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의 젊은 피
이길환이 연세대에 입학할 당시 연세대의 진용은 화려했다. 박철순을 비롯해 최동원, 이길환과 동급생 윤학길 등의 투수를 비롯해 포수로 거포 박해종 그리고 양세종 등이 버티고 있었다. 이길환은 1학년이던 시절부터 고교시절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 맹활약을 펼칩니다. 당시 대학야구의 쌍두마차는 연세대학교와 김시진, 김용남이 버티고 있던 한양대학교였습니다. 각종 대학야구의 우승은 연세대와 한양대가 나눠가지던 시기였습니다.
대학 4학년이던 이길환은 대구에서 벌어진 통일대기 대학야구대회에서 동아대를 2-1로 물리치고 대학야구 마지막 승리를 장식합니다. 이 시기에 연세대는 이순철, 김동재, 장훈등이 활약하던 시기였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프로야구 탄생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길환은 MBC 청룡으로 내정이 됩니다.
MBC 청룡 내정자 명단
*투수 : 하기룡(상업은), 정순명(한국화장품), 이광권(한전), 유종겸(제일은), 김시철(포철), 김정호(한일은), 차준섭(롯데), 이길환(연세대)
*포수 : 김용운(한전), 유승안(한일은), 신언호(경리단), 최정기(롯데)
*내야수 : 김용달(한전), 김용윤(농협), 박재천, 이광은(이상 성무), 김인식, 정영기(이상 롯데), 김재박(한국화장품-국가대표로 유보),
*외야수 : 이해창(롯데-국가대표로 유보), 이종도(제일은), 유대성(포철), 최정우(한전), 김봉기(롯데), 유제용(상은), 이원녕(전 상업은), 김중근(성무)
개막전 선발투수로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이길환은 MBC 청룡에 입단해 3월 27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개막전에 선발투수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본래 청룡의 선발은 이길환보다 선배인 하기룡이 등판하려 했으나 하기룡이 복통을 일으켜 역사적인 순간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길환은 프로야구사의 첫 안타를 내줍니다. 안타를 친 선수는 이만수였습니다. 결국 3회에 마운드를 정순명에게 물려주고 마운드를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나 경기는 MBC청룡의 승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잘 알다시피 연장 10회말에 이종도가 이선희에게 만루홈런을 때려 팀은 11-7로 승리하게 된겁니다.
첫해 이길환은 7승 7패(평균자책점 3.61)를 기록하게 됩니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리 나쁜 기록도 아니었습니다. 이듬해에 이길환은 빛을 발합니다. 15승7패, 평균자책점 2.51로 승률 1위, 다승 4위에 오르는 빼어난 성적을 남기고 한국시리즈에도 올라갔습니다. MBC 청룡이 우승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컸습니다.
MBC는 투수방어율에서 하기룡이 2· 34로 1위를 차지했고 유종겸(2·40)이 3위,이길환과 이광권이 각각5, 6위에 오르는등 가장 고른 투수력을 보였고 타격에서도 이종도가 2할9푼6리로 7위이해창(0·294)과 김재박(0·290)이 8, 11위에 올라있으며 주전선수가 하나같이 찬스에 강하고 정확한 타격을 보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기동력도 최강이었습니다. 김재박(2위) 이해창(3위) 이광은(5위) 이종도(6위) 김인식(8위)등 5명이 도루10걸에 끼여있을 정도로 막강했지만 마치 모래성과 같이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해태의 집중력에 너무 쉽게 무너진거죠.
언더핸드 투수가 귀하던 그 시절 이길환의 공은 매끄럽게 휘어지고 가라앉거나 타자들의 타이밍을 절묘하게 뺏으면서 타자를 현혹 시켰지만 이후 4년간은 이길환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남기며 서서히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1988년 이길환은 다시 한번 용트림을 하게 되죠. 1983년 이후 첫 두자리 승수(10승 4패 평균자책점 3.53)를 거둡니다.
잊혀진 이름으로
89년 2승에 머무르며 과거와 같은 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결국 1990년 태평양으로 이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시 1승에 멈추며 부활에 실패합니다. 1990년 태평양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을때까지 44승31패 4세이브 평균자책 3.69의 평범한 성적을 남겼습니다.은퇴 후 이길환은 LG트윈스 2군 투수코치와 스카웃팀, 전력 분석팀에서 근무했고 2006년까지 원음방송 야구해설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MBC 프런트에서 주로 스카우트를 담당했던 이길환은 1993년에 연세대 입학이 거의 성사된 신일고 거물 김재현을 한-일 고교야구대회가 열린 오키나와까지 쫓아가 마감 시간 직전에 계약서(계약금 9100만 원)에 사인을 받아내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6년 11월 이길환은 아산병원에서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48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첫댓글 기억나는 이름이 이길환 이용훈 두명이네요 기억엔 이길환은 살찐 돼지였는데 ..
김영덕 감독이 선수시절 퍼펙트게임 했었고요
정기혁과 강용수는 국가대표 경력자 였습니다.
김병우는 해병대시절 임신근과 대결해 21회 완투패를 기록한 바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