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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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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이 추천 0 조회 31 18.05.25 09: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길!

생명이 있는 것들이 오고 가는 곳이 길이다.

태고적 인간이 이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먼저 만들어 놓은 것은 아마도 길이 아니였슬까?

길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목적지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오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길은 인간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길은 인간들만의 전유물(專有物)은 아니다.


길에도 여러가지의 길이 있다.

하늘에는 비행기들이 다니는 하늘 길 항로(空路)가 있고

철새들이 오고 가는 새들의 길도 있으며 

바다에는 배들이 다니는 바닷길 해로(海路)도 있고

고기들이 다니는 어도(魚道)도 있다.


육지에는 차가 다니는 고속도로나 국도 지방도로도 있고 기차가 다니는 철로나  kTX처럼 고속으로 달리는 

고속철로도 있고 농기구가 다니는 농로(農路)도 있으며 땅속에는 지하도나 전철의 길도 있고  두더지나 쥐

개미 뱀 같은 파충류나 곤충이 다니는  길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산에는 등산객이 다니는 등산길이 있고 들에도  논둑 길 밭둑 길이 있다.

어디 그길뿐인가?

산짐승이 다니는 짐승들의 길도 있고 호젓하게 걷는 오솔길이 있는가 하면 산과 바다를끼고 걷는 둘레길도

있으며 비 오는 날 운치 있게 걷는 돌담길이 있는가하면  메타세쿼이아가 우거진 숲길도 있고 휴식을 취하며

걷는 공원길도 있으며 "메기의 추억"을 흥얼거리면서 걷는  금잔디 길도 있고  하느님 거시기를  찌르듯 키가

큰 낭만이 어리는 추억의 미루나무 신작로길도 있고 아카시아 꽃이 활짝핀 동구밖 과수원길이 있는가 하면

진해의 멋스러운 벚꽃길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릿다운 아가씨가  물길러가는 앵두나무 우물길도 있고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도 있으며 급할 때는 질러

가는 지름길도 있다.

말 없이 흐르는 물도 물길이 있고  산들바람 높새바람 하늬바람도  바람길이 있다.


태고적 우리의 선조들이 이땅에 처음으로 발을 드려 놓을 때도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오셨고 그 길을 우리도

우리 후손들도 오고 가면서 한 생을 살아갈 것이다.


645년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할 때도 길이 있었기에 그 길로 쳐들어 와서 순진무구한 고구려 백성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 갔고 오랑캐 또한 수십만이 죽었다.

어디 그뿐인가?


1636년 병자호란도 나라가 강하지 못했기에 청나라가 쳐들어 오자 인조는 오랑캐를 물리치질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했다가 결국에는 청군에게 붙잡혀서 한강 삼전도 나룻터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조아리기를 반복하는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한 것도 길이 있었기에 치욕을 당했고


1592년 4월 일본을 평정한 "도요토미히데요시" 우리나라를 집어삼킬 야욕으로 바닷길을 따라 부산에 상륙 부산성을

함락시키고 20일만에 한양을 점령하고 60일만에 평양까지 점령한 것도 우리가 닦아 놓은 길 때문이였고 백성과 

한양을 버리고 평양 신의주로 도망질을 친 선조 역시 선조들이 닦아 놓은 길이 있었기에 도망질을 칠 수가 있었으며


1910년 8월 22일 임진왜란 7년 전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왜놈들이 속죄를 하기는 커녕 또다시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고 매국노 이완용과 데라우치 통감 사이에 "한일합병조약"이라는 사실상에 우리나라를 침탈하는 조약을

맺고는 왜군을 앞세워 물밀듯이 몰려온 곳도 길 때문이고

왜놈들에게 빼앗긴 조국을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본 천황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선언하는 "종전방송"을 라디오를

통해서 발표 했는데 사실은 8월 14일인 전날 밤 도쿄 황궁에서 아세테이트 디스크에 녹음을 해서 다음 날 정오에

방송을 했는데 방송국이 의도적으로 잡음을 심하게 넣어서 방송을 듣고도 이 방송이 종전방송이라고 알아들은

사람은 지극히 젃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송 직후 경성방송국에서 요약방송을 다시 하기 전까지는 종전방송인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러니 1945년 8월 15일 정오 시민들이 거리로 뛰여나와서 나라를 되찾았다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 이고 재 방송이 나온 후에야 해방이 됐슴을 알고는 그제서야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나라를 빼앗기고 나라를 떠났던 수 많은 동포들이  귀국선 타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도 떠날 때 간 그 길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괴뢰집단의 불법 남침으로 동족상잔의 피비린내나는 전쟁 역시 길을 넓게 닦아 놓았기에

3일만에 서울이 괴뢰군의 수중에 떨어졌고  국민이 믿었던 용감한 국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할 때도 길이 있었기에

후퇴를 할 수가 있었으며 1950년 9월 15일 새벽 2시에 인천상륙작전도 따지고보면 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으며

그 해 10월 1일 용감무쌍한 우리나라 국군 보병 제 1사단 15연대와 보병 제 7사단 8연대가 드디어 38선을 넘어서

동해안을 따라 원산으로 진격한 것 역시 닦아 놓은 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고 1950년 10월 26일 보병 제 6사단

7연대 1중대 2소대 대원이 압록강에 도달해서 수통에 압록강물을 담아서 "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낼 수 있었던 것

역시 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태고적 우리 선조가 보따리 등에 걸머지고 식솔 앞세우고는 조선반도를 찾아오실 때도 길이 있기에 그 길을 따라서 

오셨고 1930년 우리 조부께서 왜놈들 감언이설에 속아서 남양군도로 징용을 가실 때도 이 길로 가셨고 1945년 해방이

되서 귀국선 타고 고향에 오실 때도 갔던 길을 되 짚어 오셨으며 고향에 오신지 십년도 못사시고 돌아가셔서 저승가실

때도 이 길을 따라서 저승으로 가셨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삼십년 후인 1980년 겨울 할머니도 상여를 타고 할아버지께서 

가신 길로 가셨으며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아버지도 마을길을 걸어서  전쟁에 참전하셨고 동족상잔의 잔인한 

전쟁은 3년만에 휴전이 되서 고향에 돌아오실 때도 가셨던 그 길을 되 집어 돌아오셨으며 장가가실 때도 아버지는

이 길로 가셔서 어머니를 가마에 태워서 데리고 오셨으며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장에 미역을 사러

이 길을 허둥지둥 걸어 가셨으며 코 찔찔 흘리면서 어머니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도 다리가 아프다고

뚝거리면서 이 길을 걸어 갔으며 소풍을 갈 때도 맛있는 도시락 싸들고는 천둥에 개뛰듯 펄쩍거리고 뛰면서 이 길로

소풍을 갔고 여름방학 때 외할머니집에 갈 때도 어머니가 싸주시는 떡 싸들고는 이 길을 따라서 한나절을 걸어서

외갓집에 갔고 읍네 중고등학교도 새벽밥 먹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이 길을 걸어다녔고 입영통지

받고 집떠나 훈련소를 갈 때도 이 길을 걸어서 갔고 첫 휴가 맡아 집에 올 때도 제대해서 올 때도 이 길로 돌아 왔고

내가 결혼을할 때도 이 길을 걸어서 아내를 데리고 왔으며 아내 따라 처갓집 갈 때도 이 길을 걸어 갔으며 남산 같은

배를 끌어 안고 산부인과 갈 때도 이 길로 갔으며 자식 낳아 출생신고할 때도 유치원 보낼 때도 초,중,고, 대학보낼

입학식 졸업식도 역시 이 길로 갔고  사위 맞선 볼 때도 이 길로 갔으며 딸년 시집보낼 때도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면서 이 길로 딸자식을 보냈다.

어디 그 뿐인가?

언젠가는 나도 이세상을 떠날 때는 이 길로 떠날 것이고

부음(訃音)을 듣고 헐레벅떡 자식들이 달려올 때도 이 길로 달려 올 것이다.


길이란 오고 가는 것만이 길이 아니라 가야할 길도 있다.

부모는 부모가 가야할 길이 있고

자식은 자식이 가야할 길이 있으며

남편은 남편이 가야할 길이 있고

아내는 아내의 길이 있지 않이한가


대통령은 대통령이 기야할 길이 있고
대법원장 국회의원 장관은 또 그들이 가야할 길이 있으며

군인은 군인의 길이 있고

공무원은 공무원이 가야할 길이 있으며 수 많은 직업마다 그들이 가야할 그들만의 길이 있다.

세상만사는 길을 오고가면서 이루어지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


사랑도 길을 오고 가면서 이루워지기도 하고 길에서 이별을 하기도 한다.

길이란 참으로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귀하디 귀한 존재다.


"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속담처럼 세상에는 가야할 길과 가지말아야할 길이 있다.

자(賢者)는 가야할 길을 알기에 가야할 길이 험난해서 고난과 역경이 닥친다고 해도 인내와 의지로 극복하고는

떳떳하게 가야할 길을 헤쳐나가노라면  끝내는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도 맛보게 될 것이고 부귀영화(富貴榮華)

와 공명(功名)도 누리면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기도 하지만 어리석고 사리에 어두운 우매(愚妹)한 자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러 눈 앞에 환상을 쫓아서 가지말아야할 길을 갈길인줄 착각을 하고는 가노라면 고난의 가시밭

길이 기다리고 있기에 실패와 좌절의 쓴맛을 보게 되고 막다른 길에 이르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인생의 길도 돌아보면 참으로 험난하기 이를데 없다.    

피 끓는 젊은 시절은 꿈과 희망을  가슴 가득 품고는 시원스럽게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듯 거침없이  달려 왔지만

나이가 조금 들어 중년 때에는 행여 길을 잘못들어서기라도 하는 날에는 고속도로는 그림의 떡이고 앞과 뒤가 꽉꽉

막힌 막다른 외통길에 다다르게 되면 그 때는 당황해서 갈 길을 몰라 허둥대다가 발 한번 삐끗하면 황천길로 떨어져

객사의 길을 가는 사람도 더러는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우리나라 평균 연령이 8ㅇ세를 넘었다고 하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환갑만 넘기면 칠,팔십은 받아 놓은 밥상이니 말이다.


황천길도 두서너갈래로 나뉜다고 하질 않는가?

한 길은 극락(極樂)이나 천당(天堂)으로 가는 길이고

또 한 길은 지옥(地獄)으로 가는 길이며

남어지 한 길은 환생(幻生)하는 길이란다.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좋은지는 가봐야만 확실하게 알 것이다.


내 어린시절 먹을 것이 부족해서 봄이면 연례행사처럼 보릿고개를 넘던 배 곯던 시절에는 환갑만 살아도 장수 

했다고 온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산해진미를 차려 놓고는 축하를 해주었는데 반만년을

 이여 온 그 놈에 지긋지긋한 보릿고개 가난을 몰아낸 지금은 고희를 넘겼는데도 아직은 젊다고 노인 대접은

받지도 못하는 장수시대로 바껴서 요즘은 노인대접을 받으려면 팔십을 넘어서 구십(米壽)을 지나야만 장수했다고

노인대접을 해 준다.


그러나 요즘은 옛날과 달리 핵가족 시대라서 황혼길을 가고 있는 많은 노인들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저승길을

갈 때는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승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고독하게 홀로 저승길을 간다고 하니

서글픈 생각이 든다.


길.......!!!!

생명이 있는 것들은 헤아릴 수 없이 수 많은 길을 오고 가지만 언젠가는 꼭 한 번은 가야할 길이 있다.

그 길은 바로

저승 길.......!!!

나 또한

오늘도 내일도 내게 주어진 길을 부지런히 가야겠다.

지금도 나는 길을 가고 있다.

 




                                                    ㅡ 끝 ㅡ






                         2018년    5 월   24 일      길    상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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