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 된 검인정 교과서의 현황/정경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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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눈에 뵈는 거짓말에 너무나 잘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한국인들.., 즉 새빨간 좌빨이론이 너무나 잘 먹히는 한국인들... 좌빨들 이론은 전부 그럴싸한 말장난이다.. 이런 말장난에 진실을 모르는체 우리의 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있다.. |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황교안 총리 담화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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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앙인,” “학자,” “국민"으로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서울대 좌익 운동권 출신 김철홍 교수의 검인정 교과서 분석장로회신학대학교 게시판이 역사 교과서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지난 10월 23일 이 대학 역사신학과 교수들이 학교 게시판에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를 올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같은 대학 신약학과 김철홍 교수는 장문의 반박문을 게시판에 올렸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 찬반 논쟁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현재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아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김철홍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글 | 김철홍 장신대 신약학과 부교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서에 대한 비판과 국정화에 대한 나의 입장 지난 10월 23일 본교 홈페이지(www.puts.ac.kr) 일반게시판에 본교 역사신학교수 7분 공동의 이름으로(임희국, 서원모, 박경수, 안교성, 이치만, 김석주, 손은실) 작성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들은 이 성명서에서 자신을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는”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역사신학교수로 소개하면서 “정부가 역사를 독점하거나 미화하거나 왜곡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고, “신앙인으로서,” “학자로서,” “국민으로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의 말씀으로 이 성명서를 마무리하였다. 이 성명서를 읽은 후 국정화에 찬성하고 있던 나는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성명서에 의하면 나는 “역사를 독점하고,” “미화하고,” “왜곡하는” 시도에 동조하는 공범(共犯)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나는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갖고 있고,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일종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들이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는 장로교 소속 교단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로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찬성하는 나는 신앙도 없고 양심의 자유도 없는 교수인 셈이다.
더욱 큰 고민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의 말씀이다. 선언문 말미의 이 성경인용문을 놓고 추론하건데 역사신학교수들은 진리를 인식하고 있고 진리로 자유롭게 된 분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진리에 무지하고 그리스도의 자유가 없는 사람인 건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느냐 아니면 마느냐의 문제가 “진리의 문제”고 정말 어느 한쪽의 입장은 “진리,” 반대편의 입장은 “거짓”인가? 나는 이 성명서에 역사신학교수들이 갖고 있는 독단적인 입장, 즉 ‘나의 입장’은 옳고 ‘너의 입장’은 틀렸고 ‘나의 입장’은 진리고, ‘너의 입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보는 독단적인 입장,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독단적인 입장이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의 독단적인 태도는 “우리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태를 바로잡는 일임을 깊이 인식한다”는 말에서 그 절정(climax)에 도달한다. 마치 한 장의 성명서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이런 환상을 본교 역사신학교수님들만 갖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미 장신대 교수회가 성명서를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해온 선례가 지난 “세월호 성명서”와 “광복 70주년 신학성명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런 성명서들이 지금 우리 교단 안에서 얼마나 “사태”를 바로 잡고 있고, “개혁을 이루었”는지는 다소 의문이다. 이들은 “일방적인 진리주장이 얼마나 위험하며 자기혁신에 무능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지금 그 위험한 “일방적인 진리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차치하고, 이 성명서가 더욱 더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이유는 성경말씀을 자신들의 주장을 위한 치장물(embellishment)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는 말씀으로 자신들의 주장에 세례를 행하고(baptize) 자신들의 주장을 거룩한 진리(sanctified truth)의 수준으로 고양시킴으로 국사교과서 국정화의 문제를 진리의 문제로 둔갑시켰다. 나는 성서신학교수로서 이 구절을 아무리 읽고 주석을 참고하여 보아도 왜 이 대목에서 이 성경구절이 등장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이 구절이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어떤 구체적 관련이 있는지 나의 무지(無知)를 깨우쳐줄 역사신학교수님들의 친절한 설명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는 이와 유사한 성명서를 기독공보에서 읽었다. 본교단 총회장이 발표하여 기독공보에 게제된 성명서, “역사교과서 논의에 대한 본 교단의 입장: 역사 해석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제한”은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다. 내가 총회 사무총장실에 직접 전화하여 총회장(채영남 목사)이 어떤 경로로 총회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 성명서를 발표했는지를 문의하였더니 임원회에서 논의하여 발표하였다고 한다.
우리 교단 내에 이 문제에 관하여 성도들 사이에도 의견이 다르고, 목회자들도 마찬가지고, 신학교 교수인 나부터 총회장과 의견이 다르다. 임원회는 어떻게 본교단의 입장을 수렴했는지 묻고 싶다. 총회장은 개인이 아니라 교단을 대표한다. 공인이다. 공인은 자신의 사견(私見)이 과연 자신이 대표하는 전체의 의견인지 분간하여야 한다. 임원회의 결의로 “본교단의 입장”을 발표하였다면 총회장과 임원회는 자신의 권한을 남용한 것이 아닌가? 그 성명서는 총회장이란 직함을 빼고 차라리 “역사교과서 논의에 대한 나의 입장”으로 혹은 “역사교과서 논의에 대한 본교단 임원회의 입장”으로 발표했어야 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고 다른 한 쪽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는 논쟁적 주제(controversial issue)에 관해 총회장이 제대로 된 의견수렴 과정도 없이 이렇게 간단히 임원회의 결정만으로 교단의 입장을 대변한 것은 월권(越權)이다. 왜 자신들의 사견이 교단의 입장인가? 역사신학교수들의 독단적인 주장은 반대의견과의 의미 있는 토론을 처음부터 봉쇄한다. 원래 성명서가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것이지만, 지금 이 성명서는 그 도가 지나치다. 이 성명서는 처음부터 교조적인 태도로 독자의 투항과 복종을 요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리를 모르는 자”로 깔끔하게 분류해버린다. 특이한 점은 역사신학교수답지 않게 이 성명서 안에는 역사교과서 문제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진행되었고 현재 무엇이 문제인가에 관한 분석과 구체적인 문제 지적도 없다. 그런 점에서 총회장의 성명서는 역사신학교수들의 성명서보다 훨씬 더 실증적(實證的)이다. 총회장의 성명서는 그런 문제에 관해 양질의 정보를 포함하고 있고, 왜 본인이 개인적으로 국정화에 반대하는지 독자의 이해를 돕는 설명도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같은 학교의 교수로서 이 성명서가 더욱 더 부끄럽다. 그렇다면 내가 “신앙인으로서,” “학자로서,” “국민으로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본교 역사신학교수들의 언어를 빌려서 말한다면 현재 사용중인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의 한국 근현대사 부분이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가진 저자들의 견해가 강력하게 반영되어 있고, 전체주의적 “사고의 획일화를 초래할 전근대적인” 내용이며, “건전한 견제와 균형”이 깨어져 있고, 어린 학생들의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국민통합과 창조성을 실현하는 일에” 역행하는 시민들을 이미 양산(量産)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양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절실한 이유는 나는 “한국 학계의 문제해결 능력 및 자정능력을 불신하는 입장”이기 때문이고, 내가 이미 본교에서 교수 집단이 얼마나 “자기혁신에 무능할 수 있는지를 경험하였”기 때문이고, “역사가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맡기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임을 이미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들을 통해 똑똑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사용 중인 검인정 교과서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뉴스나 인터넷 기사들을 최근에 보고 사실 교과서 내용에 ‘약간의’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었다.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누락되고 없다든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든지, 이런 문제 지적들이었다. 혹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타종교에 관한 서술이 많고 기독교에 관한 서술이 적다는 문제 지적이었다. 나는 정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내가 직접 확인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며칠 전 중고등학교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를 구입하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아쉽게도 검인정 교과서는 모두 출판사에서 다 회수해 가고 없었다. 내가 구할 수 있는 것은 미래엔 출판사에서 간행한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대표저자 한철호)와 비상 출판사에서 발행한 『한국사: 완벽한 자율학습을 위한 완벽한 자율학습서』(저자: 이건홍 외 4인 공저)였다(물론 다른 것들도 있었지만 비싸서 모두 다 구입할 수 없었다).
이 책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서의 내용을 잘 요약, 분석하고 있고,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추가되어 있어 어떤 면에서는 교과서보다 저자의 의도를 더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심지어 학습진단평가를 위해 문제풀이도 포함되어 있었고, 이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다. 나는 그 중 책이 많이 사용된다는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을 그 밤 새벽까지 직접 읽었다. 다 읽고 난 뒤의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해 ‘놀라움’이었다. 나는 1981년 서울대 사회학과에 진학하였다. 3학년 때인 83년 8월에 일종의 강제징집제도인 지도휴학을 받고 군대에 갔고, 85년 제대하고 다시 복학하여 88년에 졸업했다. 사실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깊이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학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당시 운동권 학생들이 읽던 각종 이념서적들을 읽었다.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의 저작들은 물론 러시아, 중국, 베트남, 쿠바혁명사, 마르크스-레닌주의 유물론 철학, 경제사(經濟史), 경제이론인 정치경제학, 종속이론, 사회주의 사상사, 사회주의 예술론, 한국근현대사, 반봉건식민지론, 조선 공산주의 운동사, 사회구성체론 논쟁, 등 오늘 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무식한(?) 좌파들이 읽지 않는 다양한 좌파 이론들을 공부한 적이 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나에게 성경보다 더 중요한 책이었다. 수 백 페이지에 걸쳐 작은 글씨로 프린트 된 영어로 번역된 자본론을 두 번 통독하면서 나는 영어를 깨우쳤다.
제대한 뒤에 나는 더욱 더 이념서적에 심취했고, 어느 날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학교를 휴학하고 나는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내가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가려고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지금 되돌아보면) 그 길에서 다시 돌아왔고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신학교 시절에도 나는 이념의 문제와 신앙의 문제를 안고 많은 고민을 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좌파 이념을 버리게 된 것은 미국에 유학 가서 바울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다. 바울의 복음은 나를 완전히 사상적으로 전향하게 했고, 복음의 세계관을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갑자기 나의 전기(autobiography)를 말하는 것은 미래엔 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사 자습서』 중 근현대사 부분인 186-311쪽의 내용을 읽은 뒤의 나의 소감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하게 하려는 의도이며 다른 뜻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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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토론문화 유감
지난 주말 서울의 한 캠퍼스에서 한·중·일 3국의 학자들이 모여 각국의 근대화과정에 관한 소개와 토론으로 국제 학술회의가 열렸다. 한·중·일 정상이 서울에서 만나는 뜻깊은 시기에 발맞추어 개최한 의미 있고 내실 있는 국제학술대회였다.
토론과정에서 역시 우려했던 문제가 노출되었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을 균형감을 갖고 객관적으로 잘 설명한 발표자에게 한 토론 참가자가 견해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토론이 곤란하다는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 여기서 오가는 설왕설래가 계속되자, 참석자 한 사람이 시간관계상 다음에 개별적인 토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토론을 중지하도록 한 사람에게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항의가 계속되었다. 일본의 학자와 중국의 학자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곁에서 이를 지켜보기가 민망했다. 사실에 관한 의견 불일치의 문제가 아니
라, 태도의 불일치 문제로 감정이 상한 것 같았다. 여기서 한국 토론문화의
현주소를 볼 수 있었다.
토론의 정신은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지향하는 것이며, 여럿을 간파하
고 하나를 지향하는 것이며, 부분을 존중하고 전체를 지향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토론은 승패를 결정하는 싸움이 아니다. 나와 다른 의견은 잘못된 것
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모르는 관점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각이므로 이를
고맙게 여기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개방적 태도가 요망된다.
토론에는 양자 간의 논쟁(bilateral debate), 토의, 그리고 문답이 있을 수
있다. 논쟁은 대외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격적 토론을, 토의는 대내적으로 이
루어지는 협의적(協議的) 토론을 의미한다. 우리의 학교 토론 교육은 주로
논쟁적 찬반 토론이다 보니, 학생들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에 바쁘다. 토론자나 청중은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고, 다양
한 사실과 정황을 보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열린 마음으로 변화하는 것이 토
론이다.
결론을 내려야만 생산성 있는 토론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결론에 이
르지 않더라도 토론을 통해 의견의 차이를 제대로 드러내 준다면, 즉 의견
의 불일치 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면, 또 토론을 지켜본 제3자가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한다면, 이것이 잘 된 토론이다.
나아가 진정한 토론은 문답에 있다. 그 모범은 공자와 소크라테스이다. 소
크라테스는 플라톤과 달리 저서는 없지만, 질문을 잘했고, 공자는 맹자와
달리 강의를 못 해도 대답을 잘했다. 이것이 문답형 토론(Socratic
elenchus)이다. 질문과 대답을 잘하는 것, 그것이 토론을 잘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묻고 답하면서 배운다. 여기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배양된다.
우리는 토론을 통하여 ‘주고받는 상생’의 합의를 도출한다. 시간이 걸리지
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합의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방식이다. 그런데 한국 토론 문화의 문제점은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의 비민주적인 태도와 후진적인 토론문화이다.
토론에서 일방적 주장의 강요나 승패를 결정하려는 논쟁은 성숙한 민주시
민의 자세가 아니다. 최근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로 사회가 온통 시끄
럽다. 토론의 정신은 사라지고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참담한 모습만 보인
다.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지 심히 걱정이 된다
글쓴이 / 이택호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
·(사)평화통일국민포럼 이사/홍보위원장
·철학문화연구소 계간『철학과 현실』 자문위원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성숙의 불씨'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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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성장의 원동력
칭찬은 성장의 원동력, 행동 변화,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며칭찬을 하는 사람은 칭찬을 듣는 사람과,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받습니다.
칭찬을 하는 사람은 허용적인 사고로, 적극적인 인생관을 갖게 되며칭찬을 하는 사람은 좋은 점을 찾고 말하므로, 심성이 선하고 밝아집니다.
칭찬을 하는 사람은 관심과 이해하는 마음이기에, 여유와 감사가 생기고칭찬을 하는 사람은 부메랑 효과로, 칭찬을 듣게 되어 삶이 행복해집니다. |
1. "통일의 꽃"이라고 불리는 조명애 평양음악무용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만수대 무용단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조명애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김정일로부터 남북한 "통일의 꽃"의 호칭을 하사 받으며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은 조명애로 하여금 삼성휴대폰 광고를 찍을 수 있도록 특별허가를 내려주었으며, 이는 북한연기자로서는 최초의 한국상품 광고 참여였습니다. ◇ 2. 응원단장 정미향 정미향은 큰 운동대회에 모습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지 인터뷰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 3. 군대의 꽃 중위 김옥희 김옥희는 인민군 예술단무용수로서 중위계급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군대의 꽃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녀가 속한 인민군 예술단은 미녀들이 운집한 곳으로 유일한 임무가 고관들만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4. 북한의 김태희 북한의 김태희로 알려진 이 여성은 캄보디아의 "조선호텔"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으로서 한국의 중앙일보도 캄보디아의 김태희라며 보도한 적이 있었다. ◇ 5. 북한버전의 "홍로몽"의 주인공 이정란북한에서 매우 사랑 받은 연기자로서 김정일도 몇 번이나 관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방북 인사들에게 융숭한 '성접대'를 한다는 사실을 한 탈북 여성이 폭로해 충격을 주고 있다. 김일성과 '평양것들'에 '충성 맹세'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북한식 격려 겸 코뚜레 꿰는 방식'이 '섹스접대'인 셈이다. 남성 뿐 아니라 방북한 여성에게도 잘생긴 남성을 맺어주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방북 이력이 있는 특정 여성 정치인과 북한 남성 배우와의 '스캔들'까지 퍼지면서 파문이 더욱 커지고 있다.인터넷신문 '자유북한(Free NK)'은 1985년부터 2004년까지 북한 대남 초대소·연락소 식모로 근무한 박모 씨의 증언을 전했다. ◇ "20 여년간 문수 초대소와 101 연락소에 있으면서 남한 인사들의 밥을 정말로 많이 해 줬다. 1990년대 중반 101 연락소에 있을 때 북한 여성들과 며칠 밤씩 동거하다 간 사람들도 많이 목격했다." "남한에서 손님들이 도착하면 초대소에서 한 달씩 일하다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북한에서 파견하는 남파공작원인줄 알았는데 후에 알고 보니 모두 남한 사람들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람들이다. 일주일에서 열흘씩 초대소에 머물면서 '조국통일 10대 강령',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등 노작 학습을 열심히 하기 때문에 남한에서도 수령님과 장군님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 ※ 참고자료 범민련 남측본부는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직접 조종한다.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로 판결 받았지만 해산하지 않고 있다. 범민련 남측본부 노수희 부의장은 북한 김정일이 사망한 지 100일(3월 25일)을 맞아 무단 방북 해 12주째 북한에 체류 했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북한 여성 안내원의 손을 잡고 돌아다니고 있다. ◇ 가는 곳마다 북한 여성 안내원의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노수희 北 남한사람 자기 편 만들기 위해 흔히 쓰는 '수법' "북한 정권이 남측 인사들을 자기들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 중에는 주체사상이라는 사상적 공감대로 세뇌시키기보다는 부적절한 인간관계를 맺어주고 인질, 협박 등으로 관리하는 저질적인 상투적 방법을 사용한다. 정말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면다 그 뒤에는 북한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올가미가 있어 그런 것이다" ※ 참고자료 북한 대남공작부서인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핵심으로 일하다 탈북한 시인 장진성 씨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다. "지금도 평양시 동대문구역 문수봉 산기슭에 위치한 률동1동에는 '현지처 촌'이 있다. 이 '현지처 촌'에는 홀로 사는 여인들과 그 자녀들이 살고 있는 단독주책들이 늘어서 있다. 거기에서 사는 대부분 여성들의 남편들은 대부분 해외 유명인들이다. 이를테면 '평양 아내들과 가족들'인 셈이다. 그들에 대한 우대와 관리는 당연히 대남공작부서에서 하고 있다.""통전부에서 근무할 당시 조평통 직원 한 분이 나에게 목사 한 분을 포섭했던 일화를 말해줬다. 그 목사의 대단한 반공의식과 청렴함이 암초여서 정면방법이 아니라 우회방법으로 포섭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공간인 호텔 안에서 샤워하러 들어가거나 나올 때 양복 입는 사람은 없다. 이 점을 이용해 샤워하고 나오는 순간, 나체의 여성이 실수로 방을 잘못 찾아 들어가게 했다는 것이다.그 사진을 당신 교회에 뿌리겠다고 협박했더니 대북지원요구, 자료청탁, 충성강요, 이 세 단계 중 포섭의 첫 단계인 대북지원 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A 여성 정치인과 北 남자 배우가? 북한 인민배우 김영호 "남한 A씨와 북한 인민배우 김영호와의 만남과 잠자리를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와 사회주의 노동청년 동맹 위원장 최룡해(현재 북한군 총정치국장)가 직접 주선했다. 당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A씨가 김 씨를 만나 북한 남성에게 푹 반해버렸다는 소문으로 끝났지만 사실은 북한에서 제공해주는 성접대를 받은 것이다. 한 탈북자에 따르면, A씨는 줄곧 김 씨의 수행(?)을 받았다고 한다.A씨가 김 씨를 좋아해서 나중에 통일되면 결혼하자는 얘기까지 오고 갔다는 소문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졌다. 당시 북한 TV에 둘이 같이 있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또 다른 탈북자는 A씨는 김 씨와 만난 것은 맞지만 잠자리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잠자리는 김정일과 했다고 주장했다. 자유북한 측은 평양을 비롯해 함경북도 청진, 회령, 온성, 무산지역, 양강도 혜산지역, 자강도 강계지역, 함경남도 고원지역, 평안남도 평성지역, 강원도 평강지역 등 북한 내 11개 지역에서 특파원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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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국정교과서 편찬위원님들이 잘 판단 하시어 고칠 것입니다
우리는 응원만 합시다!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항상 즐거운
생활속에 행복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