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송정 광어골
2. 초량 돼지갈비 골목
3. 금정구 금샘로
4. 문현동 곱창골목
5. 장안사 메기매운탕 거리
6. 부평동 족발골목
7. 망미동 아구찜골목
8. 만덕동 오리타운
9. 초량동 중국음식점거리
10. 범천동 조방낙지거리
11. 삼락동 재첩거리
12. 기장 죽성 장어거리
13. 온천동 칼국수 골목
사러 오는 손님들도 많다.
여름에는 냉콩칼국수(3천원)가 단연 인기다. 콩국수 국물에 들깨까지 넣어 진한 맛을 내, 한 번 맛본 사람들은 해가 바뀌어도 다시 찾곤 한다.
칼국수 맛이라면 가락타운 앞에서 성공해 온천장에 2호점을 낸 가락정칼국수(553-8585)도 빼놓을 수 없다. 식당 입구의 공개된 작업실에서 면을 반죽해 믿을 만한데다 사골뼈로 우려낸 육수를 좋아하는 남자 손님이 많다. 사골 육수로 만든 칼국수(3천원)라 배를 든든하게 해준다.
파와 고추, 호박을 총총 썰어 넣고 달걀 지단을 곱게 올려 놓아 먹음직스러운데다 맵싸한 김치와 깍두기, 고구마 맛탕이 깔끔해 미각을 돋운다. 육수는 24시간 고아 놓지만 칼국수 면은 미리 반죽해 놓은 것을 손님 오는 즉시 썰어서 삶는다.
요즘 같이 추울 때는 팥칼국수(3천5백원)가 좋다. 부산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전라도식 칼국수로 팥죽에 새알 대신 칼국수 면을 넣어 끓이는데 달짝지근한 팥죽과 탄력있는 면발이 어울려 그 맛이 독특하다.
새벽 6시까지 영업이 이어지는 것은 보쌈에 곁들이는 소주 한 잔을 찾는 손님들 때문. 굴과 오징어가 곁들여진 무말랭이 무침이 시원하고 맛깔스러워 돼지고기와 함께 속에 들어가면 싸한 느낌을 준다. 2~3인분이 1만2천원인데 식사용인 보쌈정식(1인분 6천원)도 먹을 만하다.
14. 광안리 해장국 거리
연말이다. 줄 이은 술자리에 마음도 속도 불편한 직장인들이 많다. 술을 마신 다음날에는 속풀이 해장국이 그만인데, 해장국 한 그릇으로 마음까지 개운해진다면 더 이상바랄 게 없을 터.
부산 수영구 민락동 광안리 앞바다에는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해장국을 먹을 수 있는 해장국 거리가 있다.
부산 수영구 민락동 민락타운 왼편으로 24시간 문을 여는 이름난 해장국집 다섯 곳이 모여 있다. 술꾼들의 마지막 코스로 새벽이나 술 마신 다음날 아침 언제든지 찾을 수 있도록 문을 닫지 않는다. 이 곳은 대부분의 술집들이 문을 닫는 새벽 2~4시께에는 해장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해마다 1월 1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일출 손님’이 몰려든다. 광안리 앞바다의 새해 일출을 보러 왔다가 아침 식사를 하는 손님이 줄을 설 정도다. 또 인근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이른 아침 조깅 후 한 그릇 식사를 부담 없이 해결할 수 있게 해준다.
콩나물국 시래기된장국 선지국 등 해장국의 종류도 다양한데다 정성을 쏟은 국 한 그릇 한 그릇이 먹음직스럽다. 속풀이용으로 개발된 터라 갖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가 영양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노오란 콩나물에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계란까지 하나 풀어 먹음직스러운 콩나물해장국은 단연 인기다.
새벽집(753-5821)은 30년간 전남식 시래기된장국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원래 막걸리와 회, 해장국을 함께 파는 음식점이었는데 시래기된장국의 맛이 뛰어나 해장국집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 장의 깊은 맛을 깨닫게 해주는 시래기된장국밥(3천5백원)은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다. 전남 담양 시골집에서 매년 메주를 쑤어 만드는 장맛에 그 맛의 비결이 숨어 있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호박 깨 쌀가루 고추 등 2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가 그 맛이 각별하다. 밥을 국에 말지 않고 국과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4천원)은 반찬을 서너 가지 더 준다.
콩나물해장국밥(3천5백원)은 깔끔하고 시원하다. 멸치와 양파, 무를 망에 넣어 끓는 물에서 다시를 낸 뒤 고추장 양념과 마늘 등으로 맛을 냈다. 싱싱한 콩나물과 파가 듬뿍 들어간데다 식탁에 올려지기 직전 톡 터트려 뜨거운 국 기운에 익혀 먹는 생달걀은 보기에도 구미를 당기게 한다.
원조콩나물해장국집(753-2328)은 시원한 콩나물해장국으로 주당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콩나물국에 김치를 넣어 시원하면서도 얼큰한 맛을 내 술로 뒤죽박죽된 속을 개운하게 해준다. 멸치와 다시를 우려낸 국물에 쇠고기를 갈아 볶아 갖은 양념을 하고 새우까지 넣어 시원한 맛을 냈다.
광안리의 풍광을 즐기면서 속풀이를 하고 싶다면 소문난전주식콩나물해장국집(752-7557)에 들러 볼 만하다. 2층 식당에서는 커다란 유리 창문을 통해 일출일몰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
콩나물국밥과 함께 선지국밥(3천5백원)도 인기 메뉴. 선지국은 밀가루와 왕소금으로 깨끗이 씻어 낸 소창자로 국을 끓여 냄새가 안 나며 토란대와 콩나물, 파를 넣어 깊은 맛을 낸다. 만약 해장하러 이 곳을 들렀다면 문주 한 잔(1천5백원)을 마셔 보자. 막걸리에 계피 대추 감초 등 여섯 가지 한약재를 넣어 끓였는데 맛이 뛰어나고 뒷맛도 깔끔하다.
15. 부산대 앞 돼지국밥 골목
젊음의 기운이 충만한 부산대학교 앞 거리. 신세대들이 활보하는 거리이니만큼 인기 메뉴도 늘 새롭고, 등장하는 음식도 별난 것이 많다. 변화무쌍한 신세대의 입맛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음식의 종류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한데, 10년 이상 버티는 음식점을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렵다.
이런 곳에서 30년 가까이 변하지 않는 맛으로 변덕스러운 신세대의 입맛을 사로잡는 ‘구세대 메뉴’가 있으니 바로 경상도 특유의 음식인 돼지국밥이다.
부산대 정문에서 부곡동 방향으로 내려와 장전시장 쪽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소박한 모습의 돼지국밥 집 7곳을 발견할 수 있다. 골목 가득 풍기는 고향의 냄새가 길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하루 종일 고아 은근한 맛이 나는 국물에 쫄깃쫄깃한 고기와 순대를 듬성듬성 섞은 돼지국밥을 싱싱한 부추와 깍두기와 함께 먹을 때 느끼는 포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기다 저렴한 가격(3천원)이 더해져, 돼지국밥이 오랫동안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것 아닐까.
아침 식사를 거른 젊은 학생들부터 전날 마신 술의 해장을 위해 찾아오는 중년 아저씨까지, 찾는 손님은 주로 남자들이지만 최근 들어선 성별을 불문한다. 여자 손님들끼리 돼지국밥 국물에 소주 한병 시켜 먹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투박한 모양과 맛 때문에 남자전용 음식으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누구나 한 번 맛본 사람은 다시 찾곤 한다.
대학 시절 먹었던 국밥 맛이 그리워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은 물론 타지에서 온 손님과 함께 찾는 나이 지긋한 대학 교수들까지 기성세대 단골층도 두꺼운 편이다. 돼지국밥은 원래 이북에서 먹던 음식인데 남하한 피란민들을 통해 부산경남의 향토음식으로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 비봉식당 주인은 상경한 부산 사람들로부터 서울 와서 국밥집 차리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25년 동안 이 곳을 떠난 적이 없다. 8평 남짓한 식당에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만 세 명이다.
이 곳 돼지국밥은 하루 종일 푹 고아도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고유의 양념장이 감칠맛을 낸다. 생강 마늘 소금과 함께 잡내를 없애 주는 된장은 개운하고 구수하다.
고기는 따로 삶아 다이어트에 신경을 쓰는 젊은 사람에게는 살코기만 내놓고, 기성 세대에게는 비계를 섞어 준다. 깍두기와 부추 반찬이 나오는데 소금과 고춧가루로 맛을 내 깔끔하다. 부추는 겨울에 물이 많이 빠져 겨울초를 섞어 내놓는다. 저녁 술손님들에게는 수육안주(4인분 1만원, 2~3인분 7천원)가 인기.
비봉식당과 나란히 있는 터줏집은 사골을 고아 우려낸 국물에 한약재까지 넣어 담백한 맛에 영양을 더했다.
돼지국밥에 부추와 새우, 쌈장, 국수를 한꺼번에 넣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 주인의 설명. 태양초로 만든 고추장의 매콤한 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어우러진데다 새우까지 넣어 먹으니 그 맛이 진하고 시원하기 그지없다.
직거래해서 구입하는 고기는 기름을 걷어 낸 살코기만을 넣어 줘 그 맛이 뛰어나며 생강 양파 마늘 간장으로 만든 양념장은 국밥 맛을 구수하면서도 깔끔하게 해준다.
밥과 국이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3천5백원)은 고기가 풍성하고, 순대국밥(3천원)은 차진 순대와 진한 국물 맛이 어우려져 별미다.
16. 남포동 양곱창 골목
도란도란 둥글게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로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가 피어 오른다. 연탄불에서 나는 가스냄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쨍그렁’ 유쾌한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답답한 가슴을 타고 스르르 내려오는 차가운 감촉….
연탄불 위에서 쫀득쫀득 잘 익은 곱창 안주는 어느새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아 입 안을 감싼다. 고소하면서도 달콤하고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은 오랫동안 속에 머문다.
맛이 후하고 담백하기 그지없는 양곱창은 소주 안주에 제격이지만 소주 안주치고는 제법 고급스럽다. 1인분 1만원이라면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남녀노소 신분을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위와 장을 보호하는 술 안주로,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미용식으로 그만인 양곱창을 양껏 먹을 수 있는 양곱창 골목이 남포동에 자리잡고 있다.
자갈치시장 농협 농산물백화점 뒤편 골목 사이로 드문 드문 들어서 있는 곱창집을 손꼽아 보니 무려 21곳. 한지붕 아래 서너 집이 함께 장사를 하는 센터가 대부분이어서 막상 하나하나 세어 보면 40곳이 넘는 양곱창 코너가 이곳에 모여 있다. 백화양곱창처럼 오래된 집도 있지만 대부분 최근 3~4년 사이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농협 농산물시장 뒤편의 백화양곱창은 남포동의 화려한 네온간판 속에서 세월을 비켜 간 듯 오래된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양철로 뚝딱 뚝딱 만든 연탄 아궁이겸 식탁, 나무로 만든 긴 간이의자, 건물 사이로 불쑥불쑥 서 있는 기둥들…. 이제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골동품 같은 소품들이 가슴속을 어루만지며 차가운 도시의 바람을 녹여 주고 있다.
처음 곱창전골을 끓여 주는 포장 천막이 있었으나 50년 전에 천막을 걷어 내고 현재의 목조 건물이 세워졌다. 50년 동안 줄곧 이 곳을 지켜 온 식당 주인의 주름살 만큼이나 깊어진 맛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해 온 한숙자(58) 씨는 “첫째는 한우 재료, 둘째는 연탄불이 양곱창 맛을 지켜 온 비결”이라고 말한다.
백화양곱창 옆의 대광양곱창에서 자리를 옮긴 대아양곱창도 연탄불을 고수한다. 2호점을 운영하는 정정희(50) 씨는 매일 양곱창을 구입해 6번 이상 헹궈 낸 뒤 아이스박스에 보관한다. 냉장고도 있지만 아이스박스에 보관해야 제 맛이 난다며 동치미와 함께 넣어 놓는다.
소의 위장을 일컫는 ‘양’. 소금구이와 양념구이가 단연 인기다. 연탄불 위에 달궈진 석쇠에서 굽는데, 소금 후추 참기름으로 간한 소금구이는 참기름 마늘 소금으로 만든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사르르 녹듯 감칠 맛이 난다.
설탕과 고춧가루 후춧가루 물엿 고추장 등 온갖 양념이 들어간 양념구이는 다시마와 설탕 식초 간장 등이 들어간 초간장에 푹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양곱창을 채썰어 밥에 비벼 주는 볶음밥(1인분 5만원 공기밥 1천원)도 별미라면 별미다.
신동아시장 맞은편의 부창양곱창은 깔끔하고 넓어 단체손님이 즐겨 찾는다. 팽이버섯과 마늘 등 재료를 아끼지 않는데다 야채와 과일을 고은 후 생강 마늘 간장 설탕을 넣어 만든 소스의 맛이 남다른 곳이다.
양 대창 소창을 골고루 넣어 주는데 양은 부드럽고 대창은 구수하며 소창은 쓴 듯 쫄깃쫄깃하다. 2인분 전골은 양이 풍부해 3명이 먹어도 모자람이 없다. 반찬으로 나오는 싱싱한 게장은 이미 소문이 나 따로 구입하는 손님도 많다.
17. 해운대 복요리 골목
도톰하게 살이 올라 포동포동한 살집, 진한 육수가 우러나 짭짜름하고 시원한 국물, 입 안에 들어가 혀 끝에서 사르르 녹는 그 부드러움이란.
산해진미 가운데 하나인 복어.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그 맛, 죽음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 복어가 제 맛을 내는 겨울이다. 독을 품고 있는 복어는 독성이 강해지는 매년 4월 산란기가 오기 전인 겨울에 절정의 맛을 낸다.
해운대 유명 온천이 밀집해 있는 해운대구청 주변으로 복어요리 전문점이 다섯 곳이 모여 있다. 술독을 풀러 온천을 찾은 사람들이 사우나 다음 코스로 으레 복어집으로 향해, 유명 온천 주위로 복어집들이 몰려 있다. 복어라고 하면 찬 바람이 부는 겨울,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들이 즐겨 찾는 음식으로 인식되었으나 최근 복어 대중화의 노력에 힘입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시사철 언제나 먹을 수 있는 서민 음식이 되었다.
같은 복어라도 조리 솜씨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같은 요리라도 복어 종류가 달라지면 그 풍미도 차이가 난다.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금수복국은 2대째 대물림하고 있는 손맛이 남다르다. 금수복국이 처음 문을 연 1970년대 무렵 설렁탕 한 그릇이 70원했고 복어국이 200원이었는데, 요즘 그 가격이 별 차이 없어 복어가 서민음식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복어 관리에 쏟는 정성은 탕 한 그릇만 먹어 봐도 알 수 있다. 12월에서 2월 사이에 일년동안 사용할 복을 한꺼번에 구입해 냉동창고에서 보관하는데, 잡는 즉시 배에서 얼려 생고기처럼 신선한 것이 자랑이다.
일반적으로 눈 아가미 알 내장 등에 있는 독을 뺀 뒤 물에 담가 뼈 속의 독까지 빼는데 비해 금수복국은 독 성분을 음식조리 과정에서 활용하기 때문에 국물 맛이 더욱 진하게 우러난다. 탕(은복 7천원, 밀복·까치복 1만3천원) 국물은 그릇 두개를 포개 놓은 이중 뚝배기 덕분에 한 그릇 다 비울 때까지 식지 않고 따끈따끈하다.
애주가들에게는 급랭시킨 복어껍질을 팽이버섯과 미나리 오이 배 김 등과 무쳐 쫄깃쫄깃한 복어 껍질무침(한 접시 1만원)이 인기다. 동동주를 14시간 끓여 계피 설탕 등을 넣은 모주(한 잔 2천원)는 깔끔하고 개운해 해장술로 그만이다.
샤브샤브와 튀김 등 각종 복요리가 소문난 초원복국은 가족 외식이나 손님 접대 등 뭔가 특별한 맛을 느끼고 싶을 때 찾아볼 만하다. 탕도 시원하지만 조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 있다. 초원복국은 중앙동 초밥집에서 솜씨를 갈고 닦은 아버지의 손맛을 이어받아 아들들이 대연동과 영도 등에 체인을 이루고 있다.
복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물을 적게 넣고 익힌 복수육(은복 3인분 2만원)은 잃어 버린 입맛을 살려 주고, 부드러운 복어의 육질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복튀김(은복 3인분 2만원)은 간장 미림 다시 레몬 등으로 맛을 낸 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담백하고 향긋하다. 계란 노른자를 푼 녹말가루를 묻혀 두 번 튀겨 내 먹음직스럽고 바삭바삭하다.
복어를 살짝 익혀 먹는 복어샤브샤브(3~4인분 3만원)는 이 집의 자랑 메뉴. 버섯 정경채 등 각종 야채와 복어가 각각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배추와 파 두부를 먼저 넣고 익힌 다음 나머지 야채와 복어를 익히면 단맛과 어우러져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육수에 계란과 파, 김을 넣은 죽(1인분 2천원)은 고소한 맛이 난다.
18. 서면 뚝배기 골목
화려함은 없지만 은근하면서도 소박한 멋이 나는 옹기그릇. 찌개나 탕이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가 식탁 한가운데 올려지면 남 부러울 것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네 깊은 장맛을 지켜 주던 것이 뚝배기 그릇이었다.
일반 가정집 식탁에서 뚝배기 그릇을 찾아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그 옛날의 우리 맛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은 이 뚝배기 그릇의 편안함을 잊지 못한다.
투박하게 생겨 경상도 말로는 ‘툭사바리’라고 불리는 뚝배기. 식당에서는 음식이 식지 않도록 온기를 유지하는데 그만이고, 국그릇을 따로 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서면 롯데백화점 뒷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골목 안으로 쭉 들어가면 청국장 된장찌개 등을 뚝배기에 담아 내 주는 밥집들이 모여 있다.
최근 화려한 상가지역으로 변모한 이 곳에 뚝배기집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 그 때만 하더라도 부산상고와 여관 등 숙박업소만 즐비했다.
한두 곳 생겨난 음식점에서 파는 뚝배기가 소문이 나면서 뚝배기집 앞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10여년 전 10여 곳이 넘는 뚝배기 전문집이 생겨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높은 집세와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고 속속 문을 닫았다. 이제는 롯데백화점 뒤편 소공원을 중심으로 5곳의 뚝배기 전문점이 남아 있을 따름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원조뚝배기는 구수한 청국장 맛이 일품이다. 집에서 직접 콩을 삶은 뒤 더운 여름에는 5일, 추운 겨울에는 7일 정도 발효시켜 청국장을 만드는데 고향의 맛을 느껴 보지 못한 젊은 사람이라도 그 깊은 맛에 반하고 만다.
순수 국산 콩을 사용해 맛이 순하고 부드러우며 청국장으로 만든 청국장뚝배기(5천원)도 구수하고 깔끔하다. 두부와 해물 파가 듬뿍 들어간데다 콩이 씹힐 듯 걸쭉한 맛이 느껴진다. 뚝배기 한 그릇만 나오면 섭섭해서일까 함께 내놓는 반찬 또한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싱싱한 채소에 고등어조림을 폭 싸서 쌈장을 넣고 한 입에 넣으면 향긋한 채소향과 쌈장의 구수함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담백하고 싱싱한 고등어와 어우러진 청국장맛은 미각을 돋우어 준다. 아침 저녁 담그는 생김치와 시원한 물김치 맛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인근 호텔에서 묵는 일본인들이 자주 찾는데 김치 맛에 반해 김치만 따로 사 가기도 한다. 싱싱한 게장도 남기면 손해다.
맞은편의 부전뚝배기는 3천5백원짜리 된장뚝배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저렴한 가격과 집에서 먹는 음식처럼 편한 것이 이 집 음식의 특징. 된장뚝배기는 짭짤한 듯 구수한 맛이 나고 까나리액젓으로 맛을 낸 반찬들이 깔끔하다. 된장과 순두부(3천5백원)는 멸치와 다시마 등을 우려낸 물로 끓이는데 된장의 텁텁한 맛이 덜하고 뒤끝이 개운하다.
골목에서 약간 벗어나 있긴 하지만 오랜 전통과 빼어난 맛을 자랑하는 곳으로 할매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지금 만남의 광장 맞은편에서부터 자리를 두 번 옮겼는데 단골들이 발길을 돌리지 않고 식당을 따라다닌다. 아들과 며느리가 대를 잇고 있는데도 된장과 간장만은 처음 뚝배기를 끓여 내던 할머니가 직접 담근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식당 입구에는 된장통이 여럿 나와 있고 통 위에는 시래기들이 말려지고 있다.
한정식(4천원)에는 시래기국이 나오고 쌈밥정식(4천5백원)은 된장뚝배기가 나온다. 쌈에 고등어조림을 싸 먹기도 하지만 작은 접시에 함께 나오는 멸치젓갈은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19. 금호마을 청둥오리촌
겨울이다. 찬 바람이 불어 몸이 으슬으슬 추워질 때는 몸을 따뜻하게 데워 주는 보양식 생각이 간절해진다.
불포화지방 함량이 높아 살찔 걱정이 없으면서도 에너지 공급원으로 손색이 없는 오리로 추위와 공해에 허약해진 몸을 보충해 주는 것은 어떨까. ‘마흔이 넘으면 오리고기는 찾아다니면서 먹으라’고 말하지 않던가.
오리는 필수 아미노산이 고루 들어 있어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한다. 지방 함량이 높은 에너지 공급원이지만 60%정도가 불포화 지방산이어서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등의 혈관계 질환 예방에 좋다.
노화방지는 물론 피부를 탱탱하게 해줘 여성들의 미용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뛰어난 자색을 자랑했던 중국의 서태후도 오리고기를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백오리와 달리 청둥오리는 야생의 성질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음식점에서 파는 청둥오리는 집오리와 야생 겨울철새를 짝짓기시켜 사육된다. 백오리와 달리 털이 검고 크기도 훨씬 작다. 5~6개월 동안 길러야 하고 운동량이 많아 껍질이 얇고 지방이 적은 점도 백오리와 다르다.
김해공항에서 약2㎞ 떨어져 있는 강서구 대저2동 금호마을에는 청둥오리 요리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음식점이 11곳이나 있다. 동서고가로와 서부산인터체인지가 가까워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공항과도 멀지 않아 결혼피로연 손님들의 발길도 잦다.
애당초 청둥오리 농장이 먼저 자리를 잡았으나 공항 주위로 도로가 개통되면서 농장은 철거되고 음식점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강서구청 인근 농장에서 사육한 오리를 공급받고 있다.
몸에 좋은 청둥오리에 온갖 한방약재까지 넣는다면 금상첨화. 한방약탕(3만5천원)은 일상에 쫓겨 몸이 지친 사람에게는 한철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마을 입구 초원의 집은 보글보글 끓는 청둥오리 약탕을 큰 뚝배기에 담아 낸다. 압력솥에서 끓인 뒤 옮겨 담은 것인데 녹각 당귀 황기 감초 대추 밤 들깨 구기자 등 11가지 한방 재료가 들어 있다.
말이 탕이지 약탕에 가깝다. 갖은 약재가 듬뿍 들어 있고 압력솥에서 오래 삶아 국물이 거의 없이 걸쭉하다. 약간 쓴 듯 담백하고 부드러운 육질이 여느 고기와 다르다.
오리의 배를 갈라 그 속에서 익힌 찹쌀은 오리와 한방약재의 영양성분이 스며들어 더욱 먹음직하다. 갖은 재료가 듬뿍 들어 있어서인지 한 마리로도 3~4명이 너끈히 먹을 수 있다. 압력솥에서 푹 고아내기 때문에 조리시간이 45분이나 걸리므로 아예 예약을 해 놓는 편이 낫다.
청둥오리 전문점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금호마을은 20년 묵은 손맛을 자랑한다. 매운탕으로 나오는 오리도리탕(2만5천원)은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주먹만한 감자와 듬뿍 들어간 팽이버섯이 먹음직스럽다. 송송 썬 미나리와 붉은고추 푸른 풋고추 파가 미각을 돋우고 무도 시원한 국물 맛을 더해 준다.
지방이 적어 구워도 고기의 양이 그대로인 점도 청둥오리가 여느 오리와 다른 점이다. 청기와가든의 오리구이(1마리 2만원)는 고추장 물엿 참기름 등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내는데 지방이 적고 쫄깃쫄깃하다. 고기를 먹고 나면 된장찌개(2천원)와 공기밥(1천원)을 시켜 식사를 할 수 있다.
20. 광안리 불고기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한 입 삼키면 사르르 녹듯 입 안을 감싼다. 이빨로 씹을 틈도 없이 부드러운 맛이 혓바닥으로 퍼져 간다. 고소하게 스며드는 후각의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불고기의 매력.
조금은 쓸쓸한 듯해 더욱 운치있는 겨울 바다, 광안리. 정겨운 사람과 더불어 바닷바람을 쐬고 싶다면 광안리를 찾아 보자. 따뜻한 숯불에 언 몸을 녹이며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은 식당들이 가까운 곳에 있다.
부산 수영구 광안2동 바다를 마주한 원조언양불고기. 쇠고기 애호가를 자청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러 봤을 만한 곳이다.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들 수 있고, 언제 찾아도 그 분위기 그 맛이 변함이 없다. 그래서인지 20년 넘게 발길을 끊지 않는 단골이 많다.
허름한 간판, 미끌미끌 넘어질 것만 같은 낡고 닳은 바닥이 오랜 세월을 증명한다. 무너질 듯 서 있는 초라한 건물을 한 번쯤 고쳐 보려고도 했지만 오래된 정겨움에 취한 단골들 성화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상호는 언양불고기지만 하루에 두세 차례씩 부산 김해 등지에서 싱싱한 고기를 구입해 온다. 메뉴는 단 두 가지. 소금구이(1인분 1만4천원)와 불고기(1만2천원)뿐이다.
고기는 등심 부위만 사오는데 40% 정도만 소금구이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불고기용으로 양념한다.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소금구이는 숯불에서 살짝 익혀야 제맛이 난다. 쇠고기에 띠포리, 다시마를 함께 넣어 진국을 우려낸 김치찌개 또한 반할 만하다.
김치찌개라면 진미언양불고기를 빠뜨릴 수 없다. 쇠고기를 우려내 시원하고 매콤한 국물과 뭉근할 정도로 오랜 시간 익힌 김치는 일본에까지 수출되어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김치찌개는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담근 백김치로 끓여야 제 맛이 난다. 오래 달일수록 맛이 좋아 식당에서는 하루 전날부터 물 7말이 들어가는 큰 냄비에서 끓여 놓는다. 뚝배기에 담겨 나온 김치찌개는 먹기 직전 식탁의 숯불에서도 달궈진다.
‘손님 많은 음식점에 가면 실패 확률이 적다’는 말은 음식 재료가 냉장고에 묵혀 두지 않아 신선하다는 말. 구포나 양산에서 사온 한우나 채소는 냉장고에 쌓일 겨를이 없다. 간장 설탕 마늘이 들어간 양념장은 불고기(1인분 1만2천원)가 구워지기 직전에 올려진다. 버섯까지 올려 지글지글 익히면 제법 먹음직스럽다. 간간하게 양념이 배어나 사르르 녹듯 부드럽다. 고기를 먹고 난 뒤 식사 주문을 하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계란찜이 나온다(공기밥 2천원).
김치찌개는 아예 포장팩으로 만들어져 판매(2~3인분용 2천5백원, 3~4인분용 3천5백원)되고 있다.
불고기 식당이 밀집된 이 곳에서 저렴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도 있다. 진미언양불고기 맞은편 오시오숯불갈비는 저렴한 돼지고기 삼겹살(1인분 5천원), 돼지갈비(1인분 5천원)로 젊은 사람들의 인기를 끈다.
냉동시키지 않은 생삼겹살은 불고기가 부럽지 않다. 흰지방이 세 겹인 생고기 삼겹살은 쫄깃쫄깃한 고기 맛을 보증한다. 한 접시 나오는 감자도 그대로 익혀 먹기 좋다. 파 고추 간장 마늘을 끓여 양념한 갈비도 부드러워 식사나 술안주로 부족함이 없다. 시설이 깨끗한데다 24시간 문을 닫지 않아 새벽까지 술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21. 온천장 곰장어
먹장어 또는 갯장어가 바른말이지만 꼬들꼬들 알맞게 익어 입에 들어가서는 쫄깃쫄깃 톡톡 씹히는 이 매력 넘치는 음식에는 왠지 ‘곰장어’라는 방언이 더 잘 어울린다. 사실 곰장어보다는 경상도식 억센 억양의 ‘꼼장어’라 불러야 직성이 풀릴 만큼 이 곰장어는 향토색이 강하다.
찬바람을 맞으며 뜨끈뜨끈한 오뎅국물에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서민의 주점 포장마차에서 곰장어는 으뜸안주로 통한다. 곰장어는 찬 겨울바람으로 마음까지 시린 사람들에게 더할 수 없이 좋은 술안주다.
온천이 많은 동래온천 주변에 70년대부터 곰장어 밀집촌이 형성되었다. 부산 동래구 온천1동 할매산곰장어 맞은편에 5개의 곰장어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나란히 서 있는 가건물 때문에 온천장 곰장어가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80년대부터 스태미나 음식으로 알려지게 된 것도 온천장 곰장어의 유명세를 불러주었다.
현재 허심청과 녹천탕 천일탕 등 온천 밀집지역 인근으로 곰장어 전문점은 8곳이 있다. 대부분 새벽까지 문을 열어 놓고 술손님을 기다리는데 양념구이 소금구이 통구이 3가지로 조리된다. 곰장어를 먹고 나면 밥(1공기 1천원)을 볶아줘 식사시간이나 주말에는 외식손님도 적지 않은 편이다. 실제로 곰장어는 라이신과 알기닌 등 필수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어린이 성장발달을 도와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3~4인분) 3만원, 중(2인분) 2만원, 소(1~2인분) 1만5천원으로 가격은 대동소이하나 곰장어를 굽는 연료나 양념, 주인의 손맛은 각기 달라 집마다 미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서 한 번 구워 낸 다음 바알간 양념과 설탕 양파를 듬뿍 올려 다시 한 번 더 구워 내는 양념구이는 곰장어의 담백하고 쫄깃한 맛, 양념의 매콤하고 달짝한 맛이 어우러진 별미다.
할매산곰장어는 70년대부터 시작해 시어머니 며느리 딸까지 3대를 이어가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연탄불을 고집한다. 원조 멤버 가운데 한 곳으로 주인 최막필(53)씨는 근 20년을 매일 같이 풍로가 달린 연탄불 앞에서 곰장어를 구워 왔다고 한다. 온천을 하고 난 뒤 출출하던 차에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찾아온 손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장어를 불에 익혀 참기름과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소금구이는 곰장어 본래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다 냄새까지 구수하다. 원조소문난곰장어는 곰장어를 연탄불에서 구운 뒤 양파와 함께 다시 살짝 굽는다. 최근에는 돌판을 식탁에 올려 구워 주기도 하는데 먹는 동안 식지 않고 따뜻하다.
연탄불에 구울지 돌판에 올려 구울 지는 손님이 선택사항. 곰장어 마니아들은 일단 연탄불에서 먼저 구운 뒤 돌판에서 다시 데워 먹는 방법을 선호한다. 원조소문난곰장어는 최근 보수공사로 매장이 한층 넓어져 단체손님들이 자주 찾고 있다.
문을 연지 2년밖에 안됐지만 깔끔한 인테리어와 주인의 별난 정성에 있어서는 록왕산곰장어도 뒤지지 않는다. 연탄불로 굽지 않고 100% 돌판에 올려 익혀 먹는 것이 이 집의 특징이다.
반찬으로 나오는 곰장어 수육 또한 이 집의 자랑거리. 곰장어 껍질로 만들어 내는데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만 단백질이 농축되어 있는 영양 덩어리다. 소금물에 씻어 비린내를 없앤 뒤 양파즙 후추 등 6가지 재료로 만든 양념을 넣어 푹 고아내는데 묵처럼 부드럽다. 볶아 주는 밥맛도 좋다. 송송 썬 파와 김치에 김을 올려 정성껏 볶아 주는데 곰장어 양념과 어울러진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에 누구라도 금세 반하고 만다.
22. 범일동 초밥거리
윤기가 차르르 흘러 보슬보슬 숨을 쉬는 쌀밥과 부드럽고 담백한 육질이 살아 있는 듯 싱싱한 생선회 한 조각의 기막힌 조화.
밥과 생선회 사이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는 매콤한 고추냉이(와사비)가 눈물을 쏙 뺄듯 매콤하게 전해 오면서, 밥과 회는 춤을 추듯 빙그르 돌며 입 안을 사르르 녹인다. 생선회의 싱싱한 맛이 최고조에 달하는 겨울은 생선초밥의 환상적인 미각이 오감을 자극하는 계절이다.
모양이 흐트러져도 맛만 있다는 말도, 맛은 없어도 모양이 좋지 않느냐는 말도 초밥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먹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 두 가지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제 이름값을 할 수 있다.
200알 남짓한 밥알을 손바닥에 올려 쥐락 펴락 묘기를 부리는 초밥 조리사들의 신기에 가까운 손놀림에는 결코 하루 아침에 완성될 수 없는 숙련의 노고가 숨어 있다.
부산 동구 범일2동에 모여 있는 초밥집의 조리사들은 자존심이 남다른 ‘초밥의 달인들’. 범일2동 국제호텔 주변에 밀집되어 있는 14곳의 초밥집에는 부산에서 내로라 하는 초밥의 달인들이 갈고 닦은 솜씨 경쟁을 펼치고 있다.
범일동에 초밥집이 모여들게 된 사연 속에는 국제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부산을 대표하는 호텔로 부산을 찾은 고위공무원 사업가들이 투숙했고, 자연히 이들의 구미에 맞는 초밥집들이 생겨나게 된 것. 최근에는 대중음식점으로 변모해 더욱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화성초밥 주인 이양수(48)씨는 30년 가까운 경력에 초밥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칼 솜씨만으로도 초밥의 맛을 알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씨는 13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이씨가 자랑하는 초밥은 생선과 밥 사이에 향긋한 깻잎을 넣어 만든 특미초밥.
살얼음이 남아 있을 정도로 알맞게 해동된 참치를 약간 두껍게 썰어 밥 사이에 고추냉이와 깻잎을 함께 올려 사각사각 거린다. 노란 알이 수북히 올려진 날치알초밥,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성게알초밥은 김과 어우러져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초밥에는 최고급 생선을 사용한다. 횟감을 뜨고 남은 생선뼈로 끓여 내는 미역국 때문에 멀리서 초밥을 사러 오는 산모의 친지들이 한둘이 아니다. 8개가 오른 초밥 한 접시에 1만5천~2만원선.
부산초밥의 초밥은 맵싸한 고추냉이가 미각을 자극한다. 찹쌀을 섞어 쫄깃쫄깃한 밥과 장어 새우 오징어 청어알의 부드럽고 담백한 해산물을 어울려 싱싱한 초밥을 내놓는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장어, 찬 감촉에 쫄깃쫄깃한 육질의 광어가 입맛을 되찾아 준다.
회의 종류와 부위, 신선도와 냉동 상태에 따라 등급이 달라지는 초밥. 제대로 먹으려면 갖은 찬은 다 빼고 초밥을 맛있게 달라고 주문하라고 한다. 부산초밥 신정철 조리사는 “초밥의 달인들은 이런 미식가들을 알아서 모시는 법”이라고 말한다. 초밥에서도 최고로 치는 참치의 뱃살(도로)을 맛보기로 먹을 수 있다.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 맛으로 인기를 끄는 생태탕은 일식요리전문 대원이 자랑하는 음식. 띠포리와 무 다시마를 1시간 이상 끓여 깊은 맛을 내는 데다 생고추를 썰어 올려 더욱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멍게 회 해삼 새우를 딸기와 레몬과 곁들어 소스에 찍어 먹는 초회, 사과 당근 양파 마늘을 갈아 간장 식초 설탕으로 맛을 낸 간장소스를 올린 샐러드 등 곁들여 나오는 음식 하나 하나가 모두 먹음직스럽다.
23. 강서구 잉어찜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낙동강에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는다. 어느새 봄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낙동강 둔치도의 갈대숲이 봄햇살에 반짝거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사계절 갈대의 풍광이 아름다운 낙동강의 별미라면 잉어찜을 빼놓을 수 없다. 싱싱한 잉어를 쪄서 갖은 양념으로 맛을 낸 잉어찜은 낙동강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부산 강서구 서낙동강의 둔치도에는 아름다운 갈대의 풍광을 만끽하며 고향의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잉어찜 전문점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낙동강을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족들이 늘면서 최근 5년새 음식점들이 모여든 것이다. 가락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녹산 방향으로 난 길에 잉어찜 간판을 크게 내건 전문점이 10여 곳이 있다.
부드러운 살의 잉어는 향수에 푹 빠져 들게 한다. 피를 맑게 해주고 성인병을 예방해 주는 강장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잉어는 단백질 지방 미네랄 등이 풍부하며, 예로부터 몸이 붓고 소변을 잘 보지 못할 때 약으로 쓰였다. 아이를 낳고도 젖이 잘 나오지 않는 산부들도 잉어를 고아 먹곤 했다.
둔치도 안쪽의 죽전가(竹田家)는 풍치가 좋아 화가나 사진작가들의 작품 배경이 되곤 한다. 봄에는 멀구슬나무의 은은한 낙화가 장관을 이루고 여름에는 베고니아가, 가을이면 국화가 만발한다. 음식점 앞으로 대나무밭이 있어 죽전가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둔치도가 고향인 부부가 정성스럽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내어 온다.
두 번을 쪄서 완성되는 잉어찜(2~3인분 3만원, 4인분 4만원)은 부드럽고 담백하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약 40㎝ 정도로 팔뚝만한 크기가 한 접시 가득 올라와 입맛을 돌게 하는데 텃밭에서 키운 상추에 마늘 한쪽, 이 집에서 직접 담근 장을 살짝 올려 먹으면 쫄깃쫄깃한 살점이 입 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진다.
처음 잉어의 배를 갈라 옥수수 콘을 듬뿍 집어넣어 쪄 비린내를 말끔히 없앤 뒤, 두번째 찔 때는 양념과 야채를 올려 맛을 낸다. 찹쌀가루 들깨가루 마늘 생강 양파 감자 무를 갈아 진간장 물엿 고추장 고춧가루를 넣어 버무린 양념은 잉어 맛을 매콤하면서 향긋하게 해준다.
대밭에서 1년을 묵혀 곰삭은 김치도 별미거니와 동김치를 물에 우려내 햇볕에 말린 다음 물엿과 간장으로 끓여 꼬들꼬들한 무장아찌도 우리 음식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준다.금방 지어낸 뚝배기밥(1인분 2천원) 맛에 반하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현미 율무 콩 보리를 갈아 쌀과 함께 지어내 찰진데다 끓는 물을 부어 마지막에 마시는 숭늉은 구수하기 그지없다.
기름을 쫙 뺀 장어구이(1인분 1만3천원)도 깔끔하다. 파 양파 생강 마늘을 3~4시간 고아 고추장과 마늘로 간을 해서 만든 장어소스로 맛을 냈는데, 채를 썰어 듬뿍 올려진 생강과 파가 담백한 장어의 살점을 향긋하게 해준다.
낙동강 갈대를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민물집은 맵싸한 잉어찜 맛이 특징이다. 찌지 않고 양념이 잘 배도록 센 불에서 졸인 뒤 파 고추 당근을 길게 채 썰어 먹음직스럽게 올려 낸다.
고추장 물엿 간장 마늘 생강 정종에 계피를 넣어 향긋한 양념에 알맞게 졸인 감자가 별미다. 3년 전 개통된 8차선 국도 아래 펼쳐진 갈대의 장관을 어느 곳보다 잘 볼 수 있다.
24. 청사포 회촌
망망대해가 아름답게 펼쳐진 청사포는 일찍부터 고기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지금까지도 횟집이 성황을 이루고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명소.
동해의 최남단과 남해의 최동단이 교차하는 지점, 청사포의 회는 단단하고 쫄깃쫄깃한 육질을 자랑한다.
청사포(靑沙浦)란 지명의 유래에는 어촌 여인의 애절한 전설이 있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나무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여인이 있었다. 바닷속 용왕이 그 여인네를 용궁으로 데려가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는데 여인을 용궁까지 태워 준 것이 바로 푸른 뱀(靑蛇)이었다. 나중에 사(蛇)가 좋지 않다고 해서 사(沙)로 바꾸어 청사포(靑沙浦)가 되었다.
여인이 남편을 기다리며 앉아 있던 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이라고 믿는 주민들은 매년 5월 포구 남쪽의 노송에 제를 올리고 있다.
청사포는 해운대에서 바다를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활어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손꼽힌다. 바닷가 쪽으로는 아이들이 바지를 걷고 가재 낙지 앙장구를 주울 수 있어 주말 가족 외식지로 손색이 없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고개를 넘어 만나는 청사포가 횟집타운으로 변모한 것은 40여년 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