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곽씨언간 (한글 편지에 나타난 돌잡이 이야기)
새로운 생명을 낳는 아기의 탄생은 가족과 사회 모두에게 내리는 커다란 축복이다. 그래서 우리는 친지나 이웃이 아기를 낳았다고 할 때 함께 기뻐하며 흐뭇해한다.
태어난 아기를 기르는 과정에 몇 가지 통과의례가 있다.
먼저 아기가 태어나면 집 대문에 금줄을 치는데 이때 금줄에는 고추와 숯 등 정화의 상징물이 달린다. 삼칠일(21일)이 지나는 것도 한 고비이다. 태어난지 100일이 되면 간단한 백일상을 차려 가족들이 함께 하고, 태어난 지 1년째 되는 날, 곧 첫돌이 되면 제법 푸짐한 생일잔치를 벌인다.
첫 돌 행사는 요즘도 널리 행해지는데 돌잔치에 친지와 가족이 참석하여 신혼부부에게 주어진 커다란 선물을 함께 하며 즐거워한다.
전통 사회에서 돌찬지는 다음과 같이 했다. 돌날 아침이 되면 먼저 삼신상을 차려 아이의 복을 축원하였다.
그리고 가족과 참석자가 미역국과 쌀밥을 지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어서 돌잔치를 하였다. 돌을 맞아하는 아기에게 예쁜 옷을 차려 입혀 돌상 앞에 앉혔다.
사내아이는 저고리와 바지에 조끼·마고자·두루마기를 입히고, 그 위에 남색 쾌자를 입혔다. 머리에는 복건을 씌우고 발에는 수를 놓은 타래버선을 신겼다. 가슴에는 돌띠를 두르고 허리에는 돌주머니를 채워 주었다.
여자아이에게는 색동저고리와 다홍의 긴 치마를 입혔다. 머리에는 조바위나 굴레를 씌우고 발에는 타래버선을 신겼다.
가슴에는 역시 돌띠를 두르고 치마말기에 돌주머니를 채워 주었다.
돌상에는 각종의 떡과 과일을 풍성히 놓았다. 강정이나 약과 생선 등 맛있는 음식도 함께 차렸다. 특히 국수, 수수팥떡 등 장수와 무병, 부정을 막는 의미의 음식이 놓여졌다.
이런 상 앞에 돌날을 맞은 아이를 앉히고 아이 바로 앞 상위에 여러 가지 물건을 널어 놓는다.
남자아이의 경우에는 쌀·돈·책·붓·먹·두루마리·활 등을 놓고,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쌀·돈·바늘·인두·가위·흰실타래 등을 놓았다. 그리고 아이에게 차례대로 그 물건을 하나씩 집게 하였다.
그 중 첫번째와 두번째에 집는 것으로써 그 아이의 성격과 재능, 수명, 장래성 등을 점쳐 보았다.
붓·먹·책 등을 잡으면 ‘문장으로 대성한다’, 활을 잡으면 ‘장군이 된다’, 실을 잡으면 ‘장수한다’, 쌀을 잡으면 ‘재물을 크게 모은다’, 자나 바늘을 잡으면 ‘바느질을 잘한다’ 등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며 아이의 장래를 미루어 보는 것이 돌잡이 행사였다.
요즘도 행해지는 이런 돌날 행사 즉 돌잡이가 옛 편지 속에도 나타난다.
현풍곽씨언간을 통해서 17세기 초기 조선사회에서 있었던 돌잡이 행사를 알아 보자. 곽주의 아들 ‘대임이’가 자라나 드디어 돌잔치를 하는 경사를 맞았다. 곽주가 아내에게 보낸 다음 편지에 그러한 사연이 나타나 있다.
요사이 아이들 데리고 어찌 계신고. 기별 몰라 걱정하네.
대임이는 어제 생일에 무엇을 먼저 잡던고.
기별 몰라 더욱 잊지 못하고 있네.
집안도 편하고 마을도 편하면 무슨 일로 혼자서 여기 와서 이 고생을 할꼬.
요사이 일을 보아 열이렛날 사이에 내려가고자 하네. <현풍곽씨언간 39번 중에서>
다른 편지에는 대임이가 자라는 모습이 나타나 있는 것도 있다. 대임이의 태어남을 기다리며 전전긍긍하던 모습이 여러 편지에 나타나다가 드디어 태어나 젖을 넘기는 모습, 일어서기도 하는 모습이 그려지다가 이 편지에서 돌잔치를 벌이는 경사를 맞이했다.
무슨 일인가 있어 아버지로서 곽주는 참석하지 못하였다.
못내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곽주는 이 편지를 보내어 대임이가 돌잔치 생일상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잡았는지 묻고 있다.
이 편지의 기록은 돌잔치 상에 여러 가지 물건을 늘어놓고 아이에게 그 중 하나를 잡게 하는 이른바 ‘돌잡이’ 풍속이 매우 오랜 것임을 알려 준다.
이 편지가 돌잡이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조보감 정조 15년 6월조에 元子의 돌잔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얼마전에 미국의 일간지인 시카고 트리뷴 신문은 한국의 돌잔치 문화를 소개하며 재미 한인들이 돌잡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도한 적이 있었다(2005년 7월 25일자 ‘미디어다음’).
“한 살배기 알렉산더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자신의 돌잔치상 위에 놓인
책, 돈, 연필, 청진기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가족과 친지 70여 명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아이가
마침내 20달러짜리 지폐를 집어 올리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다.
가족과 친지들은 ‘이 녀석 커서 부자가 될 게 틀림없어’라고 말하며 기뻐한다.”
시카고트리뷴 기자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사는 재미 한인 황정진씨의 집을 방문해 황씨의 아들 알렉산더의 돌잔치를 취재하여 소개하였다. 미국인이 보기에 한국의 돌잔치는 신기한 것이다.
이 신문은 아기의 어머니 헤일리 황의 말을 따 “한국인들은 아이가 돈을 집으면 앞으로 부자가 되고, 활을 집으면 군인이,
연필을 집으면 학자가, 칼을 집으면 요리사가, 붓을 잡으면 화가가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돌잔치 상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좋은 것을 의미하는 것뿐”이라며 “아이가 무엇을 집든지에 관계없이 가족과 친지들은 모두 함께 기뻐한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이 취재한 아기의 부모 황씨 부부는 재미 한인동포로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다.
황씨는 의사이며, 아내 헤일리 황은 부동산 관련 잡지사의 편집기자라 한다.
이들 부부는 미국에 살면서도 아이들에게 한국의 고유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의 전통적 행사를 열었다고 한다.
400여년 전 조선 땅에서 행하던 풍속이 이국 만리 미국 땅에서 그대로 살아 있다고 하니 면면히 이어온 우리 전통문화의 저력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잡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행해진 것이라 한다.
[출처] 현풍곽씨언간 (한글 편지에 나타난 돌잡이 이야기)
작성자 처음처럼
https://blog.naver.com/jhmin71/80043413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