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槿惠 대통령을 파면해달라는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이들 중에는 새누리당의 나경원 의원이 있다. 羅 의원은 판사출신이고 여성이다. 이 탄핵소추장에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그날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밝히지 않으니 이게 헌법상의 기본권인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나경원 의원은 법률가로서 이에 동의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성으로서도 여성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모조리 알아야겠다는 데 찬성한 셈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이미 7시간 동안 박 대통령이 철저한 구조작업을 관련 부서에 지시하는 등의 公的 활동에 대하여 상세히 발표한 바 있다. 나경원 의원은 그것도 부족하니 대통령의 私的 시간, 예컨대 화장을 한 시간까지 알고싶다는 탄핵소추장에 찬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알고 싶다. 나경원 의원(세월호 침몰 때는 국회의원이 아님)은 세월호 그날 무엇을 했는가? 머리 손질을 했는가? 화장을 했는가, 했다면 몇 분 걸렸나? 이를 밝히지 않으면 우리는 헌법상의 국민의 알권리 침해로 간주할 권리가 있다.
朴槿惠 대통령 탄핵소추장에 헌법 제10조가 등장하였다. 소추장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당일 오전 8시 52분 소방본부에 최초 사고 접수가 된 시점부터 당일 오전 10시 31분 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약 1시간 반 동안 국가적 재난과 위기상황을 수습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이어서 <대통령은 처음 보고를 받은 당일 오전 9시 53분 즉시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여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했어야 한다>면서 <박대통령이 위와 같이 대응한 것은 사실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할 것이고 이는 헌법 제10조에 의해서 보장되는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배한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대한민국의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人權(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조항은 <우리나라 기본질서의 이념적 정신적인 출발점인 동시에 모든 기본권의 가치적인 핵심으로서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질서의 바탕이며 우리 헌법질서에서 절대적이고 양보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게 헌법학자 허영(許營) 교수의 견해이다. 10조의 뿌리는,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의 유명한 귀절이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창조되었으며, 그런 평등한 창조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받았는데 생명의 保全(보전)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거기에 속한다.>
신생 민주공확국은 헌법을 만들 때 제퍼슨의 이 名言을 국가 정체성의 기본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회가 세월호 사고까지 탄핵사유로 특정한 것은 헌법재판소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소홀이 세월호 승객들의 생명권을 박탈하였다는 법리를 세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 세월호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해경의 김경일 정장이 지휘하는 소형 경비정이 구조 명령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침몰 시작 약35분 후인 9시30분, 절벽처럼 기울어가는 세월호에 접근, 구조용 短艇(단정)을 내려 세월호 船側(선측)에 붙이고 구조를 시작한 것은 9시38분, 시시각각 기울어가는 船體(선체)를 올려다보면서 自力(자력)으로 船室(선실) 바깥으로 나온 승객들을 집중적으로 구출하던 중 배가 전복된 것은 10시17분이었다.
사후적(事後的)으로 계산하여 승객들을 구조할 수 있었던 시간은 9시38분부터 10시17분까지의 39분이다.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시간이고 현장 상황은 더욱 급박하였을 것이다. 당시 거대한 선체(船體)가 모로 돌면서 넘어가는(엎어지는) 모습을 海面(해면)에서 위로 쳐다보면서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던 해경은 배가 언제 엎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선장(船長)이 달아나 선내(船內) 상황을 알 수 없는 가운데서 경비정과 구조 헬기, 그리고 해경의 연락을 받고 몰려온 어선들이 172명을 구조한 것은 최선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차선이었다. 박 대통령이 이를 海警의 구조실패로 단정, 해경해체를 발표한 것은 그의 분별력을 의심케 하는 치명적 실수였다.
39분의 시간 대에 박 대통령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사고 보고를 받은 즉시 오전 10시15분 안보실장에게, 10시30분엔 해경청장에게 구조를 독려하는 전화를 하였다. 대통령이 현장의 김경일 정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면 오히려 주의를 분산시켜 구조작업만 방해하였을 것이다.
탄핵소추장은 해경 간부에게 물었어야 할 추궁을 대통령에게 한 셈이다. 이 정도의 사안으로 5년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을 파면한다면 큰 교통사고가 날 때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선거를 하느라고 국가 운영이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소추장에 넣은 것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소추된 탄핵사유에 대한 불신감을 키울 것이다.
소추장은 선동세력이 만든 '7시간'도 언급했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과 언론이 수차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동안의 행적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하였지만 비협조와 은폐로 일관하며 헌법상 기본권인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해 왔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날 박 대통령의 행적이 자세히 적혀 있다. 이 정도는 안 되고 私生活 부분까지 공개하라고 한다면 여성에 대한 觀淫症(관음증)을 의심케 한다. 여기에 여성인 나경원 의원이 동조하였다.
대통령의 인권을 이렇게 무시하는 국회가 힘 없는 서민의 인권을 어떻게 다룰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나경원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을 때 좌파세력이 조직한 '1억원 피부 관리 선동'으로 낙선한 사람이다.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던 세력의 손에 자신의 선거운동을 지원하였던 박근혜를 넘겨야 할 만한 원한 맺힌 사연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법률가로서 세월호 사고가 과연 대통령 파면 사유가 된다고 판단하였는지는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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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 - 이것이 팩트입니다.
청와대
청와대가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대통령의 시간대별 업무 일지.
‘세월호 당일’
대통령은 어디서 뭘 했는가
대통령은 관저집무실 및 경내에서 당일 30여차례의 보고와 지시를 내렸다.
이는 이미 2014년 국회 운영위(2014.7.7.), 세월호 국정조사특위(2014.7.10.),
청와대 국정감사(2014.10.28.)에서도 밝혔던 것이며 야당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 원인을 대통령의 7시간으로 몰아가는 악의적인 괴담과
언론 오보로 국민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처음에는 ‘정OO를 만났다’ 하더니
그 다음은 ‘굿판을 벌였다’고 하고
그 다음은 `프로포폴 맞으며 잠에 취했다` 하였고
그 다음은 ‘성형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의혹은 계속 바뀌어가며 괴담으로 떠돌고 있다.
사실, 원칙적으로 청와대는 적의 공격이 예상되는
국가 안보시설이므로 대통령의 위치와 동선은 공개하지 않으며,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공개했던 적이 없다.
더 이상 유언비어로 국민이 선동되고
국가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집무내용을 상세히 공개한다!!
<세월호 박근혜 대통령의 집무내용 >
청와대에는 관저 집무실, 본관 집무실, 비서동 집무실이 있으며
이날은 주로 관저 집무실을 이용.
청와대 어디서든 보고를 받고
지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대통령은 출퇴근의 개념이 아닌
모든 시간이 근무시간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고와 같이 분초를 다투는 업무는
현장의 지휘 체계와 신속한 구조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회의 준비를 위해 여러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경내 대면회의 대신
20~30분마다 직접 유선 등으로
상황보고를 받고 업무 지시를 했다.
그런데, 이 날의 진짜 비극은 오보에 따른 혼돈
우리 국민 모두가 기억하는 것과 같이
그날은 나라 전체가 오보로 혼돈이 거듭됐다.
11시 6분 경기도 교육청이 학부모에게
‘전원 무사 구조’란 내용의 문자 발송을 시작으로
11시 25분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해경 공식 발표’란 문자 재차 발송.
이 같은 혼란은 오후 1시 13분에도 `370명이 구조되었다`는
잘못된 보고가 올라갔다. 대통령은 계속 상황을 확인하였고
안보실장이 오후 2시 50분 ‘190명 추가 구조가 잘못된 보고’라고
최종 확인하자 오후 3시 중대본 방문을 바로 지시하였다.
대통령은 짧게는 3분, 평균 20분 간격으로
쉼없이 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결국...
비극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