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문화탐방(9)
- 천년 고도 경주시를 찾아서 -
■ 경주 신라밀레니엄 파크
⊙ 경상북도 경주시 신평동 719-70
2007년 3월 30일에 문을 열었다. 총사업비 1천억 원을 들여 약 18만 1800㎢의 부지 위에 조성하였다.
신라라는 주제로 꾸민 복합 체험형 역사 테마파크로, 크게 6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상·수상 무대를 갖춘 1,500석 규모의 공연장과 8세기 4대 도시(콘스탄티노플·바그다드·장안·경주)의 상징물로
꾸민 공간, 장보고공연장·석빙고·비말지·족욕장 등이 있다.
그리고 신라 유물을 모티브로 꾸민 놀이 공간, 신라 건축물을 복원하여 조성한 신라마을, 화랑 무예 훈련을 재현하는
화랑공연장이 있다.
숙박 시설로 전통 양식의 호텔인 라궁(羅宮)이 있는데, 라궁이라는 이름은 신라의 궁궐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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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528) 밀레니엄파크 정문 앞을 지키는 12지석상
![](https://t1.daumcdn.net/cfile/blog/1349E2194CF45D1D2E)
(사진 0397) 에밀레종
![](https://t1.daumcdn.net/cfile/blog/125A72154CF45DD444)
(사진 0391) 메인공연 천궤의 비밀
신라시대 화랑 미시랑이 하늘에서 내린 대형 불검, 갑옷 및 투구, 만파식적의 세가지 보물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 처한
(당나라 침입으로 부터) 신라를 구한다는 내용의 영웅 서사극 공연이다. 만파식적은 신비한 대나무로 만든 피리로 만가지의
파도를 잠재운다는 뜻이 있는데 이 만파식적 사건이후 신라의 범종에는 한마리 용이 대나무통을 짊어진 형상으로 음통부분에
새겨졌다는데범종에 만파식적의 철학을 담은 의미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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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403) 족욕체험장
![](https://t1.daumcdn.net/cfile/blog/18189B254CF47F7137)
(사진 0404) 석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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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0474) 토우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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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424) 선덕여왕 촬영 세트장
![](https://t1.daumcdn.net/cfile/blog/19189B254CF47F723A)
(사진 0500) 화랑공연장
지름 48cm의 국내 최대 크기의 트랙을 갖춘 원형 공연장으로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관람석이 준비되어 있으며 음향 시스템과
포크머신 등 연출을 위한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선덕여왕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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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449) 천년고도
신라시대 귀족마을인 천년고도는 고증을 거쳐 건축된 국내 유일의 신라시대 가옥으로 성골, 진골, 6두품, 4두품 등 가옥과
월명루 등이 화랑 및 귀족들의 생활공간 촬영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역사와 문화를 체험 할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 놀이동산으로 가족나들이로도 편하게 둘러 불 수 있는 곳으로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18.000원의 입장료가 좀 부담스럽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도 비를 흠뻑 맞고 웃던 시월의 코스모스며 여이설화 실험장 대나무숲을 혼자 걸을 때는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참다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대나무 숲에서 소리를 질렀을까를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면서도 그래도 속은 시원했겠다고 혼자
독백처럼 구시렁거렸건만 살면서 어찌 할 말 안 할 말 다 쏟아내고 살겠는가 사람이...
■ 경주 교동 최씨 고택(慶州 校洞 崔氏 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27호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69
![](https://t1.daumcdn.net/cfile/blog/16424D364CF4E94B0A)
(사진 0539)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로 불리는 경주 교동 최씨 가문의 고택은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있던
자리라고 전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가옥은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종가로 1700년경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월성(月城)을 끼고 흐르는 남천(南川) 옆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았고, 문간채·사랑채·안채·사당·고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하는데 사랑채와 별당은 1970년 불타고 주춧돌만 남은 것을 2005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현재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이곳에서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학문에도 힘써 9대에 걸쳐 진사(進士)를 배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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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555) 사랑채에서 최용구 문화해설사님으로부터 교동 최씨 고택에 관한 설명을 듣는 중
최부잣집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최준 선생에 의해 완성된다. 일제강점기에 백산상회를 설립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에게 군자금을 보냈다. 최준 선생은 광복 후에는 인재양성을 위해 전 재산을 털어 대구대학과
계림학숙을 설립했다. 후에 두 학교가 합쳐져 지금의 영남대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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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543) 안채
고택에 관한 일화가 있다. 최준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귀한 손님을 맞았다. 바로 스웨덴의 황태자 구스타프 6세로
그는 신혼여행차 한국을 방문해 조선의 명가 후손인 최준 선생의 인품에 반했다고 한다. 후에 국왕이 된 구스타프는
여성 전용공간이라 둘러보지 못한 안채의 모습이 궁금해 6·25전쟁 때 파견한 간호장교들에게 사진을 찍어 오라는
밀명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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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540) 곳간채와 그 앞에 전시되어 있는 육훈과 육연
육훈(六訓)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부불삼대(富不三代)라고 아무리 부자라 해도 3대를 넘기기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12대 까지 300년이나 부자로서의 명성을
이을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가문을 지키는 육훈(六訓)의 규범과 자신을 다스리는 육연(六然)의 가르침을 사회와 함께 이웃과
더불어 진정한 나눔으로 몸소 실천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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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537)
부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는 오늘날에도 부를 이룬 사람들은 많다. 또 성경에 부자의 비유를 보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나은 일이라고 한 것은 부자 노릇하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잘 말해 주고도 있다.
그럼에도
경주를 여행할 때 꼭 가봐야 할 장소를 딱 한군데만 뽑으라고 한다면 저는 결코 불국사나 석굴암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신 저는 이곳을 말하겠습니다. "경주 최부자집에 가 보라"고 말이지요 라고 써 놓았던 어느 블로그의 여행자님의 말에
나 또한 몇번이고 공감하는 것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최부잣집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정신이 그곳을 찾는 자들에게 산 교육이 되는 충분한 가치가 있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최씨 고택에서)
■ 경주 양동마을(慶州良洞마을)
⊙ 중요민속자료 제189호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사진 0668) 양동마을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 189호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은 전통문화 보존 및 볼거리,역사적인 내용 등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마을로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으며 경주시 설창산에 둘려싸여 있다
한국 최대 규모의 대표적 조선시대 동성취락으로 수많은 조선시대의 상류주택을 포함하여 500년이 넘는 고색창연한 54호의
고와가(古瓦家)와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다.
경주손씨와 여강이씨의 양 가문에 의해 형성된 토성마을로 우재 손중돈선생, 회재 이언적선생을 비롯하여 명공(名公)과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 속에 수백년 된 기와집과 나지막한 토담으로 이어지며,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향단(보물, 412), 관가정(보물 442), 손소영정(보물 1216)을 비롯하여 서백당(중요민속자료 23) 등 중요민속자료 12점과,
손소선생 분재기(경북유형문화재 14) 등 도지정문화재 7점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22D9C144CF5FA7237)
(사진 0605)경주 양동 향단 (慶州 良洞 香壇) -보물 412
조선 중종(中宗) 때의 문신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경상감사로 부임하였을 때인 1540년에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손씨 대종가인 관가정(보물 442)이 같은 양동리에 세워지자 이에 외척의 입지를 마련하고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원래 향단은 99칸이었으나 화재로 불타고 현재는 51칸의 단층 기와지붕이다.
전면의 한층 낮은 곳에 동서로 길게 9칸의 행랑채가 있고 그 후면에 행랑채와 병행시켜 같은 규모의 본채가 있다.
(사진 0641) 무첨당(보물 411)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江東面) 양동리(良洞里)에 있는 조선 중기의 별당건축(別堂建築).
회재(
晦齋)이언적(
李彦迪)의 가택 일부에 세운 것이라고 하며, 그와 관련되는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이인식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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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659) 심수정(心水亭) - 중요민속자료 제81호
심수정(心水亭)은 형인 회재 이언적을 대신하여 벼슬길을 마다하고 나이 드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농재 이언괄능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종가인 무첨당과 향단을 바라보기 위해 건물을 'ㄱ'자로 꺾고 그 자리에 누마루를 두었다.
마을 안팎에 있는 10개의 정자 중 규모가 제일 크며 안락정과 강학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 마을의 서당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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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663) 강학당(講學堂) - 중요민속자료 제81호)
안락정은 손씨 문중의, 강학당은 이씨 문중의 서당이었다.
(0645) 무첨당 앞의 탱자나무
참 오랜만에 경주를 갔다. 거의 30년만에
파란 하늘아래 오곡백과 황금물결을 이루고 가을의 향기가 물씬 배어나는 아름다운 시월에.
밀레니엄파크를 돌아 교동최씨고택과 양동마을, 저마다의 유구한 역사와 가치를 이어 온 고고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
인고와 침묵의 시간들이 만들어 낸 세월의 느티나무는 얼마나 장엄하던지, 기둥을 받치고 앉은 주춧돌 사이로 처마 끝
낙숫물에 자란 작은 풀꽃은 또 얼마나 생명의 경이감을 자아내던지,기왓장 하나, 옛담장의 돌 하나도 어여쁘고 참으로
정겹더이다.
돌아오는 버스안, 냄새 하나 자꾸만 코끝을 스친다.
무심당을 돌 때 가시덤불 속에서 노랗게 익은 향기로 나를 유혹하던 그 탱자나무 냄새가 참 오래도 갈 것 같은 경주 답사.
(10.9 경주에서)
첫댓글 한사람에 힘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두고두고 좋은 영향을 끼칠수있는지를 경주 최부자집이야기에서 알수있겠습니다. 경주에 가면 꼭 들려야될 한곳으로 널리 추천하고싶군요, 그런데 이토록 교과서보다 더 훈훈한
탐방기를 매번 올려주시는 분은 어떤 분일까?
아침에 부시시한 머리와 눈꼽을 달고 밥을 준비하는 여자, 목소리가 조금만 커지면 흥분하지 말라고 오해 받는 갱상도말이 투박한 지극히 평범한 백조아지매입니다. ㅎㅎ
참 이산님 답사에 동참하고 싶으시면 매 월 두째 토요일 시청 동문 앞 8시까지 오시면 됩니다.
(참고로 우리 모임은 음주가무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