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성당에 얽힌 돔 이야기
로마에 가면 누구든지 꼭 들리는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된 성 베드로 성당!
베드로사도의 무덤 위에 세워진 성 베드로성당은 오랜 역사를 그 안에 품고 증거하고 있는 건축물로서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습니다. 긴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건축의 역사. 지금의 건축물이 보여주는 호화롭고 우아한 장식들과 거대한 규모의 돔. 거대한 건축 공간과 그 안에 놓여 있는 유명한 미술품들, 그리고 건물 전면 옥외에 조성된 거대한 열주들로 구성된 타원형의 옥외 광장에 이르기까지.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장소입니다.
이 건물은 의미 있는 장소에 세워진 의미 있는 건축물로서 건축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나아가 영적으로도 지금까지 생생하게 여러 의미를 증거하고 있는 중요한 건물입니다.
우리 개신교(기독교) 성도들에게는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면죄부 판매를 유발시킨 건축물로 먼저 기억되는 의미 있는 건물이기도 합니다.
이제 성 베드로성당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 건축의 역사를 따라가며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 베드로성당의 건축 역사를 따라가면서 더불어 그 당시의 교회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 눈에는 어쩌면 잘 보이지 않고 숨어 있는 영적인 중요한 의미를 그 건축의 역사 속에서 찾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래의 그림을 참고하여 그 장소에 중첩되어 있는 다양한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종합적으로 전체 역사를 중첩하여 보여주는 배치도를 몇 단계로 분해하여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1) 그 장소는 네로의 원형경기장이 있던 곳입니다 : 네로의 원형 경기장은 타원 형태를 기본으로 설계된 곳으로 그 중심에 오벨리스크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박해가 일어나던 당시에 많은 기독교도들이 이곳에서 구경꾼들 앞에서 사자 밥이 되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당했던 공간!
참고로, 오벨리스크는 원래 이집트에 있던 태양신 라(Ra)의 신전 앞에 있던 기둥입니다. 이것을 처음으로 옮긴 사람은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입니다. 이후 황제들도 조직적으로 오벨리스크를 로마로 가져갔고 그들은 원형(전차)경기장이나 신전 앞 광장을 장식하였습니다. 이것이 후에 가톨릭 성당 앞에 마치 이교에 대한 승리를 상징한다는 명분으로 기념비적으로 세워지고 장식되었습니다. 성베드로성당의 역사에서도 네로의 원형경기장 중심에 있던 오벨리스크가 나중에 베르니니의 타원광장 중심으로 이전되어 세워지게 됩니다.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원형 경기장은 사실은 타원이 사용된 대표적인 건축물이라는 것을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타원 공간의 특징도 이미 지난 회에 간략히 서술하였지만 이것은 다시 언급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장, 투우장 등 관중들이 둘러앉아서 역동적으로 관람, 구경을 하는 공간으로는 다양한 초점이 있는 타원형이 사용됩니다. 타원 공간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한 곳에 집중할 수 없는 다 초점 공간이기 때문에 불안정하고 감정이 쉽게 흥분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관람하기에는 적합한 공간 특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빠른 공격과 수비로 역동적인 경기에 열광하는 현대의 축구경기장과 그 관중들을 연상해 보면 될 듯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1세기의 공동묘지와 베드로 사도의 무덤 자리가 있었습니다 : 기독교를 혹독하게 박해한 네로황제 시절부터 원형경기장 바깥 코르넬리아 가도에 접한 곳에 처형을 당한 기독교도들의 공동묘지가 형성되었고 그 곳에 베드로사도의 무덤이 있었다고 합니다.
(2) 옛 베드로 성당이 건축되다 : AD 320년경 콘스탄티누스황제가 옛 베드로성당을 건설합니다. 서양기독교 최초의 건물로 공동묘지에 있었던 베드로사도의 무덤을 찾아 그곳을 기준점으로 삼아 옛 베드로 성당이 바실리카양식으로 세워집니다. 옛 베드로 성당의 바실리카 양식의 I자형 성당(머리 부분이 아주 초기의 십자가형 평면 모습이 보이고 있음)과 앞마당의 모습은 다음 그림을 참고.
옛 베드로 성당과 유사한 규모와 모습을 보여주는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으로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회 성당으로 건축된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1294~1385)이 있습니다.
(3) 현재의 성 베드로 성당(1506~1564)을 건축하기 시작하다 :
건물 앞에 마당을 가진 바실리카 양식의 옛 베드로 성당은 그 후 중세 천여 년을 거쳐 15세기 중반에는 이미 낡은 상태로 쇠락해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논의와 과정 끝에 16세기 초인 1505년 율리우스2세 교황에 의해 ‘피렌체 대성당과 같은 둥근 돔이 있는 건물로 만든다.’는 조건으로 신축 계획이 결정되었습니다. 최초의 계획안은 브라만테에 의한 것으로 규모는 현재의 미켈란젤로 안과 비슷하고 돔을 얹은 완전한 그리스 십자가형입니다.
(이 조건에 등장하는 피렌체 대성당 그리고 돔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기술하고자 합니다.)
교황이 조건으로 내 건 내용은 쉽게 풀이하자면 결국 ‘로마는 최소한 피렌체대성당을 능가하는 둥근 돔을 얹은 대성당을 소유해야만 한다.’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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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비교 건물로서 등장하는 피렌체 대성당(두오모)은 피렌체를 상징하는 그 거대한 돔으로 지금도 유명한 성당입니다.
중세의 마지막 시기에 돔을 제외한 본체는 모두 건축되어 있었지만 정작 거대한 돔을 얹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르네상스 초기에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피렌체시는 비로소 브루넬레스키라는 건축가에 의하여 우여곡절 끝에 거대한 팔각의 돔을 설계하고 건축(1418~1434)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돔과 브루넬레스키라는 건축가는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로 이름을 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현재까지도 ‘피렌체’하면 첫 번째로 이 돔이 도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떠오르는 건물입니다.(사진 참고) 사진에서 보듯이 그리고 혹시 현지에서 직접 보신 분들은 다들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도시의 중심에서 랜드마크로서 기능하는 저 돔에 대해 찬탄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또한 건축과 도시와 문화와 역사의 시각에서 그것을 바라보며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여 영적인 의미를 찾기 시작하면 저 외면적인 아름다움 속에 담긴 무서운 교훈이 다가옵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