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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오류와 이설들을 통하여 흔들림이 온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10).
흔들림과 체질에 대하여 서론에 언급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서, 쭉정이로부터 알곡을 골라내시기 위해서 교회에 흔들림이 오도록 허락 하신다. 그런데 첫 번째 흔들림은 오류와 이설들에 의해서 온다. 곧 비성서적인 가르침, 참 진리가 아닌 오류들이 교회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심으로 오는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오류와 이설들이 올 때, 그 거짓된 가르침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바른 진리 위에 굳게 서지만, 쭉정이 신자들, 곧 말로만 신실하게 믿는다고 공언하던 사람들은 오류에 휩쓸려 영적으로 흔들려 나감으로 그들 스스로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인 것을 드러낸다. 흔들림을 가져오는 오류와 이설들에 대해 함께 연구하여 보자.
1). 교회에 들어온 바벨론의 오류들
현대 기독교에는 원래의 성서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난 비성서적인 가르침들이 침투해 들어와 편만하게 퍼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교리가 비성서적인 것인지 미처 알지도 못한 채 맹목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계시록에 이 사실을 이렇게 예언해 두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 14:8).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해 놓은 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교회 안에 바벨론의 포도주, 즉 사람을 취하게 하는 “진노의 포도주”인 잘못된 가르침과 복음, 그리고 오류와 이설들이 전파되어 사람들을 취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벨론의 거짓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영적으로 취하게 되어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거짓 복음과 거짓 교리에 취한 사람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진리를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하게 되며, 결국에는 영생을 잃어버리게 된다.
옛날 고대 바벨론 시대에 시작된 이방 종교의 가르침들은 중세기에 1,200여 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서 천주교의 교황권에 서서히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순결한 진리에 이방 종교의 가르침들을 섞은 혼합된 교리를 가짐으로 바벨론, 즉 음녀의 어미가 되고 말았다. 중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천주교회가 이방 종교로부터 받아들인 많은 가르침들을 개혁하였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오류와 이설들이 개신교회들 속에 남아 흘러 내려오고 있다. 이 바벨론의 포도주는 사람들을 취하게 하여 하나님의 참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짓 교리들이다. 그런데 이 잘못된 교리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영적인 경험을 올바로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구원이 확정되었다는 기만 속에 빠지게 되어 구원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만다.
2). 바벨론의 포도주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먹여서 취하게 만드는 음행의 포도주인 바벨론의 포도주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것에 의해 교회에 흔들림이 오며, 교회가 정결하게 되는가? 함께 연구해 보자.
1. 원죄설
원죄설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 아담의 죄를 그대로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조상의 죄의 영향을 받고 태어난 죄된 본성 자체를 죄라고 믿는 설이다. 원죄설은 어거스틴에 의하여 창설되었는데, 이교도인 아버지와 기독교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성(性)적인 문제에 대하여 연약성을 지니므로 죄를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했던 어거스틴은 인간은 태어나기를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죄된 생활을 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위대한 참회록을 기록한 훌륭한 신학자였지만, 그는 영이 육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을 때에 생기는 마음의 놀라운 변화인 거듭남과 장성한 믿음에 이르는 경험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마음이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승리는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죄에 대한 승리를 알지 못했고,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던 어거스틴은 자신의 죄된 경험에 맞추어서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타락하고 이기적인 본성 자체를 죄로 생각하였던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죄는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태어날 때에 이어받는 타락한 본성 자체를 죄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인류가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함께 범죄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도 아담의 범죄의 책임을 물려받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범하지 않은 조상의 죄 때문에 정죄를 당한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것을 “원죄” 사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서적인 가르침은, 죄란 우리가 태어나는 죄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마음과 행위로 범하는 불순종을 말하며, 양심 속에 들려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고 악을 선택하는 것을 죄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승리하고 정복하는 순종의 생애를 살 수 있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원죄설
원죄설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죄라고 여기기 때문에,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또 죄를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또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반사하는 성화의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게 되므로, 그냥 “죄짓고-사는” 방식의 변화 없는 신앙생활을 살게 된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교회의 정결한 백성,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가진”(계14:12)이가 될 수 없고, 또 마지막 환난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으므로, 결국은 하나님과 진리로부터 흔들려 떨어져 나가기 쉽다.
2. 영혼 불멸설
영혼 불멸 사상은 중세기에 천주교회가 이교로부터 받아들인 가르침으로 영혼은 육체와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육체는 죽을지라도, 영혼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1513년 교황 레오 10세는 클레멘트 5세에 의하여 채택된 영혼 불멸 사상을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교리로 선포하였을 뿐 아니라 영혼 불멸을 믿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고 이단으로 규정하고 징벌하였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 즉시로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서 천국, 지옥, 또는 연옥으로 가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는 이 가르침은 오늘날 개신교회 속에도 깊이 들어와 있는데, 사단은 이 가르침을 이용하여 마지막 시대에 각종 기만적인 이적을 일으키고 있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영혼 불멸설
사람이 영혼 불멸설을 믿게 되면, 이상한 오류와 이설들에 빠지기 쉽고 사단의 기만에 속게 된다. 마지막 때에 사단은 죽은 영들이 살아난 것처럼 가장하며, 마치 빛의 천사처럼 나타나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 교리를 믿게 하여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 불멸설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은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사단의 기만에 넘어가게 되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참 교회, 백성이 되는 일에 실패하고 흔들려 떨어지게 된다.
3. 지옥설
성경을 깊이 있고 올바르게 연구해보면, 영원히 타는 지옥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옥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62호를 참조하세요)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잠깐의 어리석은 선택과 판단으로 인하여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천년, 만년, 수백만 년, 수억만 년, 아니 영원한 세월동안 펄펄 끓는 유황불 속에서 고통받게 하신다면, 그런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공정한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믿는 그분은 그토록 잔인한 분인가?
예수 재림 때에 부활하여 하늘에 간 의인들이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고 있을 가족들과 친구들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부모들이 영원토록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당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만족스럽게 바라보실까?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생각하는 사람들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악인들을 차라리 죽여서 없애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타는 불 속에서 고통당하게 하실까?” 라는 의문과 두려움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한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 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에 나가기로 억지 결심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과 애정으로 발전될 수 없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지옥설
지옥설을 믿게 되면,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게 되며,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랑에 반응하여 자라나는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되며, 강하게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성립되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 생애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이루는 일과 장성한 믿음, 열매 맺는 믿음을 이루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옥설을 믿는 사람들은 진리에 바탕을 둔 참된 믿음에서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되고, 결국에 마지막 하나님의 참 백성,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이 이마에 기록되어 있는 십사만 사천이 되는 일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4. 예정론
예정론은 기독교 안에 깊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교리 중에 하나이다. 중세기의 천주교회 신학자였던 어거스틴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선과 악 중에 어떤 하나를 택할 수 있다는 성서적 사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가졌던 이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절대적이고 독재적인 신으로만 이해했던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신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장면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학적 개념에 끼워 맞추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예정론의 시작이 되었다.
태초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 당하도록 예정해 놓으셨다는 이론인 예정론은 어거스틴의 생존하고 있을 당시에도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어거스틴은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 누가 구원을 얻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며, 연약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에 대해서 질문할 자격조차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구원을 지정해 놓으셨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도록 지정해 두셨다는 예정론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예정론
예정론을 믿을 때, 정말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쉽다. 자신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기만적인 확신을 하거나 그런 가르침을 받고 나면,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어떤 행동이나 일을 해도 결국에는 구원과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위험한 사상에 빠지게 되므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생활을 살게 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는 올바른 영적인 경험을 가질 수 없다. 더구나 예정론을 믿게 되면, 택하심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사이에 있게 되는 공정하지 못한 운명론 때문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바로 알지 못하게 되고, 예정론이 말하는 거짓 안전감 속에 있게 되므로 올바른 신앙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바른 기별이 올 때, 인간의 유전을 오랫 동안 믿어왔으므로 참된 복음의 기별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고 그리하여 참된 신앙에서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되어 마지막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5.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가르침
예정론의 오류는 논리적으로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 내었다. 즉, 예정론은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게 된다는 개념(once saved, always saved)을 만들어 내는 기초석이 되었다. 예정론은 “절대적인 군주인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를 독단적으로 결정하신다. 그러므로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사상은 현재 전 기독교계를 강타하고 있는 사상과 교리로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상을 받아들여 믿고 있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가르침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과 오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거짓 안전감에 도취하게 된다. 이 가르침은 현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비도덕적인 죄된 생활을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깊은 자기 기만 속에 빠지게 만든다. 예정론은 복음을 전파하는 면에 있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만일 모든 사람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결정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었다면,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예정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대답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궁색한 설명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선언하고 있다(디모데전서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인 우리의 죄된 선택과 이기적인 결정으로 인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오류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된 생활을 살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론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이러한 오류를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과 죄에 대한 승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가 되며,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비록 그리스도인이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죄를 이길 수는 없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거짓된 가르침을 믿게 되면,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타나야 할 특징인 장성한 믿음의 성품의 재현이 불가능해지므로 결국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6. 흔들림을 가져오는 그 외의 가르침들
A. Sacraments-성체설
화체설, 미사, 고해 성사, 성지 순례 등과 같이, 믿는 신자에게 구원의 공로를 준다고 가르치는 예식들과 마리아 숭배 같은 비성서적인 의식들이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천주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비성서적인 가르침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역사에 눈 멀게 하므로 결국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B. 우상 숭배 (성모, 성자들 숭배)
중세기 때에 태양신 숭배는 로마 제국에서 인기있는 종교였었다. 그래서 천주교회와 로마제국은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인들을 수용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태양신전에 세워져 있던 석상들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기독교회 건물 속에도 석상과 그림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인들이 기독교로 개종 할 때에 편안하게 느끼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 안에 우상을 세워놓음으로써, 로마 제국은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와 천주교 사이에 불목이 없어져서 사회가 안정되어 좋았고, 천주교회는 새로 개종하는 이교도들에게 그들이 익숙한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십계명은 여전히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성자의 성상들을 숭배하는 것들은 예수님의 중보사업을 희석시킨다.
C. 고해 성사 (신부 제도)
한국 카톨릭 대사전에는 이런 설명이 나온다. “AD 1215년 교황 이노센트 3세에 의하여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대신에 신부에게 고백하는 제도가 라테란 종교 회의에서 제정되었다. 고해성사는 참회자가 양심적으로 성찰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치는 통회를 하며 다시는 이 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 고해 신부 앞에 나아가 죄의 고백을 하면 고해신부는 죄를 용서하고 보속을 정해준다. 고해신부는 찾아오는 참회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재판으로서 또 영혼의 의사로서의 역할을 하며 죄의 용서를 베풀게 된다.” 성경은 죄를 중보하고 속죄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는 중세기에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신부에게 죄를 속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와 죄를 이기게 하시는 능력을 불신하게 하고 부인하게 하므로 흔들림을 가져 온다.
D. 연옥설
연옥설은 교황 그레고리 1세(AD 590~604)에 의하여 카톨릭 교회의 교리로 인정되었는데, 그리스도교 대사전은 천주교회가 중세기에 받아들인 잘못된 교리 “연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연옥이란 죄의 보상을 다 치르기까지 영혼이 괴로움을 받아서 그것에 의하여 깨끗함을 받는 곳이다 … 이 세상에서 작은 죄를 범하고 그 보상을 완전히 치르지 않은 영혼이 죽은 뒤 죄를 깨끗이 씻을 때까지 머무르는 일시적인 죄의 상태 또는 죄를 받는 장소이다.” 연옥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천주교회는 그들이 믿는 교리인 자신의 행함과 고행을 통하여 스스로 죄 값을 지불할 수 있다는 오류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믿게 되면, 또 다시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있다는 기만적인 생각을 갖게 하므로 이생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치는 헌신을 유보하게 만들며, 참된 신앙의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 참된 신앙에서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한다.
E. 거짓 기적들
죽음과 영혼 문제, 그리고 지옥에 대한 잘못된 교리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단은 기독교회 안에 온갖 거짓 기적들을 일으킬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에 기반을 둔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거짓 기적들에 관심을 쏟게 된다. 눈에 보이는 현시에만 중점을 둔 사람들은 참된 성령의 역사를 식별하지 못하고 거짓 이적들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사단의 기만에 넘어가기 쉽고 참된 진리 안에 정착하지 못하게 되므로 결국 흔들려 나가게 된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22호, 38호를 참조하세요)
F. 일요일 성수 제도
로마 교회의 교황권은 계명 중 넷째 계명을 바꾸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교회의 권위로 바꿀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이다. 천주교회의 공식적인 문서와 서적들을 보면, “카톨릭 교회는 개신교회가 존재하기 천여 년 전에 이미 교회의 거룩한 사명에 의하여 그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꿨다” (카톨릭 미러, 1984년 9월 23일)고 되어 있고, 또한 카톨릭 신앙에 관한 교리 문답서에도 그렇게 밝혀져 있다. 놀랍게도 천주교회는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바꾸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 위에 군림한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보다 사람의 권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이끌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경감시키므로 하나님을 믿는 참된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16호, 52호, 54호를 참조하세요)
3). 오류나 이설에 의하여 흔들림을 받는 사람들의 유형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사단이 오류와 이설들을 퍼뜨리도록 허용하시는데,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당신의 교회를 정결하시고 가라지와 알곡을 분리하시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신다. 오류는 참된 가르침보다 인간이 믿기에 훨씬 쉽고 안이하기 때문에, 넓은 길로 가는 것이 편한 것처럼, 진리를 믿기 위해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로 편하게 신앙 생활을 하게 한다. 그러나 바른 가르침이 오고 참된 복음이 다가올 때, 그것은 신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믿는 자들의 동기와 본심을 드러낸다. 그때 가라지 신자들은 편안한 복음, 주님을 따르기 위해 세상의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자아를 굴복시키지 않아도 되는 편하고 넓은 길을 택하는 반면,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진리를 알아보고 세상을 버리며, 진리에 자아를 굴복하고 하나님의 편, 올바른 참 복음의 편을 택하게 된다.
그럴 때에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로부터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되고, 그때 하나님의 참 백성과 가짜 백성들 사이에 분리와 연합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그들끼리 함께 연합하게 되고 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이며, 가라지들은 그들끼리 모여 세상과 연합하여 살다가 멸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신자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사랑하고 있는지, 진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 또 그 신자가 하나님의 참 백성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하여, 오류가 교회 안에 들어오도록 허용하시며 그것으로 인해 흔들림을 당하게 하신다. 이 때 흔들림에서 벗어나는 자가 참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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