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 유계리(유천마을) 출신으로 어릴 때 해인사로 출가하여 해인사 주지, 동국대 총장,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등을 역임하신 지관 큰스님이 올해 6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셨는데, 12월 16일, 그 제자와 유계리 문중에서 고향방문기념비를 제막하였습니다.
기념비 제막식에 모인 전국의 제자 스님들과 고향 문중....
박승호 포항시장을 비롯한 내빈도 참석
기념비 제막에 공을 세운 분을 위해 지관큰스님이 감사패 전달
기념비 제막 준비...하나,둘, 셋!
기념비 탄생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기념비
지관 큰스님이 직접 비문 낭독
전국의 큰스님, 제자들과 기념촬영
유계리 고향 종중과 함께....
[지관 큰스님 고향 방문 기념비 내용](요약)
청하 유계 저수지 공사가 마무리 되어가던 2010년 4월 봄남, 청하면 유계리 인근에 남아 고향을 지키는 옛 유계리 경주이씨 학포공파 종친들은 겨울잠을 깬 듯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득히 먼 소식으로만 접하던 고향 출신 지관 스님께서 물 속에 사라질 고향을 보고 싶어 출가 후 60년 만에 유계리를 찾는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2010년 3월 3일, 방문 전 일정을 미리 준비코자 서울의 문도들이 인근 송라에 사는 80이 넘은 막내 누님을 찾았고, 누임은 청하에 사는 종친들에게 고향 마을 안내를 부탁하였다. 하지만 옛 고향 마을은 이미 저수지 편입 부지로 수용되었고, 스님이 보고파하시던 고향 마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82년 전 아홉 살 어린 맏아들을 잃은 후 시름에 잠겨 있던 큰 스님의 부친은 사랑방을 자주 드나들던 풍수어른의 조언으로 마을 위 논 한가운데로 집터를 옮겼다. 스님은 이 곳에서 출생하셨고, 저수지 경계는 다행히 이곳을 살짝 비켜 있었다. 큰스님은 전국에서 달려온 종친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 날 이후 유천 문중 어른들과 큰스님 제자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하 유천의 오랜 기억들이 그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무언가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다. 1948년 출가 이후 친인척들의 방문에 한결같이 냉담하셨기에 가까이 뵐 수도 없었던 큰스님의 적극적인 고향 방문에 모두들 의아해 하면서도, 고향 방문의 기록을 돌에 새겨 후세에 전하면 뜻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다.
큰스님이 다녀가신 후 유계리 고향의 기억들이 사라져 가는 일에 손을 놓고 있던 유천 종중 어른들은 생가터를 포함한 주변 문중 땅을 '큰스님 고향방문 기념비' 건립부지로 내놓기로 하고, 큰스님께 비문을 부탁하게 되었다. 이 비문에는 공동의 편의를 위해 저수지에 고향을 내어준 이주민들을 위로하는 내용은 물론, 유구한 고향의 역사와 아울러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선조들의 위적을 새겼다. 비문 끝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체 생명은 모두 고향이 있다 하고, 특히 인문의 역사를 탄생시키고 유지케 한 모두의 아름다운 고향 산하와 모든 이들의 선조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하였다.
큰스님의 부친(圭白)은 유계리 78번지 옛 집터에서 9세의 맏아들을 잃고 시름에 잠겼다가 옥녀직조형(玉女織造形)인 이 자리로 옮기면 후손이 융성하리라는 풍수의 조언에 따라 집터를 옮겼다. 집터를 옮긴 지 3년 후인 1932년 5월 11일(음) 태어났으나 5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15세 때 부친마저 돌아가셨다.
10세 이후 이름 모를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인 큰스님을 부친은 황바위골 절에 요양차 머물레 한 후 공양미를 등에 지고 기암 절벽 사이의 법성사에 자주 왕래하셨다. 관세음보살 6자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을 간절히 칭념(稱念)한 영험으로 스님의 병은 완쾌되었고, 마침 애인사에서 탁발나온 용명(龍溟) 스님의 법문을 듣고는 출가를 결심하였다.
1947년 애인사로 가서 자운대율사(慈雲大律師)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봉암사 선원으로 옮겨 정진하던 중 빨치산 야습으로 경찰로부터 해산 명령을 받고 떠나 울릉도 성인봉 밑 주사굴에서 생식정진하다가 오대산 한암(漢岩) 스님 회상(會上)을 찾아가던 중 주문진에서 6.25를 맞았다. 부득이 남하하여 고향 근처인 보경사 서운암 용화선원에서 정진하던 중 형님 가족이 모두 호열자(虎列刺)로 생사를 넘나든다는 전갈에 부득이 이곳을 왕래하며 간호하던 때가 경인년(1950)이고, 다시 찾은 해 또한 경인년(2010)이니 60년 만의 고향 방문이 된다.
첫댓글 훈훈하고 아름다운 소식과 비문 요약까지 감동적입니다. 고맙습니다. ^^ '애인사는 해인사이고요..."
애인사-->해인사...바로 잡습니다. 비석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입니다. 한번 볼 만한합니다.
아주 뜻깊은 행사가 있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대종사께서 오신 곳에는 상서로운 기운마저 감도는군요. 장엄한 분위기에 마음이 다잡아지고 깃을 여밉니다.
티브이에서 자주 뵙던 큰스님이시군요.
60년만에 고향에 오신 큰 스님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해봅니다.
스님 늘 건강하시기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