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후반에 와서 네덜란드 지방에서는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이성을 강조하는 인문주의적 경향이 나타나면서 도덕적 실천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진보주의 사상이 종래의 교리를 강조하는 교리적 칼뱅주의에 도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크게 퍼져 나갔으며 진보사상의 대표자는 야곱 아르미니우스(Jacob Arminius, 1560-1609)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편성과 인간의 자유의지설을 주장하면서 칼뱅의 예정설과 원죄설을 부정하였다. 그는 또한 칼뱅주의자들의 주요 신조인 벨기에 신앙고백과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의 수정을 주장했으므로 칼뱅주의적 정통파의 많은 반대와 공격을 받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유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를 비롯한 진보주의 학자들과 정치가들이 아르미니우스의 사상을 지지하고 일어나서 1610년에는 네덜란드 국회에 정통주의에 도전하는 항의문을 제출하였음으로 이들을 '레몬스트란트'(Remonstrant) 곧 '항의자'라고 불렀다. 이 항의문은 칼뱅주의의 5개 요점을 거부하고 그 대신 자기들의 5개 요점을 기록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은혜의 보편성과 믿는 자는 다 구원받는다는 만인 구원설과 하나님의 은혜에 협력하는 신자의 노력을 강조하는 협동론과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에 항거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아르미니우스 자들의 주장에 반대해서 칼뱅주의자들이 1618년에 도르트(Dort)에서 회의를 소집하여 칼뱅주의의 5대 강령을 다시 천명하게 된 것이다.