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며칠전에 저희 카페에 실린 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네요...한겨례21에도 이런 관심이 나타나 있어 그 글을 바췌해봅니다...올바른 판단을 위해서...
여기부터....[ 커버스토리 ] 2000년08월01일 제320호
[표지이야기]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딸에게 고발당한 어느 파출소장 엄마… ‘무책임한 패륜녀’인가 ‘정당한 행복찾기’인가
당신의 자식이 만약 당신을 공개 고발한다면, 혹은 당신의 가족 가운데 이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하겠는가.
지난 7월21일 인터넷의 각종 게시판에는 ‘우리 엄마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다. 광주 ㅎ대 2학년에 재학중인 하아무개(21)씨가 올린 이 글은 놀랍게도 현직 파출소장인 어머니 김아무개(42)씨의 ‘불륜’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김씨와 딸의 이름은 이미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사생활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실명과 사진을 쓰지 않기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전례가 없는 일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이유는 아빠의 잘못이 아닌 엄마의 외도로 이혼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분노감과 막막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서입니다. 엄마는 엄마로서 책임도 다 버린 채 자식들마저 버리고 떠났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어머니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 외도 사실, 공직자로서의 도덕적 문제 등을 적나라하게 제기했다. 이 글이 오른 뒤 <광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www.kwangju.co.kr) 독자투고란, 광주서부경찰서 인터넷 홈페이지(www.gspolice.go.kr) 방명록, 그리고 여성문화동인 ‘살류쥬’(http://user.chollian.net/∼q17) 게시판 등은 연일 네티즌들의 논쟁으로 달아올랐다.
처음에는 ‘무책임한 패륜엄마’이자 권력에 눈이 먼 ‘악덕 경찰관’을 응징하자는 목소리가 거셌다. 그러나 얼마 있다 ‘엄마에게도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김씨의 고등학교 동창이 “첫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친구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소상하게 밝히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네티즌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와 딸의 태도에 대한 비판 등에 머물던 네티즌 논쟁은 그뒤로 간통죄 존폐여부에 대한 찬반론, 딸 뒤에 숨어 있는 아버지에 대한 비판, 우리 사회에 온존하는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경찰은 남편에게 간통죄로 고소당한 하씨의 어머니 김씨를 서둘러 직위해제했다. 하지만 광주서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김씨는 간통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액반응검사를 의뢰해놓은 상태이다.
(사진/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파출소장 엄마 고발 사건'. 네티즌들의 논쟁은 가부장제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비록 현직 파출소장이 등장한다 해도 내용은 흔하디 흔한 간통사건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외도’를 딸이 공개적으로 ‘실명고발’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이다. 과연 어머니는 딸에게 고발당할 정도로 그렇게 잘못한 것인가. 지금까지 공개된 사실은 인터넷에 오른 딸의 고발장과 며칠 뒤 김씨의 고등학교 친구가 올린 글의 내용이 전부다. 그리고 양쪽의 주장은 매우 다르다.
7월27일 정오께 광주시 주월2동 동사무소 앞. 약속했던 하씨는 나오지 않고 할머니가 대신 나왔다. 한참 뒤 하씨는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해 “몸이 불편해 전화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고 청했다. 딸은 “인터넷에 올린 글은 모두 사실이다. 엄마가 미안해하고 반성하면 다 용서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에게 현장을 들키고도 도리어 당당한 엄마 모습에 더 화가 났다. 공개 고발한 걸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엄마가 법에 따른 처벌을 받길 원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사-제자 신분으로 만나
같은 날 오후 5시 광주서부경찰서 조사계. 중간 키에 마른 몸매의 여성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티셔츠에 진바지 차림의 평범한 복장이었다. 어머니 김씨였다. 김씨는 조사 받는 내내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있었고, 간간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눈가와 코를 닦았다. 오후 4시께부터 시작한 조사는 저녁 7시가 가까워서야 끝났다. 조사 내용은 딸이 주장한 내용에 대한 사실여부를 따지는 것이었다.
조사가 끝난 뒤 김씨와 마주앉을 수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려 하다가 한참만에야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든 딸한테는 상처가 될 거예요. 엄마 입장에서 무슨 소리를 하겠어요. 내 딸 욕보이게 하는 거죠… 내 얼굴에 침 뱉는 일이죠….”
김씨는 주변에서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한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가, 31살 때인 89년에 경사가 되었고, 38살되던 96년 승진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경위가 되었다. 순경으로 출발한 여성경찰관으로서는 성공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를 아는 동료 경찰들은 “무뚝뚝할 정도로 감정 표현을 안 하는 과묵한 성격이고, 냉정하고 확실하게 일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인동파출소장을 맡으면서는 지역 매매춘 근절에 모범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그는 파출소장에서 직위해제된 것은 물론 경찰서 조사계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두하는 신세가 됐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결혼한 경위부터 털어놓았다. 남편과는 고3 때 교사와 학생 신분으로 만났고, 졸업 뒤까지 관계가 이어졌다고 한다. 당시 남편은 이혼남이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듯하다. “아이 낳고 나서 혼인신고 했어요. 어쨌거나 제가 선택한 결혼인데 지금 와서 왈가왈부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는 “스무해 넘게 살아왔지만, 더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게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남편의 가정폭력과 의처증 때문이었다. 폭력의 정도에 대해서는 “많았다”고만 짧게 답했다.
나중에 사실 확인을 위해 남편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딸이 쓴 글에 나온 이야기가 다 사실이다”는 말로 대신했다. 가정폭력 문제에 대해서는 딸에게 수화기를 넘겨주며 대답을 미뤘다. 딸은 “엄마가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동료경찰은 “남편이 김씨의 근무지로 달려와 사람들 보는 앞에서 머리채를 휘어잡은 일이 몇 차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김씨의 옛 동료는 “직장에서 엄격했던 김씨였기에 그런 남편의 행동은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남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불행에 휩싸인 한 가족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또한 사건과 사건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복잡한 퍼즐맞추기와도 같다. 독특한 가족사와 당사자들의 애증이 여러 갈래로 얽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의 집안 사정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사자의 주장이 다르긴 하지만 폭력을 다스려야 할 경찰관의 가정에도 그늘을 드리웠던 가정폭력 문제,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직장여성의 자녀양육과 가사노동 문제, 이혼에 대한 가부장적 시각, 중년 여성의 행복찾기 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등 여러가지 질문을 함께 제기한다. 그래서 한 가족의 가정사는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측면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어느 현직 여성경찰 간부의 동병상련
(사진/김씨가 소장으로 근무했던 광주 대인파출소. 김씨는 지역매매춘 근절에 성과를 거둔 것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의 내용을 잘 아는 한 현직 여성경찰 간부는 어느 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고 말한다. 문득 자기 자신에 대해 한스러움이 들었다는 것이다. “저는 그동안 자식들 새벽 도시락 싸주면서 집안일 다해 가면서 이 제복을 입고 일했어요. 물론 내 딸들은 엄마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많이 이해해줬지만, 대체 나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았나, 뭘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지냈나 하는 생각이 두서없이 들더군요. 저녁 내내 울었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직장인인 어머니는 가정에서 계속 도망치고 싶어하고, 딸은 자신을 ‘배신’한 어머니에 대해 맹목적으로 분노한다. 그리고 남편은 당사자임에도 모녀의 애증관계에서 한발 빠져 있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착하고 말없는 우리 며느리가 눈에 뭐가 씌여서… 잠깐 바람이 나서 이렇게 일이 된 것”이라고 말하며 문제의 원인을 애써 외면한다. 가족 모두가 정서적 일치감이나 유대감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딸의 눈에는 이 모든 책임이 ‘밖으로만 나돈’ 엄마에게 있다고 보였다. 딸의 분노는 생생하고 거칠다.
“어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이며, 엄마이며, 아내이며, 모든 국민의 선망의 대상인 여자 파출소장으로서 자식을 버리고 남편을 버리고 가정을 처절하게 파괴하는 인륜을 깨버리는, 그래서 자신의 안락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반사회적인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까. 하늘이 울고 땅이 울며 저의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너무나 어이없는 일입니다.”
딸은 어째서 엄마에 대해 이토록 증오에 가까운 분노를 품게 된 것일까. 딸의 고발장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엄마의 잘못’은 가사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어머니 김씨는 “원래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다. 96년 경위 승진시험을 보면서부터 집안의 합의에 따라 가사일에서 손을 뗐다”고 말했다. 과중한 업무에 쫓기는 현직 파출소장이라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대가족의 가사노동을 맡아야 하는 것일까, 또한 마흔이 넘은 성공한 직장여성인 엄마가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일까. 그러나 어쨌든 딸에게는 엄마의 그런 행동이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애초 두 사람은 모녀가 아니라 마치 자매처럼 지냈다고 한다. 김씨가 딸을 낳은 것은 21살 때. 따라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불과 21살밖에 안 된다. 김씨는 “둘 사이에는 비밀도 없었다. 아빠한테 맞고 함께 부둥켜 안고 많이 울기도 했다. 목욕도 일주일에 두번씩 같이 다니고 잠도 자주 같이 잤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도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된 것이 의문이라고 말했다. “내 보기에는 나이차도 별로 안 나서 그런지 항상 언니 동생 같았는데. 지난해부터는 둘이 많이 다투더라고.”
결정적으로 딸의 분노를 촉발시킨 것은 그런 어머니가 이혼을 요구하고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이다. 하씨는 인터뷰에서 “자기가 좋은 사람 만나는 건 탓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가정을 깬다는 게 말이 되느냐. 결혼했으면 책임져야 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반사회적인 행동을 “딸이자 시민의 한명”으로 고발한 것이라는 게 딸의 설명이다.
냉혹한 ‘가족의 논리’
(사진/간통죄로 남편에게 고소당한 김씨가 조사를 받고 있는 광주서부경찰서. 김씨는 간통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머니 김씨는 “95년께부터 이혼을 결심했지만, 딸이 어렸고 (경찰관) 제복 때문에 갈라서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직장 생활에 대한 남편의 지나친 간섭, 시댁 식구들에게 자신이 번돈을 뜯기고 있다는 느낌, 남편의 의처증과 구타 등이 겹쳐지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불행한 결혼생활일지라도 어쨌든 자신의 선택인 만큼 계속 유지해야 옳은가, 아니면 과감히 박차고 나와 새로운 삶을 설계해야 하는가 하는 ‘노라의 고민’이 다시 등장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내가 아는 김 소장’이란 글에서 “법적인 절차를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남자를 선택했고, 이렇게 크나큰 죄를 짓고 물의를 일으켰지만 김 소장이 경찰관이 아닌 다른 평범한 여자였어도 이런 비난을 퍼부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경찰관이기에 앞서 여자이고, 자신의 행복추구권이 있는 사람”이라고 김씨 옹호론을 펼쳤다.
딸 하씨의 고발장이나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의 중심에는 항상 할아버지가 있다. 딸은 엄마가 연하의 남자와 살림을 차린 집에 “할아버지를 비롯해 12명이 엄마가 출근하기 위해 출입문을 미는 순간 밀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장을 들킨’ 어머니가 “할아버지 앞에서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고 분노한다.
딸은 엄마의 부정을 단죄하는 일도 ‘가족의 이름’으로 앞장섰다. 7월20일 아침 7시30분 집나간 어머니 남자친구의 집을 ‘급습’한 사람들은 시부모와 남편, 딸, 시동생, 남편의 사촌동서, 동네 아저씨들이었다. 하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른 지방으로 떠난 오빠 대신 오빠의 친구들까지 불러모았다. 엄마에 대한 연민이나 배려는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오로지 ‘가족의 논리’와 ‘단죄의 역할’만 있을 뿐이다. 가족의 질서를 해치고 자식을 버린 엄마는 사회적으로 매장돼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독립적 인격체로서의 어머니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딸의 행동의 근저에는 가부장적 논리가 철저히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네티즌 김혜선hyesun@provid.net)씨는 “하양도 남성 본위의 가부장적 체제의 가여운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여자는 몸을 조신하게 해 집에서 살림을 돌보고 자식들에게 봉사하고 시부모를 봉양하며 남편을 공경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라는 정의가 그의 글 속에 다 드러나 있다”고 지적했다. 가부장적 질서를 지키는 것만이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며, 그걸 깨는 어머니의 이혼은 모녀의 인연을 끊는 행동으로 하씨는 믿은 것은 아닐까. 더욱이 김씨는 하씨가 인터넷 글에서 몇차례나 강조한 것처럼 가족에 대해 큰 책임을 져야 할 ‘맏며느리’이기도 했다.
하씨는 인터넷에 어머니의 부정을 폭로하는 글을 올린 이유에 대해 “엄마가 현장에서 들키고도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보면 그런 주장에는 상당히 의문이 든다. 하씨는 이미 인터넷에 올릴 글을 미리 작성해 놓았고, ‘현장급습’ 직후 경찰서에 갔을 때 이 글을 현장에서 찍은 사진 등 다른 증거물들과 함께 제출했다. 그리고 그 글은 다음날 곧바로 인터넷에 올렸다.
딸의 분노가 식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이 딸의 주장처럼 “너무나 지나친 엄마의 행동” 때문인지,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엄마의 이혼요구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사건의 전말을 들은 수원대 철학과 이주향 교수는 “딸의 행동이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고 말한다.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유달리 강하고, 가부장적 질서로 가족관계가 유지된다고 믿고 있는 한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를 가졌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딸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어머니에 대해 지금과 같은 배신감과 분노를 계속 갖는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딸은 여전히 어머니가 자식을 버렸다고 여기고 있다. 어머니는 “나는 딸과 헤어지겠다는 생각을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다만 누구와 살지 선택권은 성인인 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선택에 대해 딸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있고, 딸은 어머니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녀가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선택이 현명했던 것일까.
‘딸의 파출소장 엄마 고발사건’에 대한 논쟁은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은 한 어머니의 외도와 그 딸의 분노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족문제와 여성문제의 ‘현실과 신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럴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지요
어머니에 대한 딸 하씨의 인터넷 공개고발과 네티즌들의 논쟁
한 가족의 시시콜콜한 가정사가 공개되면서 네티즌 논쟁의 주제도 날이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다.
파문을 일으킨 딸의 공개고발장 내용은 다음과 같다.(A4용지로 세장에 해당하는 분량이라 원래 표현을 살리는 선에서 요약한다.)
“엄마가 변하게 된 것은 경사에서 경위로 승진을 하고 난 뒤부터이다. 엄마는 그뒤로는 모든 집안일을 칠순인 할머니에게 맡겼다. 97년경 내가 고2 때부터는 자주 집을 비우고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벽 1∼2시가 되어서 술을 마시고 비틀비틀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아빠가 술마실 바에야 사표 쓰고 집에서 살림이나 제대로 하라고 하면 엄마는 ‘이렇게 힘들여 잡은 권력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아빠에게 대들었다. 올해 들어서 대인동파출소장으로 발령받은 뒤로는 외박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지난 7월9일 일요일 새벽에 집을 나간 뒤로는 들어오지 않고 있다. 돈을 다 할아버지 통장에 넣어주고 몸만 나간다면서, 도장 가지고 오라고 큰소리친다. 너무한다 싶어 미행을 했더니 광주시 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가족들 12명이 7월20일 오전 7시30분경에 엄마가 출근하기 위해 출입문을 여는 순간 밀고 들어갔다. 그런데도 엄마는 경찰서에서 그 집에 아침에 잠시 들른 것뿐이라고 거짓 진술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순경 엄마는 나에게 엄마 남자친구라며 그 아저씨를 소개시켜 준 일이 있다. 그 아저씨는 연하의 이혼남이었다….”
딸은 글을 맺으며 자신의 집과 휴대폰 전화번호, 어머니 친정집 전화번호, 어머니를 조사중인 광주서부경찰서, 그리고 어머니 남자친구의 직장 전화번호까지 실명과 함께 자세히 달았다. 그리고 누구든 이 글을 보는 사람은 다른 사이트에도 많이 올려 달라는 당부도 남겼다.
이 글은 곧바로 ‘패륜엄마’에 대한 응징론을 불러일으켰다. <광주일보>와 광주서부경찰서 인터넷사이트는 접속이 폭주했고, 어머니가 근무했던 광주 대인파출소와 어머니를 조사중인 광주서부경찰서는 항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하씨 가족은 탕녀 같은 한 여자로 인한 상처를 이겨야 한다”(라제통문), “자연인과 공무원과는 다르다. 전 경찰공무원을 욕보인 소장은 책임지고 자진사퇴하라”(경찰)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딸의 글이 지나치게 일방적”(깨강정)이라는 지적과, 어쨌거나 “어머니의 일을 공개고발한 것은 온당치 못하다”(정이)는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고발행위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하던 7월26일 엄마의 고교 동창이 쓴 다음의 글이 인터넷에 올랐다. “저는 광주 대인파출소장 김OO의 고등학교 친구입니다. …아직 법적인 판단이 남아 있지만 지금과 같은 마녀사냥식 비난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네티즌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아는 대로 이 사건의 이면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모범적인 교사남편을 둔 사회적으로 성공한 40대 직장여성이 단란한 가정을 버리고 다른 남자 품으로 갔을까요. …일반 사람들은 단지 친구가 섬에서 외롭게 고생하는 자상한 교사남편을 배신하고 외간남자와 놀아났다는 정도로만 알고 계시는데 친구와 남편 사이가 교사(화학담당)와 제자 사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결혼하게 된 과정은 교육자의 윤리문제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이상 밝히지 않겠습니다. 교사와 제자의 결혼생활은 영화에서처럼 낭만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글은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다는 점과 남편의 과도한 의처증, 생계를 전적으로 아내가 도맡았던 사실, 그런 가운데 김씨가 경찰업무에는 누구보다 충실했다는 점 등을 상세히 알리고 있다. 이 글에는 별다른 반박이 나오지 않았다. 같은 날 딸 하씨의 두 번째 고발장이 인터넷에 올랐다. 이 글은 가족들에게 현장을 들킨 뒤 어머니가 보였던 ‘반성은커녕 도리어 당당한 태도’를 번호를 붙여가며 묘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다소간 세대간의 논쟁이라는 양상도 띄고 있다. 게시판에 오르는 의견 중에는 아줌마, 엄마생각, 마흔살, 중년 등 김씨 또래 여성들로 짐작되는 아이디도 눈에 많이 띈다. “제발 엄마 가슴에 못 박는 일 하지 마라.”(마흔살) “엄마라는 존재를 한 집안의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엄마의 파멸을 위해 돌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엄마생각) “가족이 무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깊은 생각과 수양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40세남자) “간통죄 자체가 논란의 여지가 많고, 폐지쪽으로 대세가 기우는데도 현행법이니까 무조건 범법자로 모는 것은 문제 자체를 제대로 보지 않으려는 태도다.”(대정이)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잠잠해지는 건 아니다. “변명, 좋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이 혼인 중 간통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 간통법을 폐지하든지 법을 위반한 범죄자를 퇴출하든지 신속하게 조치하라!”(모두의 친구) “여자로서의 삶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그 핑계로 가정이 있는 주부가 외도를 하고 자식에게 상처를 줘도 된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donuts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