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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박종화문학상 수상에 즈음하여 (최경호)
2021년은 나에게 매우 기쁜 한 해가 돨 것 같습니다. 수상 소감을 쓸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제7회 박종화문학상 대상자로 추천을 해주신 달성문협 신혜지 회장님과 조석구 총무님 그리고 성원해주신 회원 여러 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이번 심사 대상 작품집은 두 번째 평론집인 『억압과 결핍의 시대 한국문학』(한강)입니다. 평론은 시인과 작가의 몸과 영혼 속에 들어가 탐색하는 작업임을 알고 있습니다. 외피로서의 사회현상과 내면으로서의 시대정신 또는 존재와 욕망 사이에서 인간은 갈등하고 고독합니다. 시와 소설에 그러한 고민과 갈등은 식민지시대에는 민족적 해방과 인간의 자유를 갈구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해방 후 전형기의 민족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다시 억압과 결핍의 시대를 살아야했습니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은 민족의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습니다. 우리 손으로 성취한 자유민주화 시대 아니 세계화 시대에서도 권력에 의한 억압과 인간성 결핍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전면에 가장 노출된 계층은 농민입니다. 역사에서 농민은 가난하고 무능력한 계층으로 늘 역사의 희생자였습니다. 그러나 농민문학을 사적으로 전개할 때 동학농민문학에서 디아스포라문학까지의 농민상은 노예적 근성으로 산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저항한 계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식민지시대의 유·이민문학은 세계화 시대 이산문학으로 이어졌으며 그것은 아프리카와 남미 등의 난민문학과 같은 혈통입니다.
그러한 호흡으로 작품을 읽어나갔고 내부의 식민지,역사의 해석, 이데올로기에 의한 억압과 희생 등을 주목했습니다. 예컨대, 정공채 시인은 그의 문제작 ‘미8군의 차’로 반미주의자로 몰려 평생 절망과 우수의 시인으로 살아야했습니다. 그러나 시적 자아가 추구한 것은 반미가 아니라 주둔군 18년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과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시대의 희생자가 시인의 첫사랑인 ‘인다이’라는 여인이며 그는 부산에 주둔해 있던 흑인 함장의 애인이었습니다. 시인은 6·25의 고아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일방적 재단과 오독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경우가 됩니다. 이같이 시와 소설을 읽되 평가 아닌 새로운 발견을 위한 탐색의 여정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하나의 버릇입니다. 첫 평론집 『한국문학의 현장과 비평』(2007)은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의 현장을 찾은 글이지만 ‘식민지 시대 만주 간도문학론’은 식민지문학 청산을 위하여 쓴 글입니다. 만주의 만선일보 복사본을 텍스트로 하여 쓴 글입니다. 1940년 이광수가 쓴 ‘내선일체와 조선문학‘은 제국주의의 영합과 그의 비논리 사이에서 그의 고뇌를 주목합니다. 평론은 기본적으로 타인이 쓴 시와 소설 등을 제재로 하지만 그 자체는 하나의 문명비평이며 창작입니다. 따라서 졸저에서는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구하면서 작가의 정신과 시대정신이 어떻게 충돌하고 영합하는가를 보려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판소리문학 탐구(1)
-이청준의 <서편제>, <소리의 빛>
1. 서편제의 진원지
- 신라 경덕왕 때 개칭한 ‘보성’
전남 보성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보성역에 가보았다. 좁은 역 광장 양켠에 상점들이 있고 광장 가운데 분수가 물을 뿜는다. 분수대 앞에 ‘보성역제정유래’의 탑이 서 있다. 보성군은 복홀군(伏忽郡), 보성군,산양(山陽),패주(貝州)를 거쳐 다시 보성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다. 명칭이야 어쨌든 보성은 그보다 판소리 서편제로 이름난 곳이 아니던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서편제는 박 씨로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박 씨란 박유전(朴裕全)을 말한다. [조선창극사]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몇 가지가 있다. 즉, 대체로 동편제는 꿋꿋한 우조(羽調) 성음이고 서편제는 구슬픈 계조(界調) 성음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보성소리 강산(岡山)제는 계면조와 우조를 포함하는 박유전의 독특한 창법이라는 것 그리고 ‘강산제란 섬진강 서남쪽 일대의 서편제 권에서 박유전이 살았던 보성 강산마을을 주축으로 한 보성소리’ 다.
박유전(1835-1906) 은 대원군으로부터 ‘천하제일인 금강산보다 더 아름답고 장엄하다’는 찬사를 받은 명창이다. 몰골이 흉측한 인물치레에다 천민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로서 한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서편제 소리가 이청준이 말한 한의 소리라면 한의 근원은 서편제 창시자 박유전의 곡절 많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로 유추할 수 있다. 섬진강을 중심으로 하는 동편제와 서편제, 그리고 산수의 형상은 인간의 목소리까지도 바꾸어놓는 힘이 있다. 명창의 고장 보성에서 판소리 한 대목도 듣지 못하다가 어느 기회에 보성 문화원에서 봉사하는 안내원으로부터 즉석 서편제를 들을 수 있었고 전주의 덕진공원과 광주 공원에서 노인들이 주말마다 판소리를 시창하고 있었으니 남도는 판소리의 고장이다.
2. 이청준의 「서편제」
가) 사계(四季)적 모티브
이청준(1939-2008)의 문학은 그가 남도 전남 장흥의 어느 갯가에서 출생했다는 태생적인 내력과 그의 체질상 숨결이 직접 닿지 않은 곳에서는 상상적 촉수를 펴지 못한다는 한계성 때문인지 여하간 그의 문학적 상상력은 ‘남도사람’ 이라는 무언의 정서적 궤적 위에 그려진다. 홍성원은 이청준을 말하여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는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신중한 머뭇거림‘이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작가에게 있어 언어의 신중함이란 무엇인가. 이청준은 언어를 의사전달이라는 일차적 의미 밖의 심리, 철학적 요구를 감당하고자 하거나 언어 내면을 파고드는 이를테면 광부적 기질이 농후한 작가다. 어느 경우에나 그의 언어 내부에는 우수와 그리움이라는 허허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사물에는 현상과 그림자가 있지만 이청준은 거기 그림자에 드리운 또 다른 현상과 그림자를 찾으려는 갈증을 나타낸다. 인간의식 저 밖의 심연의식 예컨대, 남도인의 정서를 어떤 동질성으로 묶으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삶이란 시.공적 뿌리를 근거로 하는데 그 뿌리의 원초적 에너지를 신중히 접근함으로서 삶의 긴장을 추적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로버트 D.던햄은 노드롭 후라이의 비평방법을 분석하면서 사람의 일생을 사계,하루,물의 양상으로 분석한 적이 있다. 이청준의 사계와 시간은 주로 가을과 겨울, 저녁과 밤이거나 물의 양상인 강과 바다로 나타난다. 인물들이 가을에 떠나고 겨울에 죽는다거나 저녁과 밤 시간에 물소리를 듣고 있다.
<서편제>(1976)의 주인공이 보성읍내 한 대감댁 사랑채에 들게 되는 과거 이야기는 6.25가 지난 1956,7년 ‘가을’이고 소리꾼 부녀가 한적한 주막으로 옮긴 것은 ‘겨울’이다. 늙은 아비는 거기서 죽고 어린 딸을 남기게 된다. <소리의 빛>(1978)에서 사내가 장흥읍 탐진강 물굽이가 있는 천 씨 주막을 찾은 것이 임자년 ‘늦가을’이다. 소녀의 아비가 환갑 나이에 보성 고을 어느 헛간에서 숨을 거둔 것은 ‘겨울날 저녁’이다.
<선학동 나그네>(1979)의 사나이가 장흥에서 버스로 1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회진 포구 선학동인데 해가 설핏한 ‘늦가을’ 이다. 선학동 주인의 이야기 중에서 소리꾼 부녀가 선학동을 찾은 것도 ‘어느 해 가을이던가’ 이다. <새와 나무>(1980)의 나그네가 보성.장흥.강진을 돌아 해남 땅에 들른 시기도 ‘늦가을’ 저녁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 속의 형이 20년 만에 돌아와 어머니가 죽은 얼마 후 떠나는 시기가 ‘늦가을’이며 두 번째 에피소드의 시詩장이 이야기는 한 4년 전 ‘가을’에서 시작하고 죽은 것은 ‘저녁’이다. 남도 사람 이야기이면서 서편제와 거리가 있는 <다시 태어나는 말>(1981)은 지욱의 시선으로 초의 장의순의 음다법(飮茶法)을 저술한 김석호에게서 남도 말을 찾으려 했던 배경은 설경(雪景)의 ‘겨울’이다.
서편제 소리꾼의 한은 대체로 여름철 이글거리는 햇덩이와 함께 맺혀진다면 떠남의 행위는 가을에 죽음은 겨울에 이루어진다. 존재는 세계의 어떤 것과도 별개의 것이 아니듯이 인간의 삶과 죽음은 사계의 흐름과 같는 양상이다. 광대란 타고난 재능과 신분을 초월하여 자신에게 지워진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나) 비정의 극치
들뢰즈는 모든 정신적 질환은 사회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이고 프로이드는 그것을 가족주의 틀 안에서 구했다. 정신분열적 분석을 통해 욕망의 힘을 찾으려 했던 사람은 들뢰즈와 가타리다. <서편제>의 아비와 눈먼 딸 그리고 의붓아들은 정신적 분열 속에서 살지만 그들은 예술적 천재성을 타고난 가족이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적 모델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이들의 삶은 태생적으로 불구적 관계이면서 가족이라는 삼각형 속에서 맺어진 운명을 깨뜨리지 못한다. 그들은 소리꾼 가족으로 살면서 서로가 살의를 느끼면서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는 상반된 의식은 정신분열적이다. 그것은 조선시대 소리꾼이 감내해야 할 타고난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신의 예언에 의한 비극이지만 소년에 의한 소리꾼의 비극은 예감에 의한 비극이다. 예언이든 예감이든 내면의 빛과 운명에 대한 투명성은 저 눈먼 가인(歌人) 호메로스가 시를 썼다는 것과 눈먼 딸이 아비의 소리를 보성 강산제로 전승하는 것은 유사한 모티브다. 천재들의 비극적 극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술이다.
<서편제>와 <소리의 빛>을 이해하기 하기 위해서는 비정함의 극치를 발견하는 일인데 그것은 가족 내부의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아비가 딸의 눈을 멀게 한 것도 비정함이지만 소년의 어미가 여름날 뜨거운 태양 아래 소년을 밭 언저리에 종일 묶어두고 흥얼거린 것, 소리꾼 아비가 어미를 죽게 한 것, 아비가 오누이를 소리꾼으로 키우려 한 것, 소년이 아비를 버리고 도주한 것, 오누이가 30년 만에 만나 서로가 오누이임을 인지하면서도 밤새껏 소리만 하고 헤어진다는 것은 비정함의 극치며 분열적이다. 비정의 극치가 결과적으로 한을 낳은 것이고 ‘한(恨)’은 <서편제>의 지배적 예술성이다. 주목할 것은 소설을 스토리에 의존할 것인가 주제적 관점에 의존할 것인가의 문제다. 스토리에 의존할 경우 사내의 방랑은 한의 덩어리인 누이를 찾는 것으로 인식될 터이지만 사내가 마흔 살이 되도록 남도 일대를 찾아다닌 것은 아비가 남기고 간 운명으로서의 ‘햇덩이(소리)’를 만나는 일이다.
다음과 같은 물음에 직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청준의 <서편제>와 <소리의 빛>의 주제를 한이라 한 바 있고 작가는 소리꾼의 떠돌이 삶을 한으로 표현하고 한의 맺힘보다 그 풀이과정을 통해 우리의 아픔까지도 아우러고자 한다는 작가의 노트를 읽을 수 있다. 그러면 소설<서편제>는 남도인의 한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도달한다. 물론 그렇다. 이청준의 <서편제>를 윤영근의 <동편제>와 대응시킬 필요는 없지만 법제로서 서편제는 동편제와 늘 대응관계에 놓여 있다. 소설 <서편제>는 소리꾼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남도 사람의 한을 발견한다지만 판소리 서편제의 진면목을 발생론적 관점에서 말하려는 의도를 외면할 수 없다. 애초에는 서편제 판소리 자체를 말하려 했는데 남도인의 한을 찾아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판소리 자체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고 눈먼 여인과 오빠와의 근친간적 관계로 주의를 환기시킨 결과 소설의 주제가 소리가 아닌 한으로 굳어진 셈이다. 문제는 소년이었던 사내가 일생 찾아다녔던 것이 눈먼 누이인가 아니면 서편제 소리인가이다. 물론 누이와 소리는 동전의 양면이어서 선후를 매길 수 없다. 누이(A)를 찾아 소리(B)를 듣는 것과 소리를 듣기 위해서 누이를 찾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주체에 의한 인식의 객체가 다른 것이다. 스토리적인 관심은 오누이의 만남과 헤어짐의 근친간적 관심에 있겠지만 주제적 관심은 실상 소년의 기억에서 떠날 수 없는 ‘햇덩이(소리)’에 대한 관심이고 이는 고향찾기의 다름 아니다. 작가가 말한 ‘삶이 한이고 한이 곧 삶’이라는 등식은 그러므로 비정의 극치점에서 나올 수 있다.
다) 선적 전승(線的傳承)
작가는 우선 ‘전라도 보성읍 밖의 한 한적한 길목 주막’을 서편제의 진원지로 잡는다. 서편제가 보성.장흥.강진 등 남도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사실을 밝힘으로써 신뢰성 있는 근거를 확보한다. 소설은 이야기가 허구 아닌 진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소릿재,소릿주막,소리무덤을 보성읍 밖의 한적한 길목으로 연결시키고 소릿재 주막에는 여느 마을과 다른 내력이 있음을 설정하여 독자의 이목을 고정시킨다. 주막집 여자의 ‘도도하고도 구성진 남도소리’와 예감을 가진 사내의 북장단이 창자와 고수로 만나지만 주모는 자기 이전에 소리를 전승해준 명창이 있었음을 밝히고 무덤의 주인과 눈먼 딸의 이야기를 한다.
‘소리만 하다 돌아가쎴길래 소리를 함께 묻어 드린 그 분의 무덤이 말씀이오.’
(서편제,14 쪽)
판소리 전승은 집단적인 길드제도에 의해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도제에 의한 선적인 전승 예술이며 그들의 조우는 소리꾼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중세의 궁정시인이 귀족의 보호를 받아 가객노릇을 했듯이 조선시대의 광대들 역시 권력과 부의 비호를 받으며 유지되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 소리꾼은 자연히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비천한 신분이다. <서편제>에서 주막의 여인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소리꾼의 탄생과 삶의 과정이 어떻게 불구적이고 그들의 정신질환이 가족주의 틀 안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서편제가 왜 한의 소리인가는 소리꾼의 탄생과정을 말하는 것인데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소년은 어렸을 때 아비를 잃고 어미와 살았는데 어미는 아비가 남긴 해변가 밭에서 종일 일만 했다. 소년에게 어미는 특별한 기억을 주지 않았으나 소년의 몸뚱이를 묶어놓은 채 밭일을 하면서 늘 소리도 같고 흥얼거림도 같은 소리로 날을 보내던 어느 날 건너 숲에서 종일 얼굴은 없고 소리만 하던 사내가 해질 무렵 어미를 덮치고 집의 사랑채에서 묶게 된다. 어미는 이듬해 핏덩이를 하나 낳고 갑자기 목숨을 잃는다. 처음으로 얼굴을 보인 사내는 핏덩이와 소년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리품을 팔아 살아간다. 아비는 소년에게 소리를 가르치려 하였으나 잘 따르지 않자 소년에게는 북을 치게 하고 딸아이에게는 소리를 가르친다. 아비와 오누이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낯선 고을 산길에서 아비는 ‘그 산과 골짜기에서도 깊은 한이 솟아오르는 듯’ 소리를 하는데 아비의 소리에 살의를 느낀 소년은 아비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도망을 친다. 6.25가 지난 1956,7년 무렵 가을에 늙은 소리꾼 아비와 15살 정도 된 딸아이는 보성읍 어느 대갓집 사랑채에서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아비는 그의 병세가 악화되자 보성 부근의 공동묘지 있는 빈집으로 기거를 옮긴다. 아비는 밤이면 ‘깊은 통한과 허망스러움’이 깃들인 소리로 일관하다가 어느 세모 밤눈이 내리던 이튿날 아침에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로부터 계집아이는 죽은 아비의 소리를 대신하였고 오두막을 떠나지 않자 대갓집 어른이 그곳에 주막을 내준다. 계집아이는 아비의 3년 상을 마치고 주막을 떠난다. 계집아이가 떠난 후에는 주모가 아비의 소리를 이어간다. 죽은 아비의 소리는 그 딸과 주모로 이어가는 선적 내림이다. 소리 무덤의 내력은 소리와 소리꾼의 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말하는 대목이다. 소리꾼 송만갑이 동편제의 탯자리를 찾아가듯이 사내는 서편제의 탯자리인 아비의 ‘소리무덤’을 찾게 된다.
라) 눈먼 소리꾼의 ‘떠돎’
이야기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죽은 어미, 의붓아비, 소년과 누이 등 가족은 필연적이라기보다 우연적인 가족관계이지만 누구도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특히 소년의 경우 밭두렁에서 녹음 속의 신비스런 소리와 어미의 노랫가락을 진종일 들어야 했으며 괴롭고 고통스러운 ‘뜨거운 햇덩이’와 ‘소리의 얼굴‘에 대한 운명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소년의 예감은 결국 사내가 되어 일생동안 소리의 정체인 햇덩이를 찾아 떠도는 것이 된다.
소리의 얼굴은 두 가지다. 완결자로서 명창과 명창의 형식적 완결을 일컫는다. <서편제>,<소리의 빛>,<선학도 나그네>,<새와 나무>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말>에 이르기까지 사내가 일관되게 찾아다닌 것은 남도인의 정서가 담긴 진정한 소리꾼을 만나는 일이다. 햇덩이를 찾는 일은 일차적으로 아비를 찾는 일인데 아비는 이미 고인이 된 처지이므로 아비의 소리를 이어가는 소리꾼은 눈먼 누이가 유일하다. 아비의 경우 명창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소리꾼 노릇을 했다는 흔적은 없다. 단지 주모가 심부름하던 대갓집 어른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한 해 정도 소리를 즐겼던 것이 전부였고 보성읍 외각지에서 소리를 했지만 고작 마을 사람들이 인정한 소리꾼일 뿐이다. 아비가 어린 딸에게 청강수(염산)를 눈에 넣어 눈을 멀게 한 것은 비정의 극치이자 정신 분열적이다. 아비의 유언에서 아비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한 조치임을 밝혀 용서를 구한다는 대목이 있지만 소리의 전승에는 천형같은 비정이 요구됨을 시사한다. 소리는 사람뿐 아니라 짐승은 물론 돌비석도 눈물을 흘리도록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이 소리꾼의 통상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와 음유시인 데모도 꼬스는 눈먼 예언자라는 점에서 불구자다. 전사로서 싸울 수 있었던 여느 사람과는 같지 않다. 이들은 타고난 육체적인 결함으로 전장에 나갈 수 없는 눈먼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고 눈먼 딸은 비범한 소리꾼이 될 수밖에 없다. 눈먼 자에게는 내면의 빛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밝음이 있다. <선학동 나그네>에서 소리꾼 여인은 바다가 사라진 황량한 들판에서 관음봉이 만조에 실려 선학이 비상하는 관음봉 그림자를 본다. 눈먼 여인이 자신의 내면의 빛과 내면으로부터 빚어지는 소리로써 다시 비상하는 비상학(飛翔鶴)을 발견하는 것이 그 예다.
남도소리의 중심지는 보성이지만 사내가 햇덩이를 만나기 위해 찾아다니는 이유는 열린 공간에서 당대의 명창을 고대하는 것이며 소리꾼은 자신이 사사하는 명창에게서 정신적인 귀향점을 발견하려 한다. 윤영근의 소리꾼 송만갑과 정구룡(임방울)이 이향과 귀향을 반복하며 동편제 탯자리인 운봉 비전리 마을로 향하는데 반하여 이청준의 소리꾼은 가족이 이산되고 유랑한다는 점에서 탯자리 대신 아비의 묘지를 찾는다. 사내가 아직도 소리의 진원지로 인식되는 ‘전부터 지내오던 곳’을 찾지 못했다는 의식 또는 ‘어미를 죽인 것이 바로 사내의 소리였다’는 것은 한을 쌓는 일이고 그러한 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진정한 소리꾼을 만나는 일이다.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 사내의 유랑적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미구에 운명적 존재를 만날 것이란 예감은 상존한다. 사내의 떠돌이 삶 자체는 아비에 대한 용서이고 용서를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눈먼 딸이 아비를 용서하면서 아비의 소리를 이어받았듯이 사내에게 아비의 소리는 그리움의 것이다. 아비의 소리는 자연과 짐승까지도 움직이게 하는 천상의 소리였으나 소년이 들었던 아비의 소리는 한숨,절망,체념,서러움 같은 한이다. 소년은 아비의 한으로 하여 고향을 떠나지 못한 것이 된다. 이청준의 소리꾼이 남도 일대를 유랑하는 유전적(流轉的)인 ‘배앓이’에서 그러하다.
“사내가 목청을 돋워 올리기 기작하면 묵연스런 산봉우리가 메아리를 울려오고, 골자기의 산새들은 울음소리를 그치는 듯했다.” (서편제,28)
3. 「소리의 빛」과 전남 장흥
가) 보성 강산제
전남 장흥은 이청준의 고향이다. 보성의 한 주막집이 서편제의 진원지라면 장흥의 주막집은 소리를 보존하는 공간이다. ‘주막집은 장흥읍(長興邑)을 아직 10여 리쯤 남겨놓고 탐진강(耽津江) 물굽이의 한 자락을 끼고 돌아앉아 있었다’는 작가의 확인은 판소리가 보성에서 장흥으로 전파되고 다시 강진, 회진, 해남 등지로 확산되는 소리의 공간적 확산을 말한다. 장흥읍의 소리 주막은 탐진강 물을 끼고 앉아 옥호도 없는 천 씨 주막에 ‘나이 서른 쯤 나 보이는 장님 색시’가 산다는 설정은 보성 주막에서 아비의 3년 상을 보내고 장흥에 온 것이 10 년이라는 햇수와 틀리지 않는다. 소설은 주모인 장님 색시가 주인인 천 씨와의 관계와 주막을 드나드는 손님들과의 잠자리를 연상하는 스토리로 하여 의심을 제기하는 형국은 소리꾼을 비천한 인물로 단정하는 당대적 분위기지만 아비의 소리를 법제대로 전승하고 있는 명창의 소리와 ‘술맛보다 소리를 좇아 남도 천지 안 돌아본 데가 없’는 사내의 북장단은 판소리 보성 강산제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그것은 봉창 너머로 굽이치는 물소리가 들리고 늦저녁 무렵 호남가를 부르는데 호남가는 보성,장흥,함평,광주,해남,고산,영암 등지로 확산된다. 소리는
첫째, ‘장중하고 끓어오르는 듯한 남정네의 질긴 목청으로 첫 마디부터 장중하고 도도하게 소리를 뽑아나가’는 것
둘째, 남도소리 특유의 애조와 한스러움이 있으면서 가슴을 복받쳐 오르는 장부의 통한이 역력한 소리‘이며
셋째, 남정네처럼 장중하고 도도한 여자의 목청 속에, 그 여인스럽지 않게 허허한 장부풍의 통한 속에 그는 오히려 깊은 수긍과 감동을 맛보는 듯한 소리’에 취한다는 강산제에는 우조와 계면조가 통합된 소리임을 밝힌다.
사내의 경우 나이 40이 넘도록 흉한 꼴로 남도 천지를 떠돌면서 소리를 찾아 헤맸던 과거 사실은 한을 쌓는 일이지만 누이의 소리에서 ‘반갑고 소중한 것’을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사내가 결국 뜨거운 햇덩이를 만나러 세월을 허송한 것은 죽은 아비의 소리에 눈먼 누이의 소리가 포개어진 소리의 완결판을 듣는 것이다. 그는 아비의 소리를 전승하기 위해서 남은 생을 바칠 터이지만 어쨌든 두 오누이는 아비가 남긴 ‘낡은 북과 북채’의 장단을 통하여 드디어 ‘반갑고 소중한’ 만남을 이루게 된다.
나) ‘반갑고 소중한 것’
보성 강산제는 박유전을 시조로하거니와 그것은 동편제의 우조와 서편제의 계면조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여인이 부른 소리는 단가에서부터 춘향가,흥보가,수궁가,심청가,적벽가 등 레퍼토리인데 서편제의 계면조와 동편제의 우조를 포함한 통합과 대립적 창법이다. 남정네의 우조와 여인네의 계면조를 소리로 구분한다.
작가는 창자와 고수의 관계를 음양 간의 기막힌 희롱 또는 빈틈이 없는 남녀 간의 포옹이라고 말한다. 밤새껏 소리를 마친 이들은 동이 틀 무렵까지 함께 잠자리로 들었다가 늦을 막에 손님은 슬그머니 주막을 떠난다. 오누이가 잠자리에서 음양을 같이한 것인가 하는 의문은 작가의 의도적 전략이다. ‘떠난 잠자리가 들 때와 같이 고스란했다’는 작가의 뒷말이 없었다면 아버지가 다른 오누이가 음양을 같이 했을 것이란 상상은 충분한 것이다. 여인이 주인 천 씨에게 ‘오라비는 말도 없이 혼자서 떠나셨소.’라고 한 말에서도 그렇다. 오라비가 떠남으로써 두 오누이는 다시 서로가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그리움이란 순수한 것이며 타자에 의해서 억압될 것이 아니며 작가의 말대로, 인간은 영원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인지 모른다. 그러나 여인의 ‘우리 남매는 이것으로 두 번 다시 상면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한 말의 뉘앙스가 절묘하게 겹친다. 여인에 대한 남정네의 정중함과 여인네의 귀기(鬼氣) 있는 소리가 절정의 수준이라는 사실은 오누이의 소중한 만남으로 그간의 고통스런 한풀이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종결단계에서 여인은 10년을 보낸 천 씨 주막에서 다시 어디론가 떠나기로 한다. 남도 소리꾼이란 떠날 수밖에 없는 내력으로 하여 기다리고 떠나는 궤적을 반복한다. 오이디푸스적 운명의 삼각관계가 실은 인간의 재앙임을 알려준다. 소리꾼이란 하나의 운명인가 욕망인가.
장흥을 떠난 눈먼 여인은 <선학동 나그네>,<새와나무>,<다시 태어나는 말>에서 언듯언듯 그의 자취를 현현하지만 이청준의 인물들은 귀향보다는 귀향연습을 하는 인물들이다.
4. 귀기(鬼氣)의 의미
작가는 <서편제>와 <소리의 빛> 두 편을 연작으로 썼다. ‘작가노트’에서 <서편제>의 한을 쌓임이나 맺힘의 사연보다 떠남과 회한의 사연을 풀이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서편제>가 비극적 이야기를 통해서 한을 쌓아가는 과정이라면 <소리의 빛>은 한을 풀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사실은 아비의 서편제가 딸에게는 보성 강산제로 전승되는 계면조와 우조의 통합과정을 말한다. <서편제>를 비극적 본질로 접근시키면 소리꾼 가족은 오이디푸스적 비극적 상황에 놓이게 되고 소리꾼의 한은 파토스적 연민으로 몰고 간 것이 된다. 비극적 플롯인 급전(急轉)과 발견(發見)의 관점에서 보면 사건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의 완결된 행동’을 보인다. 그 완결성은 바닷가 묘지에서의 어미의 흥얼거림, 정체불명으로 나타난 아비의 존재, 아비와 소년의 갈등, 오누이의 떠돌이 삶 등에서 비롯하지만 일관하는 것은 ‘햇덩이’를 탐색하는 여정이면서 상호가 ‘정체성’을 들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눈먼 여인의 ‘귀기’ 있는 소리에서 두 가지를 말할 수 있다. 판소리 서편제와 강산제는 전라도 무가(巫歌)에서 유래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구비문학에서 정착된 판소리에는 무가에서 볼 수 있는 주술성과 신성성이 개재된다. 여인의 귀기 있는 소리란 그런 의미이다. 판소리는 판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이 청자일 터이지만 오누이의 경우 창자의 소리와 고자의 장단은 죽은 아비와 어미의 영혼을 위로하는 한풀이 행위다. 강릉남대천에서 밤저로 이어지는 바라지 합창에서 신들이 눈물흘리는 전통적인 무가를 연상한다. 이 경우 청자는 사람이 아닌 신이 된다. <서편제>와 <소리의 빛>의 사내와 누이의 유랑은 아비의 ’소리무덤‘과 소리의 ’햇덩이‘를 만남으로써 소리의 탯자리로 회귀한 것이니 그 탯자리는 보성,장흥이고 다시 강진, 회진, 해남으로 이어지는데 서편제와 동편제의 경계는 섬진강이된다. 남루한 남도인의 한은 판소리로 하여 해소되고 흥과 신명의 모태가 된다. 다시 헤어진 오누이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이청준 소설의 고향과 고향의 의미 층위인 소설집 『눈길』에서 언급될 수 있다.
2. 판소리 문학 탐구(2)
- 윤영근의 <동편제>,<국창 송만갑>
가. <국창 송만갑>
* 송만갑의 법제 이탈
판소리와 판소리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 윤영근을 주목해야 한다.
<동편제>(1993)의 ‘작가의 말’에 의하면 윤영근은 동편제의 진원지인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였으며 선대로부터 판소리 문화와 직간접으로 인연을 맺는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동아리 활동으로 판소리연구에 몰두하고 1971년 귀향해서는 한의원을 하는 부친과 친했던 김명운, 강도근 명창이 합석하는 자리에서 명창들의 일화를 들을 기회가 많았던 것으로 전한다. 그는 어린 시절 협률사라는 유랑극단이 학교 운동장에 포장을 치고 ‘낙랑공주’와 ‘장화홍련전’을 공연하거나 춘향제 때 광한루 위에서 열리는 소리 공연이 보고 싶어 안달을 했다고 회고한다. 더구나 6.25 전에 자주 어머니를 찾아왔던 낯선 인물이 임방울이라는 명창이었고 그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쑥대머리’, ‘적벽가’를 불렀던 기억을 상기도 잊지 못한다.
소설 <국창 송만갑>(2008)은 노년기에 이른 명창 송만갑과 제자 이화중선이 남원을 출발하여 가왕 송흥록의 탄생지며 동편제 소리의 탯자리인 운봉 비전리 마을을 찾아가는 여정인데 달밤에 소쩍새울음과 여우와 호랑이가 출몰했던 아흔아홉 굽이 여원치를 넘으며 나누는 대화형식이다. 소설의 시공간은 ‘남원-여원치-운봉 비전마을‘로 이어지는 순차적 흐름으로 구조된 단순성에 있지만 동편제의 의문을 풀어가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소설은 명창 송만갑이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도보로 비전마을을 찾는다는 구조는 동편제 진원지의 중요성을 일깨우려는 것이며 소리꾼의 험난한 일생을 암시하는 의미가 있다.
<국창 송만갑>을 통해서 몇 가지를 물을 수 있다. 판소리의 두 유형인 동편제와 서편제의 변별성은 무엇이며 송만갑의 파격성 문제 그리고 명창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판소리의 예술성은 이러한 절문(切問) 속에서 밝혀질 터이기 때문이다. 동편제는 송흥록을 시조로 하는 송문(宋門)의 법제(法制)를 주장하는 것으로 웅장하고 묵직한 소리다. 서편제는 기교적이고 여성적인 소리란 점에서 동편제와 대비된다. 실지로 동편제는 창을 함에 있어 ‘잔목을 쓰지 않고 구기지 않는다’거나 ‘잔꾀를 부리지 않으면서 소리를 쫙 펴서 잠잠하게 부른다’는 것이다.
‘바우덩이’같은 법제에 대해서 송만갑은 왜 변화를 시도한 것일까. 송만갑은 27 세 때 서울 조선극장에서 열린 전국명창대회에서 ‘적벽가’와 ‘새타령’을 불러서 일등을 한다. 아울러 고종황제 어전에서 소리를 하여 국창의 칭호와 감찰직을 제수받는다. 그러나 아버지 송우룡은 국창이 된 아들을 칭찬하면서도 ‘소리에 참기름을 치고 댕긴다’고 나무란다. 여기서 소리에 기름을 친다는 말은 청중들에 영합하기 위해서 ‘곱고 억지 기교를 부려 듣기 좋은 소리’로 창하는 것인데 법제를 어긴 것이다. 아버지 송우룡 자신도 송광록으로부터 귀신 장면을 익히기 위해서 밤으로 무덤가에서 살았고 새소리를 익히기 위해서 산을 올랐다. 송만갑이 울음소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싸리나무로 회초리를 맞으며 울음소리를 익혔던 것이다. 송만갑이 송흥록의 그늘을 벗어난 적은 없으나 가풍과 법제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소리꾼의 궁극적 목적이 양반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한 것이기에 ‘참기름’을 조금 쳐서 그들이 기뻐할 수 있게 영합한 것이다. 아버지 송우룡은 만갑을 가문의 패려 자손이라고 가풍을 더럽힌 놈은 죽어야 한다며 그에게 막걸리에다 비상을 타서 마시게 한다. 이 일은 어머니에 의해 제지된 터이지만 이로써 만갑의 아내조차 자식에게는 절대로 소리공부를 시키지 않겠다는 말을 하게 된다. 송만갑은 가출한다. 송만갑은 가왕이 무덤에서 몽둥이질을 할 패려 자손이지만 소리란 ‘무거운 법통을 고집하면 백성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과 ‘백성을 위한 소리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그는 김창환과 함께 일반인을 위한 원각사 공연을 하여 성황을 이루는데 이것마저 고위층에 의해 무산된다. 그에게는 제자만도 기천 명에 이른다. 그는 가문의 이단자였지만 판소리의 예술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무너뜨린 장본인이며 ‘소리에 깨소금을 좀 친다고 동편제가 서편제 되지 않는 것이며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는 소리꾼이다. 실상 송만갑의 경계의식은 소리 자체에 있었다기보다 ‘소리꾼은 캄캄한 밤을 지나가는 조선 백성에게 길을 밝히는 소리꾼이 되어야 한다’는 민족적인 경계의식에 있었다. 동편제의 탯자리였던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는 세월이 흘러 인물도 소리도 자취없지만 송문의 고집스런 동편제 전통은 영원한 소리의 울림으로 조형되어 있다. 국창 송만갑과 제자 이화중선이 아흔아홉 굽이의 고개를 넘어 가왕을 찾는 길은 ‘소리’도 ‘소리꾼‘도 시간 위에 놓인 예술이요 존재임을 알게한다. 원효가 달을 가리키듯 송만갑은 이화중선에게 비전리 마을을 가리키고 있으니 언외지의(言外之意)다.
나. <동편제>
* 식민시대의 명창 정구룡
윤영근은 전라 북부의 방언으로 장편 <동편제>(1993)를 썼다. 언어란 사전적 의미 전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 밖의 의미와 언어 질감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작가의 입장이다. 동편제의 진원지가 남원이고 전북 남원은 역사성과 민족예술의 중심지라는 믿음에서 볼 때 전북지방어는 판소리문학 ‘이해’의 중요한 기제(機制)가 된다. 작가가 <동편제>를 탈고할 무렵 부모의 산소를 찾아 “당신들이 못다 하고 떠나신 이야기와 당신들이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을 새로이 듣고 여쭈어 보기 위해서” 소설을 썼던 것이다.
1) <동편제>에서 물어야 할 사실들
소설 <동편제>는 판소리 동편제의 특징과 예술적 가치를 다룬 것이지만 주목할 것은 판소리꾼이 어떻게 탄생하는가와 그들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동편제의 명창인 정구룡의 일생을 통하여 소리꾼 되기와 시대, 사랑의 문제 등을 읽을 수 있다.
(가) 입지적 인물
정구룡이 광대를 욕망하던 시대는 주로 식민지 치하가 된다. 국권 상실과 민족적 동질성이 분해되던 시기의 소리꾼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상,하 전체가 12장으로 구조되며 일 년 또는 사계를 연상시키는 내적 연결은 기.승.전.결의 4 단계로 구조된다. 상,하권 12장 중 1-3장은 정구룡의 소년 시절, 김운호의 문하에서 3 년 6 개월 간의 혹독한 수련 과정을 거친 후 독공의 길을 떠난다. 4-6장은 독공 과정에서 목이 쉬었으나 마침내 청아한 소리를 얻어 하산하고 명창의 이름을 얻는다. 복례와 혼사를 치루고 방 부자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전주를 거쳐 서울의 부민관 공연에서 3 창을 받는 명창이 된다. 7-9 장에서는 이동백과 공귀덕의 사랑을 받으며 콜롬비아회사와 두 차례 계약하고 일본,강원도,평안도 공연, 레코드판 20 만매 대가를 받는다. 그러한 가운데 스승 김운호가 운명한다. 소리꾼으로서 전성기와 명기들과의 여성 편력 등 인간적인 면모가 부각된다. 10-12장은 귀향활동과 생부만나기 그리고 식민지시대 명창의 활동이 억압되는 상황과 그의 민족의식을 다룬다.
정구룡은 원래부터 어정판을 돌아다녀야 할 천민은 아니다. 어머니 오수댁이 양반가로 시집을 가서 구룡을 얻었으나 그의 타고난 무당기질로 하여 축출된 것은 그의 운명이다. 구룡의 생부는 일제하에서 참위원을 지낸 인물이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끝내 결렬된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적이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적 비극에서 정구룡이라는 명창이 태어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정구룡은 소년시절부터 오수댁을 따라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쑥대머리를 잘 부르는 어느 무당의 영향을 받아 소리꾼이 되기를 결심한다. 오수댁은 구룡의 결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이 아홉에 소리에 관심을 가졌던 정구룡은 어머니의 만루에도 열 다섯 되던 해에 소리꾼이 되기 위해 출가를 하고 명창 김운호의 문하로 들어간다.
김운호의 매를 맞으며 동굴에서 3년 반을 수련한 뒤 김운호는 정구룡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소리에는 뭐니뭐니혀도 부르는 사람의 혼이 실려 있어야 혀. 혼이 없는 소리는 죽은 소리고,죽은 소리는 아무리 뽄있게 부른다고 혀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없는겨. 내 말 알겄지?” (상,56)
지리산 동굴에서 명창 김운호의 지도를 받은 지 3 년 반 만에 자유인이 되고 다시 지리산으로 독공을 위해 떠남으로써 진정한 소리꾼을 욕망한다. 중도에 어느 잔칫집에 들러 춘향가 한 대목을 불러 명창의 소리를 듣고 진달래라는 여인을 만난다. 밤중에 아흔아홉 굽이의 연재를 넘어 어머니 오수댁을 만나 이틀을 보낸 뒤 지리산 백무동 골짜기 바위굴로 들어간다. 바위굴에서 소리공부를 하는 동안 복례는 정성을 다하여 뒷바라지를 한다.
(나) 득공의 시기
소리꾼이 독공의 시기에 조심해야 할 것은 이성의 접근이다. 바위굴로 찾아온 달래와 복례와의 관계 때문에 구룡은 결국 목을 쉬게 되고 함양댁이 ‘똥물’을 구해와 목을 틔우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구룡은 한 해 겨울을 토굴에서 지낸다. 그는 천왕봉 아래 백무동 골짜기에서 폭포를 마주하여 고함과 통증을 거듭하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쑥대머리 귀신형용 가락을 계속한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 자리여, 생각난 것이 님뿐이라’ 어느 날 이런 가락을 스무 번 남짓 불렀을 때 동쪽에서 샛별이 뜬다.
정구룡은 통증과 비린내, 목을 막았던 인절미 같은 것이 빠져나가는 순간 정신을 잃는다. ‘아침 햇살이 지리산 계곡에 가득히 들어차 있을’ 무렵이다. 간장의 썩은 물로 님의 화상을 그려볼까 하는 쑥대머리 가락의 처절한 절망이 환희로 바뀐다. 목이 터지지 않으면 폭포 아래로 몸을 던지려던 구룡은 복례와 기쁨을 나누게 되고 토굴을 찾아온 김운호는 “소리꾼의 소리는 맥혔다가 터짐에서 한 단계 더 좋은 소리가 되는 것‘이며 ’소리는 사람과 짐승은 물론 박만순처럼 돌비석도 울게 해야 한다‘는 말로 격려한다. 박만순은 사형을 받은 자리에서 혼이 담긴 소리를 하여 죽음을 면한 일화를 남긴 인물이다. 정구룡은 이렇게 하여 명창의 반열에 오른다.
2) 명창 이후
곰보 정구룡은 무녀 복례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다. 운봉의 방 부자가 혼사비 일체를 부담하고 생활비도 지원함으로써 정구룡은 방 부자를 후원자로 받아들인다.
생각하면, 광대란 청중들을 즐겁게 해야 하는 예능인이다. 백성을 즐겁게 한다는 점에서는 주체적 존재이지만 귀족과 양반을 상대함으로써 행하(行下)를 받는 명창이다. 우리 소리 우리 가락이 좋아서 소리꾼의 길로 접어든 정구룡이지만 그는 자신이 무당의 자식이라는 신분과 불가피한 가난의 문제를 떨쳐버릴 수 없다. 남사당패와 창극 배우가 일반인에게 길가의 버드나무로 인식되던 시대다. 정구룡은 남원 운봉의 방 부자가 주는 비단옷을 입고 이동백에게 보내는 서찰과 여비를 받아 상경한다.
그는 상경 길에 전주 다가정에서 공연하고 있는 송만갑,이동백,정정렬 등 명창을 만나 무대에 서게 되고 ‘쑥대머리“와 ”적벽가”를 불러 열광 같은 호응을 얻는다. 이어 그는 경성 부민관 공연에서 3창을 받는 등 소리꾼으로서 대성공을 거두고 이후 요시다 사장의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5년 전속계약을 맺는다. 고수 박중달과 함께 도일하여 레코드 취입을 하고 귀국하여 강원도, 평안도 등지의 공연과 금강산, 개성을 둘러보고 인력거를 타고 종로여관으로 돌아와서 다시 레코드 20 만장 판매 선금으로 일천 원을 받는다. 당시 경성의 좋은 기와집 한 채 값이다. 일본인 요시다는 일본인면서 “조선의 백성들이 조선 명창들의 소리를 듣고 다만 얼마라도 시름을 달랠 수 있다면 그 또한 뜻 있는 일이 아닌가”라는 뜻을 전한다. 정구룡이 이에 동의하여 판을 낸 것인데 당시 중추원 참의이던 생부는 소리판을 떠나면 아들로 받아들이겠다고 회유한다. 전주경찰서 다나카 경부가 창극 대본을 문제 삼아 구룡을 고문하고 구속을 거듭하면서 ’조선의 소리‘를 억압한다.
정구룡에게는 그를 유혹했던 당대 명기들과의 에피소드도 있다. 구룡이 명창이 되기까지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한 여인이 아내 복례라면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여인으로 진달래가 있다. 옥중의 정구룡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여인은 전주의 강난실이다. 그 외 귀선이, 행심, 조소향, 송이가 있다. 명창들의 생명은 목소리인데 목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자를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 사람은 종로여관의 주인 공귀덕과 스승 김운호다. 그는 스승이 남긴 북을 지고 운봉 다리를 건너 연재를 넘으며 스승 없음을 서러워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이후 그는 진주공연을 마치고 진주-함양-인월-운봉-장다리-여원치-요천교-남원으로 귀향하며 생의 후반기를 맞는다. 정구룡은 일제 치하에서 친일 소리꾼으로 남기를 끝까지 거부한 예인이다.
3) 마무리
윤영근의 <국창 송만갑>과 <동편제>의 경우, 주인공은 명창이라는 욕망을 위해 자신의 불우한 운명을 극복하고 피나는 노력을 함으로써 얻게 된다는 입지적 인물들이다.
<동편제>의 주인공은 ‘왜놈들을 찬양하고 일본 만세나 부르는 소리꾼’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저항적 인물이다. 소설은 정구룡을 저항적 인물로 부각시키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소리꾼임을 잊지 않기 위하여 ‘광대가’ 한 대목을 부른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이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 그 지차 득음이요, 그 지차 너름새라.’ 정구룡과 진달래는 남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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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수상하셨다고
찬조도 20만원 해 주시고 너무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