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수줍은 봄날 정취가 숨쉬는 곳. 경주에 있는 양동 민속마을은 조선의 봄날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담장 너머로 살짝 고개 내민 매화나무 꽃망울이 벙글기 시작하면 그 곳은 바야흐로 500년 전의 봄날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우리 옛 전통을 간직한 대표적인 민속마을로 안동 하회마을이 손꼽히지만, 하회마을이 지나친 상혼으로 훼손된 것과 달리 양동 민속마을은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양동마을의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마을의 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내려와 네 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다. 이 골짜기와 능선마다 500년 세월을 머리에 인 기와집과 초가 등의 고가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다. 숲과 집들이 경계없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마을이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마을인 모습이다.
봄날의 시작을 알린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에 의해 형성됐다. 예부터 많은 인물을 배출해 양반마을로 이름을 떨친 이 곳은 최근까지도 장관과 교수, 판·검사가 줄을 이을 정도로 후손들이 번성하고 있다. 양동마을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조선 때의 대유학자이자 경세가인 회재 이언적 선생을 첫손 꼽는다. 성리학의 이기철학(理氣哲學)을 이 황에 앞서 최초로 이론적 체계를 세우고 조선조 성리학의 기초를 다져 해동부자(海東夫子)라 불렸던 이언적은 동방 5현(東方五賢)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다.
집안에-마당이...
마을에 들어서면 산등성이에 있는,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인 향단(香壇·보물 제412호)은 바로 회재 선생과 연관있는 집이다. 1543년경에 선생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할 때 중종임금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해 지어준 집이다. 당시에는 흥(興)자 모양의 99칸이었으나 허물어진 걸 1976년 보수하면서 56칸으로 줄었다. 화려한 지붕과 눈에 띄는 외부구조 못지 않게 내부도 독특하고 세밀하게 지어진 향단은 철저히 풍수지리에 따라 건축돼 상류주택의 일반적 격식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안채 대청마루에 오르면 행랑채 뒤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안채 대청 옆에는 아들만 드나들도록 작은 문을 달았다. 그런 까닭에 요즘도 이를 연구하는 건축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밖에도 회재 선생의 부친이 살던 집으로 여강 이 씨의 종가집인 무첨당을 비롯해 국보, 보물, 민속자료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양동마을은 마을 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됐다.
향단
사립문이 정겨운 초가들이 모여선 산등성이 황톳길에선 서정적인 봄날 풍경을 만난다. 삐죽삐죽 머리 내민 처마 밑의 야생화와 대숲을 돌아나온 부드러운 봄바람. 그 바람이 500년 전의 시간 속으로 나를 훌쩍 이끌고 간다.
독특한 구조의 향단
*가는 요령
경부고속도로 영천 인터체인지를 빠져 영천시내에서 국도 28번을 타고 안강 방면으로 향한다. 34km 정도 가면 양동 민속마을 입구가 나오는데 이 곳에서 우회전해 1.2km 더 가면 양동마을이다. 경주에서 찾아갈 경우 포항 방면 7번 국도를 타고 19km 가다가 강동 인터체인지에서 안강 방면 28번 국도로 옮겨 탄다. 2km 정도 달리면 양동마을 입구(제2강동대교)가 나오고, 이 곳에서 우회전해 조금 더 가면 양동마을이다.
메주가 내걸린 처마
*맛집
전통적인 마을 분위기를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의도에선지 상업적인 시설이 거의 없다. 마을 두 곳에서 소박하게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청국장정식, 칼국수, 감자전 따위를 파는 ‘거림골’식당은 집에서 만든 쌀엿, 조청, 유과, 약과, 청국장분말 등을 팔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