷔페는 다양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여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우리는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동반자라는 뜻의 영어 단어 companion과 식구(食口)는 낱말의 어원으로 보면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companion의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 com(together)와 panis(bread)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companion은 글자 그대로 빵을 함께 나눈 자 즉 식구(食口)와 같은 끈끈한 유대 관계를 가진 친밀한 인간관계를 상징합니다.
이렇게 보면 인생의 좋은 동반자가 되기 위해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여행을 함께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식구와 companion의 어원으로 보아 상대방을 자주 식사에 초대하여 밥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즐기면 좋은 동반자가 되는 길이 열린다고 생각하면 어떨 까 싶습니다.
마찬가지논리로 가정에서 성공하는 가장이 제일 먼저 할 일도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기회를 자주 마련하는 것이 손쉬운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장은 먼저 지갑을 열고 언제 가 될지 모르는 최후의 만찬에 끝 날이 올 때까지 식구들을 계속해서 초대하십시오. 식사비를 인색하게 아껴봐야 부자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부터라도 친한 친구들과 식구들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식사에 초대하고 그들을 환대하십시오!!!!! 치우친 주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미리 사과 말씀 올립니다.
첫댓글 ^家和萬事成^을 보았네요.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